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황무지에서 정원도시가 된 에도

『식물도시 에도의 탄생』 이나가키 히데히로 지음(2017)
라펜트l오정학 과장l기사입력2018-08-29
황무지에서 정원도시가 된 에도


_오정학 경기도시공사 과장
(ohjhak@daum.net)


서  명 : 식물도시 에도의 탄생
   : 이나가키 히데히로 지음, 조홍민 옮김
펴낸 곳 : 글항아리(2017)


600년 고도라지만 서울에는 오래된 정원이 많지 않다. 그나마 경복궁을 비롯한 고궁을 빼버리면 과연 얼마나 될까. 물론 조선시대 풍속화에 민가 정원이 적잖게 보이므로, 상당수 정원이 한국전쟁 등의 혼란기에 없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래도 일본 도쿄, 중국 소주 등 정원도시라 불리는 동북아의 인근 도시보다 훨씬 적은 것은 사실이다. 굳이 원인을 따져보면, 서울은 과거부터 경승지가 많았기에 굳이 인위자연에 대한 욕구가 적었을지 모른다. 결국 수려한 자연경관의 존재가 인공적인 경관 조성에 적극적이지 않은 문화를 낳았다고도 볼 수 있다. 

그래도 같은 문화권인 일본 도쿄의 정원문화는 놀랍다. 도쿄에는 오래된 정원이 공원으로 그대로 남아있는 곳이 많은 까닭이다. 우에노공원, 시바공원, 아사쿠사공원, 센소지 등이 대표적이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원예 취미도 옛적부터 각별했다. 화초 재배법을 다룬 책자 출판이 성행했고, 정원 정보를 담은 지지(地誌), 화초와 수목 유형별로 정원의 순위를 매긴 것 등은 정원에 대한 대중의 높은 관심을 보여준다. 도대체 도쿄는 어떻게 정원에 이리도 관심이 많았고, 많은 정원을 갖게 된 것일까?

<식물도시 에도의 탄생>은 이러한 궁금증을 상당 부분 풀어준다. 잡초생태학 전공의 이나가키 히데히로 교수가 도쿄에서 정원과 공원·녹지가 발달한 역사적 내력을 잘 설명한 까닭이다. 저자는 에도가 식물과 강한 연관성을 가지며 도시로 발전하게 된 원인을 밝혔다. 자연환경과 경제적 요인뿐만 아니라 정치·사회적 배경 등에서 다양하게 그 경로를 찾아냈다. 먼저 자연환경적 측면에서 본다면 도쿄는 서울과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지금의 도쿄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막부로 선택하여 1457년에 자리 잡은 곳으로서 당시에는 에도라 불렸다. 당시 에도는 “황량한 대지와 저지로 이뤄져 있었고 늪지가 펼쳐진 변방의 땅”에 불과하였다. 아마도 이에야스는 이런 불모지에서 새로운 개척지로서의 잠재력을 포착했을 것이고, ‘입지’에 대한 이러한 혜안은 그가 일본 전체를 장악한 실권자로서의 자격이 충분함을 말해준다. 그렇지만 경관적으로 볼 때 당시의 에도는 북한산·북악산·인왕산과 같은 멋진 산과 경치 좋은 계곡이 사방에 널린 한양과는 아무래도 비교되는 황무지였다. 욕망은 결핍에서 비롯되기에 이러한 환경에서 에도 사람의 정원 욕심은 필연적이었는지 모른다.

초화류와 화목류, 상록수 등 다양한 식물을 적극적으로 사용한 17세기 에도의 정원 ⓒwikimedia

에도의 정원 발달을 무사계급과의 연관성을 중심으로 풀어나간 부분은 꽤 흥미롭다. 칼을 사용하는 무사가 갖는 폭력성과 식물이 상징하는 아름다움의 이미지는 매우 상반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전국시대라는 여건상 무사계급은 지배계급이었고, 원예와 정원은 어느 사회든지 지배층을 중심으로 발달해왔기에 둘의 상관성은 충분하다. 특히 에도는 이에야스가 막부의 거점으로 선택하면서 발전한 도시이기에, 처음부터 무사계급과의 연관성이 높았다. 
 
나무와 초화류는 본래 감상, 건축자재, 식용 등의 용도를 가진다. 그런데 군사적으로도 요긴하게 활용된 이야기는 매우 재미있는 부분이다. 특히 소나무는 활용도 높은 군사용 식물이었다. 길가에 식재했다가 비상시에는 쓰러뜨려 장애물로 사용했을 뿐 아니라 비상식량, 연료, 지혈제 등으로도 폭넓게 쓰였다. 조릿대는 창과 활의 재료가 되었고, 매화나무와 감나무 열매는 비상시에 무사의 휴대식으로 활용되었다. 그 외에도 투구꽃은 독살, 마름의 열매는 닌자가 추격자를 따돌릴 때, 쑥은 화약 재료로 사용되었다. 서양에서도 성이 함락되었을 때 미로원을 침입자의 발을 잠시나마 묶는 용도로 쓴 역사적  사례가 있으므로, 전쟁이 많던 전근대시대에서 식물의 군사적 활용은 어쩌면 당연한지 모른다. 

에도가 정원도시로 발전한 배경으로 군벌인 다이묘의 정원 애호, 신사와 사원의 정원 발달, 식물 및 정원안내서의 역할이 일반적으로 꼽힌다. 이 책은 그 중에서 ‘다이묘의 정원 애호’의 배경과 그 발전 양상을 상세히 해석했다. 쇼군의 도시 에도에는 참근교대제로 인해 많은 다이묘들이 처자 및 측근들과 상주해 있었다. 다이묘의 상주로 반란이나 전쟁이 줄었고, 한가해진 다이묘들은 쇼군이나 다른 다이묘들과 모임이 활발하였기에 자연스레 그러한 공간이 된 정원에 경쟁적으로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그와 함께 에도 근처의 저습지를 활용한 경작지에서 쌀 생산이 많아지면서 이루어진 경제적 성장도 큰 역할을 하였을 것이다. 결국 에도가 정원도시가 된 것은 경제적 여유와 사회적 안정, 경관적 필요성이 크게 작용하였고, 그것이 시민의 원예취미와 정원에 대한 관심을 높였음을 알 수 있다.
_ 오정학 과장  ·  경기도시공사 사업기술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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