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유산] 세계기록유산? 세계의 기억?

신현실 북경대 세계유산센터 선임연구원
라펜트l신현실 선임연구원l기사입력2019-02-13
세계유산의 중심에 서다 :
제11편 세계기록유산? 세계의 기억?


_신현실 북경대 세계유산센터 선임연구원



얼마 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동 할머니가 별세하셨다. 할머니는 생전에 유엔 인권위 위안부 피해 공개 증언(1993)으로 국제사회에 우리의 아픈 역사를 알리고, 일본의 공식적인 사과를 촉구하는 인권운동에 평생을 바쳤던 분이다. 문 대통령은 과거 한일 정부 간 합의로 위안부 문제가 해결될 수 없는 만큼 양국관계 속에서 후세의 교육과 정의, 진실을 위해 노력할 것을 약속하기도 했었다(데일리뉴스‘18.1.5일자).

위안부 문제는 우리민족에게 뼈 속 깊이 사무쳐 결코 잊을 수 없는 기억 중에 하나인 것이다. 

기억(Memory)은 인간 삶과 관련되어 시간과 장소 혹은 물건 그리고 인물을 통해 인식되고 축적되어 왔으며 시간과 문화를 초월하기도 한다. 이러한 기억의 가치를 재평가하고 미래세대를 위해 보존하려는 유네스코의 사업이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나라에서 ‘세계기록유산’으로 부르는 ‘세계의 기억’(또는‘세계기억유산’) ('Memory of the World', 약칭 MOW)이며, 문자적 기억유산과 비문자적 기억유산으로 구분되어진다.

세계기록유산은 유네스코가 관리하는 3가지의 유산 제도 중 하나로 유형문화재의 보호와 계승을 목적으로 하는 문화·자연·복합유산을 합친 세계유산, 민족의 관습이나 예능, 풍속 등 무형의 재화를 대상으로 하는 무형 문화유산, 그리고 인류의 소중한 기록유산을 보호하기 위해 추진한 세계기록유산(1992)으로 나뉜다(古森義久, 2015,).

세계유산과 무형문화유산은 모두 유엔 조약에 근거한 보호활동인 반면, 세계기록유산은 유네스코가 선정하는 보호의 대상일 뿐이다. (관련자료)

비록 조약이라는 기반이 없더라도 세계기록유산은 유네스코의 이름이 부여되는 상징적 의미와 더불어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기록물은 역사적으로 오랜 기록물뿐만 아니라 인류 역사 변천과정에서 미친 영향력, 보존의 중요성과 사라질 위험성 등을 고려하여 국가와 지역 내에서 기록유산의 중요성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져 가고 이를 정책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문화재청, 2005). 

세계기록유산분야는 우리나라도 제법 강국에 속한다. 1997년 조선왕조실록과 훈민정음 해례본을 시작으로 총 16건의 중요한 기록이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유네스코를 통해 국제적으로 인정된 우리의 세계기록유산을 보면 고려대 불조직지심체요절과 팔만대장경판, 조선시대 조선왕조실록, 난중일기, 동의보감 등 고문서뿐만 아니라 5·18 광주 민주화운동, 새마을 운동, KBS 특별생방송‘이산가족을 찾습니다.’와 관련된 기록물 등 다양한 시대를 아우르고 있다. 세계기록유산은 너무 오래되었거나 새롭다는 이유로 배척하지 않으며 시간과 문화를 초월하여 대상들이 현재와 미래의 세대를 위해 보존되고 전 세계인들이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유네스코의 기록유산 보존 취지와 부합되고 있다.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기 위해서는 ‘세계적 가치’와 ‘범세계적인 영향’이 관건이된다. 이에 대한 판단은 상대적이며, 문화적 상징성에 대한 절대적 기준은 없기 때문에 유산이 등재될만한 가치판단의 절대적 기준은 없는 셈이다. 따라서 세계기록유산 등재 여부는 유산 자체의 신빙성, 유일성, 영향력, 세계적 가치(시간, 장소, 사람, 내용과 주제, 형식과 스타일) 에 의해 좌우되고, 여기에 희귀성, 완전성, 위험성, 관리정책 유무 등의 기준이 추가된다.

세계기록유산에 있어 신빙성을 담보할 수 있는 사항은 이렇다. 보통 기록물 자체가 가진 속성상 복사본이나 위조문서 등이 진품으로 오해되는 일이 있기 때문에, 그 유물이 진품이며, 그 실체와 근원지가 정확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그 기록물은 유일한 것이어서 대체불가하고 유물의 손실이나 훼손이 인류 유산에 막대한 손실을 초래할 우려가 있을 만큼 중요하며 일정기간동안 세계의 특정 문화권에서 역사적 의미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 유일성에 대한 설명이고 바로 영향력의 평가 내용이다.

다음으로 세계적 가치는 앞서 설명한 신빙성과 유일성 항목에 비해 상대적인 입장을 보인다. 또 이에 해당하는 항목 중 하나 이상을 충족해야 한다. 모든 문서는 시대의 유산으로 상징적·사회적·문화적 변화에 대한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전달하게 된다.

오래된 것이라고 무조건 기록유산으로서의 의미를 지니는 것이 아니며, 문서에 담겨진 역사적·문화적으로 중요한 장소 혹은 지역 자체를 기록하고 있거나 문서 자체가 특정 상황이나 사건과 관련 있는 경우라야 세계적 가치에 부합하게 된다.

문서가 기록되던 당시의 사회·문화적 상황은 위대한 변화나 발전 또는 쇠퇴의 중요한 사안을 내포하고 중요 인물이나 집단이 일으킨 효과를 반영하기도 한다.

세계적 가치에서 해당 내용과 주제는 자연, 사회, 인문 과학과 정치, 철학, 스포츠 및 예술계의 특정 역사적·지식적 발전을 포함하고 있다. 뛰어난 미적가치, 형식과 스타일은 형식적 또는 언어적 가치를 지니거나 소멸 또는 소멸과정에 있는 매체나 형식의 표본으로서 분류된다.

이외에 문서의 내용이나 물리적 상태가 일정 시기나 종류를 대표하는 희귀성, 문서가 완본인가 부분본인가? 혹은 변질·손상을 가늠하는 완전성, 소멸 위기 여부와 보호의 필요성에 대한 위험성, 기록문서의 중요성을 나타내고 이를 보존·활용하기 위한 정책활동이 있는가에 대한 관리정책 유무 등이 세계기록유산으로 인정하는 기준이 된다(문화재청, 2005).

또 세계기록유산은 여러 유형유산들 중에서도 재료적 측면에서 매우 취약하다. 이 유산은 대부분 화학적으로 불안정하고 쉽게 분해되는 재료로 만들어져 시간이 흐를수록 원형을 잃기 쉽게되고, 홍수나 화재, 기후변화 등 환경적 요인에 매우 민감하다. 또 비디오테이프 같은 시청각·전자관련 유산의 경우는 보존 기술력의 한계로 시간이 지나면 자연 소실되기도 한다.

작년 5월 유네스코 세계유산협약 가입 30주년을 기념하는 국제세미나에서 세계기록유산에 대한 주제가 발표되어 참석자들의 흥미를 끌었다.

 세계기록유산은 유산을 이해하는 데 인간과 공간의 관계, 이에 대한 감정 등 유산과 연관된 무형의 가치와 영향력이 중요해지고 있으며, 중국 난징대학살과 우리나라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같이 가해자와 피해자간에 상이한 인식이 존재할 경우에는 갈등이 해결될 실마리가 없을 듯 보인다. 이의 해결에는 신중하고 포용적인 해석과정이 요구되며, 전 세계 전문가들의 정의에 기반을 둔 진실 규명과 올바른 역사인식이 중요하다. 

최근 강대국을 중심으로 편향되는 유산등재 경향은 특정 사건에 있어 어느 한쪽은 유산의 가치를 부각하려 하고 어느 한쪽은 유산으로 인한 과거의 상처를 되내이게 되는 것에 분노 한다. 

2016년 우리나라와 중국 등 8개국 14개 단체가 공동 신청한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신청했었다. 과거 중국의 단일 신청때 보다 참가국이 많고 자료의 범위가 방대해 성공가능성이 클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는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의 등재를 보류해 비난을 사기도 했다. 이 위원회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에 대해 등재 신청국들과 관련국들의 대화를 도모할 것을 권고하고 당사국간 대화를 촉구하고 의견이 모아질 때까지 최대 4년간 심사를 보류하는 결의를 만장일치로 채택하였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러한 결정에 일본의 분담금 압박을 뿌리치지 못한 유네스코의 결정이라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당시 회원국 중 미국의 탈퇴로 유네스코의 분담금을 가장 많이 지급하는 일본은 그간 유네스코가 일본에 불리한 결정을 할 때마다 분담금 지급을 연기하며 유네스코에 압력을 가하는 수단으로 활용해왔었다(민주신문, 2017.11.13.).

또 일본에서는 난징대학살 자료에 이어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이 등재 신청되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을 더 이상 ‘유산’으로 부르지 않기로 했으며, ‘세계기억유산’에서 ‘세계의 기억’으로 변경하였다. 이는 난징대학살, 위안부 문제 등을 의식하고 세계기록유산의 위상을 깎아내리기 위한 조치로 해석되고 있으나, ‘세계의 기억’이라는 명칭은 세계기록유산의 정식 영문 표기인 ‘Memory of the World’를 직역한 것이자, ‘유산’을 뜻하는 ‘Heritage’가 들어가는 세계문화유산 및 세계무형유산과 구분하려는 의미도 담고 있다(경상일보, 2016.06.11.)고 궁색한 변명을 내놓기도 했다.

로마에 전해지던 라틴 속담 중에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가 과거를 기억하려는 이유는 현재의 입장에서 끊임없이 과거를 바로잡으려고 노력하기 위해서다. 승패에 상관없이 올바른 역사의 판단은 항상 후대의 몫이 될 수도 있다. 아픈 과거도 우리의 역사이고 이의 다른 측면을 보면 민족성을 일깨우는 교육의 수단이 된다.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이다.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는 등재과정을 통해 역사의 진실을 규명하고 유산의 진정성을 밝히며 화해와 화합의 장을 도모하는데 이바지하게 될 것이다. 과거 아픈 기억들을 위로하기 위해 국제사회가 내미는 치유의 손길이 바로 세계기록유산 등재의 긍정적 효과다.

참고문헌
문화재청(2005). 세계유산 등재 신청서 작성 매뉴얼
유네스코한국위원회(2018). 유네스코 세계유산협약 가입 30주년 국제세미나 자료집
경상일보 2016년 6월 11일 신문기사
데일리 뉴스 2018년 1월 5일 신문기사
민주신문 2017년 11월 13일 신문기사
연합뉴스 2016년 6월 6일 신문기사
중앙일보 2019년 1월 31일 신문기사
世界記憶遺産「南京大虐殺」登録は日本の失態 ユネスコがどんな組織か知らなかったのか?
2015.10.16.(金)古森 義久 http://jbpress.ismedia.jp/articles/-/44996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유네스코와 유산’ 홈페이지


세계기억유산 심볼 / 출처: 유네스코 세계유산 홈페이지


일본 기억유산-조선통신사 / 출처: 유네스코세계유산 홈페이지


한국의 기억유산 - 직지 / 
출처: 유네스코세계유산 홈페이지


한국의 기억유산 - 이산가족찾기 생방송 / 
출처: 유네스코세계유산 홈페이지
_ 신현실 선임연구원  ·  북경대 세계유산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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