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시선] 조경, 스스로 무장해제 중···

이재욱 논설위원((주)천일 상무)
라펜트l이재욱l기사입력2019-03-10
조경, 스스로 무장해제 중···




_재욱 (주)천일 상무
(조경기술사, 도시농업관리사(활동가))



“조경기사 필기시험과목서 ‘조경사’삭제 입법예고”라는 제목으로 3월 8일자 라펜트 기사에 실렸다. 

이는 그동안 조경기사 필기시험 과목이 다른 분야 기사 필기시험에 대비해 상대적으로 1개가 더 많았던 점과 조경기사 필기시험 문제의 높은 난이도로 인해 조경기사 필기시험 준비에 어려움을 가졌던 수험생들에게는 두 손 들어 환영할 만큼 반가운 내용일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현재 「수목원·정원의 조성 및 진흥에 관한 법률」에 의해, 정원에 대한 정책수립과 제도는 산림청에서 소관법으로 하고 있다. 법 개정 전 법명은 「수목원의 조성 및 진흥에 관한 법률」이었으나 조경 그 자체인 정원을 산림청 소관 업무로 하기 위해 산림청에서 무리수를 두어 입법을 시도하였다. 이에 조경 분야에서는 ‘조경의 역사가 정원의 역사이고 정원의 역사가 조경의 역사이다.’라는 논리로 반대를 하였다. 이에, 당시 산림청 담당과장(현재 국장)은 다음과 같은 감언이설로 조경계를 설득했었다.
‘정원법(개정안) 안에 정원과 관련된 사업은 오로지 조경전문가만 설계·시공할 수 있다. 고 명기 하겠다.’ 며 개정안을 수정해서 조경계에 보여주었다. (웃긴 일 아닌가? 법은 모 국회의원이 발의했는데, 실제 법안을 들고 다니면서 성사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은 산림청 담당과장이라니? 청부입법이라는 것이 여실히 드러나는 상황이다.)
동시에 다른 산림청-조경계 간 여러 사안과 협의 중에, 당시 순천을 지역구로 하고 있던 여야의 실력 있는 국회의원들 간 이익이 맞아서, 조경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수목원·정원의 조성 및 진흥에 관한 법률」(개정안)이 가결되었다.

그런데, 가결된 법안에는 당초 산림청 담당과장이 약속해서 수정안에 있던 내용인 “정원은 조경전문가만이 할 수 있도록 한다.”던 내용이 사라졌다. 담당과장에게 그 이유를 물었는데, 다음과 같은 답변이 왔다. “조경전문가로 설계·시공 제한은 국회 논의과정에서 ‘직업선택의 자유’ 위반 논란으로 삭제되었다.”라는 것이다. 또한, 정원법이 가결되면 하부 시행령과 시행규칙은 조경계와 협의해서 만들겠다던 약속도 담당자들(과장은 국장으로 승진해서 자리를 이동하고, 담당 사무관은 다른 부서로 이동)의 자리이동과 함께 연락이 끊겼다. 이에 전화를 걸어 약속에 대해 이행해 줄 것을 몇 차례 요구하니, 산림청 일에 조경이 왜 참견이냐는 투로 마지못해 몇 번 이메일로 의견 개진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렇다. 법안을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온갖 꿀 발린 약속을 다 하더니, 막상 통과되고 나니까 기존 담당은 없고, 약속은 흐지부지되고, 새로운 담당이 나타나서는 귀찮게 하지 말라는 식이다.)

더욱 엉터리인 것은 산림청에서 정원전문가를 만들겠다며 별도의 교육과목과 시간을 만들어서 이를 이수한 자만이 정원사업을 할 수 있도록 시도하였고, 이를 통해서 조경기술자들을 배제하려 했다. 즉, 국회에서의 ’직업선택의 자유‘를 이유로 조경전문가의 설계·시공을 제한한 것은 애초에 조경전문가에 한해서 설계·시공하게 할 의향도 없었고, 지키지 않을 거짓말이었던 셈이다.
조경계 내부에서도 ‘조경학과에서는 정원에 대해서 3학점 정도밖에 다루지 않아 전문성에 문제가 있으므로, 이 기회에 정원과 관련된 전문성 있는 교과목과 이수 과정1)이 필요하다.’라며 동조하는 분도 있었다. 이에, 필자는 ‘조경사가 정원사이며, 우리가 학교에서 배웠던 표현기법, 수목학, 디자인학 등 다수의 과정이 정원과 관련된 교과목이다.’라며 그분에게 산림청의 계략에 동조되지 않기를 부탁드렸다.

그렇다. 정원의 역사가 조경의 역사이고, 조경의 역사가 정원의 역사이다. 
실제 역사 과목을 기사시험 과목으로 배정하는 분야는 극히 미미하다. 그러나 조경의 경우는 다르다. 조경사에서 다루고 있는 디자인 변천사는 조경 실무자라면 당연히 알아야 할 내용이고, 과거 명장들의 디자인 모방을 통하여 더 나은 창작 활동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렇기에 조경기사 필기시험에서 “조경사”를 떠나보내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조경기사시험의 합격률이 낮으면, 실무와 무관한 문제(조경기사 기출문제를 보고 있자면, 실무와 무관하거나 모호한 문제들이 더러 보인다.)를 없애고 더불어 난이도를 조정하면 된다. 이렇게 쉬운 해법을 뒤로하고 무턱대고 “조경사” 과목을 없앤다면, 과연 누가 가장 두 손 들어 환영할 것인가? 두말할 것도 없이 산림청일 것이다. 이 기회에 산림청에서 “조경사”의 책 표지만 “정원사”로 바꾸어 새로운 자격시험을 준비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그 위험성은 이미 앞에서 충분히 언급하였으리라 본다.
당장에 조경기사를 준비하는 수험생들도 두 손 들어 환영할 만한 내용이나, 정작 정원과 관련된 자격시험을 따로 준비해야 한다면 그리 좋아할 일만은 아닐 것이다.

더불어 지금 정원설계·시공을 하는 기존 조경기술자들도 “나무의사 제도”의 예에서 보듯이 산림청에서 지정한 교육기관에서 정원설계·시공 과목을 이수하고, 시험을 쳐서 합격한 사람만 정원설계·시공을 할 수 있게 법을 개정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나아가서 산림청에서 도시공원을 넘어 최종 종착역으로 노리고 있는 「건축법」 제42조 “대지의 조경”까지 설계·시공을 하려면 정원설계·시공 교과목을 이수한 자만이 가능하게 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말이 되지 않는 것 같은가? 말이 될 것 같으면 산림청에서 정원을 소관법으로 할 수 있는가? 그것이 상식인가?

역사학자이면서 독립운동가이신 신채호 선생님과 영국 전 총리인 Winston Churchill 두 분의 말씀으로 끝맺음을 하려 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A nation that forgets its past has no fu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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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산림청은 법을 통해서 “전문인력 양성”이라는 미명으로 별도의 이수 과정을 수료하는 것을 좋아한다. 이번 나무의사 제도만 봐도 그 의도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_ 이재욱  ·  (주)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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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jwu2004@daum.net

네티즌 공감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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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자기 밥그릇싸움인데 산림청 담당공무원은 본연의 임무에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조경업계에서 누가 기사본문에 언급된 공무원처럼 일하는 사람이 있나요? 학교에서는 현장과 동떨어진 학문에 집중하고 실무에 필요한 조경기사 수준은 토목과 중복된 범위가 많아 과연 얼마나 효용성이 있나 의구심이 듭니다 이미 산림기사가 조경기사보다 포괄적 쓰임새가 더 넓어진 사실도 간과할수 없죠 굳이 조경기사를 딸 필요는 없어졌으니 산림기사 하나로 조경경력 인정받으면서 산림경력까지 할 수 있으니 점점 입지가 좁이지고 있어요 마치 끓는 물에 천천히 죽어갈 개구리처럼 말이죠 정원과 조경 서로 우열을 가리고 있는 시간에 조경기사가 꼭 필요한 인력은 자격증 난이도 때문에 도태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차라리 과목을 줄여 합격율을 높여 자성의 목소리를 낼 사람들과 힘을 키우는게 업역을 지키는 우선순위가 아닐까요?
2019-03-13
정원학도님은 전공에 오해가 있는 것 같네요. 조경사와 정원사가 구분되어야 한다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어요. 삼국시대부터 우리나라 자연과 종교[신앙], 시대사조, 국민성 등의 영향을 받아 한국적 생활환경과 국토관리를 해 왔었죠. 그 분야를 담장 안의 뜰(庭)과 담장밖의 동산(苑), 즉 garden and landscape이라는 우리국토와 정서에 맞는 문화가 있어왔는데 1970년대 초 인공적으로 부지를 설계하는 미국식 造景(landscape architecture)가 도입되어 토지 화장술로 바뀌어 혼란을 일으키고 있죠.
조경이라는 용어나 학문은 우리나라 실정에 맞지 않아 용어의 재정립이 필요한 시기인데 조경사와 정원사를 구분한다는 주장은 맞지 않고 현행 대학교 교과목에 따라 조경사로 통칭한 것이죠. 역사를 배우지 않고 기술만 배워서는 혼이 없는 일을 하게 되어 보람을 찾을 수 없어요.

조경계의 합의가 있어야 되겠지만 현행의 한국조경업은 본연의 일을 하지 못하고 있으며 비싼 외부공간 장식업 정도로 사회적 지탄을 받고 있으니 차제에 충분한 토론을 거쳐 명칭이나 범위. 역할 등을 상의할 때라 판단됩니다.

이와같이 서로 비방하지 말고 상호 의견을 경청하며 건전하게 토론하는 장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2019-03-11
정원학도 선생님. 조경계를 염려하시는 선견과 그동안에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저 또한 조경사 폐지안건과 산림청에 놀아난 꼴에 개탄을 금치 못합니다.
다만 학문적으로 '조경사'와 '정원사'는 구분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서구의 신진학문인 조경의 역사는 길지 않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정원역사는 삼국시대를 거슬러 오릅니다. 이를 통틀어 조경사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서구에도 ‘조경학’과 ‘정원학’은 다르고, 그들의 정원문화가 있듯이, 우리나라도 독자적인 정원문화가 있습니다. 우리의'정원학'은 엄연히 '조경학'과 구분되어야 하는데, 겉으로 비슷하다는 이유로 서구의 간판인 조경학안에 우리의 정원문화를 끼워넣은 꼴입니다.
이러한 학문적 구조와 시각에서 탈피하지 못하다보니 ‘전통조경’이라는 용어적 오류도 생긴 것입니다. 훌륭하고 독자적인 정원문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스스로 조경에 가두게 된 격입니다.
필자는 하루빨리 ‘전통조경’을 ‘전통정원’으로 바로 잡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나아가 ‘정원학’이 독립적으로 존립해야 한다고 주창합니다. 산업사회 이후 조경학이 태동했듯, 학문은 시대의 요구에 호응하고 기여하면서 발전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간판이 없고 견고하지 못하니, 관이 날뛰고 국가정원법과 같은 졸속행정이 가능했던 것 아니겠습니까.
학문이 바로서지 못하면 앞으로도 이와 같은 상황은 반복될 것입니다. 관점이 달라 의견 개진한 부분을 널리 혜량바랍니다.
2019-03-11
정원법을 만든 순천 국회의원이 고향. 고교 후배라 만류하러 했지만 당시 실세라 만날 수 가 없었고, 지난달 의원회관 찾아가 초면이었지만 잘 못을 지적하니 잘 몰라서 그랬다 하더라고요. 몰라서 죄를 짓는 것도 큰 죄라고 하죠.

五峯
2019-03-11
바른 지적입니다.

子曰溫故而知新이면 可以爲師矣니라.
옛 것을 파악하여 새로운 것을 알아야 스승이 될 수 있다.

그러니 한국 조경계에는 스승이 없다. 모두들 짝퉁 교수들이고 오퍼상들이다.


한 마디 더 사족을 달면 창립한지 47년이나 되는 한국조경학회가 영문 홈페이지가 없어 우물한 개구리들 집합소이다. 15만명 이상이 종사하는 조경계를 위해 교수들은 각성해라.

전남 곡성에서 五峯 沈愚京 씀
2019-03-11
공감합니다. 조경계의 자성과 개혁이 엉뚱한 방향으로 가고 있었군요.
2019-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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