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도시공간의 젠더문제

『젠더, 정체성, 장소』 린다 맥도웰 지음, 여성과공간연구회 역, 한울 아카데미
라펜트l오정학 과장l기사입력2017-12-19
도시공간의 젠더문제


_오정학 경기도시공사 과장
(ohjhak@daum.net)


젠더, 정체성, 장소
린다 맥도웰 지음, 여성과공간연구회 역, 한울 아카데미
지금 홍대거리는 가장 핫한 곳이다. 주말에는 몰려든 인파들로 밤늦게까지 붐빈다. 놀거리와 먹거리, 볼거리도 지천이지만 무엇보다 물이 틀린 까닭이 크다. 골목으로 들어가면 여성 전용 파티룸이나 게이바와 레즈클럽도 어렵잖게 찾을 만큼 치우침 없이 모든 성을 환대한다. 공간과 시간은 같이 움직이기에 자기만의 시간을 조직해 내는 이곳 문화를 다른 곳의 규범으로 재단하는 것은 공허하다. 사회적 소수자들도 배타적 분위기나 공간의 억압이 덜한 이곳에서는 그들만의 시공간을 만들 수 있다. 다양성의 허용과 많은 접점들의 존재, 홍대거리가 뜨는 이유 중의 하나이지 않을까? 

도시는 전통적 지역사회와 대비된다. 익명성과 개방성, 자유분방함이 특징이다. ‘도시의 공기는 사람을 자유롭게 한다’ 는 근대 유럽의 유행어는 이를 증거 한다. 공간의 역사성에 짓눌렸던 이에게 도시의 익명성은 자유로운 개인성을 마음껏 드러낼 수 있게 해 주었다.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한 근대도시의 공적공간은 특히 여성들에게 자유로움과 탈일상의 기회를 제공했다. 도시는 자유로워졌지만 여성들에게는 아직 공간의 장벽이 남아 있었다. 

철학자 벤야민(1892-1940)이 19세기 도시에서 발견한 산보자는 대개 남성이었다. 여성일 경우 십중팔구는 노인, 과부, 넝마주이, 매춘부였다. 그만큼 일반 여성에게 도시의 스펙터클은 담 너머 세계였다. 이러한 분위기는 19세기 후반까지도 이어졌다. 영국 캠브리지의 공공장소에서 여학생들은 모자와 장갑을 꼭 착용했는데, 이는 “나는 거리의 여자가 아닙니다.” 라는 표시였다. 이러한 역사를 들어 옥스퍼드대 맥도웰(Linda McDowell) 교수는 “도시의 공적 공간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곳이 아니라 누구는 허용하고 누구는 배제하는 차별적인 공간이었다(263쪽).”고 평가한다. 19세기말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여성들의 도시 출현이 보편화되기 시작했다. 백화점, 도시공원과 같은 상업공간과 공공장소의 발달이 큰 역할을 했다지만 여성취업률 증가로 여성 보행인이 늘어난 탓이 컸을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비트루비우스 인간’. 인체비례도로 유명한 이 그림은 비트루비우스의 건축십서에 나오는 인체비례도와 일치한다. 다빈치는 그림 여백에 “사람이 두 팔을 뻗친 폭은 키와 같다. 턱밑에서 정수리까지는 키의 8분의 1이며...”라 기술했지만 어디까지나 남성에 한정되는 이야기이다.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서구와 비서구를 가리지 않고 남성의 척도가 인간의 척도를 대표해왔다.

맥도웰은 근대도시의 남성성 치중을 지적한다. 그의 관점으로는 한국도 예외가 아닐 듯하다. 1970년대에 체계를 갖춘 한국의 공공조경이 산업화의 핵심인 생산 및 물류공간에 가장 먼저 투입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당시 공장조경과 도로조경이 매우 활발했었다. 모두 속도전과 대량생산의 국가경제 틀 속에서 기획된 것으로 젠더 위계적 측면에서 남성성을 더 많이 표상한다. 근대적 국민정신의 구현을 꾀했던 사적지 성역화 사업도 동류이다. 시차를 두고 만들어진 서울의 광화문 광장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절대권위의 상징인 전제군주와 장군의 동상이 핵심 장치라는 점에서 강력한 남성성의 표상이다. 

이처럼 도시공간의 이용은 경제수준이나 정치적 권리만으로 결정되지는 않았다. 같은 도시공간에 살지만 여성과 남성의 공간은 판이하게 달랐고 많이 좋아졌지만 지금도 비슷하다. 이러한 입장에서 맥도웰은 공간을 입지적 좌표나 영토로서만 바라보기보다, 사회공간적 실천을 중시하여 젠더를 축으로 도시공간을 조명한다, 성별에 따른 공간의 이용과 장소성 변화, 그리고 차별화 양상을 보고자 했다. <젠더, 정체성, 장소>의 부제는 ‘페미니스트 지리학의 이해’ 이지만, 맥도웰의 젠더 인식은 단지 남·녀에 머무르지 않는다. 동성애자와 같은 성소수자까지 언급했다는 점에서 여성주의적 접근을 뛰어 넘는 젠더지리학 대표주자의 면모를 여실히 볼 수 있다. 

“여성에게 특정한 형태의 여성성이, 남성에게 특정한 형태의 남성성이 적절하다는 믿음은 여전히 지나칠 만큼 위력적이다(37쪽).” 성별 특성에 대한 이러한 고정관념과 전통적 관념은 도시공간 조성에 바람직할 수 없다. 이런 맥락에서 여성주의는 공간계획에서 간과할 수 없는 요인이다. 근대에 만들어진 공공공원이 정원을 가지지 못한 도시민에게 활력을 준 것은 배제와 차별의 이념이 아니었다. 그러한 정신을 잇기 위해 한 쪽 성에 치우치지 않는 균형감각을 맥도웰은 주문했는데, 최근 추진되고 있는 여성친화적 도시계획이나 여성친화적 공원을 그 계승으로 볼 수 있다. 그렇지만 맥도웰의 시각에서 여성친화적 공간이란 시혜를 베풀 듯이 여성을 단순 배려하는 게 아니라, 고착된 남녀 이분법적 공간 분할을 해체하는 곳이다. 

여성주의는 현대에 들어와 여러 분야에서 추진되었다. 그 과정에서 남성주의 혹은 가부장제의 거센 반동에 직면할 때가 많았다. 급기야 나타난 ‘여혐’ 현상은 새로운 사회문제이다. 그러나 외부공간에서 여성주의는 높은 호환성으로 활용도가 높다. 신체적 약자라는 측면에서 고령층, 아동층과 공유대가 넓은 것도 장점이다. 그럼에도 경시되어 온 것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결국은 비용과 시간을 아끼려는 자본제적 효율성 추구에 그 혐의를 둘 수 있다. 여성주의의 공간적 구현에는 남녀의 이분법적 활동계획의 탈피와 시공 과정에서 좀 더 섬세한 디테일, 공간적 고려가 필요하다. 이는 결국 더 많은 시간과 경제적 비용 투입을 요구한다. 자본의 축적도가 높아진 오늘날의 한국사회에서 여성주의의 요구는 피할 수 없는 공간의 과제로 보인다.
_ 오정학 과장  ·  경기도시공사 사업기술처
다른기사 보기
ohjhak@daum.net

네티즌 공감 (0)

의견쓰기

가장많이본뉴스최근주요뉴스

  • 전체
  • 종합일반
  • 동정일정
  • 교육문화예술

인기통합정보

  • 기획연재
  • 설계공모프로젝트
  • 인터뷰취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