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 성산리산성, 한성백제 시대 군사기지로 확인

당진시 고대면 성산리와 석문면 통정리 경계에 위치
라펜트l정남수 기자l기사입력2019-08-04


당진 성산리산성 원경 / 문화재청 제공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 (재)금강문화유산연구원이 조사하고 있는 당진 성산리산성(충남 당진시)이 당진지역의 한성백제 시대 산성으로 밝혀졌다. 


당진 성산리산성은 당진시 고대면 성산리와 석문면 통정리를 경계로 하는 해발고도 67m의 야산 정상부에 자리한다. 길이 239m의 소규모 테뫼식 산성으로, 지난 4월부터 산성의 정확한 구조와 축성 기법, 축조 시기 등을 파악하기 위한 발굴조사를 진행했다.


이번 조사는 산성의 북쪽 성벽과 안쪽 지역 일부를 대상으로 했으며, 성벽은 야산의 자연경사면 위에 흙과 잡석을 켜켜이 쌓아 축조됐다.


성벽의 규모는 너비 약 14m, 높이는 성벽 외측 하단부에서 성체 중심부 상단까지 5.3m 정도다. 또한, 5열 정도의 나무기둥(木柱)을 110㎝ 정도의 간격으로 박아 고정시킨 후 그 사이를 적갈색 점토로 다져 토성이 쉽게 허물어지지 않도록 보강한 것으로 확인됐다. 


흙을 번갈아가며 쌓는 것을 성토(盛土)기법이라 하는데, 성산리산성은 목심(木心) 성토기법을 사용해 쌓아올렸다.


한편, 성벽이 꺾이는 일부 구간에서는 성벽 중심부에 먼저 석축을 협축식으로 쌓아 올리고 그 내부를 점토와 잡석층으로 다져 너비 2.8m, 잔존 높이 2m의 견고한 석심(石心)을 만든 후, 그 안팎은 성토기법으로 성벽을 완성한 독특한 수법도 밝혀졌다.


성산리산성은 전체적으로는 토성이지만 성벽 중심에는 석축 구축으로 석성에 비견될 정도로 짜임새 있고 견고하게 축성된 것이며, 이는 백제 시대 뿐 아니라 우리나라 성곽 축조기법의 발달과정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활용될 예정이다.


성 내부에는 총 6기의 주거지들이 성벽과 가까이에 밀집해 있었다. 평면 형태는 대부분 네모꼴(방형)이었으나, 이 중 1기는 한성백제 주거지의 특징적인 형태인 철(凸)자형 주거지로 확인됐다.


이들 주거지는 성벽에 매우 가깝게 붙여 열을 지어 축조되었고 구들시설을 구축하여 계절에 관계없이 취사와 난방이 가능했으며, 성산리산성에 주둔했던 한성백제 군사들의 군막(軍幕)으로 사용하였을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유물은 삼족기(三足器), 굽다리접시(고배, 高杯), 계란모양의 장란형(長卵形) 토기, 시루, 가락바퀴(방추차, 紡錘車) 등 취사와 생활용으로 사용한 토기류와 쇠도끼(철부, 鐵斧) 등 약 200여 점이 출토됐다. 특히, 삼족기, 굽다리접시와 장란형토기 등은 기존의 한성백제 유적에서 출토되는 유물들과도 일치하는 양상이다.


당진 성산리산성은 성벽 축조 방법과 출토 유물을 통해 아산만 초입의 군사적 요충지에 자리한 한성백제의 최전방 전초기지로 판단됐다. 기존의 견해는 이러한 한성백제기 지방 산성들을 한성백제 세력이 마한의 여러 소국을 병합하여 세력을 확장하는 과정을 실증하는 자료로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 성산리산성에서 출토된 유물의 연대가 4세기 후반에서 5세기 전반으로 비정되는 만큼 마한과의 관계보다는 광개토대왕의 재위기(391-412)를 전후하여 치열하게 전개된 고구려와의 전쟁에 대비하여 전략적으로 축조한 해안 방어기지의 하나일 가능성이 새로이 제기되고 있다.


문화재청은 앞으로도 역사적 가치와 의미를 지닌 중요 비지정 매장문화재의 조사에 대한 지속적인 지원을 통해 이들의 체계적인 보존·관리에 힘쓸 계획이다.

_ 정남수 기자  ·  라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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