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없는 사회와 그 적들 - 1

경공환장: 다시 보는 일상, 느껴 보는 도시
라펜트l안명준l기사입력2018-07-13

"경공환장: 다시 보는 일상, 느껴 보는 도시" 

Part 2: 13 전통 Ⅰ



“전통” 없는 사회와 그 적들

 



_안명준 오피니언리더

조경시공연구소 느티 대표│조경비평가




전통Ⅰ:  “소쇄원”에 비친 지금여기의 전통...
우리는 낡은 것을 오래된 것으로 읽지 않는다. 그것은 쓸모없고 불필요한 것으로 먼저 여겨진다. 그런 문화는 곳곳에서 성장해왔고 전통은 그 주요 “표적(easy target)”이 되곤 했다.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만 그 대부분은 급성장을 배경으로 한다. 한 번 정착한 태도(culture)는 쉽게 변신도 어렵다. 관성(manners and customs) 때문이다. 그 결과 우리는 유수한 전통조차 지속가능하게 다룰 줄 모른다. 반성이 시급하다, 아니 어떤 상황인지 되돌아볼 일부터 시급하다.


소쇄원에 비친 전통의 가치
역사와 문화, 전통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은 어느 사회에서나 문화재인 경우가 많다. 잘 보존된 오랜 전통의상이라든가 전통음악, 전통건축물은 그 사회의 역사문화적 깊이(유무형의 문화)를 가늠케도 한다. 박재된 문화가 아니라 현재에도 살아 있는 전통은 또 다른 차원에서 역사문화의 가치(문화유산)를 달리 체험케도 해준다. 그것은 그 만큼 크고 오랜 기억을 현재의 우리에게 전해주기 때문이다. 법제도로 보호하려는 것도 이러한 이유일 테다. 그러나 그것도 결국은 지금여기 사회의 관심과 지향을 벗어날 수는 없는 법. 소쇄원에서 발생한 최근 사건들은 전통문화를 대표하는 한 축마저 우리가 어떻게 무관심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다소 감성적이지만 몇 가지 시점에서 그 태도를 살펴보자.

먼저 “2016년 소쇄원 보수정비사업”은 ‘총액입찰, 지역제한, 적격심사대상, 전자입찰’로 추진하며 현장 설명 없이 담당 지자체에서 설계를 열람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투찰로 추진된 사업은 종합문화재수리업(보수단청업) 기준의 지역 업체가 계약과 그 이행을 정해진 바대로 하도록 하였다. 일반적인 정부 사업 추진과정과 다를 바 없었고 던지는 가격을 중심으로 문화재 보수는 진행된다. 실제 보수는 절차에 따라 2017년 3월부터 진행되었으나 공사가 한참 진행된 뒤에서야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다음, 후손과 관람객이 수시로 드나드는 현장인 만큼 “애양단, 제월당, 광풍각 주변 정비”라는 공사내용이 무색하게 통제선 안쪽으로 드러난 공사 모습은 애처롭기 짝이 없었다. 중장비가 드나들고 흙과 돌이 파여 나가고 나무와 식물들이 피해를 보는 상황이 멀지 않은 곳에서 관찰되었다. 공사 현장이라는 것이 본래 어수선하기는 하다지만 자연과 일체라는 전통 정원을, 그것도 전문업자가 시행하는 일에서 그런다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결국 뉴스를 통해 문제가 알려지며 잘못된 공사 방법과 결과까지 드러나기 시작한다. 

이제 관련 중앙 관청이 개입하게 되며 전반적인 문제 확인과 전문가 조사, 재공사 결정이 이루어지지만 이미 소쇄원 보수정비사업의 결과물은 본래 모습이 되돌아오지 못하고 전통의 형식이자 원형인 구법조차 구현되지 못한 채 본래의 고풍스런 정원 모습이 사라진 채 마무리되었다. 재료가 없었던 것도 방법을 몰랐던 것도 그리고 문제를 개선할 시점을 완전히 놓친 것도 아니지만 결국 소쇄원은 물감 섞인 시멘트 돌담을 가진 새로운 정원이 되고 말았다. 중앙의 기준이 그렇다고 한다. 담장은 높아졌고, 색깔은 들떠있으며, 기단은 가히 새롭다.

마지막으로, 아무도 책임지지 않은 상황에서 중앙도, 지역도, 업체도 그리고 그것을 보는 우리도 문제라는 듯 전통에 대한 우리들의 자세가 그대로 녹아든 색독(色毒)한 모습의 정원만이 남았다. 보수가 필요함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전통이란 현재적이어서 언제나 현상을 물려주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제 소쇄원은 우리들 기억 속의 그 모습이 아니다. 수백 년 전의 원형을 찾은 것도 아니다. 보수는 되었지만 모습은 새것이다. 이처럼 문제는 몇 가지 범주로 드러났고 확인되었지만 감독을 강화하겠다는 뉴스 외 드러난 문제들을 어떻게 보완할 지에 대한 논의는 들리지 않는다. 복지부동의 자세만 다시 확인할 뿐 여전히 그대로 진행되는 보수정비사업과 원형을 잃어버린 소쇄원만 경기 끝난 과녁처럼 처연하다. 몇몇의 탄식만으로는 변화가 불가한지 그렇게 또 하나의 전통이 자취를 감추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 문화재조차, 문화유산마저...
크게 네 가지로 뭉뚱그렸지만 사실 세세한 문제는 도처에 깔려있다. 원형을 보전하는 수준이 우리 사회의 지금여기를 보여준다면 이번 소쇄원 정비는 불편하고 불쾌하기 짝이 없다. 소쇄원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의 정도와 상관없이 그것은 우리 사회가 쌓인 문제들을 고스란히 전통에도 적용하고 있었음을 확인하게 해주었다. 지적된 문제들은 모두가 제자리를 찾지 못했고 피해를 입은 나무들은 흔적을 고스란히 상처로 남기게 되었다. 일부일 뿐, 그러니까 하나도 바뀌지 않고 조용해진 셈이다. 이만큼 성장한 우리지만 우리는 뭔가 중요한 것들을 여전히 놓치고 있는 관성 속에 있다. 적폐는 전통에도 있다.
 

공사중인 소쇄원 현장 모습 ⓒ안명준

그래도 우리는 반성과 유지관리 노력을 멈출 수 없다. 다시 말하지만 전통은 늘 현재적이어서 잘 가지고 있다가 물려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전통이 문화재와 문화유산을 포괄한다는 것이다. 이번 소쇄원에서도 드러났듯 겉모습에만 치중해서는 곤란하고 그 담긴 내용과 구현의 과정까지도 우리는 전통과 문화의 하나로 소중하게 다루어야 하는 것이다. 시간에 따라 재료와 구법의 한계가 있을지라도 최소한 전문가라면 전문성에 입각한 실행 노력이 기본 되어야 한다. 알고 있는 것마저 실천하지 못한다면 문제는 심각한 것이다.

또한 현재인 전통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도 바뀌어야 한다. 생활이 된 문화는 함부로 해도 되는 것이 아닐 터, 자연 생태의 지속성만 외칠 일이 아니다. 이미 문화유산의 가치 또한 우리는 보전할 필요를 인정하고 있지 않은가. 실천이 어렵다면 제한이라도 두어야 할 것이다. 최소한 숭례문처럼 유산을 함부로 대하는 원초적이고 극단적인 태도는 사전에 막아야 할 것이다.


재공사 결정 후에도 여전한 현장 모습 ⓒ안명준


재료와 기술로 지속되는 전통
보수 작업은 손상된 부분을 제거하고 새 재료로 교체하는 작업이 주를 이룬다. 이 과정은 시작부터 민감하여 현황을 파악하고 어떤 방식을 적용할 지는 전문적 작업(specialized operation)이 될 수밖에 없다. 조사부터 설계까지 기본적으로 신중할 수밖에 없고 민감성이 높은 경우 가급적 현대의 기술을 피하고 옛 방식을 고수하기도 한다. 현대의 기계를 사용하는 것은 당연히 민감하게 검토되고 보강이 필요하더라도 현대적 기술은 가급적 피하고자 한다.

다시 말해 전통 재료와 전통 기술을 사용하는 것이 원칙인 것이다. 물론 사정에 따라 달라지겠으나 재료가 없다거나 기술을 모른다거나 전문성이 떨어진다거나, 그것도 아니면 비용이 모자란다거나 하지 않는 한 보수 작업은 이 원칙을 지켜야 한다. 주변에 대한 안정화 작업이나 보호 조치는 말할 것도 없다. 주변과의 맥락성(contextual value), 완전한 짜임새(integrity of the fabric)의 유지는 더더욱 그렇다. 그런 점에서 이번 소쇄원 보수에서 살펴볼 사항은 여전히 많다.

다산 정약용은 말한다. 천하에는 크게 두 가지의 가치 기준이 있다고. 옳고 그름이 하나, 이롭고 해로움이 다음 하나이다. 이것으로 네 가지의 경우가 생기는데 옳음을 고수하고 이익을 얻는 것이 가장 높은 단계이다. 다음은 옳음을 고수하고 해를 입는 것, 그름을 추종하고도 이익을 얻는 것이 뒤를 따른다. 가장 낮은 단계는 그름을 추종하고 해를 보는 경우이다. 이번은 어떠했는가 모두가 되돌아볼 일이다.


터의 기억인 전통, 터의 주인인 문화를 기대하며...
대부분의 전통은 터에 기록되어 남는다. 현재까지 쓰임이 그대로인 터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깊이와 너비가 풍부한 역사문화 사회임을 방증한다. 뒤돌아볼 여유가 없는 시대라면 터는 현재 우리의 쓰임을 위해 그저 토대 역할을 묵묵히 할 뿐이다. 반대로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는 시대라면 터의 기억은 말을 걸어오기 시작한다. 전통은 지금의 우리를 주인공으로 불러내 우리만의 이야기를 펼칠 수 있게 돕는다. 

나아가 터의 주인이 된 문화는 그 자체로 우리의 거울이 된다. 지난 시간에 대해 눈을 뜨게 한다. 흔히 놓치지만 전통은 언제나 현재를 바탕으로 한다. 전통이 곧 현재인 것이다. 한 철학자의 말대로 현재는 과거와 미래를 끌어당겨 계속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전통은 변주되어 다시 터에 기록된다. 문화와 유산은 그렇게 종이나 컴퓨터 하드디스크가 아니라 흙의 무늬로서 전수되는 것이다.  

글·사진 _ 안명준  ·  조경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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