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신생과 도시풍경을 위한 ″놀이도시(Ludic City)″ - 1

경공환장: 다시 보는 일상, 느껴 보는 도시
라펜트l안명준l기사입력2017-08-18

"경공환장: 다시 보는 일상, 느껴 보는 도시" 

Part 2: 09 도시 Ⅰ



도시신생과 도시풍경을 위한 “놀이도시(Ludic City)

 



_안명준 오피니언리더

조경시공연구소 느티 대표│조경비평가




도시Ⅰ: 가꾸며 즐기는 삶터, 수원시 송죽9통과 행복한 달팽이들...

 

도시가 소외의 공간으로 변신한 후 우리는 점차 정감 없는 도시에 정떨어져하며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소위 도시재생이라는 주제는 그것으로 도시를 마을로 되돌리려는 노력이다. 아직 우리에게 흔하지는 않지만 도시와 관련한 여러 정책과 실행사업을 통해 삶터 진화를 위한 실험과 아이디어들도 충분히 다양하게 펼쳐지고 있다. 그 하나를 살펴보자. 그리고 도시를 보는 우리식의 새로운 눈을 하나 찾아보자.


도시에서 마을로
수원시 송죽9통은 오래된 동네다. 장안구 한 가운데 오래된 단독주택들이 오밀조밀하게 들어서 근대적 도시환경을 형성하고 있는 곳이다. 시간은 어쩔 수 없어서 건물만이 아니라 가로까지 점차 낡아가고 있을 즈음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골목을 청소하고 보기 싫은 시설들을 정리하면서 마을만들기는 태동되었다. 그 중심에 김은자 달팽이님이 있다. 

처음에는 시간이 많은 할머니들이 중심이 되어 2000년대 초반부터 거리를 찾아다니며 느릿느릿 조금씩 환경을 바꾸어 나갔다. 스스로를 달팽이라고 칭하게 된 이유이다. 그러니 골목길을 청소하는 것과 쓰레기 무단투기를 방지하는 것 등이 처음 달팽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렇게 천천히 10여 년 가까이 조용히 마을을 위해 봉사하며 그 진심이 알려지기 시작하였고 달팽이 회원들도 늘어나게 되었다.

지역의 불결한 환경을 개선하려는 노력은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달팽이 회원들은 나이도 많았다. 행정의 도움을 요청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었다. 그래도 주민들을 만나고 쓰레기를 치우며 가로환경을 꾸준히 관리하며 공감대를 넓혀가고 있었다. 싸우기도 하고 달래기도 하고 몸보다 맘이 힘든 시간이 꽤 많았다.


달팽이 회원 활동으로 탄생한 새로운 공유공간들

2012년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수원의 마을만들기 정책은 달팽이들 활동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감당할 수 없는 예산 때문에 생각만 할 수 밖에 없는 일들을 시 지원으로 동네에서 해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간의 노하우와 주민들의 협동심은 이미 충분히 어떤 사업이든 진행할 수 있는 토대였다. 그렇게 달팽이들과 주민들은 “걷고 싶은 마을”이라는 목표에 맞게 마을르네상스(수원시 마을만들기 브랜드명) 사업으로 본격 추진하게 된다. 그간 선의와 봉사만으로 해오던 마을 ‘가꾸기’가 본격적으로 마을 ‘만들기’로 진화하게 된 것이다.

주민들이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시의 지원을 받으면서 부터는 전문가의 도움이 가능해졌고 무엇보다 예산이 지원되면서 할 수 있는 일의 범위가 매우 넓어지게 되었다. 중요한 것은 그간의 숙원이 이를 통해 해결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모두가 동의하는 것이었지만 거기에 각자가 부담해야 할 경제적 요인 때문에 미루어둘 수밖에 없었던 일들을 해결하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라고 한다. 마을은 비즈니스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실제로 적은 금액의 지원만으로도 효과는 매우 컸다.

그렇게 도시는 점점 마을로 진화하게 된다. 환경이 바뀌면서 사람들이 달라지고, 사람들이 달라지면서 사람들이 모이게 되고, 사람들이 모이면서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 사이에 이야기가 오가게 되고, 오가는 이야기가 다시 환경을 바꾸는 원동력이 되고, 그렇게 다음 사업에서 사람들이 모이게 되는 옛마을에만 있었던 사람 사이의 고리가 형성된 것이다. 도시가 이제야 마을이 된 것이다.


“마을의 귀환”, 마을에서 삶터로
과정은 쉽지 않았다. 마을르네상스가 시작되기 전까지의 달팽이 활동은 그야말로 가시밭길이었다. 김은자 대표 달팽이는 이 힘든 일을 도맡아 추진했다. 그러는 과정 모두가 사람 사이의 일이어서 설명하고 이해시키고 동의를 얻기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고, 골목이라는 물리적 환경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선의를 소통하고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 모두가 그의 몫이었다. 오해도 있었고 시행착오도 있었다. 모두가 귀한 자산이다.


달팽이 회원들의 생활밀착형 가로환경 아이디어들

2013년에는 마을르네상스 우수 사례로 수상도 하게 되면서 수원시에서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도 유명한 마을만들기 사례로 소개되기 시작하였다. 그래도 여전히 마을에서 해야 할 일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행정의 지원도 생각만큼 시원시원하지 않았다. 마을은 보여주기 위한 전시장이기 이전에 주민들이 생활하는 마을이자 삶터였던 것이다.  




송죽9통 행복한 달팽이들의 우리 마을만들기 아이디어와 마을계획 자료들

마을을 삶터로 보고 실천해온 과정은 그간 그가 축적해 놓은 시행착오와 아이디어들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여기에 몇 가지만 소개해 보면 아래와 같다. ‘도시를 마을로, 마을을 삶터’로 진화시키기 위해서 어쩌면 이와 같은 현장의 아이디어가 도시재생(urban regeneration)씩이나 하려는 거대 담론보다는 훨씬 중요다. 체계적이거나 학술적 기틀은 없지만 하나하나가 진심어린 현장의 지식임을 느낄 수 있게 한다. 또한 이러한 예시가 송죽9통만의 독특한 지점을 보여준다는 것도 밝은 눈이면 알 수 있게 한다.

1. 환경이야기: 지렁이와 세제, 환경의 중요성 일깨우기
2. 바람개비와 지팡이: 아이와 어른 화합 이끌어내기
3. 달팽이들 따라 하기: 생태문화(작은 화분에 꽃심기)
4. 되살림 가게: 유럽의 벼룩시장처럼 돌려쓰는 문화 만들기
5. 시인과 허수아비: 인문학적 마을만들기 초석 다지기(티셔츠에 시화 그리기, 조물락 조물락 만들기)
6. 먹거리 판매: 지속적 사업을 위한 자금 만들기
7. TO달팽이에게: 주민의 평가듣기, 다음 사업 의견 수렴
8. 행복지수 그리기: 우리는 행복한 마을에 살고 있는가?


주민들의 아이디어와 합심으로 만든 작은 정원(전과 후)

볼수록 삶터를 사랑하는 달팽이 회원들의 마음 씀이 아름답다. 그렇다, 중요한 것은 마을과 삶터에서 살아가는 주인공들에게 초점을 두어야 한다는 것. 도시란, 마을이란 그렇게 되살아나는 것이지 화폐로 치환된 거대 지원책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 그것을 김은자 달팽이와 그 활동, 그 마음 씀에서 볼 수 있다. 


마을과 삶터 사이
많은 시민들 앞 수상(시상식)의 자리에서 달팽이들이 사례 발표를 하며 행복해하던 장면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화면에 비춰진 모습에는 골목길에 놓인 달팽이 조형과 장화와 바구니 같은 폐품을 활용해 만든 작은 화분들 사이에서 즐거워하는 아이들이 담겨 있었다. 그게 그렇게 좋더라는 것이다. 골목에서 웃고 떠들고 즐기는 아이들의 모습이 그렇게 좋더라는 것이다. 마을이 삶터가 되었다는 증거이리라. 


달팽이 회원의 자투리 공간 활용 아이디어

도시의 삶터로의 진화는 이처럼 마을과 터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가능하다. 기술과 자본은 그 다음의 일이다. 들이밀며, 옆구리 찔려가며 진행되는 진화라면 지속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음이 모여야 하고 마음을 나누어야 한다. 삶이 그런 것처럼. 안 된다고 어렵다고 뒤돌아설 일도 아니다. 달팽이들이 느릿느릿 해낸 것처럼 정답이나 빠른 진행이 아니라고 해도 안 되는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김은자 대표는 마을만들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조언한다. 1) 욕심이 없어야 하고 함께 해야 한다. 2) 지속적인 관리를 위해서는 마을과의 신뢰, 내면의 충실함, 나눔이 중요하다. 3) 전문가 없이도 가능하므로 그들에게 이끌려 다니지 않아야 한다. 4) 주민들과 협의하여 차근차근 해야 한다. 우리시대 마을만들기 전문가와 정책에 중요한 지적이 아닐 수 없다. 새겨들어야 한다!
  


가로 가꾸기 모습과 직접 개발한 빗물저금통

도시는 이제 헐고 부수고 다시 만들어야 할 공간이 아니라 지금의 상태를 기반으로 사람이 주인공이 되는 새로운 삶터로 다시 태어나야 할 장소이다. 도시를 개발의 대상으로 보는 낡은 시각으로는 삶터를 삶터이게 할 수 없다. 충분히 많은 사례와 경험이 있으니 거기에 귀기울여야 한다. 도시에 관련되는 누구든 말이다. 그리고 각자 공통의 철학을 서로 논하며 공유하는 삶터를 그려나가야만 한다.

* 본 원고는 2015년 김은자 달팽이님 인터뷰를 기초로 작성되었습니다. 그간 매체에 소개도 여러 번 되었으나 이 글과는 다른 관점이고 이 글에서 처음인 것도 있어 다소 시간이 지났지만 현재에도 의미가 충분합니다. 김은자 전 통장님 자료와 안명준 사진.

 

글·사진 _ 안명준  ·  조경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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