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풍경 혹은 경관의 힘

『풍경에 대하여』 프랑수아 줄리앙 지음(2016)
라펜트l기사입력2019-08-13
풍경 혹은 경관의 힘


_오정학 경기도시공사 과장
(ohjhak@daum.net)


서  명 : 풍경에 대하여
   : 프랑수아 줄리앙 지음 
펴낸 곳 : 아모르문디(2016)

 

“서 있는 곳이 다르면 풍경이 달라진다.” 인기 드라마였던 ‘송곳’의 명대사이다. 짧지만 입장에 따른 관점 차이를 깊고 강하게 알려준다. 한일 경제마찰에 대한 다양한 관점이 대표적이다. 나의 판단은 전략적이요 상대의 생각은 감성적 혹은 무지의 소산으로 몰아 부치는 이들이 무수하다. 풍경은 이처럼 오늘날 다양하게 변주되어 폭넓게 쓰인다. 그렇다면 ‘풍경’이란 용어는 대체 언제 생겼을까? 용어의 생성과 유행은 인식의 변화를 뜻한다. 당연히 ‘풍경’이란 용어의 사용 시점은 인간이 경관 혹은 풍경을 새롭게 인식한 시점일 것이다. 

영어 Landscape를 뜻하는 프랑스어 paysage(풍경, 경관)는 16세기경에 생겨났다고 한다. 그때까지 서양의 풍경화는 역사적·신화적 내용이 많았는데 이 시기에 전원풍경화가 발전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풍경을 새롭게 바라보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그림의 주된 소재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17세기 이태리에서 활동한 두 프랑스인 니콜라 푸생과 끌로드 로랭에 의해 절정에 이르렀다. 유럽인들은 이들의 회화적 풍경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서양정원사의 한 부분을 당당히 차지하는 영국 풍경식 정원의 발전도 그 영향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풍경에 대하여>는 서양의 풍경이 동양보다 한참 후발주자라고 주장한다. 회화사적으로 동양의 산수화가 서양 풍경화보다 훨씬 빨리 나타났다는 점도 주요 근거이다. 서양은 르네상스기에 와서야 인간 자체에 눈길을 돌리면서 사람의 주변 환경에 관심을 쏟아 자연주의 풍경화를 활발히 그렸다. 반면, 중국에서는 도교의 발달과 함께 4-5세기에 이미 풍경 개념이 발전하였다. 장자의 사상이 회화와 시에 미친 영향을 고려하면, 동양의 풍경은 서양과 달리 처음부터 철학적 함의를 많이 담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기독교와 이슬람권을 통틀어 서구의 풍경 인식이 동양보다 훨씬 늦게 시작되었음을 보여준다. 물론 풍경 조성의 한 형태로 볼 수 있는 서양 정원의 역사는 길지만, 사적 공간인 정원을 가지고 소유의 개념을 뛰어넘는 풍경을 설명하기에는 많이 미흡하다. 

그렇다면 동양은 왜 일찍부터 풍경을 예사롭지 않게 봤을까? 천년이나 앞선 중국의 산수 개념은 서양의 풍경 인식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을까? <풍경에 대하여>는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시작되었다. 베이징대와 상하이대에서 학위를 받은 저자 프랑수아 줄리앙은 이미 서구에선 중국학의 최고권위자로 손꼽힌다. <장자, 삶의 도를 묻다(2014)>, <무미예찬(2010)>, <맹자와 계몽철학자의 대화(2009)>등 중국에 대한 전작들의 성과를 이었다는 점도 묵직한 신뢰감을 준다. 

저자가 주목한 풍경의 체계는 ‘특이함, 내부적 변화, 머나먼 곳’이다. 그는 특이함을 ‘바로 거기서만 볼 수 있는 것, 다른 어디에서도 만날 수 없는 것’으로 규정했다. 모방될 수 없는 원본의 숭엄함을 연상시킨다는 점에서 벤야민의 “아우라”를 연상시키는 이 개념은, ‘풍경을 끊임없이 단조로운 펼쳐짐에서 떼어 놓을 뿐만 아니라, 내가 존재한다는 느낌’을 특성으로 한다. 

“내부적 변화”란, 풍경이 그 주변 배경과 간격을 두고 긴장 관계를 형성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그 풍경 속에서 내부적 상호관계 안에서부터 긴장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을 가리킨다. 변화를 주는 것은 풍경 형성에 필수 요소인데, 중국의 회화 이론들을 보면 대부분 가까운 것에 대한 변화와 머나먼 곳에 대한 변화, 즉 근원(近遠)을 강조하기에 상당 부분 수긍된다. 또한 변화는 긴장 관계를 만들고, 교환과 변환을 만들어 생명력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중요성을 갖는다.

풍경의 마지막 매개물인 “머나먼 곳”은 ‘저 너머의 세계로까지 펼쳐져 이어지지만 그 끝이 지워지고 흐려지면서 결국 아우라의 차원으로 이어짐’을 뜻한다. 이를 테면 어떤 풍경에서 저 너머로 넘어가는 길이 있을 때에, 그 길은 공간의 열림을 만들고 시간성을 확장하며 무한으로 나아가는 느낌을 가지게 한다. 바로 이를 통해 머나먼 곳으로 이어지는 길은 새로운 것을 꿈꾸게 만들고 상상하게 하면서 사유가 시작되도록 한다. 그러한 점에서 줄리앙은 이 “머나먼 곳”이 불확실함과 갈망을 그 속에 담고 있다고 보았다. 


고려시대 수묵화로 추정되는 ‘독화로사도’. 바닷가 섬마을의 실경을 그렸다. 그림 가운데 12채 초가집으로 고려시대의 마을 풍경을 엿보고 나면, 능선과 봉우리 너머의 아득한 곳으로 눈길이 옮겨지며 많은 것을 상상하게 한다. 


이러한 줄리앙의 시각은 원근법과 기하학으로 풍경을 관찰하고 객관적으로 재현하는 서구의 풍경관을 날카롭게 해부한다. 그래서 그의 풍경관은 자연을 수학적·논리적으로 바라보기 보다는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동양적 감성에 우호적이다. 동서양을 가로지르는 그의 풍경은 풍경을 어떠한 공간적인 대상으로 국한시키지 않고, 인간 사유의 폭을 넓히는 소재로써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풍경에 대한 그의 교차문화적 인식은 풍경을 단순한 감상이나 음미의 대상이 아니라 삶을 위한 계시의 전달자로 격상시킨다. 

사람에 따라서는 풍경에 기대어 살아가는 이들도 있다. 거기에서 힘을 얻는다고 한다. 물론 그렇지 못하는 이들도 많다. 그렇지만 이왕이면 풍경이 가졌을 법한 ‘원천적인 힘’을 얻을 수 있다면 더 좋지 않을까.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떤 자세로 풍경을 대해야 할까? 어떠한 도시경관이 우리를 감싸고 있어야 할까? 
답을 찾기는 쉽지 않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삶의 계시가, 원천적인 힘과 같은 대단한 효과가, 보잘 것 없거나 우리가 하찮게 여기는 대상으로부터 전달되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줄리앙이 말하는 동서양의 풍경 이야기를 듣다 보면, 이윽고 고개를 들어 주변의 풍경을 새삼스럽게 둘러보게 된다. 지금 우리의 주변 풍경은 과연 우리에게 어떠한 힘을 주고 있을까.
_ 전지은 기자  ·  라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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