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지금 만나 : 돌로레스 공원

글_전은혜 San Francisco Terrain Studio 조경설계가
라펜트l전은혜l기사입력2018-02-18
우리 지금 만나 : 돌로레스 공원




_전은혜 Terrain Studio 조경설계가



지금은 아쉽게도 해체한 리쌍이 일면식도 없던 장기하와 함께 만든 곡이 <우리 지금 만나> 이다. 직설적인 장기하답게 이 노래 제목은 수월하게도 나왔다. 섭외를 하려고 길이 전화를 하자마자 장기하가 대뜸 우리 지금 만나자고 해서란다. 술술 풀리려면 이 정도 추진력은 있어야 하나 보다.

굳이 이런 자조적인 이야기로 시작하는 이유는 직업으로서의 조경을 하는 우리에게 공원은 어떤 의미인가 하는 원초적인 질문을 던지기 위해서다. 질문은 이미 충분히 던진 것 같으니 주어진 기회를 활용한 이야기도 좀 들려드릴까 한다. 

동종업계외의 사람들과 어울리다가 무슨 일 하시냐는 질문에 조경설계 한다고 하면 열에 아홉은 멋지다, 낭만적이다 하는 대답이 돌아온다. 머릿속엔 삼라만상이 스치지만, 삼장법사 같은 표정으로 웃으며 늘 끄덕이며 지나간다. 왜 사냐건 웃지요. (동창을 제외하고 업계외의 새로운 사람들과 사적으로 어울리는 기회가 얼마나 있는지도 의문이다. 이 이야기는 따로 해야겠다.)

노래가사처럼 햇살엔 세금이 안 붙어서 참 다행인데, 직업이 공원 만드는 일인 사람들이 왜 해를 못보고 살며, 운동부족에 시달리는 걸까. 개인차가 있다 해도 이것은 분명 성향의 문제만은 아니다. 구조적인 원인으로 치면 설계비 논란부터 비효율적인 작업방식까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큰 매듭을 풀 입장도 능력도 되지 않으니 우선 내 시간부터 다르게 써보기로 했다(그나마 공평하게 가진 걸로). 근처의 공원에서 일어나는 모임을 찾아 Meetup이라는 소모임 공유 플랫폼을 열심히 뒤져보니 요가를 하는 사람들도,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도, 테니스를 하는 사람들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모처럼 한가한 일요일 아침, Mission Dolores park 돌로레스 공원에서 모여서 요가를 하는 모임을 찾아가 보았다. 돌로레스 공원은 샌프란시스코의 Mission 미션 지구의 여가중심으로, 18가와 20가 사이, Church St.와 Dolores St.사이의 6.25헥타르의 작지도 크지도 않은 도심형 공원이다. 널찍한 언덕배기 잔디밭에는 다양한 사람과 온 동네에서 모인 강아지들이 일광욕이나 산책을 즐기고 있다.



작게나마 설치된 무명의 운동장(고무매트이지만 딱히 사용처가 명시된 것도 아니다)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운동하러 모여든다. 열시에 요가모임이 한 시간 동안 순환운동과 요가를 하는 동안에 한 켠에는 열한시부터 필드하키연습을 하러 온 사람들이 주섬주섬 장비를 꺼내며 눈치를 살핀다. 



처음 본 사람들이지만 간단한 통성명(어차피 절반은 외국이름이라 서로 기억도 못하지만…) 후에 스트레칭, 순환운동을 시작한다. 생각보다 힘든지 여기저기서 십 분이 지나지 않아 헉헉거리며 자기나라말로 조상 찾는 소리가 들려온다. 
 




지나가다 재밌어 보였는지 동네꼬마로 추측되는 아이들이 스트레칭부터 함께하기 시작했다. 당연한 일이지만 매트를 나눠 쓰고 엄마미소를 날리는 여유. 운동하는 사람들이 가진 멋진 장점이다.



한 시간 열심히 운동한 이후에는 근처의 유명 카페에서 유기농 스무디를 택하거나, 각자 준비해 온 건강한 간식거리를 나누며 이야기를 나눈다. 모임에는 각자 매트만 가져오면 되는 터라 그런지 이곳에서 흔한 엔지니어나 디벨로퍼도 있지만 학생, 주부, 그리고 놀랍게도 건축과 출신 인테리어디자이너도 만났다. 러시아 사람인데 이런데서 만났다고 서로 놀란걸 보면 세상 어디가나 이 바닥이 그 바닥인 것이 분명해져온다. 







프로젝트로서의 공원을 만나는 일은 물론 쉽지 않다. 하지만 한발 물러서서 설계자가 아닌 공간의 사용자로서의 경험은 긍정적인 접근방식 외에도 여러 세부사항들을 관찰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렌더링에 들어가는 카약, 실내외 암벽등반, 달리기, 자전거 타기를 실천하는 사람이 되기에는 시간도 노력도 아직 갈 길이 멀다. 얼마 전 직접 호기롭게 가보기 전까지는 암벽등반 블록의 알록달록한 색이 단계별로 초보와 각 레벨의 숙련자를 위한 구분표식이라는 사실을 몰랐다. 이걸 알고 렌더링에 넣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특히나 공간감이 아득한 마스터플랜 단계의 구상을 할 때, 종합과자선물세트처럼 구색 맞춰서 운동공간을 설계하는 사람들을 수없이 만났다. 필요시설이 부족하거나 과한 공간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우리도 햇빛 좀 쬐고, 걷고, 달리고, 경험해보자. 물론 시간도 없고 누구보다 피로하겠지만 장기하 목소리를 빌려 말하고 싶다. 우리 지금 만나. 당장 만나.
글·사진 _ 전은혜  ·  Terrain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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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oneu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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