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시선] 주체에 대하여 (1)

김영민 논설위원(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교수)
라펜트l김영민 교수l기사입력2018-11-22
주체에 대하여 (1)


_김영민(서울시립대 조경학과 교수)


 
“조경이 도대체 무엇을 하는 일이냐는 질문을 자주 받아요. 그러면 조경을 설명해야하는데 조경을 꽤 오래 해온 저도 쉽게 말하기가 어려워요.”  
나는 그녀가 꽤 불만스러운 표정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반복

2016년 12월, 13명의 젊은 조경가들이 모였다. 우리는 꽤 오래 각자의 생각을 나누었다. 이미 예정된 시간은 지났지만 모두가 여전히 할 말들이 많았다. 누군가는 허술한 제도를, 대중들의 몰이해를, 선배들의 잘못된 관행을, 오만한 건축을 비난했다. 저마다 비판의 목소리를 컸지만 정작 그 누구도 어떻게 해야 한다고는 뚜렷이 말을 하지 못했다. 나는 책상 위에 쌓아놓은 [환경과 조경]을 펼쳐보았다. 몇 해 전에도, 10년 전에도, 20년 전에도 조경의 문제와 현실을 논의하는 특집기획이 있었다. 몇 해 전에도, 10년 전에도, 20년 전에도 현실에 대한 진단과 대안의 내용은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서 우리가 쏟아내고 있는 불만과 대안도 그 때와 놀라울 정도로 유사했다. 왜 우리는 또다시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는가? 왜 그동안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는가? 다시 10년 뒤 다른 누군가가 우리와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할 것인가?

반갑게 첫 인사를 나누었을 때만해도 서로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으리라는 기대와 믿음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낯선 우리는 서로 달랐다. 누군가는 이상적이었고 누군가는 현실적이었다. 누군가는 긍정적이었으며 누군가는 부정적이었다. 동의할 줄 알았던 상대방이 이견을 제기하였을 때 서로의 당혹감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났다. 그들이 나와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어떤 이는 침묵했고 어떤 이는 반발했다.

“도대체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누군가 왜 자신과 다른 생각을 하는지를 되물었다. 사실 질문이 향하는 지점은 왜 서로가 다른지가 아니라 왜 서로가 같았다고 생각하는지가 되어야했다. 자기만의 의견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은 결국에는 누군가가 언젠가 했던 이야기의 반복이었다. 심지어는 생각이 충돌되는 지점마저도 과거의 특집기사를 베낀 듯 비슷했다. 이질적으로 보이는 우리를 같은 지점으로 회귀하게 만드는 동질성이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었다. 아마도 그 동질적인 무엇인가가 서로 다른 우리를 한 자리에 모이게 한 이유이며, 우리가 그토록 오랜 시간을 고민했어도 결론을 내리지 못하는 원인일 지도 몰랐다.  


조경의 이름

그 동질적인 무엇인가를 찾아내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우리가 이 자리에서 나눈 이야기의 중심에는 항상 한 단어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조경이다. 우리 모두를 대신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개념이 조경이었다. 최소한 이 자리에서만큼 조경은 전체가 공유하고 있는 이름이었으며, 모두가 자신을 동일시 할 수 있는 주어였다. 결국 우리는 개인의 인격적 주체가 아닌 조경이라는 주체로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어쩌면 우리는 타인의 다른 견해를 듣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나를 대신하고 있는 조경이라는 이름이 다른 이들의 이름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확인하러 왔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마다 내가 말할 수 없는 말을,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공유된 주체인 조경이 대신 해줄 수 있다는 기대감을 품고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곧 나의 조경이 다른 이들이 대변하려는 조경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 파열은 생각보다 더 크고 본질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화를 나누면 분명 나에게 되돌아오는 생각의 파편들을 발견한다. 공유되는 지점들은 분명히 있다. 아니, 있을 것이다. 다만 모두가 공유하는 조경이라는 주체를 공유하지 못하는 예외적인 이들이 있을 뿐이다. 불편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나의 조경이라는 주체가 타인의 조경이라는 주체와 동일하리라는 기대를 놓지 않는다. 이렇게 조경의 이름은 서로의 말 속에서 계속 미끄러진다.      


조경헌장

2013년 한국조경학회는 조경헌장을 반포한다. 조경헌장을 통해서 조경은 다시 규정되었다. 과거에 조경에 대해서 정의내린 바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미 여러 단체에서, 여러 방식으로 조경을 정의했으며, 전문가는 물론 대중들도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조경에 의미를 부여해왔다. 다만 이전의 정의가 누구에게도 그다지 유용하지 않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설령 조경의 정의가 아예 없다고 해도 그리 심각한 문제가 될 것도 없었다. 그런데 산업의 위기가 현실이 되었다. 언젠가 전성기가 도래하리라는 조경의 오래된 예언이 실현되는 듯 보였던 호황의 시기 직후에 찾아온 불황은 언제나 그렇듯이 문제에 대한 진단과 대안을 요구했다. 

누군가는 조경에 대한 명확한 정의의 부재가 지금까지 조경이 봉착한 모든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제대로 규정되지 못한 조경의 정의가 실제로 위기의 중요한 원인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수많은 위기의 원인이 언급되었고 수많은 대안들이 제시되었다. 그 중 조경을 다시 정의하는 일은 의지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해결 가능한 과제였고, 굳이 해결하지 않을 이유도 없었다. 

조경헌장은 단순한 조경의 사전적 재정의 이상의 의미를 가져야 했다. 저마다의 개별적인 조경을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하나의 단일한 주체로서 규정하는 것, 그것이 조경헌장의 역할이자 목표였다. 이제 나 홀로 마음에 품은 조경의 가치, 영역, 대상, 과제가 아닌 우리가 공유한 조경의 가치, 영역, 대상, 과제가 주어졌다. 그리하여 누군가 조경의 가치가 무엇이냐고 물어보았을 때 모두의 가치를 나의 가치로서 당당하게 대답할 수 있게 되었다. 더 이상 누군가 조경이 무엇을 하는 것이냐고 물어보았을 때 어떻게 대답해야할지 몰라서 망설일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러나 실제로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여전히 우리는 조경의 가치에 대해서 서로 다른 의견을 내세웠고 조경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말문이 막혔다. 학회에서 매번 조경헌장을 낭독하고, 리플릿을 나누어주고, 동영상도 인터넷에 올렸지만 조경이라는 주체는 여전히 모두에게 모호했다. 조경헌장이 제시한 가치, 영역, 대상, 과제가 잘못된 내용을 담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조경을 하는 이들이 조경헌장에 전혀 공감을 할 수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더 본질적인 문제가 존재했다. 동일성에 근거한 온전한 주체가 있다는 가정 자체가 잘못되어있었기 때문에 주체를 규정하려는 모든 여정은 실패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조경이 아닌 조경

우리는 끊임없이 선험적이고 초월적인 주체를 의심 없이 믿어왔고 그 존재를 탐색해왔지만 그러한 주체는 존재하지 않는 존재이다. 모든 주체는 분열된 주체일 수밖에 없다. Landscape Architecture라는 두 단어, 즉 두 의미를 담는 언어적 주체로 구성된 이름에서부터 조경은 분열된 주체를 가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경이라고 부를 수 있는 그런 단일한 주체가 있다면 그것은 허구일 뿐이다. 그러니까 조경이라는 그 무엇인가는 없다. 나는 열띤 논의의 한 틈을 노려 비집고 들어갔다.

어차피 조경 같은 거, 그게 뭐 중요한가요? 아니 오히려 그게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죠. 그렇다면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가장 조경스럽지 않은, 조경같지 않은 것들. 조경이 아닌 조경을 하는 거죠. 이제부터 우리는.
_ 김영민 교수  ·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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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mkim@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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