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시선] 조경으로 여는 삶의 풍경

성종상 논설위원(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
라펜트l성종상 교수l기사입력2017-12-10
조경으로 여는 삶의 풍경



_성종상 교수(서울대 환경대학원)



유엔 통계에 따르면 2050년까지 세계 인구가 90억 명을 넘어 서는데 그 중 70%가 도시에 거주할 것이라고 한다. 향후 20만명 도시가 1만 300개 이상이 나타날 것인데, 매년 325개 도시가 새로 생겨날 것이라고 하니 거의 매일 지구상 어느 곳엔가 도시 한곳이 생겨나는 꼴이다. 도시화의 추세나 속도에 관한한 세계 최고수준을 보여 온 한국은 2016년 현재 무려 92%가 도시에 살고 있다. 반면에 전 국토에서 도시지역이 차지하는 비중은 불과 17%도 채 되지 않으니 도시화와 함께 과밀현상도 심각한 수준인 셈이다. 그러니 우리 도시가 당면하고 있는 환경, 공해, 기후변화 등은 물론 주택, 교통 등의 문제도 한결 심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급속한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삶의 방식은 물론 가치관까지도 심하게 바뀌면서 우리 사회는 물적 환경 문제에다 정신적 갈등까지 더해진 이중고를 겪고 있다. 도시의 물적 환경이 삭막해지는 것만큼 이상이나 사람간의 관계도 메말라지고 있는 것이다. 근래 와서 많이 노력하고 있는 덕분에 눈에 띄게 좋아진 부분도 없지 않으나 여전히 이웃간 갈등과 충돌은 우리 도시 어디에나 상존하고 있는 상황이다. 도대체 우리네 삶은 언제쯤이면 삭막하고 거칠며, 때론 폭력적이기까지 한 모습에서부터 벗어날 수가 있을까? 쾌적한 환경 속에서 아름답고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는 날은 언제쯤이면 올까? 그 해법이야 여럿이겠지만 필자는 기억 속에 남아있는 아래 풍경들에서 그 방향성 내지는 가능성을 찾아 볼 수가 있지 않을까 한다.

장면 1 킬 핫세Kiel-Hassee 단지 생일축하 피크닉. 독일 북부 슐레스비히 홀슈타인주의 킬 핫세 단지는 우리에게도 꽤 알려진 곳이다. 독일에서 첫 번째 건설된 생태주거단지라는  역사적 의미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초기단계에부터 주민들이 주도적으로 계획하면서 시정부를 설득하여 조성한 이른바 Bottom-up 식 개발의 좋은 모범으로 꼽힌다. 자재나 공법 등의 기술 차원을 넘어 일상 삶 자체가 온전히 생태적 가치에 맞추어져 있다는 점에서 색깔만 생태를 내세우곤 하는 우리네 주거단지와는 사뭇 다른 곳이기도 하다. 한데 그곳이 필자에게 각별하게 남아 있는 까닭은 십여 년 전에 접한 장면 덕분이다. 방학을 맞아 찾아간 그 곳 중앙마당에 차량 두어 대가 들어와 있고 주변에 주민들이 모여 있었다. 무슨 일이 있나하고 물어 봤더니 곁에 있는 작은 여자아이를 가리키며 오늘이 생일이어서 축하하기 위해 모인 것이란다. 근처 강변에 가서 피크닉하고 놀다가 저녁 무렵 돌아와 캠프파이어로 모임을 끝낼 거라고 했다. 자세히 보니 차량 트렁크에 피자와 소시지 등 먹을거리가 준비되어 있었고 사람들은 다들 자전거를 타고서 어디론가 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이웃집 한 아이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동네 사람들이 모여 하루 종일 강가에 나가 놀다가 캠프파이어로 마무리하려는 그들의 삶을 보면서 순간 필자는 어릴 적 고향 동네의 삶을 떠올렸다. 그러면서 머릿속에는 앞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른 채 아무렇지도 않게 잘 살고 있는 동시대 우리네 아파트 생활을 되돌아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동네 아이의 생일을 축하하고 함께 즐기기 위해 마을 중앙마당에 모인 킬 핫세 주민들. 차 트렁크 안에는 강변에 가서 먹을 피자와 쏘시지 등이 들어 있었다. 흙 포장인 중앙마당은 평상시 차량 진입이 허용되지 않는 곳이다. Ⓒ 성종상. 2003년 8월


킬 핫세단지 내 쓰레기 소각장과 캠프 파이어장. 자연스런 풀밭 중앙에 돌로 삥 둘러 불 피울 수 있게 한 곳을 중심으로 소박한 나무벤치 몇 개가 놓여 있을 뿐이다. Ⓒ 성종상. 2003년 8월


장면 2 보봉 Vauban 어린이모험농장 놀이터. 보봉은 세계 환경수도로 알려져 있는 독일 프라이부룩에서도 대표적인 생태단지 중 하나이다. 최고의 생태기술과 이론이 적절히 적응된 보봉단지 남측 어린이모험농장에는 동물사. 잔디밭 등과 함께 놀이터가 배치되어 있다. 얼핏 보니 놀이시설들이 한결같이 어수룩하고 둔탁한 모습이었다. 이상해하던 차에 현지 주민에게 그 까닭은 듣고서 필자는 놀랍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어린이들이 직접 만든 놀이터라는 것이었다. 놀고 싶은 놀이를 아이들 스스로 생각해내고서 몸소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다시 본 놀이터는 좀 전과는 완전히 달라 보였다. 삐툴삐툴한 목재 널판 사이로 장난 끼 가득한 아이들 얼굴도 보이고 거친 풀밭 위로 뛰놀며 깔깔거리는 웃음소리도 들려오는 듯했다. 동시에 지금 이 순간도 학원에 혹은 게임방에 아이들을 뺏긴 채 텅 비워있을 우리네 놀이터, 비싼 기성 놀이시설과 인공포장으로 깔끔하게 잘 정돈되어져 있는 그곳이 머릿속에 교차되었다.


보봉단지 어린이모험농장 내 놀이터. 아이들이 직접 고안하고 몸소 만든 놀이터이다. 창의적 사고라는 것이 과연 어느 쪽 환경에서 길러질까? 자연 속에서 자유롭게 상상하고 마음껏 뛰어 노는 체험을 선사하는 놀이터와 비싼 인공시설로 깔끔히 만들어 주어진 놀이터 둘 중에서. Ⓒ 성종상. 2008년 7월.


장면 3 동경 시내 아파트 단지 주변의 자전거족들. 자전거는 도시교통 문제에 있어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 메뉴이다. 서울시만 해도 최근 자전거 인프라를 대대적으로 증가시키려 애쓰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자전거도로는 전체 도로의 10% 정도에 머물고 있다. 정작 자전거전용도로만 보면 2%도 채 되지 않는 수준이라 급증하는 자전거 사고의 75%가 차량과의 충돌로 인한 사고라는 집계도 있다. 사정이 이러니 자전거전용로가 없는 집주변에서 자전거를 타려면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다. 자동차 밀도가 1km당 평균 190대로 OECD 평균의 3배가 넘고, 월평균 통근시간은 40시간으로 OECD 국가 중 최장이라, “자동차 중심 교통체계가 국민의 삶의 질을 낮추는 한계를 노정했다"고 지적한 최근 OECD 보고서는 우리 교통문화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런 상황에서 지난 여름 잠시 찾은 동경 시내외 아파트 단지에서 목격한 풍경은 부럽기만 했다. 아파트 단지 내는 물론 주변 도로에서도 자전거를 타는 시민을 수시로 만날 수 있었다. 학생뿐만 아니라 주부, 노인, 아이들까지 그들은 시내 도로를 자전거로 활주하며 다녔다. 자세히 보니 차들은 한결같이 자전거를 배려하며 조심스럽고 천천히 운행 중이었다. 앞뒤 칸에 아기를 둘이나 태운 주부도 차량들 사이로 아무렇지도 않게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모습에서 차가 아닌, 사람 중심의 교통문화를 실감했다. 섭씨 35도를 오르내린 폭염 속에서도 자전거를 타고 다니다가 단지 내 공원에다 자전거를 내팽겨치고는 우르르 몰려다니며 노는 아이들을 보면서 놀이터에서도 아이들의 노는 소리가 사라진지 이미 오래인 우리네 아파트 풍경이 씁쓸하게 떠올랐다. 짙게 그을린 데다 송글송글 맺힌 땀방울이 땟자국을 이루며 흘러내리는 중에도 행복한 미소로 가득했던 그 아이들의 얼굴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동경 외곽 다마뉴타운 공원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30년도 지난 오래된 아파트이지만 세대별 수요특성에 맞추어 대대적으로 개수하여 젊은 층도 많이 입주해 살고 있다. 35도를 오르내리는 폭염 속에서도 아이들은 자전거를 타고 단지 안팎을 몰려다니며 놀고 있었다. Ⓒ 성종상 2017년 7월.


장면 4 햄턴코트궁Hampton Court Palace의 플라워쇼. 런던 서남쪽 템즈강변에 있는 햄턴코트궁은 헨리 8세 때 궁으로서의 면모를 갖춘, 영국의 대표적인 궁전이다. 튜더왕조 양식 위에 고딕과 르네상스식이 가미된 건축물, 그리고 바로크양식을 주조로 한 정형식 정원이 함께 어울려 영국인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궁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무엇보다도 이곳은 매년 영국 왕립원예협회(RHS: Royal Horticultural Society)가 주관하는 화훼쇼가 개최되고 있어 시민들에게 사랑받는 곳이다. 흔히 세계 최대의 화훼쇼로 소개될 만큼 규모도 크고 화려한 볼거리도 많지만 필자에게 인상적이었던 점은 궁궐정원을 즐기는 시민들의 모습이었다.  비록 개최기간 동안이기는 하지만 아름답고 장엄한 궁궐정원을 시민들에게 개방하여 마음껏 즐기도록 한 것이다. 영국 최고의 문화재이자 헨리 8세를 중심으로 한 영국사의 주요 현장이지만 6일 동안만은 누구에게나 열리는 공원으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쇼 관람을 마친 시민들이 궁전 주변에 펼쳐진 바로크식 정원을 자유롭게 거닐거나 평소에는 엄격히 제한되는 잔디밭에 들어가 쉬면서 자유롭게 즐기는 모습은 평화롭고 아름답기 그지없다. 정원 이벤트를 계기로 오랜 문화재까지 시민들에게 한껏 개방하는 것이다. 그런 방식으로 자랑스러운 정원 문화재와 현대의 대중적 전시정원을 동시에 즐기게 함으로써 시민들의 정서와 정원문화를 키워 나갈 수 있게 한 그들의 정원정책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점이 크다.



런던 햄턴코트 궁의 플라워쇼. 평상시에는 들어갈 수 없는 궁전 앞 잔디밭에도 자유롭게 들어가 뛰놀거나 앉아 쉬면서 즐길 수가 있다. Ⓒ 성종상. 2016년 7월. 


장면 5 독일 Lünen의 See park. 독일 루르지역 Lünen의 See park은 도시 내 옛 광산터에 방치되어 있던 수공간과 주변을 1996년 정원박람회를 통해 도시 호수공원으로 재탄생시킨 곳이다. 호수 서측 및 남측 구역은 자연생태 보호구역으로 철저히 보호되고 있는 반면에 북측은 모래사장과 정원, 휴게시설 등을 갖춘 친수공간으로 조성되어 있다. 넓은 모래밭이 얕은 수심부로까지 이어져 있어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들에게도 인기가 높다. 특히 여름철이면 루르지역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변 비치로 소문난 이곳에서 시민들은 물놀이를 즐기곤 한다. 수백 킬로 떨어져 있는 바다 대신에 시내 가까이 있는 호수에서. 9ha로 그다지 크지도 않고 버려져 있던 호수를 정원박람회라는 이벤트를 통해 지혜롭게 재생시켜 냄으로써 사람과 자연을 함께 공존시키고 있는 셈이다.


독일 루르지역 Lünen의 See park 내 정원과 친수 모래밭. 도시 내 옛 광산터에 방치되어 있던 수공간과 주변을 1996년 정원박람회를 통해 도시공원으로 재탄생시킨 곳이다. Ⓒ 성종상. 2003년 8월

짧게 살펴 본 단면들 중에는 십년이 훨씬 지났지만 아직도 뇌리에 생생하게 남아 있는 것도 있다. 아마도 그만큼 각별하게 와 닿았기 때문일 것이다. 찾아보자면 어느 사이 우리 도시들에서도 곳곳에 아름답고 근사한 장면들도 많아졌을 것이다. 필자는 우리 삶을 근사하게 담아내는 데에는 그 어떤 것들보다도 놀이터나 정원, 혹은 공원 등 조경이 만드는 공간들이 중요한 역할을 차지할 거라고 믿는다. 그것은 조경이라는 것이 본질적으로 자연과 도시, 생태와 인간을 조화시키는 것을 기본 사명으로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_ 성종상 교수  ·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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