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시선] 미국조경의 설립자 앤드류 다우닝

김수봉 논설위원(계명대 생태조경학과 교수)
라펜트l김수봉 교수l기사입력2017-07-11
조경의 오늘을 만드신 분들(1): 
미국조경의 설립자 앤드류 다우닝(Andrew Jackson Downing)



_김수봉 교수(계명대 생태조경학전공)


로렌스 할프린은 조경가과 건축가의 차이점을 다음과 같이 설파했다. “건축가는 오브제를 만들지만, 우리들은 경험을 만든다. 우리는 형태를 찾지 않는다. 땅이 형태이기 때문이다.” 그럼 조경학과 학생과 건축학과 학생들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건축학과 학생들은 유명한 건축가의 이름과 생애를 잘 알고 있으나 조경학과 학생들은 아마 옴스테드가 그들이 아는 유일한 조경가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때가 가끔 있다. 아니 제임스 코너도 알까요? 대학마다 사정이 다르겠지만 우리 조경학과교육에서 가장 소홀히 하는 것이 아마 옴스테드를 제외한 조경을 오늘에 있게 한 분들에 대한 교육이 아닐까한다. 그래서 앞으로 몇 회에 걸쳐 조경의 아버지 바로 그 분들을 소개할까한다.

먼저 소개드릴 조경가는 미국 조경의 설립자인 앤드류 잭슨 다우닝(Andrew Jackson Downing,1815~1852)이다. 미국의 조경은 다우닝의 풍경식 정원 이론으로 출발하여 옴스테드(F. L. Olmsted), 클레브랜드(H. W. S. Cleveland) 그리고 엘리엇(C. Eliot) 등의 활약에 힘입어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에 걸쳐서 크게 발전하였다. 이러한 비약적인 미국조경의 발전 배경에는 미국의 근대화, 즉 미국 민주주의, 자본주의 기술혁신, 그리고 도시화 등이 있었다. 그래서 이 시기를 미국조경의 확립기라 한다. 그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자.

앤드류 잭슨 다우닝의 초상

다우닝은 1815년 10월 뉴욕의 뉴버그(Newburgh)에서 태어났다. 그는 미국 조경의 설립자(Founder)이며 미국고딕건축의 옹호자였으며 잡지 원예가(Horticulturist)의 편집자였다. 미국은 1620년 청교도의 이주 이래 독립전쟁까지 약 150년간을 식민지시대라고 불리는 개척시대였다. 미국으로 이주한 청교도들은 개척지를 개간하고 삼림을 벌채하여 농장을 만들고 도시를 건설하였다. 당시 유럽에서는 르네상스식과 풍경식 정원양식이 유행하던 시기였으나 미국에서는 소박한 개인정원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현재 중요하게 보전되어있는 정원인 버지니아주 마운트 버논(Mount Vernon)에 있는 워싱턴 대통령의 저택과 정원(1743)도 아주 소박한 지방주택의 정원양식이었다. 이러한 초기의 모습은 독립전쟁이 끝나고서도 계속 되었으나 19세기에 들어와서 공업화와 도시화가 먼저 진행되었던 동부지방에서 조경운동이 시작되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조경운동은 명저인「미국 풍경식정원의 이론과 실제: A Treatise on the Theory and Practice of Landscape Gardening adapted to North America; With a View to The Improvement of Country Residences, 1849」를 저술했던 다우닝(A. J. Downing)에 의해 시작되었다.

다우닝의 조경이론은 당시 미국도시의 공업화에 따른 도시환경의 파괴 때문에 철두철미하게 자연회귀 혹은 낭만주의로 일관되고 있다. 그가 쓴 책의 부제였던 “지방주택의 수경(修景), The Improvement of Country Residences”에서 보듯 그의 책은 교외주택의 정원조성 기술에 대해 자세하게 서술하고 있는데 이는 일종의 도시에 대한 그의 도전이었다고 생각된다. 아마도 다우닝은 영국의 풍경식 정원을 미국에 정착시키려했던 것 같다. 그는 ‘풍경식 정원은 주택과 정원이 주변의 풍경과 조화를 이루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 예술적 감상을 이유로 부드럽고 섬세하며 연속적인 형태로 마무리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그림처럼 아름다움(優美, The Beautiful)야말로 풍경식 정원의 최종 목표라고 하였다. 그의 조경이론은 아름다움(美), 즉 이상적인 질서가 자연 속에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영국식정원미의 전통을 그대로 답습했다. 다우닝은 프랑스와 이탈리아 정원은 의도적으로 배제하였다. 왜냐하면 그들 정원이 가진 기하학식 정원의 미는 고전적․건축적인 조형물이나 항아리 등을 배열하는 것처럼 아주 단순하다고 생각했다. 현재도 미국에서 여전히 르네상스식 정원스타일을 선호하지 않는 전통은 아마도 다우닝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다우닝이 르네상스식 정원을 싫어했던 또 다른 이유는 16·17세기 유럽의 정원양식이 순전히 왕이나 귀족들의 취미에 맞추어 만들어졌다는데 대한 강한 개인적인 반발심을 보였다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그의 이러한 반발심의 핵심에는 미국은 유럽과 달리 세습적인 부와 계급이 존재하지 않는 박애주의와 인도주의의 나라라는 자부심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즉 영국 풍경식 정원의 도입은 그의 민주주의 관련 주장과 연결되어 있다고 하겠으며, 따라서 대중을 위한 조경은 옴스테드에 의하여 창조되었지만, 실제 그 싹은 다우닝이 틔웠다고 본다. 사실 센트럴파크의 초안인 그린스워드플랜을 만든 복스와 옴스테드도 다우닝에게 많은 조언을 받았고 그의 생각이 많이 반영되었다, 그러나 그의 이른 죽음으로 다우닝은 센트럴파크의 완성을 보지 못했다. 한편 다우닝의 조경 이론의 핵심은 앞에서 이야기했던 “매우 아름다운 것(優美, The Beautiful)”과 또 하나는 “그림같이 아름다운 것(繪畵美, The Picturesque)"라는 개념이다. 그는 1859년 그의 저서에서 “매우 아름다운 것은 그리스 건축이나 조각에서 볼 수 있는 균제미와 조화 그리고 통일감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림처럼 아름다운 것은 영국 농촌 마을 초가집의 둥그스레한 지붕과 이끼에서 볼 수 있는 불규칙적이면서도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의미한다”라고 주장하면서 매우 아름다운 것과 그림같이 아름다운 것은 바로 풍경식 정원의 목적이라고 하였다.

영국 풍경식 정원의 발전단계에서 <매우 아름다운 것>과 <그림같이 아름다운 것>은 정원을 거닐며 되도록 많은 풍경을 감상하는 것을 중요시하는 스테판 스위처, 찰스 브릿지맨, 윌리엄 켄트, 란셀로트 브라운, 험프리 렙톤과 같은 브라운파와 정원에서 경탄과 감흥을 나타내고자 시간적, 공간적인 거리를 두어야함을 강조하는 윌리엄 챔버, 나이트, 우베데일 프라이스 등의 회화파가 서로 논쟁했던 미적 가치관이었다. <매우 아름다운 것, 우미>이 자연의 풍경미요 정원미였다면, 회화적이라 함은 <그림같이 아름다운 것, 화화미>을 말한다. 렙톤(H. Repton)은 “자연미는 회화미보다 시야가 넓다”라고 주장하면서 자연미를 회화미와 구별하고, 더 나아가서 그의 저서인<레드북(Red Book)>에서처럼 실천적으로 두개의 미를 통합시키는 절충주의를 선택했다. 다우닝은 렙톤의 영향을 받아서 자연의 풍경미와 회화미에 질서를 부여하여 미국조경의 전통을 수립하였다.
_ 김수봉 교수  ·  계명대학교 생태조경학과
다른기사 보기
sbkim@kmu.ac.kr

네티즌 공감 (0)

의견쓰기

가장많이본뉴스최근주요뉴스

  • 전체
  • 종합일반
  • 동정일정
  • 교육문화예술

인기통합정보

  • 기획연재
  • 설계공모프로젝트
  • 인터뷰취재

커뮤니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