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운의 곤충記] 봄을 알리는 애호랑나비

글_이강운 오피니언리더(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
라펜트l이강운 소장l기사입력2018-06-08
봄을 알리는 애호랑나비



_이강운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
(사)한국환경복원기술학회 부회장



늘 산 속에 살며 벌레와 사는 곤충학자이지만, 언제 봐도 보고 싶고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 곤충이 있다. 바로 이른 봄의 애호랑나비. 1년 중 5개월이 겨울인 강원도 깊은 산 속 연구소의 봄맞이는 애호랑나비로부터 시작한다. 


이른 봄이 되면 알(좌)에서 깨 어른나비의 모습을 갖춘 애호랑나비(우)를 볼 수 있다.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추운 겨울 잘 버티고 이른 봄 가장 먼저 번데기를 깨고 날개 달고 나온(Emergence: 羽化)  애호랑나비를 만나면 꽃바람 타고 올 봄을 느낀다.


진달래 군락. 애호랑나비는 이때쯤10개월의 휴면을 마친다.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진달래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핏빛 같은 꽃을 피워낼 때 애호랑나비는 10개월의 휴면을 마치고 어른나비가 된다. 이른 봄 찬란한 열흘 남짓 나비로 살기 위해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해를 넘겨 새 봄까지 기다려온 끈기 있는 녀석이다. 
진달래 꿀을 빨고 있는 애호랑나비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땅속에 웅크리고 있던 족두리풀도 이 때 쯤 때를 맞춰 땅에 붙은 자주색 족두리 모양의 꽃과 우글쭈글 주름 잡힌 하트 모양의 잎을 삐쭉 내민다.

움직일 수 없는 애호랑나비 번데기이지만 자기 몸 안의 생체 시계로 외부 상황을 모니터링하기 시작한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지만 낙엽과 바위 밑에 은밀히 붙어있던 번데기에 발육을 시작하라는 온도 신호가 전달 돼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애호랑나비 번데기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발육임계온도(Low Temperature Threshold)가 12.4℃인 꼬리명주나비 번데기나 호랑나비(10.5℃)에 비해 애호랑나비는 8.1℃로 같은 과에 있는 다른 나비보다도 훨씬 낮아 일찍 움직이기 시작한다.

애호랑나비의 생체시계. 발육임계 온도는 다른 나비보다 훨씬 낮다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번데기 안에서 발육을 시작하는 문턱을 일단 넘어서고 날개돋이에 필요한 온도가 쌓이는 동안 밖에서는 진달래가 피고 족두리풀이 고개를 내민다. 

족두리풀 꽃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언 땅을 뚫고 잎이 나올 때부터 땅바닥에 얼굴을 바짝 붙인 자주색 꽃은 하루 종일 제 잎 그늘에 가려 나비나 벌을 만나지 못하지만, 비릿한 정액 냄새로 파리를 유인해 번식에는 문제가 없다. 족두리풀의 줄기나 잎을 씹으면 입안이 얼얼하고 쏘는 맛이 난다.

족두리풀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이는 하루 종일 먹어대는 애벌레들로부터 자신을 지켜내는 일종의 독이다. 포식자가 들끓는 산 속에서 식물은 천적인 애벌레를 막기 위해 최고의 방어수단인 화학물질을 뿜어내는데, 봄나물의 쌉싸름한 맛과 향이 그런 화학물질인 셈이다.

애호랑나비 애벌레는 아무도 먹지 못하는 족두리풀에 있는 맹독성 잎을 먹고 잘 저장해서 다시 강력한 샛노란 냄새 뿔로 바꾸어 자신을 지키는 방어 무기로 사용한다. 스페셜리스트(Specialist)로 멋진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애호랑나비 애벌레 냄새뿔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일정한 온도가 계속 이어지며 쌓인 온도(적산온도)가 충족되어 날개돋이를 하자마자 때맞춰 꽃을 피운 진달래에 얼굴을 파묻고 꿀을 빤다. 아직은 몸이 덜 덥혀졌는지 힘껏 날지는 못해도 자손 번식에 마음 급한 애호랑나비는 한 몸으로 서로 뒤엉키면서 하늘 높이 날아 짝을 짓고 진달래 꽃 위에 앉았다.  

애호랑나비 짝짓기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훈훈한 봄바람 불고, 귀한 먹이 진달래 꿀로 배를 채운 애호랑나비는 살짝만 닿아도 또르르 굴러 떨어질 것만 같은 진주같이 영롱한 알을 낳았다. 쭈글쭈글한 잎 윗면에 알을 낳았지만  잎이 자라 펴지면서 앞, 뒷면이 바뀌어 결국에는 천적에게 들키지 않는 뒷면에 알을 낳은 것. 

애호랑나비 알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알을 꼭꼭 숨기는 애호랑나비의 계산된 영민함에 놀란다. 

노란빛 바탕에 검정 줄무늬, 뒷날개 끝 붉은 무늬가 선명한 애호랑나비. 호랑나비보다 좀 작은 크기 때문에 애호랑나비로 불렸는데 요즘은 애를 태워야 겨우 볼 수 있는 희귀한 나비가 되었다. 일본도 마찬가지. 같은 속의 L. japonica는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되어있다. 

- 애호랑나비(Luehdorfia puziloi (Erschoff, 1872) : 나비목(Lepidoptera)/호랑나비과(Papillionidae)/ 모시나비아과(Parnassinae)/ Luehdorfia 속. 

 
※ 참고문헌 
-2014. Kang-Woon Lee, D. J. Lee and J. J. Ahn. Temperature-dependent development of overwintering Sericinus montela Gray (Lepidoptera:Papilionidae) pupae and its validation. Journal of Asia-Pacific Entomology. 17: 445-449

-2012. Kang-Woon Lee et al. Temperature effects on development of overwintering Papilio xuthus Linnaeus (Lepidoptera: Papilionidae) pupae. Korean Society of Applied Entomology. p145-145 (http://db.koreascholar.com/article.aspx?code=289036)

-2014. Kang-Woon Lee, J. R Lee and J. J. Ahn. Temperature effects on development on overwintering Luehdorfia Puziloi(Erschoff) (Lepidoptera: Papilionidae) pupa. Korean Society of Applied Entomology. p.89-89 (http://db.koreascholar.com/article.aspx?code=287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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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동아사이언스의 동의를 얻어 발췌한 기사이며, 이강운 소장의 주요 약력은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 / 한국환경복원기술학회 부회장 / 한국서식지외보전기관협회 회장 / 국립안동대학교 식물의학과 겸임교수 / 저서로는 <한국의 나방 애벌레 도감(Caterpillars of Moths in Korea)>(2015.11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 <캐터필러>(2016.11 도서출판 홀로세)가 있다.
이메일 : holoce@hecri.re.kr       
블로그 : http://m.blog.naver.com/holoce58

글·사진 _ 이강운 소장  ·  (사)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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