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운의 곤충記] 감추어진 애벌레, 뚜껑을 열다

글_이강운 오피니언리더(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
라펜트l이강운 소장l기사입력2019-01-11
감추어진 애벌레, 뚜껑을 열다



_이강운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
(사)한국환경복원기술학회 부회장



물도 얼고, 땅도 얼고. 모든 게 꽁꽁 얼어붙은 혹독한 추위의 겨울에 곤충들은 특별히 할 일이 없다. 한 자리에서 십 수 년을 지내 온 큰 나무야 오랜 경험과 단련으로 거뜬하겠지만 길어야 1년, 짧으면 30일도 안 되는 수명을 가진 북반구 대부분의 곤충들은 사계절을 모른다. 올해 처음 겨울을 맞는 곤충은 눈보라와 한밤의 서릿발을 어떻게 참아낼까.


꽁꽁 얼어붙은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전경 / 홀소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왕사마귀 월동 알집 / 홀소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왕사마귀 알집의 월동 알 / 홀소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을 변화시키며 사는 호모 사피엔스만이 겨울을 여름처럼 살지만 한겨울의 모든 생물들은 숨을 골라 최대한 움직이지 않고 휴면 모드에 들어가는 것이 최선이다. 대사율이 낮아지고 거의 활동을 하지 않는 면에서는 비슷하지만 휴면의 적응 방식은 조금 다르다. 환경 조건에 관계없이 특정 발육 단계에 도달하면 모든 개체가 휴면에 들어가는 필수휴면과 부적당한 환경에 맞닥뜨린 개체만 휴면하는 조건휴면으로 나눌 수 있다.


물빛긴꼬리부전나비 월동 알 / 홀소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금강산녹색부전나비 월동 알 / 홀소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곤충의 휴면은 알, 애벌레, 번데기, 고치 및 어른벌레 등 여러 형태가 있으며 각 곤충 종들은 비록 배우지 않았지만 대를 이어 내려오는 기억으로 악조건을 이겨내는 휴면 방법을 이미 몸속에 갖고 태어났다. 1년에 한 번 발생하는 곤충 중 ‘알’로 겨울을 나는 대부분의 종은 환경 변화에 따른 조건휴면이 아니라 반드시 월동을 거쳐야하는 필수휴면이다. 충분한 햇볕을 필요로 하는 장일성 곤충 들은 해가 점점 짧아지는 무렵, 다음 해에 나올 알을 낳고 생을 마친다. 거의 모든 녹색부전나비속 나비들은 반드시 알로 월동을 해야 다음 해 봄을 볼 수 있다. 


밤나무산누에나방 월동 알 / 홀소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밤나무산누에나방 월동 알(배자휴면) / 홀소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그러나 외부 형태만 보고 모두 알로 휴면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알 속을 까보면 전혀 다른 2가지 형태의 휴면 모습을 볼 수 있어 쉽게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 어미가 주입한 휴면호르몬을 갖고 난황으로 휴면하는 ‘배자 휴면’이 순수한 의미의 알 형태 월동이다. 밤나무산누에나방이나 유리산누에나방 월동 알은 전형적인 배자휴면이며 보온과 물리적 방어를 하는 집을 만든 사마귀 알집이나 매미나방 알집도 알로 겨울을 나는 시스템이다.


유리산누에나방 월동 알
 / 홀소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유리산누에나방 알(배자휴면) / 홀소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알의 형태이지만 배자발생이 다 끝난 애벌레로 알 내부에서 웅크린 상태로 숨은 채 겨울을 나는 종류도 있다. 참나무산누에나방은 밤나무산누에나방이나 유리산누에나방과 같이 산누에나방과이지만 알 속 애벌레로 월동을 한다. 그러나 멸종위기곤충Ⅰ급인 붉은점모시나비는 짧은 해를 필요로 하는 단일성 곤충이기 때문에 알 속 애벌레 형태로 뜨거운 여름을 피하는 하면을 하고 겨울이 되면 부화하여 활동하는 매우 특이한 곤충이다.


참나무산누에나방 월동 알 / 홀소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참나무산누에나방 알속 애벌레 / 홀소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붉은점모시나비 하면 알 / 홀소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붉은점모시나비 알 속 애벌레(pharate-larva) / 홀소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잎 떨어져 맨 살 드러낸 나무들로 속이 텅 빈 겨울 숲엔 그 동안 보이지 않았던 딱딱한 타원형의 줄무늬 럭비공들이 자신을 마음껏 드러내놓고 있다. 노랑쐐기나방, 꼬마얼룩무늬쐐기나방, 검은푸른쐐기나방, 극동쐐기나방 등 쐐기나방과(科)의 고치로 겉보기에도 튼실해 보이는 집이다. 애벌레가 실을 내어 고치를 만들고 2~3일 후 그 고치 안에서 번데기가 되어 어른벌레가 되는 게 일반적이라 당연히 고치로 월동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번데기 되기 전 마지막 애벌레 상태였다. 고치가 아닌 고치 속 애벌레로 겨울을 나고 있었다.


노랑쐐기나방 고치 / 홀소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꼬마얼룩무늬쐐기나방 고치 / 홀소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꼬마얼룩무늬쐐기나방 고치 속 월동 애벌레 / 홀소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알 속 애벌레나 고치 속 애벌레로 휴면하는 메카니즘이 정확히 어떤 이점이 있는지 아직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추위나 더위를 막을 수 있는 여러 층의 껍데기로 물리적 방어를 할 수 있고 건조를 막는 왁스 층으로 습도 유지가 가능한 알이나 고치는 ‘가장 훌륭한 방패막이 되지 않을까?’ 하는 추정이 가능하다.


검은푸른쐐기나방 고치 / 홀소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검은푸른쐐기나방 고치 속 월동 애벌레 / 홀소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극동쐐기나방 고치 / 홀소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극동쐐기나방 고치 속 월동 애벌레 / 홀소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알 속 혹은 고치 속에서 애벌레로 꼼짝 않고 월동을 하는 놈들과는 달리 보호도구 없이 맨몸으로 월동을 하는 종류들은 조건휴면을 한다. 1년에 2회 이상 발생하는 곤충들 중 해가 짧아지고 기온 떨어지는 가을에 성장하는 놈들이다. 온도가 떨어지고 먹이가 없어지면 휴면에 들어가지만 주변 환경 변화에 따라 월동 중에도 조금씩이나마 먹기도 하고 제자리에서 껍질을 벗는 경우도 있다. 월동이 끝나자마자 바로 먹이를 먹어 조금씩 소비한 에너지를 보충해야하기 때문에 이동을 최소화하고 먹이식물 주위에서 겨울을 난다.


대만나방 월동 애벌레 / 홀소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솔송나방 월동 애벌레 / 홀소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알은 알로, 애벌레는 애벌레로- 밖에서 보이는 상태로 휴면할 것이라고 생각했다가 속 깊게 관찰하기 위해 알과 고치를 열어보면서 점점 더 알 수 없는 곤충 세계를 만난다. 휴면에 감춰진 상황을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어떤 상태가 자연 선택을 받아 성공적으로 번식할까?

※필수휴면 : Obligatory Diapause/ 조건휴면 : Facultative Diapause / 알 속 애벌레 : Pharate Larva
 

※ 참고 문헌
-2016. K. W, Lee., and J. R, Lee. Microstructure and viability of chorion of Parnassius bremeri Bremer (Lepidoptera: Papilionidae) in Korean Peninsula. Korean Society of Applied Entomology. p.93.
-2015. K. W. Lee., and J. R, Lee. Egg Viability of Red-spotted Apollo Butterfly, Parnassius bremeri (Lepidoptera: Papilionidae) in Korean Peninsula. Korean Society of Applied Entomology. p.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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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동아사이언스의 동의를 얻어 발췌한 기사이며, 이강운 소장의 주요 약력은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 / 한국환경복원기술학회 부회장 / 한국서식지외보전기관협회 회장 / 국립안동대학교 식물의학과 겸임교수 / 저서로는 <한국의 나방 애벌레 도감(Caterpillars of Moths in Korea)>(2015.11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 <캐터필러>(2016.11 도서출판 홀로세)가 있다.
이메일 : holoce@hecri.re.kr       


 

글·사진 _ 이강운 소장  ·  (사)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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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loce@hecre.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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