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시선] 미안하다, 아이들아......

성종상 논설위원(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원장)
라펜트l성종상 교수l기사입력2019-02-17
미안하다, 아이들아......



_성종상 교수(서울대 환경대학원)




필자는 여행을 자주 하는 편이다. 전공상 필요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도 좋아해서 기회가 될 때마다 다니려 하고 있다. 하지만 해외, 그것도 선진국을 다닐 때마다 마음이 무거울 때가 많다. 그 까닭은 순전히 필자의 전공 탓이다. 앞선 도시마다 잘 조성되어 있는 공원녹지나 운동장 등은 여행자의 시선에도 너무나 근사해서 잠시라도 들어가 즐겨보고 싶은 마음을 유발시키고도 남는다. 스쳐 지나가는 여행자에게도 그럴진대 그곳 주변에 살고 있는 이들에게는 얼마나 좋겠는가? 실제로 깔끔하고 멋진 공원이나 운동장에는 쉬거나 운동하는 이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가 있다.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 놀고 있는, 개성 있게 조성된 놀이터도 쉽게 만날 수가 있다. 그런 장면을 목격할 때마다 필자 머릿속에는 저절로 우리 아이들 현주소가 떠올라서 마음이 무거워지곤 한다. 공원녹지를 다루는 조경가로서의 책임감과 함께 현실적으로 어떻게 할 도리가 없는데서 오는 자괴감도 가볍지 않다.


모래와 잔디, 비탈진 언덕과 맨땅, 물 등 자연소재 위주의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 성종상, 독일 안스베르크. 2003년 8월 


텃밭에서 여가를 즐기는 독일인 가족의 일상 풍경. 특히 주말에는 가족들이 함께 와서 텃밭을 가꾸기도 하고 가벼운 놀이나 수영 등을 즐기기도 한다. / 성종상. 2004년 8월, 독일 베를린 근교 

십여 년 전에 집 근처 PC방에 가 본적이 있다. 학교에 가 있던 아들이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는 학교측 전화를 받고 녀석이 갔을 만한 곳을 찾다가 들어가 본 것이었다. 당시만 해도 PC방은 금연 정책이 적용되지 않던 터였는데 대체로 건물지하에 위치하고 있었다. 계단을 내려가 PC방 문을 여는 순간 필자의 눈에 들어온 것은 부연 연기가 자욱한 속에 수십 대의 컴퓨터 앞에 붙어 몰입해 있던 아이들이었다. 평일 이른 오후였는데 초등학생에서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또래가 많았다. 그 후에도 수차례 가본 PC방의 풍경은 그날 본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거리에 PC방이 의외로 많다는 것도 그 때 새삼스럽게 깨닫기도 했다. 게임에 따라서는 하루에 죽이는 사람 수가 1200명 이상도 된다는 말도 귀동냥으로 들은 적도 있다. 게임에 대한 이런저런 논란은 잠시 접어두고서 우리 아이들의 심신 발달 및 성장 차원에서 진지하게 고민해 볼 여지가 없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릴 적 성장 환경과 과정은 한 인간의 삶에서 매우 중요하다. 신체는 물론 인격도 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그같이 어두컴컴한 담배연기 속에서 거리낌 없이 살인을 즐기는(?) 우리 아이들을 보면서 어찌 걱정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문제는 우리 아이들을 힘들게 하는 게 PC방뿐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인터넷 환경에다 최첨단 성능을 갖춘 핸드폰, 이름조차 기억하기 어려운 수많은 방송매체들....... 뿐만인가? 세계최고 수준의 고밀도시에는 온갖 광고와 정보가 넘쳐나고 아우성치듯 우리의 감각을 자극한다. 이들이 무차별적으로 쏟아내는 온갖 정보들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속수무책이다. 

십 오륙년 전 강남의 한 아파트에 살 때의 일이다. 당시 초등학교에 다니던 아들 녀석은 “심심하다”란 말을 늘 입에 붙이고 다녔다. 학교가 끝나고 나서 집에 와도 놀 친구들이 없다는 것이다. 또래들은 방과가 끝나자마자 바로 학원으로 가버린 탓이다. 일부 학원에 가지 않는 아이가 있어도 그 아이들은 놀이터로 나와 놀기보다는 다른 것, 예를 들면 게임기 앞에서 놀거나 할 뿐 집 밖으로 나오질 않는다고 했다. 더러는 아이가 놀이터에 나가 모래나 흙을 묻혀 오는 걸 싫어해서 아예 못 가게 한다는 부모들도 있다고 들었다. 그러니 근처 놀이터에 가봐야 거의 대부분 비워있을 뿐이고 간혹 유아나 할머니만 보이곤 할 뿐이었다. 그 후 큰 딸이 진학한 고등학교 가까이 가 사느라 강북의 한 동네로 이사를 간 적이 있다. 이사 간 후 얼마 되지 않아서부터 아들 녀석은 아주 신이 났었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면 동네에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다녔기 때문이다. 동네 골목들은 큰소리로 떠들며 뛰어다니는 아이들 세상이었다. 아들 입에서 심심하다는 소리가 쏙 들어가 버린 건 물론이고 녀석은 거의 매일 동네를 쏘다니다가 저녁 밥 때도 훌쩍 넘겨 들어오곤 했다. 비록 강남의 아파트 단지에 비해 번듯한 공원이나 놀이터는 없었지만 좁은 골목이나 동네 빈터, 그리고 바로 옆 용마산 기슭은 아이들에게는 그에 못지않은 신나는 놀이터였다. 그런 현상이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기는커녕 부모 둘 다 일하려 나가느라 집에서 돌봐줄 이가 없는 데에 연유된 거라는 사실을 안 것은 얼마 후의 일이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형편이 적어도 그 또래의 아이들에게는 신나는 자유를 선사한 셈이다. 이후 필자의 연구년으로 그곳에서의 삶은 2년 만에 끝났지만 아들에게는 그 때가 가장 재미있었던 시절로 남아 있는 듯하다. 

필자가 연구년을 보낸 곳은 미국 버지니아주 샬로츠빌이란 작은 도시였다. 인구 5만도 채 안 되는 작은 도시이지만 미국 내에서도 살기 좋은 도시로 종종 언급되는 곳일 만큼 역사와 문화, 그리고 아름다운 경관을 갖춘 도시이다. 겨우 1년 간 살았지만 도시에서 공공환경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실감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도시 곳곳에 위치한 공원들은 각기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으면서 시민들의 여가에 필요한 시설과 프로그램들을 적절히 잘 갖추고 있었다. 각종 구기장은 물론 수영, 물놀이장, 바비큐가 가능한 피크닉장, 대중골프장 등에서부터 카누와 보트 타기, 낚시, 그리고 한적하고 아름다운 경치를 따라 즐기는 승마코스까지 시민 누구나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는 공원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었다. 주민들을 위한 축구, 수영 등 지역사회 프로그램과 함께 잘 가꾸어진 집 근처 공원녹지를 아들과 함께 한껏 즐기면서도 불현듯 돌아갈 서울을 떠올리며 아쉬워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필자가 살던 미국 샬로츠빌 버지니아대학 패컬티하우스 앞 공원녹지. 잘 관리된 시설과 잔디밭은 사계절 내내 동네 아이들의 즐거운 놀이터였다. 최근 쏟아지는 건강-환경 간의 상관성 연구에 따르면 잘 관리된 공원녹지는 보는 이로 하여금 적극적인 호기심 유발 등으로거주민의 건강에 중요하게 작용한다. 잘 다듬어진 잔디밭이 있으면 누구든지 들어가 놀고 싶은 유혹을 받기 마련이고 그럼으로써 저절로 일상 중에 운동에 참여하는 기회가 많아진다는 거다. / 성종상. 2009년 10월.12월


동네 아이들의 수영 클럽들이 함께 모여 갖는 수영대회 모습 / 성종상. 2009년 8월. 미국 버지니아 샬로츠빌

한국에서는 아이 키우기가 어렵다는 이들이 많다. 필자 주변에도 자녀와의 이런저런 문제로 고심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더러는 다른 나라로 이민을 가는 이들도 있나보다. 지인들 중에는 연구년 등으로 해외에 나갔다가 자녀만 둔 채 돌아와서 본의 아니게 기러기가족으로 사는 이들도 깨 있으니 그 말이 전혀 근거 없는 말은 아닌 듯하다. 그것이 교육 환경 등 다른 요인 탓이 크지만 일상적으로 접하는 삶의 환경에 대한 아쉬움도 적지 않게 작용했음 직하다.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 가장 영향력이 큰 것은 아무래도 게임과 인터넷, 그리고 핸드폰 등이라고 봐야할 것이다. 핸드폰 하나만 손에 쥐면 아무도 만날 필요 없이 혼자서 몇날며칠이고 지낼 수 있다. 가뜩이나 거칠고 폭력적이기까지 한 우리 사회에서 사람들과 부대끼며 상처받기보다는 차라리 혼자 가상세계 속에 빠지는 편이 나을 수도 있는 것이다. 게임이나 컴퓨터, 심지어는 TV를 오랫동안 몰입하면 전두엽 성장에 지장을 초래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최근의 뇌과학 연구에 따르면 주의력 결핍이나 충동적이고 과격한 행동은 모두 전두엽과 긴밀한 관계가 있다. 사고력과 판단력 등 고등행동을 관장하는 전두엽 성장에의 장애는 아이들의 생각과 행동에 그대로 악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그러고 보면 우리 아이들에게 많이 나타나는 ADHD나 근 십 년째 부동의 세계 1위인 청소년 자살률, 거의 빵점에 가까운 우리 아이들의 사회관계지수, 그리고 근래 부쩍 늘어난 우리 아이들의 온갖 비행 등등이 결코 그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란 지적은 필자만의 생각이 아닐 것이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중환은 사람이 살 만한 곳의 네 조건으로서 먹고 살기에 유리한 곳(생리 生利)을 중시하면서도 더불어 살아갈 사람들의 인심(人心) 외에 쾌적한 환경여건(지리 地理)과 여가 환경(산수 山水)을 들었다. 엄격한 유교가 지배하던 당시에조차 쾌적한 환경과 즐길거리가 중요하게 간주된 것이다. 그러니 온갖 자극과 정보가 아이들의 정신과 감각을 지배하고 있는 우리 실정에서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당장에라도 학원 아니면 PC방으로 내몰리고 있는 우리 아이들을 위한 특별한 대책이 시급하다. 쉽지 않겠지만 게임과 핸드폰 대신에 일상 생활권내에 신나게 뛰어 놀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공원녹지나 운동시설 등의 공공 인프라의 대폭적인 쇄신 및 확충과 함께 아이들의 성장발달과정에 대한 부모들과 우리 사회의 각별한 관심과 각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필자 아들은 이미 다 커 버렸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아프고 힘들어하는 우리 아이들 너무 많지 않은가 말이다. 하기야 그것이 어찌 아이들만 위한 것이랴?
글·사진 _ 성종상 교수  ·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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