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모, 창덕궁 나무답사 실시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 해설
라펜트l기사입력2019-04-30

조경을 사랑하는 원로들의 모임(이하 조원모, 회장 이기의 아세아종합건설 회장)이 지난 26일(금) ‘동궐도와 함께하는 창덕궁 나무답사’를 실시했다.

이날 답사에서는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와 함께 창덕궁을 둘러보며 곳곳의 나무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박상진 명예교수는 『궁궐의 우리나무』 저자이기도 하다.

창덕궁은 1405년 조선왕조의 이궁으로 지은 궁궐로, 현재 남아있는 조선의 궁궐 중 그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됐다. 후원과 함께 궁궐건축의 비정형적인 조형미를 대표하며 자연과의 조화로운 배치가 탁월한 점에서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1828~1830년경 궁궐에 소속된 화원들이 창덕궁과 창경궁을 조감도식으로 그린 그림이 동궐도이다. 이 그림은 먹과 채색물감으로 궁궐의 건축물, 연못, 괴석 등을 비롯해 2천여 그루의 수많은 나무가 비교적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창덕궁 돈화문을 들어서면 금호문 행랑 쪽과 금천교 주변에 여러 그루의 회화나무 고목이 자란다. 천연기념물 제472호이다. 이들은 동궐도에서도 볼 수 있다. 회화나무를 심은 이유는 중국 주나라 때 조정에 회화나무 세 그루를 심어 三公의 자리로 삼고 정사를 논했다는 예에 따른 것이다. 회화나무는 나뭇가지가 사방으로 고루 뻗은 모습이 학자의 기개를 닮았다고 해 ‘학자수’라고도 부른다.

금천교에는 능수버들이 늘어져 있다. 능수버들은 금천과 같이 습지가 많은 곳에 잘 자란다. 뿌리가 비교적 고루 뻗은 성질이 있어 하천 둑이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심는 경우도 많았다. 버들 고목은 흔히 줄기가 잘 썩어버려 큰 구멍이 생기는데, 도깨비를 비롯한 여러 이야기가 서려 있는 경우가 많다. 오산설림(五山設林)이라는 옛 책에 따르면 세조가 수양대군일 때 기생집 출입을 하다가 기둥서방에게 들켜서 급히 숨은 곳이 썩은 버들 고목이었다고 한다.

인정전에서는 오얏나무의 꽃을 볼 수 있다. 오얏나무는 자두나무의 옛 이름이며, 조선 임금의 성씨인 李씨를 상징한다. 조선왕조 때는 오얏나무에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으나 1897년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한 후 오얏꽃을 황실 문장으로 사용했다. 인정전과 인정문 및 희정당 등 오늘날 창덕궁 곳곳에 보이는 오얏꽃 문양은 순종이 즉위한 1907년 이후에 넣은 것으로 보인다. 오얏은 복숭아와 함께 옛 사람들의 대표적인 과일이었으며, 남에게 오해 살 일을 하지 말라는 뜻인 이하부정관(李下不整冠)이라는 말로도 널리 쓰인다.


돈화문 회화나무


금천교 능수버들


인정전 지붕 위에 오얏나무 꽃이 문장으로 조성되어 있다

후원 입구인 성정각 자시문 밖과 건너편 삼삼와 앞에는 매화나무 고목이 한 그루씩 자라고 있다. 동궐도에 보면 자시문 밖의 같은 위치에 나무 한 그루가 보이나 지금의 매화나무를 그린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이곳 매화나무는 임진왜란 후 명나라에서 가져다 심었다는 말이 전해져 내려오나, 현재 있는 나무의 생물학적 나이가 60-70년인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죽고 다시 자랐다는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지금의 매화나무는 꽃잎이 여러 겹인 만첩홍매로서, 창덕궁의 봄날을 한층 아름답게 만들어준다.

우리나라 고목나무는 느티나무가 가장 많으며, 창덕궁과 창경궁의 80여 그루의 고목 중 느티나무가 30여 그루나 된다. 영화당을 비롯해 관물헌 뒤편, 금천교 옆 등의 느티나무는 동궐도에도 나온다. 느티나무는 영화당 앞 춘당대 한편에 자리 잡고 있어 수많은 역사의 현장을 보아온 유서 깊은 나무다. 동궐도 이외에 영조 36년(1760) 청계천 준선을 끝낸 후 영화당 앞에서 공로를 치하하는 연회를 그린 ‘준천당랑시사연구첩’ 및 김홍도의 ‘규장각도’에서도 볼 수 있다.

관람지 앞에는 뽕나무가 서 있다. 농사와 함께 양잠을 장려했던 조선은 왕의 친경례와 더불어 왕비의 친잠례를 통해 왕실 스스로 모범을 보였다. 동궐도 불로문 앞에 그려진 네 그루 중 한 그루가 지금의 천연기념물 제471호 뽕나무로 짐작된다. 세종 때의 기록에는 창덕궁에만 1,000여 그루의 뽕나무가 있었다고 하며, 성종 때는 후원에 잡목을 제거하고 뽕나무를 심도록 승정원에 자주 전교했다고 했다. 영조 43년(1767)에는 친잠례의 절차와 내용을 기록한 친잠의궤를 펴내기도 했다. 친참례는 조선의 마지막 임금 순종 비 순정효황후 때까지도 이어졌다.


성정각 매화나무


영화당 느티나무, 관람지 뽕나무



관람지 건너편 승재정 동쪽에는 굵은 밤나무가 있다. 밤은 대추와 더불어 종묘 천신을 비롯한 제사상에 반드시 올리는 중요한 과일이었다. 또한 밤나무 목재는 단단하고 잘 썩지 않아 제사상이나 제기 및 신주를 만드는데 널리 쓰였다. 순종실록에 따르면 후원에서 밤을 줍는 행사인 습율회를 열기도 했다 한다.

동궐도를 보면 존덕정의 서북쪽에 태청문이 있는데, 이 문앞의 오른쪽에 그려진 나무가 오늘날의 은행나무로 보인다. 은행나무는 서원이나 향교 등에서 많이 볼 수 있는데, 공자가 행단에서 제자들을 가르쳤다는 고사에서 유래한다. 존덕정은 정도의 편액이 걸려있을 만큼 임금이 자주 들렀던 곳이며, 이곳의 은행나무는 학문을 숭상한 정조와 관련 깊은 것으로 짐작된다. 그의 문집 ‘홍재전서(弘齋全書)’에는 은행나무를 노래한 시도 실려 있다.

궐내각사 주요 건물인 규장각 뒤쪽의 웅장하고 우아한 향나무 고목은 나이 750여 년에 이르는 궁궐의 터주대감으로 천연기념물 제194호이다. 동궐도에는 받침목으로 겨우 버티는 모습이 지금과 비슷하다. 이 나무 이외에도 부근에 비슷한 크기의 향나무가 두 그루나 더 있었으나 지금은 모두 없어져 버렸다. 이곳에 큰 향나무가 이렇게 많이 있었던 것은 제사 때 향을 피우기 위해서였다. 동쪽으로 왕의 초상화인 어진을 모시고 차례를 올리던 선원전이 있으며 향을 보관하고 관리하던 향실도 가깝다.


관람지 밤나무


존덕정 은행나무


선원전 향나무
글·사진 _ 전지은 기자  ·  라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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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j870904@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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