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시선] 길이 있어도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으면 그 길은 사라진다

글_안영애 논설위원(안스디자인 대표)
라펜트l안영애l기사입력2018-06-10
길이 있어도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으면 그 길은 사라진다
-서울에 바란다-2


_안영애(안스디자인 대표)



길이 있어도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으면 그 길은 사라진다.

얼마 전 지방에서 ‘정원수 유통업 발전방향’이라는 세미나에 설계자 입장으로 참석하였다. 향후 전망은 어떠한지, 어떤 수종을 재배하여야 안정적인 수익을 낼 수 있는지, 재배자, 설계자, 시공자 등 관련분야 사람들이 모여 토론하는 자리였다. 그 세미나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현장의 생생한 역사, 사회변화, 조경시공의 구조적 문제 등... 비교적 젊은 재배자 한분의 이야기는 그동안 읽었던 논문, 보고서의 결과와 현실이 연결되지 않아 궁금했던 점을 알게 해주었다. 해방 후 조경사업은 여타 분야도 마찬가지로 무모한 도전이었다. 체계적인 공부, 사업기획력도 없이 일본사람들이 남기고 떠난 정원을 모델로 재배자면서 설계자 동시에 시공자의 현장경험으로 시작하였다. 당연히 사업규모나 과정상 설계는 많은 부분을 생략하거나 혹은 간략하게 하고, 시공하고, 변경하면서 완성하였다. 당시는 대부분 개인상대의 개인정원공사로, 규모는 작았고 운영의 어려움은 있었지만 지금같이 어렵지는 않았다고 한다.

양은 증가했는데 왜 어려워졌을까? 당시 별도의 설계결과물은 없었지만 당연히 과정은 있었고 이 대가는 시공 속에 포함되었을 것이다. 조경의 역사는 건설의 역사이고, 건설은 우리 도시의 역사와 맥을 같이 한다. 서울의 경우 1900년대 초반 인구는 약 25만, 1940년에는 100만, 1990년에는 1,061만, 50년 만에 10배의 폭발적 인구 증가에 대응하는 도시관리는 상당히 어려웠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증가추세는 우리보다 먼저 도시화가 된 어떤 국가에서도 없었던 사례이다. 이러한 도시변화와 문제해결을 위해 단시간에 대규모 공동주택을 건설할 수밖에 없는데 이는 우리나라 전체의 사회, 경제, 문화 등 여러 분야를 변화시켰다. 공간구조, 집에 대한 잘못된 인식, 공동체붕괴 등 전무후무한 것들이 만들어졌다. 심지어 ‘선거공약’으로 200만호라는 건설을 내놓을 정도의 양적시대에 살았다. 양적시대에서는 더 이상 한 사람의 숙련된 경험으로 시공하기에는 역부족이고 때마침 조경을 체계적으로 공부하고 오신 분들로 인해 점차 통합적인 설계와 시공의 분리되었고 이는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설계시공 분리에 따라 정부에서는 지급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만들었는데 이 때 조경의 특성을 충분히 감안하지 못해 조경발전에 걸림돌이 되지 않나 생각한다. 산업적 중요성을 생각하여 인재개발을 위해 조경기능사, 기사, 기술사 등 단계적인 체계와 제도를 만들었지만 기술사, 기사 등 인력이 활동하는 가장 기초적인 설계업을 육성 발전시킬 수 있는 법적근거는 조경과 맞지 않아 조경은 마치 2인3각 경기를 하는 것처럼 균형 잡기 어려운 실정이다. 법적 근거가 되는 이 기준을 다시 읽어본 결과 전혀 대안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엔지니어링사업 대가기준에 의하면 제2장 실비정액가산방식이 있고 제3장 공사비요율에 의한 방식이 있다. 그러나 제2장의 거의 적용되지 않는 방식이고 제3장의 방식은 조경에서 적용하기 적합하지 않은 기준인 것 같다. 공사비요율방식에서 조경공사비 1,000억, 2,000억, 5,000억, 5000억 이상의 기준이 조경에 적용할 수 있는 보편적인 공사기준인가? 물론 조경에서 5,000억 공사가 절대로 안 된다고 얘기하는 것은 아니지만 보편적, 일반적 조경공사비 기준이 과연 적정한가이다. 이 방식에 의하면 어떤 작은 개인조경공사의 경우 설계비를 받을 수 없는 ‘허수’이고 5,000억의 공사비는 거의 ‘불가능한 숫자’이고 중간은 조경공정을 반영하지 못하는 수치라면 이 기준은 적용하기 어렵지 않은가? 그런데 대부분 정부에서는 이 기준을 적용한다. 왜? 이 기준은 누구에게도 말할 수 있는 확실한 수치적 근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 수치적 근거는 일 자체보다는 책임이 아닌가 한다.

두 개의 길이 있다. 왼쪽 길은 적은 사람으로 위험이 오면 해결하기 힘들 것 같고 때로는 공정성을 의심받기도 하지만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좋은 길이다. 오른쪽 길은 많은 사람이 있어 외부로부터 위험이 오면 서로 책임을 사람숫자만큼 나눌 수 있으니 내 책임은 그만큼 적어진다. 그 길은 직접 일하기보다 남에게 일을 시키면서 ‘통행세’를 받을 수 있는 강자에게는 편안한 길, 약자에게는 힘들고 고달픈 길이다. 그런데 수치적 근거라는 창으로 힘센 사람은 이 길로 유도한다. 그런데 길이 있어도 가지 않으면 언젠가 그 길은 풀로 뒤 덮혀 길임을 알 수 없고 언젠가 사라지고 하나 남은 길은 더 많은 창과 무기가 있는 힘센 사람이 점유하고 있어 힘없는 다수는 다닐 수 없거나 전 보다 더 많은 통행세를 내고 다니는 길이 될 것이다. 그 때 힘없는 다수를 위한 새로운 길을 만들려면 어려울 수 있으니 두 개의 길을 상황에 맞게 가야 하는 것은 어떠한가?


기존 길 정비

이제 부터라도 적극적으로 실비정액가산방식을 검토해 적용하고 많은 사례를 집계하여 정확한 데이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점차 이런 예가 많아지고 상호 신뢰가 쌓이고 데이터가 누적되어 객관적 기준이 만들어진다면 현재의 규칙은 자연스럽게 사라지고 우리는 새로운 질서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 새로운 질서는 많은 사람들에게 기회를 제공하고 가치를 높여줄 수 있는 질서이다.

설계는 설계자의 경험, 지명도, 대상지 여건, 공사비 등 다양한 요인이 있어 동일하게 받을 수는 없지만 현재 이 기준의 불합리함으로 여러 조경설계 전문업체의 수년간, 다양한 유형의 설계계약을 근거로 설계비용 산정에 데이터화하여 첫 번째로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는데 현재는 시작단계라 계속 보완예정이지만 개인과의 거래에서 아주 요긴하게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공인자료가 아니기에 정부에서 적용이 어려운 실정이다, 굳이 현재 여러 기준으로 문제가 없는데 왜 굳이 하려고 하는가 할 수 있다. 문제가 없다기보다 문제제기를 하여도 개선되지 않았을 뿐이다. 정부기준이 중요한 것은 정부가 시장에 일정한 ‘규칙’을 만들어야 하는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시장에 규칙이 없다면 시장은 힘 있는 자들이 그들에게 맞는 ‘규칙’을 만들고 가까운, 제한된 사람들만 주고받는 것이고 폐쇄적 시장이 될 것이고 다수의 사람들에게는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모든 것을 시장에 맞게 한다면 지금의 기준 역시 폐기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여 기준을 만들되 합리적 기준을 만들자는 얘기이다. 단, 작은 설계용역비는 공사비요율방식이 아닌 신뢰를 기반으로 한 실비정액방식으로 전환하고 다양하고 복잡한 공정이 있는 설계는 기존의 P.Q제도를 발주한다면 우리는 2개의 길을 유지하는 것이다.


선도하는 서울시! 서울시는 달라야 한다.

그동안 양적 시대에서 이제는 질적 시대로, 기업비중에서 개인비중으로 이전하는 시대적 전환점에 있는 것 같다. 현재 세계2위 경제대국 중국의 산업화는 우리 환경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칠 것이고 도시환경은 더욱 악화될 것이다. 선사시대 동굴에서 생활했듯 이 시대의 동굴인 건축물에 갇혀 살 것이 아니라 외부환경을 좀 더 개선하여 동굴에서 나와야 하지 않을까? 아니면 동굴을 아주 크게 만들어 동굴외부는 물론 내부까지 자연을 만드는 것은 어떨까? 조경분야는 소득증가, 환경변화, 사회적 인식 등으로 아직 대가 지급에는 제한적인지만 시장에서는 점점 요구가 커지는데 정책은 그를 따라주지 못하는 듯 하다. 도면 한 장에 20∼30년의 축척된 시간이 들어가 있다면 20∼30년의 이 지식의 대가는 어떻게 지급할 것인가? SNS 발달, 다양한 웹사이트로 검색은 용이하지만 전체적으로 통합, 응용하는 데는 숙련된 경험이 필요하다. 1∼2장의 설계도면에도 20∼30년의 경험이 투영되는 것이다. 단 이름만 건 경력의 경우는 아니다. 지금의 여건은 많이 다르다는 것을 전제로 오래 전에 멋진 인테리어 시공현장 사진과 함께 공사비 내역을 보면 마지막 항목에 디자인비는 총 공사비의 30%로 표기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서울시는 공사비를 기준으로 계획비용이나 디자인비용도 지급하지 않고 또 예산절감을 위해 기본 및 실시설계를 동시발주하고, 난이도를 따지면서 85%, 다시 재무과에서 예산절감 실적을 위해 90% 그러면 결국은 76%의 비용으로 설계를 시작하게 된다. 5억 기준으로 기본계획부터 실시설계까지 통틀어 기존 방식, 난이도 있음, 예산절감 없이 100%로 발주해도 약 4.5%. 공사금액, 종류는 다르지만 인테리어 비율에 비해 너무나도 적지 않은가? 조경도면에서 프로그램에 의해 자동으로 만들어지는 비율이 얼마나 될 것인가? 기본이 되는 평면도 한 장도 같은 것은 없고 평면도가 기본이 되는 도면이라 하나가 변경되면 수도 없이 다 변경되는데도 불구하고 왜 ‘난이도 쉬움’일까? 공간은 공간대로 거기에 사용하는 주요 재료인 살아있는 소재 역시 다양한 요인을 검토하여야 하는 눈에 보이는 것보다 눈에 보이지 않은 것이 더 많이 내포되어 있는데… 세금을 낭비하는 것은 지양해야 하지만 세금을 공정하지 못하게 쓰는 것도 아니다. 발주하는 공무원은 당당하고 일하는 설계업체는 정당한! 이런 시작이 중요하다.

누군가는 이제 건설은 끝났고 조경도 이제 끝이라고 얘기하지만 다르게 생각해보려고 한다. 많은 기성세대는 부모가 만들어 준 ‘틀’에 순종하면서 살다 사회에 나와서도 역시 ‘틀’에 자신을 맞추면서 살아왔다. 그렇게 평생을 내가 아닌 남이 만든 ‘틀’ 속에 살다 은퇴하여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니 그리 행복하지 않았기에 이제는 자식에게 자신의 길을 따라서 살라고 강요하지 않는 추세이다. 양질의 정규직업을 구하기도 어려운 사회이지만 자식들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 한다. 우리는 많이 갖고자 사는 것이 아니라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대개 이런 경우는 여유 있는 사람들의 선택이라고도 하지만 근래 행복의 가치는 소소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작은 것에 행복을 느낀다고 한다. 조경 역시 단지 돈 벌기 위한 수단이 아닌 이 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온전히 일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이 분야가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정당한 대가를 받는 구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건설/조경은 인간이 이 지구에서 가는 한 한 꼭 필요하다. 기원전 바빌론 정원, 영화 ‘마션’에서 화성에 떨어진 우주인이 감자를 심는 것도. 그것도 경관적으로 심는 것을 보면 조경은 오래 전 과거부터 현재 그리고 미래에도 필요한 산업이므로 단절되지 않고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길이 만들어지기 바란다.
_ 안영애  ·  안스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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