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노트] 늦반딧불이 애벌레가 개똥벌레인 까닭

생물학자 이강운의 ‘24절기 생물 노트’<14> 입추
라펜트l이강운 소장l기사입력2017-08-25
생물학자 이강운의 ‘24절기 생물 노트’<14> 입추

늦반딧불이 애벌레가 개똥벌레인 까닭
퇴비 쌓은 축축한 개똥 무덤에 먹이인 달팽이 많아 붙은 이름…생태정보 담겨
말 다리처럼 늘씬한 마타리와 나방 맞느라 바쁜 달맞이꽃이 가을 불러오나


_이강운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
(사)한국환경복원기술학회 부회장





달팽이를 잡아먹고 있는 늦반딧불이 애벌레

창문을 열면 늦여름의 진득한 열기 대신에 서늘한 바람이 들어온다. 천둥, 번개와 폭우 사이로 간간이 보이는, 미세 먼지 없는 맑고 투명한 하늘과 높은 하늘의 희고 파랗고 잔잔한 구름이 계절의 변화를 알려준다. 이미 입추부터 시작한 선선한 기운을 받아 나머지 더위를 몰아내는 오늘은 처서. 이때쯤 구름 결 따라 쏟아지는 은하수와 잘 어울리는 별 아래 새로운 별빛 세상, 어둠을 가르고 명멸하듯 반짝반짝 반딧불이 세상이 펼쳐진다. 

늦반딧불이는 애반딧불이나 파파리반딧불이 등 다른 반딧불이에 비해 늦게 출현하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또 다른 이름인 개똥벌레는 늦반딧불이 애벌레를 가리킨다. 이 애벌레는 육지에 사는 달팽이 종류를 잡아먹는다. 옛날엔 개똥이나 닭똥 같은 동물 배설물을 퇴비로 사용하기 위해 집 근처에 쌓아놓곤 했다. 그래서 주변은 항상 축축한 상태였다. 

습기 많은 곳을 좋아하는 달팽이 역시 주변에 모이게 되고, 먹이를 따라가는 포식자인 늦반딧불이 애벌레도 자연히 개똥 주변에서 자주 볼 수 있어 개똥 무덤에 사는 벌레로 여기게 된 것이다. 물론 늦반딧불이 애벌레도 반짝반짝 빛을 낸다. 개똥벌레란 이름은 늦반딧불이의 행동 특성을 이해한 아주 정확한 생태 정보를 담고 있다.


늦반딧불이의 짝짓기 모습

긴 여름이 가고 때맞지 않은 선선한 초가을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여름 장마에 이은 가을장마 같은 많은 비가 십 여일 넘게 내리면서 연구소 곳곳에 큰 상처를 내고 있다. 논둑과 연꽃 제방이 터지더니 약해진 지반으로 길이 무너지고, 산 위 큰 소나무가 밤새 내리치는 번개에 두 동강 나 길을 막아 버렸다. 계곡 물이 불어 넘친 물이 연구소 마당까지 넘실거려 난리가 나는 줄 알고 큰 걱정을 했다. 한여름을 보내는 과정이 올해 유독 녹록치 않다.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뒷산의 소나무가 벼락을 맞아 허리가 부러졌다.

몇 년 혹은 몇 번의 철없는 현상을 두고 섣부르게 한반도 강수 패턴이나 기후가 아열대성으로 바뀌고 있다는 주장을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까닭 없이 일어나는 일은 없다. 인간 중심의 개발 논리로 기후와 자연 생태가 급하게 바뀌고 있고 자연재해도 이에 대한 대가이다. 푹푹 찌는 한가위도, 2월 한겨울에 나비 나는 모습도 가능한 일이다. 본디 이 땅의 주인이면서 제자리에서 가만히 있는 듯한 생물들이, 잘났다고 떠들어대는 사람들이 찢어 놓은 생명의 그물 안에서 힘들게 살면서 인간에게 되돌려주는 예측할 수 없는 변화다. 

철 따라 꽃은 피기 마련이지만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시기에는 사실 꽃이 드물다. 게다가 요즘은 잦은 폭우로 식물의 고개가 꺾이고 숨이 죽어 꽃 보기가 더욱 힘들다. 그러나 노란 꽃 4인방이 있어 그나마 꽃을 즐긴다. 


말의 다리처럼 길다는 뜻의 마타리

하늘에 닿으려는 듯 불쑥 올라와 주위를 압도하는 마타리는 단연 돋보이는 존재다. 꼭 외래어 같지만 순우리말로 ‘말의 다리’처럼 긴 줄기를 지칭한 단어로 제격이다. 약해 보이는 긴 줄기 때문에 쉽게 바람에 흔들리고, 흔들릴 때마다 황금 물결이 출렁인다. 우리 눈을 즐겁게 해주는 무더기로 피는 꽃이지만 특별히 향기가 없고 좁쌀 같은 작은 꽃이라 많은 곤충이 몰리지는 않는다. 흔들리는 황금 물결에 몸을 맡기고 꿀벌과 등에가 열심히 꿀을 빤다.


담배나방 애벌레가 금불초 꽃을 먹고 있다.

마타리와 때맞추어 노란색으로 피는 금불초(金佛草)가 부처님의 환한 얼굴처럼 주변을 아름답게 장식한다. 꽃 속에 머리를 파묻고 담배나방이 정신없이 꽃을 파먹어도 무념무상으로 대한다. 꽃은 꽃대로 잎은 잎대로 다 내어주면서도 함박웃음을 잃지 않는 부처님의 넉넉한 마음이 이와 같을 것이다.


귀화종인 달맞이꽃.

‘얼마나 기다리다 꽃이 됐나, 달 밝은 밤이 오면 홀로 피어 쓸쓸히 쓸쓸히 시들어가는 그 이름 달맞이꽃’이란 노랫말의 주인공도 노란색이다. 해바라기에 대칭 하는, 달을 사랑한 달맞이꽃은 낮에는 노란색 물감의 촌스러운 색인데 밤에는 달빛 받아 빛나는 형광색으로 바뀌어 빛을 모으는 능력이 뛰어난 야행성 곤충을 유혹한다. 무슨 일로 밤에 꽃을 피울까 생각해 봤는데, 나비목 곤충만 보더라도 야행성 나방이 20배 이상이나 많으니 번식을 위해서는 당연히 밤이 유리했다. 노래 가사와는 달리 달 밝은 밤이 오더라도 달맞이꽃은 전혀 쓸쓸하지 않고 방문하는 벌레들로 굉장히 바쁘다. 

달맞이꽃은 번식과 생존이 우수한 외래종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미 자연 생태계 내에서 곤충의 눈에 비친 달맞이꽃은 외래종이 아닌 우호적인 이웃으로 인정된 것 같다. 노랑제비가지나방, 썩은밤나방, 줄박각시, 주홍박각시 등 많은 애벌레가 꼭 먹어야 할 양식이 되었고, 밤에 활동하는 수많은 야행성 곤충에게 큰 선물로 자리 잡았다. 


달맞이꽃의 잎을 먹고 자라는 다양한 나방 애벌레
노랑제비가지나방 애벌레


썩은밤나방 애벌레


주홍박각시 애벌레


줄박각시

꽃이 진짜 노란 멸종위기식물 진노랑상사화가 활짝 피었다. 이미 시든 잎마저 마르고 흔적도 없어 깜빡했는데 노란색 꽃대가 꿈결처럼 올라왔다. 무관심했던 나를 질책하지 않고 꽃을 피우니 고맙기도 하지만 마음도 주지 않았는데 꽃을 피우니 괜스레 미안하기도 하다. 


진노랑상사화

세상을 아는 가장 안전한 방식은 독서지만 가장 위험한 방식은 현장으로 들어가는 일이라 했다. 현장을 고집하면서 정확한 과학적 사실에 근거해 곤충에, 환경에 대한 세상의 시각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열망으로 강원도 산속에 들어와 곤충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 지 21년. 다만 ‘바라본다는 것’에 대한 단순함에서 진일보하여 생명을 거두고 그들을 통해서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러던 중 2005년 서식지 외 보전기관으로 지정된 후 멸종위기 곤충 붉은점모시나비를 만난 일은 큰 행운이었다. 2011년 12월 영하 26도 혹한에 붉은점모시나비 애벌레가 어슬렁거리는 현장을 우연히 관찰하고, 과연 몸이 얼지 않고 계속 활동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느 정도까지 버틸 수 있는지, 얼지 않는 가장 낮은 온도(Super cooling point) 실험을 시작했다. 


붉은점모시나비의 짝짓기 모습

2016년 12월, 6년에 걸친 실험과 조사 결과를 국제 학술지인 <플로스 원>(Plos-one)과 <아시아 태평양 곤충학 저널>(JAPE)에 2편의 논문으로 투고했고 2편 중 1편 논문이 JAPE에 “월동 붉은점모시나비의 글리세롤 조절을 통한 초냉각 능력” 이라는 제목으로 게재되었다. 붉은점모시나비는 단순히 겨울을 나기 위해 생육이 정지된 휴면 형태의 ‘냉동동물’이 아니라 겨울 속에서 발육, 성장을 하는 생물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글리세롤을 비롯한 내 동결물질의 수용 능력에 관한 연구 결과였다. 내 연구의 주제를 발견하고 흥분과 좌절로 시작한 지 12년 만에 어려운 숙제를 했다.

극도의 추위와 더위를 반복적으로 견뎌내, 몇 억 년을 죽지 않고 살아서 나에게 큰 기쁨을 준 붉은점모시나비에게 경의를 표하며 공동 연구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농림축산검역본부 박영진 박사와 안동대 김용균 교수께 깊은 동료애를 느낀다. 


국제 학술잡지 에 실린 붉은점모시나비 논문의 표지


이 논문으로 ‘멸종위기종이란 이름으로 굳이 나비 한 종을 보전할 필요가 있느냐?’ 라는 질문에 명쾌하게 답할 수 있게 됐다. 잘 보전하면 영하 48도에 견딜 수 있는 내 동결 물질을 찾아 쓸 수가 있다고. 또한 무엇이 어디에 어떻게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모든 종을 잘 지켜야 한다고. 생물학적 이유뿐만 아니라 생물자원 가치로서 모든 인류에게 이득이 될 것을 입증하고 있다. 

멸종위기종이나 생물 다양성 보전에 대한 우리 사회의 시각이 예전보다 많이 나아졌다. 생태계 내에서의 역할과 어떻게 인간의 부와 행복에 기여하는지, 이런 부산물로 많은 신약과 산업의 출현을 끌어내는 지평을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그런데 어찌 멸종위기종이나 생물 다양성의 어머니인 국립공원에 대한 이해는 이리도 못하는지. 생태·환경의 핵심축으로 야생 동식물의 마지막 피난처인 국립공원의 중요성을 어떻게 더 설명해야 하는지? 

붉은점모시나비 1종을 보전하기 위해 서식지 전체를 관리해야 한다. 애벌레 먹이식물인 기린초를 굳이 울퉁불퉁한 돌 틈에 끼워 심고 어른벌레가 먹어야 할 엉겅퀴도 촘촘히 심어야 한다. 햇볕 잘 들어오며 바람 잘 통하고 천적을 막을 수 있도록 빽빽한 키 큰 나무를 지속해서 잘라 하늘을 열어주어야 한다. 아주 작은 곤충 붉은점모시나비 1종을 살리기 위한 생태계 범주는 먹이, 천적과 같은 생물적 요소와 바람, 햇볕, 온도와 습도 등 맞춰줘야 할 조건이 무한대다. 인위적으로 조성하기도 힘들지만 수리적으로 계산도 불가능하다. 

우리나라 멸종위기종의 70%가 살며 수 만종의 생물이 공유하고 있는 국립공원. 그 속이 얼마나 복잡하고 치밀하게 짜여 있는지 가늠도 못 한다. 아슬아슬하게 목숨을 연명하는 멸종위기종은 벼랑에 섰고 그들은 국립공원에서 산다. 국립공원을 지키기 위해서 이 사회는 무엇이든 해야 한다. 서식지를 보호하면서 케이블카를 설치하겠다니, 전문가랍시고 떠드는 위원들은 신뢰할 만한 집단이라기보다는 업계의 ‘용역 일꾼들’일 것이다. 

70의 고령에 광화문 땅바닥에 엎드려 171배 절을 하고, 생식 2끼로 목숨을 부지한 채 9일간 기도를 하는 박그림 녹색연합 대표의 간절함을 진정 ‘그림’으로만 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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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한겨레의 동의를 얻어 발췌한 기사이며, 이강운 소장의 주요 약력은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 / 한국환경복원기술학회 부회장 / 한국서식지외보전기관협회 회장 / 국립안동대학교 식물의학과 겸임교수 / 저서로는 <한국의 나방 애벌레 도감(Caterpillars of Moths in Korea)>(2015.11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 <캐터필러>(2016.11 도서출판 홀로세)가 있다.
이메일 : holoce@hecri.re.kr       
블로그 : http://m.blog.naver.com/holoce58
글·사진 _ 이강운 소장  ·  (사)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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