[생물노트] 진달래 꿀 먹고 진주 알 낳는 애호랑나비

이강운의 24절기 생물 노트 <8> 곡우
라펜트l이강운 소장l기사입력2017-04-23
생물학자 이강운의 ‘24절기 생물 노트’<8> 곡우

진달래 꿀 먹고 진주 알 낳는 애호랑나비
일본선 멸종위기종인 봄 전령, 애벌레 먹이인 족두리풀 심자 돌아와
애벌레 늘어나자 새들도 번식 서둘러, 어김없는 생태계 일정표


_이강운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
(사)한국환경복원기술학회 부회장



진달래꽃에 얼굴을 파묻고 정신없이 꿀을 빠는 애호랑나비. 봄의 전령이다.

산중이 고요하다. 깊은 산속 연구소라 늘 조용하고 한적하지만 지난 열흘 넘게 아들 결혼 때문에 미국의 처가 식구들과 결혼식에 직접 참석하지 못할 각지의 지인들이나 동네 어르신들이 사나흘씩 혹은 잠간씩이라도 머물다 가거나 인사차 다녀갔기 때문에 북적대는 도시 같았다. 딸도 치러 봤고 두 번째 결혼식인데도 정신없이 지나갔고, 연구소로 돌아오자 비로소 아늑하면서도 편안해졌다. 산에 기대어, 산을 품고 살면서 산의 숨결을 느끼는 조용함이 이미 몸에 배었기 때문이지. 내가 예전엔 도시에서 어떻게 숨을 쉬며 살았지?

곡식에 필요한 비가 내린다는 곡우. 봄의 마지막 절기다. 시시각각 훈풍을 타고 온 세상이 꽃으로 채워져 온통 꽃물결이다. 이때는 푸름과 화사함 가득한 자연으로부터 정기를 받아 오감이 열리며 몸속의 온갖 에너지가 충만해 몸과 마음이 많이 가벼워져 자신감을 느낄 수 있다. 이제 봄은 절정을 넘어 낮에는 온도가 올라 여름을 느끼게 하고 밤이 되어도 쉽게 어두워지지 않는다.

4월19일 아침 기온이 2.7도를 가리키고 있다. 아직 쌀쌀하지만 낮이 되면 덥게 느껴질 정도다.

아직 냉기를 느껴 내복을 입고 있지만 해만 뜨면 내복이 덥게 느껴질 정도로 봄기운은 푹 익었다. 깊은 골 따라 피 토하듯 붉은 진달래가 만개해 있고 앵두와 살구나무가 하얀 꽃을 피웠다. 품을 열어 곤충을 맞이하는 꽃에 벌과 나비가 화답하여 짝을 맺어준다. 지린내 나는 쥐오줌풀과 붉은색 비단 주머니 모양의 금낭화도 한창이다. 사랑에 목마른 인간들은 하나의 의미가 되고자 꽃이 되고 싶어 했지만 곤충에게 꽃은 가장 영양분이 많은 생명줄이다. 때론 늦게 때론 빨리 서로 뒤엉켜 피어나선 순식간에 사라지고, 이렇게 많은 꽃들로 형형색색 수놓고 있는 다양한 자연을 어떻게 기억하고 묘사할 수 있을까. 


주머니 모양의 꽃이 아름다운 금낭화

까마귀오줌통이라는 재밌는 별명을 가진 냄새 고약한 쥐방울덩굴이 삐쭉 붉은색 싹을 내밀고 꼬리명주나비는 촘촘히 알을 낳느라 바쁘고 사향제비나비도 등칡 묵은 줄기 새순에 선홍 빛 아름다운 알을 한 개씩 붙여 놓는다. 인간이 먹는 농산물이나 관상수가 아니어서 잡초라는 이름으로 멸시 당해 온 식물이지만 나비는 특별히 정해진 식물만을 먹이로 하는 스페셜리스트이므로 만약 이들이 없으면 꼬리명주나비나 사향제비나비는 이 세상에 살 수 없을 것이다. 심지어 반드시 없애야 하는 외래식물로 지정된 환삼덩굴만 먹는 네발나비는 목숨이 촌각에 달려있다. 대왕박각시도 큼지막한 연둣빛 알을 복숭아나무에 줄지어 낳았다. 

꼬리명주나비가 쥐방울덩굴 줄기에 알을 촘촘히 낳아 놓았다.

회양목 꽃 피자 낙엽 밑에서 겨울을 무사히 보낸 꽃보다 더 눈부신 금속광택의 큰광대노린재 애벌레가 인사하고 황철나무잎벌레가 버드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려 열심히 잎을 먹고 있다. 


금속 광택이 멋진 큰광대노린재 애벌레


버드나무에 매달려 열심히 잎을 갉아먹는 황철나무잎벌레.

월동하던 애벌레가 움직이고 곤충들이 새끼를 키우기 시작하자마자 얼마나 많은 새 소리가 들리는지. 동트는 새벽부터 열심히 지저귀던 딱새도 둥지를 틀었다. 둥지를 열자 10개의 알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보통 6~7개의 알을 낳는다고 했는데 올 해는 먹이인 애벌레가 풍부할 것이라고 미리 짐작하고 있나 보다. 새 순이 나오고 꽃이 피자 꽃은 꽃대로 잎은 잎대로 자연의 속도를 맞춰, 먹이가 출현하는 철에 맞춰 동기화 된 먹이 사슬이 무리 없이 준비된 일정표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 


딱새 둥지와 그속에 든 알 10개.

멸종위기곤충 애기뿔소똥구리의 신선한 먹이원인 소똥을 얻기 위해 키우고 있는 횡성 한우 코프리스와 업쇠를 어제 방목지로 내놓았다. 저 푸른 초원 위 푸르른 풀로 달려가고 싶어 온몸이 근질근질하여 하루 종일 풀어달라고 아우성치던 소들을 내놓자 펄쩍펄쩍 뛰며 말보다 더 빨리 줄달음친다.


강아지처럼 깡총깡총 뛰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행복한 한우'

호랑나비보다 좀 작은 봄의 전령사 애호랑나비. 일본에서는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된, 이른 봄 가장 먼저 만나볼 수 있기 때문에 붙은 ‘이른 봄’ 애호랑나비도 족두리풀에 알을 낳았다. 작년 여름 튼 번데기에서 나와 날개돋이를 하자마자 때맞춰 꽃을 피우는 진달래에 얼굴을 파묻고 꿀을 빤다. 귀한 먹이로 배를 채운 애호랑나비는 손끝이 살짝만 닿아도 또르르 굴러 떨어질 것만 같은 진주같이 영롱한 알을 낳았다.


족두리풀 잎에 애호랑나비가 낳아놓은 진줏빛 알

하트 모양의 잎과 땅에 붙은 자주색 족두리 모양인 족두리풀의 뿌리는 매운 맛이 나는 ‘세신(細辛)’이라는 한약재로 쓰이는 탓에 홀로세생태학교를 만들기 전 동네사람들이 약재상에 팔기 위해 족두리풀을 마구잡이로 채취하면서 모두 없어졌다. 먹이가 없어지니 애호랑나비도 당연히 사라졌고. 문헌 기록이나 주변 식생으로 볼 때 서식 가능성이 충분하므로 재도입을 위한 서식지 조성을 하였다. 연구소 곳곳에 족두리풀과 진달래 군락을 만들어 애벌레 먹이와 어른벌레 영양식을 제공하자 어느 샌가 찾아와 알을 낳았고, 이제는 진달래꽃 필 때만 되면 만날 수 있는 나비가 되었다.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의 봄 풍경

4월 15일, 곤충 키우듯 잘 키운 아들을 결혼시켰다. 결혼 일이 마침 세월호 아이들 삼년상과 겹쳐 청첩을 하면서도 정신이 사나왔다. 결혼한 내 자식의 아이들 미래에 용기와 희망을 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일과 애호랑나비 서식지 환경을 조성하는 일은 다르지 않다.

곡우를 지나 본격적인 여름으로 계절이 바뀌는 환절기. 다른 곳보다 늦게 피었으면서도 빨리 저버리는 얼마 남지 않은 벚꽃 잎이 바람에, 비에 흩날린다. 봄비가 백곡(百穀)을 윤택하게 한다하고 특히 올봄에 내리는 비는 겨울 가뭄을 풀어주는 '약비'라고 하지만 며칠 보지 못하고 스러져가는 꽃을 생각하면 서운하기도 하다. 이제 꽃 지고, 잎이 피기 시작했으니 봄날이 갈 것이다.  
 
자서전을 출간하면서 자신들도 5·18의 희생자라고 궤변을 늘어놓는 자나 뻔한 거짓말로 끝까지 버티며 국민의 속을 뒤집어놓고 분노케 하는 자들로 대한민국 현대사가 엉망이 되고 있다.

2017년 장미가 피고 아름다운 나비들이 하늘을 수놓을 무렵. 어제의 죄를 오늘 반드시 벌하고 그 만큼의 죄 값을 받게 하는 현명한 국민적 선택이 기다리고 있다. 상식적이고 더불어 건강하게 살 수 있는 터를 마련하여 원래의 민주주의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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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한겨레의 동의를 얻어 발췌한 기사이며, 이강운 소장의 주요 약력은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 / 한국환경복원기술학회 부회장 / 한국서식지외보전기관협회 회장 / 국립안동대학교 식물의학과 겸임교수 / 저서로는 <한국의 나방 애벌레 도감(Caterpillars of Moths in Korea)>(2015.11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 <캐터필러>(2016.11 도서출판 홀로세)가 있다.
이메일 : holoce@hecri.re.kr       
블로그 : http://m.blog.naver.com/holoce58
_ 이강운 소장  ·  (사)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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