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시선] 북한의 문화재에 담긴 알 수 없는 가치

이원호 논설위원(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명승·전통조경·천연보호구역 담당)
라펜트l이원호l기사입력2018-06-26
북한의 문화재에 담긴 알 수 없는 가치 




_이원호(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명승·전통조경·천연보호구역 담당)

 

북미정상회담의 성공적 개최 소식 탓인지 요즘은 꿈이 현실로 이뤄지는 일들이 많아져 연일 미소가 지어진다. 분단이라는 상황 이후 태어나고 자란 세대들에게는 남의 일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이산가족을 둔 이들에게는 그 동족상잔의 비극이 막을 내리게 되었다는 감격은 그 어떤 것으로도 형언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동안 남북분단 체제하에서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어릴 적 기억으론 방학 때면 반공을 주제로 한 포스터 그리기와 표어 짓기는 늘상 있는 과제였다. 그러나 북한이 국제사회에 화해의 악수를 청한 후 달라진 지금의 상황은 많은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중국에 유학을 하며 북한사람들을 한번쯤 만나본 경험이 있는 분들은 북한, 즉 조선 사람들도 분명 하나의 동포임에 틀림없었다고 흥분하기도 한다. 지난 6월 12일 북미정상회담을 시작하면서 김정은 위원장은 “모든 것을 이겨내고 이 자리까지 왔다. 우리한테는 우리 발목을 잡는 과거가 있고 또 그릇된 편견과 관행들이 우리 눈과 귀를 가리고 있었다”고 말했다. 곱씹을수록 감동적인 첫마디지만 문화재를 생업으로 살아온 내게는 그릇된 편견과 관행이라는 표현에서 바로 북한문화재가 연관어처럼 떠올랐다.
 
북한의 문화재 지정가치에는 국제기구의 기준이나 우리나라의 지정기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이상한 기준이 모든 문화재에 걸쳐 적용되어 있다. 일반적인 문화재의 본질적 가치 외에 선군시대에 새로 태어난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북한은 “조선의 선군시대는 제국주의와의 대결에서 민족의 운명과 사회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사람과 사회와 자연을 주체의 요구대로 개조 변혁하기 위한 투쟁이 이루어지는 시기”로 간주하고 사회주의 기념물들을 새롭게 문화재로 지정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는 이상적인 혁명 주제로 보이지만 그 내면은 주체사상을 내세운 북한 최고 지도자와의 관련성을 문화재적 가치 판단기준으로 적용한 것이다.

김 위원장의 말처럼 이제 우리도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북한 문화재에서 보여지는 그릇된 편견과 관행들도 보편타당한 수준으로 다시 제대로 돌려놓아야 한다. 이 변화를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북한문화재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공부해야만 한다. 

북한의 모든 문화재에 걸쳐 적용되어진 이 이상한 이중적 가치를 기념물 범주와 사회주의적 선경이라 불리는 8경을 통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본다.

북한은 2000년까지만 하더라도 유물과 유적으로 문화재의 범주를 정해놓았다. 2012년에 문화유산보호법을 발표하면서 무형문화재를 문화재에 포함시켰고 2015년에 민족유산보호법으로 확대 개정하면서 천연기념물까지 그 범주를 확대시켰다(전영선․신준영,2016).

특히 기념물은 남․북한이 공유하고 있는 문화재 단위다. 기념물은 오랜 역사를 간직한 기념이 되는 대상물이다. 기념물로 오랜 역사적 의미가 있는 사적지를 포함하여 경치가 뛰어난 곳이나, 가치 있는 동․식물, 특별한 자연현상으로서 가치가 있는 것도 모두 기념물에 포함된다.

남한의 기념물은 문화재보호법에서 사적 ․ 명승 ․ 천연기념물로 구분하고 있다. 북한의 문화재 관련자료는 2005년까지는 비교적 통계자료가 수월하게 입수되다가 남북 분위기 악화로 갑자기 어려워졌다. 남한과 북한은 기념물의 가치기준에서차이를 보인다.

2008년 기준 통계에 의하면 북한의 명승은 223건이고 천연기념물은 469건에 달한다. 현재 남한의 천연기념물은 458건 명승은 111건이지만 2008년 당시를 감안하면 남한의 명승이 87건, 천연기념물이 423건이였으니 입수 자료상으로는 2008년 당시에는 북한이 더 많았다. 그러나 현재는 그 정확한 건수나 내용을 알 길이 없다. 박물관에도 천연기념물과 관련해 지질계통박물관, 식물학계통박물관, 동물학계통박물관 등이 있다. 북한에는 문화보존지도국이 우리 문화재청에 해당하고 이 기구 아래 천연기념물 지도처가 설치되어 있다(전영선․신준영,2016). 

북한은 천연기념물을 지정할 때 가장 중요시하는 것이 역사성이다. 역사적 의미를 가진 천연기념물을 식물천연기념물, 동물천연기념물, 지리, 지질 천연기념물로 나누어 관리한다. 북한의 천연기념물은 두 가지로 구분된다

하나는 학술적인 의미의 천연기념물은 학술적 및 풍치적 의의가 있는 것으로서 국가가 보호 관리하는 대표적인 자연물이다 다른 하나는 최고 지도자와 관련된 것이다. 천연기념물을 선정할 때 최고지도자와의 관련성이 가장 상위기준이 된다.
 
북한에서 식물천연기념물로 개성시 방직동에 있는 성균관은행나무가 있다. 지정사유를 설명한 내용을 보면 그들의 문화재에 대한 가치 기준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성균관은행나무는 고려시기 국가의 최고 교육기관이었던 고려성균마당에 있는 두 그루의 수나무이다. 위대한 수령 동지께서는 고려성균관을 찾으시고 이 은행나무는 오래 자란 나무인데 벌레도 먹지 않고 푸르싱싱하다고 - 중략 - 이 나무는 어버이수령님의 불멸의 령도업적을 길이 전하며 우리 당의 천연기념물보호사상의 정당성을 잘 보여주고 오래 자란나무로서 학술적 교양적 의의가 매우 크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같은 성격의 남한의 천연기념물 설명 내용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천연기념물 제59호인 서울 문묘 은행나무는 문화재지정명칭, 서식지, 성격, 유형, 크기 등 식물의 학술적 특성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전통공간에 식재된 은행나무의 특성과 가치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역사적 사건에 대한 언급은 명륜당의 공간을 설명하면서 은행나무가 언급된 일성록을 함께 거론하고 있다.

또 종묘와 문묘에 위안제를 설행해야 하는 이유를 어젯밤 비바람에 서쪽 담장 밖의 은행나무가 부러질 때 서무 처마의 기와가 많이 부셔졌다고 보고한 내용도 있다. 문구 어디를 보아도 역사적 사실을 통한 천연기념물서의 가치 이외에 그 어떤 이를 찬양하는 구절도 보이지 않는다.


개성의 성균관 은행나무 (식물천연기념물)


서울의 문묘 은행나무(천연기념물 제59호)

분단의 세월은 우리의 천연기념물과 명승 이외에도 8경이라는 선조들의 유산도 변화시켰다. 팔경은 조선시대 지리지에 나타나있는 팔경의 근본 의미에 천연기념물과 같은 최고지도자와의 관련성을 포함하여 선군시대의 8경을 새롭게 창조했다.

한반도의 팔경은 예부터 집경문화의 산물로 중국에서 전래된 글과 그림을 통해 간접적으로 형성한 이념적 경관문화이다(안장리, 2017). 북한은 팔경을 설명하는데 있어 지방의 유명한 산천경개와 문물, 풍속세태를 조선사람들이 8이라는 수자를 길수로 여기던 관습과 관련되어 있다고 밝히고 있다.

북한은 팔경의 민족적 정체성을 부각하기 위해 팔경의 유래를 중국의 소상팔경에 두는 남한을 위시한 동북아 국가들과는 달리 고조선에 그 연원을 두고 있다.

내용을 보면 “고조선의 단군이 나라를 세우고 재상을 8명 두었던 것과 고대 진국지역에서 나온 유물이 8수형 청동방울 등은 그러한 사실을 입증하는 증거이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북한에서 발행한 조선의 절경들과 유래 편에 보면 조선의 옛 팔경들은 평안도지방에 평양팔경, 관서팔경, 묘향산 팔경, 의주팔경, 강동팔경, 삼등팔경이 있고 황해도 지방에는 해주팔경, 풍천팔경을 소개하고 있다.

함경도지방에는 회령팔경, 개성지방에는 송도 전 팔경, 송도 후 팔경이 남아있다고 한다. 그래도 희망적인 점은 그들도 팔경을 설명할 때 남한의 팔경도 포함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강원도지방의 관동팔경 등과 경기도, 충청도, 경상도 지방도 분단과 관계없이 조선의 옛 팔경으로 소개하고 있다.

새롭게 지정된 사회주의 선경으로는 선군팔경이 있는데 모두 주체사상으로 무장한 김일성, 김정은과 관련 있는 곳이다. 먼저 북한 사람들이 최고의 명승지로 꼽는 백두산의 해돋이, 다박솔초소의 설경, 철령의 철쭉, 자강도 장자강의 불야경, 울림폭포의 메아리, 한드레벌의 지평선, 대홍단의 감자꽃 바다, 범안리의 선경으로 구성되어 있다. 예를 들어 철령의 철쭉은 위대한 장군님의 선군의 길을 상징하고 있으며 그분께 위안을 안겨드렸다고 한다. 또 김정은이 직접 지어준 선군 9경부터 선군 12경도 있다.
 
이 경관들은 북한의 자연 풍치를 대표하면서도 조선 최고 지도자를 함께 찬양하고 기리기 위한 장소이다. 옛 팔경의 아름다운 유형별 경관과 주체사상을 결합한 유일무이한 북한만의 사회주의선경이라 할 수 있다.
 
이제 남북을 가로지르는 철도가 이어지면 북한의 유산도 직접 찾아가볼 수 있는 날이 머지않았다. 같은 한반도에서 또 같은 민족에게서 향유되어온 천연기념물에 대한 가치가 서로 달라서는 안 될 일이다. 남북 분단의 아픔이 끝나기 전에 우리 소중한 금수강산의 문화재적 가치도 올바로 재인식 되어져야 할 것이다.


함경북도 화대군 목진리 해칠보달문


량강도 삼지연군 신무성로동자구 백두산천지 내 백암온천

천지산천어


강원도 고성군 온정리 삼선암, 귀면암


개성시 박연리 박연폭포와 룡바위


평안북도 신도군 비단섬로동자구 비단섬코끼리바위


평안북도 녕변군 녕변읍 거북바위


평안북도 녕변군 녕변읍 거북바위 일원 왼쪽 거부기


함경북도 명간군 립석리 명간선바위 내 틈결, 강원도 고성군 온정리 구룡폭포

량강도 삼지연군 리며우로동자구 리명수폭포




참고문헌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2017),전통구곡과 팔경의 문화재적 가치 학술심포지엄 자료집
조선천연기념물도감편찬위원회(2007), 조선천연기념물도감(1),(2),(3). 문화재청 자료
전영선,신준영(2016), 북한의 문화재정책과 남북 문화유산 협력, 통일부 통일교육원
박길남(2013), 조선의 절경들과 유래, 외국문출판사, 조선, 평양(통일부 북한자료센터)
_ 이원호  ·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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