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타자와 마주치는 도시 공간

『어디서 살 것인가』 유현준 지음(2018)
라펜트l오정학 과장l기사입력2018-11-27
타자와 마주치는 도시 공간


_오정학 경기도시공사 과장
(ohjhak@daum.net)


서  명 : 어디서 살 것인가
   : 유현준 지음
펴낸 곳 : 을유문화사(2018)


은사님 한 분이 산자락의 조용한 곳에서 사시다가 신도시로 이사를 준비하고 있다. 연세가 팔순을 넘기면서 대중교통, 음식점, 병원이 가까운 주거환경이 필요해진 까닭이다. TV에서는 종종 “나는 자연인이다”를 외치며, 산골에서 자발적 고립 생활을 하는 이들이 소개된다. 하지만 의식주는 물론이고 문화와 의료 등 온갖 생활서비스가 편리하다는 점에서 도시는 자연과는 또 다른 자유로움을 인간에게 준다. 이러한 도시의 장점은 모두 인구가 밀집된 효과로 볼 수 있는데 많은 도시들이 콤팩트 시티를 지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일정한 수요가 한정된 공간 안에 모여 있을 때에 서비스 제공의 효율성이 높아지는 이치이다.

건축가 유현준은 도시의 속성 중에서 ‘다양성’에 주목했다. 전통적인 지역사회는 동질성을 특성으로 한다. 이런 곳에서는 생각이 다르더라도 다수와 주류의 권위에 억눌려 자기 생각을 펼치기 쉽지 않다. ‘다름’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틀림’ 혹은 ‘공동체에 대한 도전’으로 여기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시는 토박이 못잖게 각양각색의 문화적 배경을 가진 이방인들이 많다.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모이면 나와 다른 이들의 다양한 생각들을 접할 수 있다. 물론 그 과정에서 갈등과 불협화음도 있겠지만 더 나은 발전을 위한 과정일 것이다. 창조는 다른 생각들을 만났을 때 스파크처럼 일어나기에 도시가 혁신적인 발명과 발전의 모태가 되었다고 유현준은 진단한다. 창조성은 천재적인 개인이나 집단군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집단과 집단의 상호작용에서 생겨나는 힘이다. 인종, 민족, 이념, 성정체성 등을 따져 소수자를 하나하나 배제해버린 독일 제3제국의 비극은 다양성을 무시한 사회의 종말을 잘 보여준다. 

역사에서 한 시대를 이끌었던 나라들은 모두 세계적인 대도시를 가졌다. 따라서 서울도 20세기 후반에 아파트 중심으로 고밀화 되면서 점차 발전했다고 유현준은 분석한다. 그러나 최근 서울은 이러한 장점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그 주원인으로 그는 자동차 중심의 도시 구조와 역사성 부족, SNS에 치우친 소통을 지목하였다. 이것들이 다양한 타자와의 마주침을 가로막고 그 때문에 자신과 비슷한 유형의 사람들하고만 소통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렇게 끼리끼리 소통하게 되면 자신들의 생각만이 옳다고 여기는 착각증이 생겨나기 쉬워진다. 믿고 싶은 것만 믿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는 소위 확증편향의 시작점이다. 이러한 생각을 밑절미로 한 <어디서 살 것인가>는 “도시 안에서 얼굴을 맞대고 우연히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는 매력적인 공간”을 많이 만들기 위한 유현준의 도시공간적 처방이다. 


유현준이 상상한 강북의 서울숲과 강남의 로데오 거리를 연결하는 보행자 전용 다리. 서울의 대표적인 공원인 서울숲공원과 과거 서울의 대표상권인 압구정동 로데오 거리를 연결시키는 구상이다. 다리 위에 식물을 도입하면 걸어가는 길이 좀 더 즐겁지 않을까? 

왜 자동차가 아닌 보행 중심의 도시여야 하는가? 교통수단을 이용하면 “답답한 실내 공간 속 기억 때문에 경험이 단절된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장소로 가고 싶어 하지 않게 되고 자신의 현재 공간 속에 갇히게 된다.” 이에 대한 유현준의 해법은 “지하철역과 공원 사이를 연결하는 1.5㎞ 정도의 거리”이다. 즉 “공원-지하철역-공원-지하철역의 네트워크가 만들어진다면 서울시는 연속적으로 걷고 싶은 거리로 연결된, 소통이 원활한 도시”가 될 것이라는 것이다. 공원의 면적보다 접근성을 중시하는 생각이다. 승용차 이용을 유발하는 대형 공원보다 면적은 작더라도 이곳저곳에 작은 공원이 많은 것이 보행환경에 도움이 된다는 사고를 보여준다.

차량 중심 도시의 문제점 중 하나는 골목길이 사라지고 대로가 늘어난다는 점이다. 골목길이 사라지는 것은 도시의 기본 구조인 주택의 변화가 큰 영향을 미쳤다. 단독주택이나 작은 아파트 단지가 있어야 골목길이 생길 수 있는데, 재개발과 함께 대형 아파트단지가 양산되자 골목길은 빠르게 사라져갔다. 큰 아파트 단지가 줄지어 있고 도로 변에는 대형 빌딩이 연속된 서울 강남에서 골목길을 발견하기 힘든 이유이다. 자동차대로의 또 다른 문제점은 공간의 단절에 있다. 그래서 유현준은 ‘3차선 법칙’을 주장한다. “차도가 3차선 이하인 경우에는 보행자의 흐름이 이어지지만 4차선보다 넓으면 단절된다”는 생각이다. 3차선 이하의 도로는 무단횡단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를 근거로 그는 현재 새로운 변화를 모색 중인 광화문 광장의 경우에도 좌우의 6차선 도로를 3차선씩만 남기는 방식으로 개선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광화문 광장의 단일한 기능성보다는 시야를 넓혀 주변 일대의 보행환경 개선에 초점을 맞춘 시각이다. 

역사성 문제도 심각하다. 서울은 600년의 역사도시라지만 외형은 매우 젊다. 성형과 보톡스에 취한 모습이라면 지나친 비유일까? 물론 한국전쟁과 20세기 후반의 이촌향도 과정에서 건물들이 빠르게 교체된 탓도 크지만 고건축물을 찾기가 너무 쉽지 않다. 오래된 건축물이 없으면 역사성이 없는 도시로 느껴지며 볼거리가 없고 단순해져 관광도시로서 매력도 떨어진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다면 최근 낡은 건축물, 특히 공장 시설이 리모델링되어 문화·상업시설로 재활용되는 서울의 양평동, 문래동, 성수동 일대는 상당한 기대를 갖게 한다. 오래되고 낡은 건물은 임대료가 낮아 번화가에 진입할 수 없는 업종이나 실험적인 상가들이 들어갈 수 있다. 그러한 시설들은 신기하고 다양한 볼거리가 되므로 관광이나 보행환경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부분이 적지 않다. 

<어디서 살 것인가>는 언뜻 개인의 주거 선택을 묻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유현준의 문제인식은 철저히 공적인 것이었다. 개인들이 ‘어디서 살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이유는 시민들이말로 도시의 건축주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공공성을 갖는 건물이나 공원, 도시 시설물 등에 관심을 가져야 하고 적극 관여할 필요가 있다. 유현준은 우리가 빨리 도시화를 이루지 못해 일본보다 근대화가 늦어졌다고 주장한다. 도시화가 늦어지면서 상공업의 발달이 늦어졌고, 상공업의 지체가 발전적인 시민 의식의 생성을 가로막았고, 결국 정치체계 발전이 늦어지면서 문화 전반의 발전이 뒤처지게 되었다는 진단이다. 산업생태계의 변동과 인구구조 변화, 도시재생 등이 변수가 되어 우리의 도시는 지금도 계속 바뀌고 있다. 유현준의 <어디서 살아야 할 것인가>는 다양성을 갖기 위해 앞으로 우리가 살아야 할 도시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를 묻고 있다. 그 심각성을 깨우쳐보고 싶다면 다음의 질문을 드리고 싶다. “당신은 살고 있는 도시에서 최근에 얼마나 많은 타자와 맞닥뜨렸는가?”
_ 오정학 과장  ·  경기도시공사 사업기술처
다른기사 보기
ohjhak@daum.net

네티즌 공감 (0)

의견쓰기

가장많이본뉴스최근주요뉴스

  • 전체
  • 종합일반
  • 동정일정
  • 교육문화예술

인기통합정보

  • 기획연재
  • 설계공모프로젝트
  • 인터뷰취재

커뮤니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