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시선] 당신의 떨어진 공모작은 기억 어느 쯤에서 사라지고 있는가?

조용준 논설위원(㈜CA조경기술사사무소)
라펜트l조용준 소장l기사입력2020-03-15
당신의 떨어진 공모작은 기억 어느 쯤에서 사라지고 있는가? 




_조용준 ㈜CA조경기술사사무소 소장



공모의 시대다. 작게는 공간명 짓기, 시설물 설계부터 공원, 광장, 가로, 건축물 계획, 그리고 나아가 정책, 사업, 운영방안에 이르기 까지 그 종류와 규모가 다양하다. 공모전을 찾아 인터넷을 뒤지던 이전과 달리 지금은 공모를 알려주는 다양한 웹 사이트가 존재한다. 한 예로, 프로젝트 서울(www.project.seoul.go.kr)은 서울시의 공모를 통합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웹 사이트다. 가격경쟁의 입찰방식에서 벗어나 아이디어 중심의 설계 공모를 추구한다. 시민, 전문가, 공무원이 함께 참여하는 거버넌스 체계를 구축해 기획 단계부터 부지선정, 시설규모 및 예산의 적정성 평가까지 포괄적으로 고려하는 공모 시스템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체계적인 운영 시스템, 공정성을 고려한 심사위원 선정, 투명성을 보장하는 공모 절차 등 과거에 비해 많은 것들이 개선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종 심사가 끝나면 항상 많은 이야기들이 들린다. 당선되지 못한 아쉬움과 불만의 토로에서부터 심사위원들의 자격, 심사 중 나왔던 이야기들, 당선작과 떨어진 참여작들과의 비교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보통 이런 이야기들은 떨어진 자의 불평 혹은 가십거리로 치부된다. 그리고 짧게는 한 달, 길게는 몇 개월을 고생한 디자인의 과정과 결과물들은, 패널과 보고서로 정리되어 지난 폴더로 이름 붙여져 보관된다. 몇 개 되지 않는 건축과 조경잡지에서 당선작에 한해 결과물 위주의 이미지와 설명 글을 요약해 보여준다. 큰 공모전의 경우, 몇몇 전문가들의 생각이 지면화 되기도 한다. 하지만, 정작 가장 고민했을 참여자들의 생각과 이야기에는 관심이 없는 경우가 많다. 즉, 당선되지 않은 설계는 잉여의 데이터로 간주된다. 그나마 이미지 파일들은 다음 현상을 위한 라이브러리에 남겨져 생명을 이어간다.  
 
수많은 정보들이 범람하는 세상에서, 당선되지 못한 설계안에 대한 이야기는 불필요한 정보 일지도 모른다. 초 단위로 ‘좋아요’와 ‘하트’수가 올라가는 소셜 미디어(SNS)에서 떨어진 작품의 이야기로 공감을 얻기는 쉽지 않다. (단순히 작업물을 보여주기 위한 취지라 하더라도) 실패한 이야기에 대한 기록은 용기가 필요하다. 나와 다른 생각들을 마주할 수 있는 용기, 댓글을 위트 있게 받아넘길 수 있는 포용력, 그리고 이목을 끌만한 이미지와 텍스트, 그리고 무엇보다 솔직함과 진정성이 필요하다.  
 
백지화가 된 서울시청 앞 ‘빛의 광장’에 대한 서현 교수의 기고문이 기억난다. 당선자로서 이해할 수 없는 이후의 과정들과 최종결정, 비판 받았던 시공의 한계성을 보완하기 위해 수개월 간 노력했던 이야기, 그리고 무엇보다, 광장에 대한 본인의 철학이 담겨져 있었다. 나는 2004 년 4월에 기고된 이 글을 몇 년 뒤에야 편집되지 않은 원문으로 접했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화려한 미사여구 없이 담담하게 써 내려간 이야기였다. 가슴이 먹먹해져 온 것은, 무산된 빛의 광장에 대한 아쉬움도, 설계 변경해 진행했던 잔디광장 계획에 대한 부끄러움도 아니었다. 설계가가 느꼈을 쉽지 않은 감정들이, 신입이었던 내 마음에도 느껴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기록해야 한다. 설계는 시공된 결과물로 말해야 한다는 암묵적 강요에서 벗어나, 설계과정에서 느끼는 수많은 생각과 논쟁의 과정을 기록해야 한다. 이는 존재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며, 스스로 가치를 증명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설계과정을 정리하는 일은 쉽지 않다. 별도로 시간을 내지 않는다면 더욱 그러하다. 수십 개의 회사 프로젝트 폴더 안에는 그동안 작업했던 설계안과 단상들이 곳곳에 숨겨져 있다. 파일들 중 괜찮은 것들을 찾아 정리하다 보면, 그동안의 고민과 생각들이 이어지며, 하나의 흐름을 만드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이러한 개인적 시간과 기록은 무엇보다 나아갈 방향에 대한 중요한 단초가 될 것이다. 

기억이 사라지는 시대, 기록은 미래로 열린 상상력을 위한 창고이다. 개인에게는 단상들을 이어주는 연결고리이다. 기록들이 하나로 엮이면 한 개인의 철학이 될지도 모른다. 한국 조경에 철학이 없다고 외치는 비평가들의 이야기를 겸허히 받아들인다면, 아마도 그 이유는 자의든 타의든 꾸준한 기록이 없어서 일지도 모른다. 떨어진 당신의 공모작은 데이터 범람 시대의 잉여 파일이 아니다. 당신의 가치를 증명해 줄 확장자(file name extension)다.

당신의 떨어진 공모작은 잘 지내고 있는가?
_ 조용준 소장  ·  (주)CA조경기술사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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