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시선] 일상 속의 시간척도2 - 짧은 순간의 여유

성종상 논설위원(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라펜트l성종상 교수l기사입력2017-06-07
일상 속의 시간척도2 - 짧은 순간의 여유



_성종상 교수(서울대 환경대학원)




일상에서 벗어난다는 것

지난 가을 필자는 잠시 천리포수목원에 머문 적이 있다. 모처럼 연구년을 맞이하여 그동안 부족한 글도 읽고 머리도 식힐 겸해서 책과 옷가지 몇 개만 싸들고 내려갔다. 일반에 개방한 지 수년이 지났지만 디자인 관점에서는 아직 손대지 못한 부분이 많은 터라 여건이 되는대로 하나씩 찾아내어 고치는 일에 기여할 바가 충분히 있으리라는 마음에 염치불구하고 수목원에 지내기로 한 거였다. 철망 울타리로 둘러쳐진 채 방치(?)되어 있던 정문 주변도 새로 공간조건을 정리하면서 전면 재설계를 통해 수목원 입구정원으로 면모를 쇄신하였고, 사구와 수목으로 둘러싸인 채 짙은 그늘이 인상적인 작은 연못에는 비 오는 날 수면 위에 듣는 빗 방물을 바라보며 잠시 명상에 빠져들 수 있는 데크를 새로 설치하기도 했다. 예기치 않던 사태로 인해 학교로부터 보직을 명받아 급히 불러 오느라 마무리를 채 하지 못하기도 했지만 신축된 입구 플랜트샵 주변 식물판대장과 전시정원도 새로 들어서고 커피숍이 이전해 오게 되면 천리포수목원은 한결 새로워진 얼굴로 손님을 맞이할 수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천리포수목원 입구정원. 철조망으로 엉성하게 둘러쳐 있어 입구조차 제대로 인식하기 어려웠던 것을 한국적 산야의 풍경을 주제로 새로운 전정으로 조성했다. ⓒ 성종상. 2017년 5월  


천리포수목원 입구정원 ⓒ김근호. 2017년 5월

매일 아침 출근하여 책을 읽거나 글을 쓰다가 저녁 늦게 숙소로 들어가는 단순한 일과는 그 자체만으로도 필자에게는 힐링이었다. 숙소로 들어가는 길에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하루하루 별자리가 조금씩 이동하는 것을 직접 확인하기도 하고, 귓가에까지 다가와 철썩대며 물러가곤 하는 파도소리를 잠자리에 누워 듣노라면 정신까지도 한결 맑아지는 듯했다. 종종 직원들과 현장을 돌며 수목원의 현상태와 조건, 그리고 문제를 확인하면서 개선할 방안을 논의하기도 하고, 때로는 정원학교 과정생들에게 강의를 하며 보낸 일과는 이전까지와는 사뭇 다를 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수목원 속에서의 일이라 미처 일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그곳에서의 생활에서 몸과 마음이 유달리 가벼웠던 이면에는 아마도 그간의 일상으로부터 벗어나 있다는 데에서 오는 탈일상의 자유감 혹은 해방감이 적잖게 작용한 탓이 아닐지 모르겠다.


천리포수목원에서 본 바다 ⓒ성종상. 2017년 5월


저물녘의 천리포수목원 연못 ⓒ성종상. 2017년 2월


천리포 시외버스에서의 작은 경험

천리포수목원에 지낼 때 목격한, 참 기분 좋은 장면이 있다. 볼일로 서울에 오가기 위해서는 태안까지 가서 다시 시외버스나 고속버스를 타야 한다. 태안행 시외버스는 하루에 몇 차례 다니지 않는 데 매번 손님은 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얼마 되지 않았다. 대체로 인근에 사시는 주민들이 이용하는데 그들과 버스를 함께 타고 다니면서 필자는 기분 좋은 장면을 목격하곤 했다. 내려야 할 정류장이 가까워지는 데도 내릴 조짐을 거의 보이지 않던 그들은 정류장에 버스가 멈춰 선 이후에야 천천히 짐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문으로 나가 하차하는 것이었다. 몇몇이 함께 내릴 때는 문으로 나가면서도 여유작작 서로 대화를 계속했고 어떤 이는 운전사에게 가서 인사까지 나눈 후에야 하차하기도 했다. 버스를 탈 때도 비슷한 장면은 재연 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운전기사가 보인 대응이었다. 그다지 나이도 들어 보이지 않던 그는 승객이 타고 내릴 때마다 말인사를 건네며 그들이 완전히 버스에 내리고 자리에 앉을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려 주곤하는 거였다. 짐이 많은 노인이나 아주머니가 탈 때엔 아예 운전석에서 일어나 그들의 짐을 들고는 좌석에까지 갖다 주고는 다시 운전석으로 가 차를 출발시키기도 했다. 그렇게 한 사람이 내리고 타는데도 수 분 여 가까이 정지하곤 한 덕분에 얼마 되지 않는 태안까지 가는 데 시간은 꽤 걸렸다. 하지만 그런 장면을 보는 필자는 답답하기는커녕 오히려 유쾌한 기분마저 들었다. 사람 사는 냄새 같은 것을 제대로 맛본 느낌이었다.

버지니아 대학 내 보행산책로. 캠퍼스 내 곳곳에 아름다운 정원이 조성되어 있는 가운데 안전한 보행로가 어디로든 잘 연결되어 있어서 누구든지 걸어 다니기 편하게 되어 있다. ⓒ성종상. 2009년 10월



봄날의 버지니아 대학내 정원 풍경. 캠퍼스 내 곳곳에 아름다운 정원이 조성되어 있다. ⓒ성종상. 2009년 5월

그 장면은 필자에게 예전에 미국 버지니아주 샬로츠빌에서 연구년을 지내면서 겪은 기억을 되살려 내게 했다. 버지니아 대학 캠퍼스 내 교직원숙소에서 건축대학까지를 걸어서 가려면 두 번 정도 차도를 건너야 한다. 그 곳에서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봄날에 차도를 건너려고 신호등도 없는 횡단보도에 다가가려 할 때였다. 횡단보도에 접근하던 건너편 차선의 차량이 속도를 줄이더니 아예 정지한 채 대기하고 있는 게 아닌가. 분명 필자보다 먼저 횡단로에 도달했었고 주행하던 속도로 통과해 버려도 필자가 횡단보도를 건너는 데에는 전혀 지장을 주지 않는 상태인데도 그 차는 한참이나 서 있었다. 정지한 차 안 운전자는 순간 의아해 하는 필자에게 왜 안 지나가느냐는 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그제야 필자가 지나가길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서 부리나케 횡단보도를 건네곤 했었다. 몇 번 그런 상황에 접하게 되면서 현지인들은 필자와는 달리 자기가 걷던 속도 그대로 천천히 건넌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다. 그 후로 필자도 정지한 차 앞을 천천히 걸어 횡단로를 건네곤 했다. 그럴 때마다 필자는 차라는 기계 앞에 인간으로서 존중받는 것 같은 묘한 기분과 함께 유쾌한 느낌을 맛보곤 했다. 입장이 바뀌어 필자가 운전자로서 횡단보도를 건너는 보행자를 느긋하게 기다려 주면서 바라보노라면 그런 기분은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해 주는 여유로운 마음으로 와 닿기도 했다.


미국 버지니아주 토머스 제퍼슨의 은거지 포플러 포레스트 가는 도중의 한 시골길. 웬만한 큰 길 외에는 이렇게 포장도 하지 않은 길들이 많다.  ⓒ성종상. 2009년 10월

연구년을 마치고 귀국한 후 서울 시내에서 그런 기분 좋은 상황을 재연해 보려 했으나 이내 그것이 적절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위험하기까지 하다는 것을 깨닫고는 씁쓰레하게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필자가 횡단보도 앞에서 차를 정지하고서 건너가도록 기다려 주고 있어봐야 그런 마음을 알고 건너려고 하는 보행자도 별로 없었지만, 간혹 그런 보행자가 있어서 건너려할 때에 뒤에 따라오던 차가 갑자기 추월하려 하면서 보행자 사고가 날 뻔한 상황이 벌어지곤 하였다. 교통문화의 차이를 넘어 사람에 대한 가치와 여유를 새삼스레 떠올리며 아쉬움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 


일상 속의 여유와 성찰

사실 우리는 그 동안 너무 빡빡하게 살아왔다. 늘 경쟁과 스피드에 젖어서 앞만 보고 달려왔던 우리는 잠시의 여유조차 오히려 불안으로 느낄 정도로 쫓기듯 살아 온 것이다. 노동이 곧 삶의 전부인양 살아온 우리 사회는 그러나 지금 한참 새로운 삶을 찾으려는 노력이 진행 중이다. 우리 사회에 한참 열풍 중인 걷기, 요리, 정원, 캠핑, 여행 등은 그런 노력의 단면들이다. 힐링, 웰빙 등의 키워드에 최근에는 욜로(YOLO, You Live Only Once)라는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도 각광을 받고 있다. 예능방송조차 먹방, 쿡방을 넘어 욜로족 라이프 스타일로 새로운 탈출을 꿈꾸는 한국인에게 대리만족을 선사한다. 얼마 전 막을 내린 한 방송국의 프로그램도 해외 유명 휴가지에서 유명 배우들이 직접 식당을 운영하며 전세계에서 온 여행객 손님들의 여유와 취향, 그리고 행복한 모습을 리얼하게 보여줌으로써 빡빡하게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대리만족과 함께 새삼 삶의 의미를 되새겨주기도 했다. 여유란 본디 여러 의미를 지니고 있다. 우리는 돈이나 시간이 넉넉할 때 여유가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돈이나 시간이 많이 있다고 해서 누구나 여유를 맛보며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마도 참된 여유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한다. 일상사에 너무 얽매이지 않으면서 내 생각과 다른 것일 지라도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데에서 여유가 나오기 마련이다. 나의 삶은 물론이고 남과 주변에 대한 배려와 존중도 여유에서 나온다. 여유는 쉼이면서 성찰이다. 일찍이 소크라테스는 “성찰 없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라고까지 했다. 다소 느리더라도 여유를 갖고 성찰하며 사는 것, 그것이 그저 열심히 일하는 개미와 다른, 인간의 본질이고 참다움이다.


“느림은 배려이다” 중국 상하이 지하철 내 광고판의 문구 ⓒ성종상. 2017년 3월

글·사진 _ 성종상 교수  ·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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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ssung@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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