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운의 곤충記] 곤충 날개의 등장은 필승 전략이었다

글_이강운 오피니언리더(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
라펜트l이강운 소장l기사입력2019-03-08
아가미 있는 곤충의 겨울나기



_이강운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
(사)한국환경복원기술학회 부회장



고사리 먹는 불나방아과 애벌레 홀소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3억5000만 년 전 거대한 쇠뜨기, 석송이나 고사리로 대표되는 양치식물로 숲이 커지고 울창해졌다. 그러나 식물이 죽은 후에 이들을 소화하고 분해시킬 분해자가 없다보니 식물이 그대로 쌓여 현세의 인간들에게 천연가스, 석유나 석탄 같은 풍부한 지하자원을 남겨 준 석탄기. 그 석탄기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빙하기가 계속 되면서 평균 기온이 이전보다 훨씬 낮았던 석탄기에 변온동물인 곤충은 원활한 대사 활동을 위해 어떻게든 햇빛을 찾아야 했다. 게다가 먹이를 구하기는 더 어려워졌다. 석탄기 시대 대세를 이루던 양치식물의 포자는 영양만점이었기 때문에 모든 절지동물들이 선호하는 식사였다. 끝없이 달려드는 포식자로부터 포자를 보호하기 위해 양치식물은 리그닌과 셀룰로스로 몸을 꼿꼿이 세우고 포자낭을 맨 꼭대기에 배치했다. 곤충은 발로 기어오르는 기술을 터득하기보다 날아서 한 번에 접근할 수 있는 필승 전략으로 날개를 달면서 새로운 종, 날개 달린 곤충이 탄생했다. 지구 생명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변화를 가져온 곤충의 거시적 진화(Macro Evolution)였다. 
 
고사리 먹는 잎벌 애벌레 홀소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고사리 먹는 잎벌 애벌레 홀소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곤충은 두 쌍의 날개가 있다. 가운데가슴에 붙어 있는 한 쌍을 앞날개, 뒷가슴에 붙어 있는 한 쌍을 뒷날개라 한다. 날개 테두리와 내부에는 힘줄처럼 도드라져 보이는 시맥(翅脈)이 있다. 속이 빈 관인 시맥은 날개를 지탱해 줄 뿐만 아니라 체액을 통하게 하고 호흡 기관이나 신경이 분포하여 날개 전체를 움직이는 중요한 구조물이다. 번데기에서 날개돋이를 할 때 꼬깃꼬깃 접어두었던 날개가 천천히 펴질 수 있는 까닭은 공기를 집어넣으면 물놀이용 튜브에 공기가 차오르는 것처럼 시맥에 공기를 넣어 부풀리기 때문이다. 시맥이 어떻게 형성되어 있고 어디까지 가지를 쳐서 분화했는지는 곤충의 과·속·종에 따라 일정하며 분류의 열쇠로 사용하고 있다.


붉은점모시나비 날개 펴는 과정 홀소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생물을 유연관계에 따라 나누는 일을 분류라 한다. 항상 일정하게 나타나는 형질을 바탕으로 분류군을 쉽게 끌어낼 수 있어야 하는데 곤충에서는 날개가 핵심 기관이다. 지질학적 시간이 흐르면서 종이 분화해서(speciation) 하나의 종에서 여러 개의 종으로 파생되어 나갔지만 기능적으로 진화했을 뿐. 날개의 변화는 없었다. 단지 날개의 구조와 공통적 형질을 묶어 하나의 목(Order. 目)으로 간결하게 분류할 수 있다. 


옥색긴꼬리산누에나방 시맥, 시맥외부(오른쪽 위)와 내부 SEM 촬영본
 홀소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압구정 벌레’라고 불리는 동양하루살이가 도심 지역에 나타나 소탕 작전으로 큰 소동이 있었지만 3억 5000만 년 전 석탄기에 비행술을 개발한 ‘살아있는 화석’을 지금 내 눈앞에서 보고 있다고 생각해보면 이처럼 신기한 일이 또 있을까? 잠자리와 하루살이는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 된 날개를 가진, 접히지 않는 구식 날개로 취급하여 고시류(古翅類)라 하지만 심플하면서도 나름 효율성이 있어 아직도 이 스타일을 유지하고 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곤충인 하루살이목(동양하루살이) 홀소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곤충인 잠자리목(검정측범잠자리) 홀소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날개를 늘 펴고 있는 거추장스러운 구식 날개와 달리 앞날개, 뒷날개를 비틀고 접어 등 위로 접을 수 있게 부피를 줄인 형태를 신식 날개(新翅類)라 한다. 크기를 줄여 노출을 피할 수 있으므로 천적으로부터 보다 자유롭게 되었고 접은 날개와 주변 물체를 섞어 위장도 할 수 있게 됐다. 접이식 날개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게 되면서 날개를 사용하는 범위와 한계가 크게 확장되어 날개 능력은 더욱 진화하고 시간·공간 제약이 없어졌다. 이 같은 전략은 매우 성공적이어서 잠자리와 하루살이를 뺀 현재의 모든 곤충들이 신식 날개(新翅類)에 속한다. 3억 5천 만 년 전 최초로 날개를 단 것만큼 2억7000만 년 전 페름기에 발생한 진화적 혁신이었다.
 

날개가 직선으로 뻗은(Ortho) 날개를 가진 메뚜기목(큰실베짱이)
 홀소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그물 모양 신경 세포 같은(Neuron) 날개를 가진 풀잠자리목(명주잠자리) 홀소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날개의 모양은 비늘로 덮여있는 것, 투명한 막(膜狀)이나 딱딱하게 변형된 것, 발음기를 겸한 것, 날개가 퇴화하여 없는 것 등 다양한 종류가 있지만 신식 날개를 가진 곤충의 모든 학명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공통된 단어가 있다. 딱정벌레목은 Coleoptera, 나비목은 Lepidoptera, 벌목은 Hymenoptera, 파리목은 Diptera. 풀잠자리목은 Neuroptera,  노린재목은 Hemiptera, 메뚜기목은 Orthoptera, 날도래목은 Tricoptera 등 등. 모든 곤충의 학명 어미에 날개라는 뜻의 라틴어인 ptera가 붙어있다. 같은 기관을 가지고 있을 때 이 형질들을 논리적으로 비교하면 쉽게 분류할 수 있는데, 곤충은 날개 종류만 알아도 목 수준의 구별은 어렵지 않다.  


딱정벌레목의 애남가뢰 홀소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딱정벌레목 다우리아사슴벌레 홀소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나비목의 산제비나비 수컷 오른쪽 뒷날개 비늘(SEM) 홀소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가끔 왜 가뢰처럼 날개가 말랑말랑한 날개를 가진 곤충이 딱정벌레인가? 라는 질문을 받는다. 딱딱한 날개를 가진 곤충이 딱정벌레라 생각하는 건 오해. 딱정벌레목(Coleoptera)의 'Coleo'는 칼집, 뒷날개인 칼을 칼집인 앞날개 속에 감추었다가 비행 시에만 펴서 사용하는 곤충을 딱정벌레목이라 한다. 뒷날개가 앞날개에 덮여있어 보이지 않는 모든 곤충 종류를 딱정벌레라 불러야 한다. 나비목(Lepidoptera)의 'Lepido'는 비늘, 비늘 모양 인편으로 덮고 있는 날개를 가진 곤충을 나비목이라 한다. 비늘로 무장한 날개를 지니고 있는 나비, 나방은 한 무리다.
 
벌목(Hymenoptera)의 'Hymeno'는 반투명한 막, 막처럼 반투명한 날개를 가진 곤충을 벌목이라 한다. 워낙 강한 놈이다 보니 벌을 따라하는 모방이 많은데 특히 벌과 파리를 구별하는 일이 쉽지는 않다. 그러나 학명의 뜻만 잘 이해하면 척 보고 알 수 있다. 


말벌 홀소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거의 모든 곤충이 2쌍의 날개를 가지고 있으나 파리목은 2개의 날개만 가지고 있다. 'Diptera'의 'Di'는 둘, 즉 2개의 날개를 가지고 있다는 뜻으로 뒷날개 한 쌍을 몸의 균형을 유지하는 평균곤(halter)으로 과감히 변형하여 단순화 시키는 진화를 택했다. 물론 날개가 2개인 모기나 각다귀도 파리목에 속한다. 
 

파리목의 잠자리각다귀 평균곤 홀소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접어야 산다’. 스마트 폰에도 곤충의 접기 기술을 활용하려 하고 있다.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화면을 펼칠 수 있으며 화면을 접을 때도 평평하고 얇은 형태를 유지해 안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폴더블폰의 최신 기술이 2억 7000만 년 전 곤충의 접이식 날개와 다르지 않다. 접이식보다 더 나은 제품은 한 면을 집어넣었다가 필요할 때 빼서 사용하는, 딱정벌레 날개 유형이 아닐까 생각한다. 상상 이상의 다양한 5G 서비스를 담을 그릇은 이 정도면 끝이겠지. 
 

폴더블폰의 나비. 삼성 제공
 홀소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폴더블폰을 공개할 때 화면에는 나비 이미지가 담겨 있었다. 대칭으로 화려한 색상의 날개를 펴고 접는 모습이 폰과 닮았기 때문일 것이다. 소재는 좋았지만 우리나라에 사는 아름답고 화려한 고유종 나비를 사용하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참고 문헌
- P. J. Gullan and P. S. Cranston. The Insects An outline of Entomology(2005). Blackwell Publishing Ltd.
- Herve′ Le Guyader. Classification et e′volution(2013). Alma.  
- 禹建錫 外. 昆蟲分類學(2005). 集賢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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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동아사이언스의 동의를 얻어 발췌한 기사이며, 이강운 소장의 주요 약력은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 / 한국환경복원기술학회 부회장 / 한국서식지외보전기관협회 회장 / 국립안동대학교 식물의학과 겸임교수 / 저서로는 <한국의 나방 애벌레 도감(Caterpillars of Moths in Korea)>(2015.11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 <캐터필러>(2016.11 도서출판 홀로세)가 있다.
이메일 : holoce@hecri.re.kr       
글·사진 _ 이강운 소장  ·  (사)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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