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운의 곤충記] 은밀한 언어 ‘케미’

글_이강운 오피니언리더(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
라펜트l이강운 소장l기사입력2018-11-08
은밀한 언어 케미



_이강운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
(사)한국환경복원기술학회 부회장



하늘에 닿는 바벨탑을 쌓기 전 노아의 후손은 모두 같은 언어를 사용했다 한다. 하늘이 노하여 서로를 이해할 수 없도록 언어를 뒤섞어 놓아 소통하지 못하면서 혼돈의 길로 들어섰다. 수많은 시간을 쏟아 부어 힘들게 외국어 공부를 하지만 노력한 만큼 완벽해지지 않는 외국어 때문에 늘 화가 난다. 헛되게 시간 낭비하는 것 같은 외국어 공부는 바벨탑 때문이라는 다소 엉뚱한 생각도 한다. 마음 놓고 말할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편안한 일인지,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 울렁증을 극복하기는 어렵다.     




인류가 지구상의 생명 중 유일하게 제대로 된 복잡한 언어를 구사할 수 있다는 것은 확실한 사실이지만 언어가 사람만의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착오다. 기호와 문자로 만든 인간의 언어 체계와는 다르지만 모든 생물들도 분명 서로 의사를 전달하면서 삶을 영위할 저마다의 필요가 있다. 특히 전 세계 생물의 70%를 차지하는 곤충들의 언어는 매우 특별하다. 빛으로 교신하는 반딧불이의 발광이나 주파수로 짝을 찾는 메뚜기목의 노랫소리 등이 대표적이다. 메뚜기의 독특한 울림인 소리나 반딧불이의 빛을 이용한 의사소통이 인간의 대화만큼 세련되고 발전된 형태는 아니지만 생리 및 행동을 조절하여 짝을 찾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다.



왕귀뚜마리 줄(file)과 마찰편(scraper)



늦반딧불이 애벌레 발광


메뚜기나 반딧불이와는 달리 화학 물질인 페로몬(Pheromone)을 주요 소통 방법으로 사용하는 곤충이 있다. 그리스어로  Pherein(운반하다)과 Hormon(자극하다)의 합성어인 페로몬은 체외로 운반되는 자극 물질이라는 의미로 같은 종끼리 신호를 주고받는 의사 전달 수단이다. 특히 성페로몬(Sex pheromone)은 종마다 갖는 특이한 물질이므로 유사한 곤충 종들과 짝짓기 하는 것을 막아 잡종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종 보존의 중요한 전략이다. 


누에나방 암컷과 유인 된 수컷 (sucanr.edublogsbugsquad)


나방은 페로몬을 사용하는 대표적인 곤충으로, 암컷이 페로몬을 방출하고 수컷들이 짝짓기 신호에 이끌려 온다. 냄새를 잘 맡기로 유명한 누에나방 암컷은 봄비콜(bombykol)이라는 페로몬을 방출하는데, 수컷들은 4km 이상의 먼 거리에서도 냄새를 맡고 암컷을 찾아오기도 한다. 최근 분석 기술의 발달로 10~100마리면 충분히 한 종의 페로몬을 찾을 수 있지만 봄비콜은 페로몬 연구 초기인 1959년도 누에 50만 마리 암컷 배 끝을 잘라 큰 희생을 치르면서 추출한 대표적인 페로몬이다. 


유리산누에나방 암컷에 유인되는 수컷


짝짓기 시기가 오면 나방 암컷들은 짝을 찾기 위해 여러 종류의 페로몬을 만들어 뿌린다. 짝짓기를 위한 나방 페로몬은 다른 배마디보다 얇은 8~9배마디 사이에 접혀 있다가 복부 끝이 넓혀지면서 노출되어 일정한 속도로 부르르 떨면서 방출된다. 일반적으로 나방은 땅거미가 질 때 구애를 시작하는데, 페로몬은 극소량이 합성되기 때문에 한 곳에 머물러있는 암컷들이 발산하는 화학적 물질에 냄새만으로 서로를 찾아내는 일이 쉽지 않다. 

 

약한 신호라도 강하게 반복되는 페로몬으로 암컷의 위치를 파악했지만 짝짓기는 만나자마자 진행되는 간단한 일이 아니다. 짝짓기 전 구애 행동으로 수컷이 ‘냄새 털뭉치(Scent brush)'라는 감각기관을 암컷 배 끝에 문지르며 의중을 물어보고 암컷의 오케이(OK) 사인이 떨어져야 짝짓기를 할 수 있다.  



앞노랑밤나방 수컷 냄새 털뭉치(Scent brush)


야행성인 나방과 달리 낮에 활동하는 나비는 페로몬과 같은 화학적 유인 물질을 사용하지 않고 눈으로 서로의 날개를 확인한 다음 짝짓기를 시도한다. 시각에 의존하는 동물이긴 하지만 수컷이 암컷을 발견하고 가까이 가면 화학물질이 중요한 역할을 하기 시작한다. 암·수컷이 만난 후 페로몬을 분비하는 수컷 냄새비늘(androconium)을 암컷 더듬이로 더듬어 수컷을 받아들일지를 결정한다. 남아메리카 Heliconius erato(네발나비과) 수컷 나비는 앞날개와 뒷날개가 겹쳐지는 부분에 냄새비늘을 가지고 있다.

 


산제비나비 냄새 비늘, 앞날개, 뒷날개


페로몬 발산을 차단한 수컷 집단에서는 9.8%, 페로몬 발산이 자유로운 집단에서는 90% 짝짓기 성공률을 보였다. 나비도 궁극적으로는 수컷의 페로몬으로 짝짓기가 결정된다. 




짝짓기를 유도하는 페로몬과 달리 스스로 짝짓기를 억제하려는 시도도 있다. 멸종위기곤충 Ⅰ급인 붉은점모시나비 수컷은 짝짓기 후에 암컷에게 물리적으로 다른 수컷들의 접근을 막는 주머니(Sphragis)를 만들고, 암컷은 스스로 짝짓기 페로몬 양을 줄여 더 이상 수컷이 얼씬거리지 못하게 한다. 물리적, 화학적으로 완벽하게 추가 짝짓기를 차단해 순수 혈통을 보전하려고 하지만 오히려 이런 전략이 다양성을 떨어뜨려 멸종의 한 원인이 되지 않나 싶다. 




인도부터 인도네시아 지역에 서식하는 아시아코끼리(Elephas maximus)가 배설하는 오줌에 나방들이 반응한다는 곤충 페로몬에 관한 흥미 있는 연구가 있다. 아시아코끼리의 오줌에는 약 140여 종의 나방류들이 사용하고 있는 페로몬과 같은 성분이 검출되었다. 모양이나 색깔이 아닌 냄새가 종을 선택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사실을 확인한 셈이다.



붉은점모시나비 페로몬 분석(Poster)


종이 다른 반딧불이 암컷 짝짓기 불빛 신호를 흉내 내어 수컷을 잡아먹는 포투리스(Photuris)속 반딧불이나, 소리로 유인해 땅속 땅강아지를 찾아 내 잡아먹는 쏙독새의 경우처럼 볼라스 거미(bolas spider)도 나방 암컷의 성페로몬을 흉내 내 수컷을 끌어들여 잡아먹는 공격적인 모방을 한다. 볼라는 남아메리카의 원주민이 끝에 돌맹이를 매단 밧줄을 던져 동물을 잡을 때 사용한 도구를 뜻하는데, 볼라스 거미도 암컷 나방의 페로몬 덩어리를 짧은 거미줄에 끈적끈적한 액체 방울을 매단 볼라를 휘둘러 나방을 잡아먹는다. 거미줄을 쳐 놓고 기다리기보다는 먹이의 언어를 흉내 내 나방을 잡아먹는 적극적인 생존 전략이 놀랍다. 소리로, 빛으로, 페로몬으로 도처에 널려있는 천적들의 매서운 공격은 끝이 없다.

 

볼라스 거미 사냥 방법(Matt Coors, spiderbytes.org)

 


볼라스 거미 나방 포획 


획일화된 언어인 소리와 시각과 청각으로 교신해 왔던 사람들이 최근 들어 화학적인 소통 방법을 이해하기 시작한 것 같다. 케미스트리(Chemistry)의 줄임말로, 이성 간에 서로 강하게 끌리는 감정 등을 표현하는 ‘케미’라는 단어가 대중화 되고 일반 명사처럼 사용하게된 것. 드라마에서 시작된 말이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케미'는 말이 필요 없는 육감적인 의사 전달이다. 가장 원초적인 언어는 어쩌면 ‘케미’일지 모른다. 

 

 

※ 참고문헌

- Darragh, K., et al. (2017). Male sex pheromone components in Heliconius butterflies released by the androconia affect female choice. PeerJ. 5, e3953.

- Kang Woon Lee, et al. (2016). Sex Pheromones as a tool to overcome Parnassius bremeri Bremer shortfall in conservation biology (Lepidoptera:Papilionidae). Korean Society of Applied Entomology. Vol: 2016 No: 04, p.93

- Rasmussen, et al. (1997). Purification, identification, concentration and bioacitivy of (Z)-7-dodecen-1-yl acetate: sex pheromone of the female Asian elephant, Elephas maximus. Chemical Senses. 22: 417-437

- Alcock J. (1984) - Animal behavior. An evolutionary approach, Third Edition. Sinauer Associates, Inc. Sunderland, Mass, 596 pp.

- Eberhard, W. G. (1977). Aggressive chemical mimicry by a bolas spider. Science, 198(4322), 1173-1175.

- 이강운. (2018.09). [이강운의 곤충記]가을철 풀벌레소리 정취에 숨은 과학. 동아사이언스. http://dongascience.donga.com/news.php?idx=23914

- 이강운. (2018.08). [이강운의 곤충記] 반짝임 뒤에 숨겨진 반딧불이의 힘. 동아사이언스. http://dongascience.donga.com/news.php?idx=23492 

- 이강운. (2018.08). [이강운의 곤충記] 소리로 짝을 찾고, 소리 때문에 죽는다. 땅강아지! 동아사이언스. http://dongascience.donga.com/news.php?idx=23492 

- https://ucanr.edu/blogs/bugsquad/index.cfm?tagname=silkworm moths

- http://spiderbytes.org/2015/03/17/bolas-spiders-masters-of-dece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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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동아사이언스의 동의를 얻어 발췌한 기사이며, 이강운 소장의 주요 약력은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 / 한국환경복원기술학회 부회장 / 한국서식지외보전기관협회 회장 / 국립안동대학교 식물의학과 겸임교수 / 저서로는 <한국의 나방 애벌레 도감(Caterpillars of Moths in Korea)>(2015.11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 <캐터필러>(2016.11 도서출판 홀로세)가 있다.
이메일 : holoce@hecri.re.kr       


 

글·사진 _ 이강운 소장  ·  (사)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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