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시론] 불안사회로 진입하는 졸업생들에게

이진욱 논설위원(한경대학교)
라펜트l기사입력2020-03-22
불안사회로 진입하는 졸업생들에게




_이진욱 한경대학교 응용자원환경학부 조경학전공 교수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특히 어느 시기보다도 조촐하게 졸업장을 받았을 2월의 졸업생들에게 지면으로나마 축하 인사를 전합니다. 오랜 시간 동안 졸업이란 불확실한 문을 통과하기 위하여 불안한 세월을 견디어 낸 것을 축하합니다. 답안지 없는 도면과 씨름하며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교수의 크리틱에도 끝까지 버텨주어 참 고맙습니다.

그리고 미안합니다. 불안하고 힘든 시기를 막 이겨낸 당신에게, 이제 여러분에게 남은 건 밝은 미래라고 자신 있게 말해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고백하건대, 나는 그동안 조경의 미래를 이야기할 때 낭만적 판타지를 이용해 여러분을 현혹했습니다. ‘여러분! 조경의 장래는 한없이 밝으며, 그 어렵던 설계도 졸업 후 몇 년만 참으면 두루마리 화장지 풀리듯 술술 풀리고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사실 판타지 소설작가로서 학생들을 현혹하던 10여 년 전에도, 조경은 어려움에 봉착해 있었습니다. 업무 환경은 지금보다도 열약했고 조경학도들이 졸업 후 조경계를 이탈하기는 매한가지였습니다. 그래서인지 당시 대학에서 특강을 할 땐 늘 이런 부탁을 받았습니다. 이 선생님, 학생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메시지를 꼭 전해주세요!

조경의 위기는 늘 존재해 왔습니다. 1994년에는 우루과이라운드로 해외 시장이 개방되면서 건설업이 위기를 맞았고, 공사 물량이 줄어들면서 큰 위기를 맞았다고 합니다. 1997년의 기사에는 인접 분야에서 법 개정(건설산업기본법 개정안)을 하여 조경 영역을 침해하면서 조경 분야는 위기를 맞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위기의식은 2000년대에 와서도 늘 표출됐습니다.


출처: 한국건설신문 (2008.12.09.)

출처: Landscpae Times (2013.12.17.)

출처: Landscpae Times (2019.01.29.)


이렇게 보니 조경은 항상 위기 속에서 살아온 것 같습니다. 위기의 종류도 지난 30여 년 동안 경기침체와 조경의 업역 침해 등의 이유로 반복되어왔습니다.

그동안 여러분의 선배들은 위기라는 극단적인 단어를 사용하면서 조경인들의 행동을 촉구했습니다. 하지만 조경인들은 그 위기가 과거에 불었던 바람처럼 이번에도 스쳐 지나가리라 믿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 속에서 ‘죽지 않을 만큼만’ 변화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푸념했습니다. (이전보다) 너무 힘들다. 내년이 위기다. 그러니 미안하지만 자네 월급을 올려줄 수 없겠네.

모두가 어렵다고 하는 조경계의 공포 속에서 사회에 첫발을 딛는 졸업생들은 조경의 세상으로 나오려 하지 않았습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움츠러든 지금의 상황처럼 말이죠. 그리고 나는 ‘공무원을 준비하는 소위 90년대 생들은 힘든 일을 하기 싫어하고, 도전, 패기, 근성이 없다’고 말하는 ‘꼰대’가 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조경 학도들의 이탈과 안정된 직업군에 대한 선택은 공포와 미래의 불확실성에서 벗어나기 위한 인간의 자연스러운 행동이었습니다. 조경계에 만연했던 ‘위기’는 이를 겪어보지 못한 이들에게는 두려움으로 다가왔을 테니까요.

다행히도 여러분들의 선택은 서서히 침몰해 가던 조경계를 ‘정말로’ 불안하게 하였고, 여러분을 필요로 하게 만들었으며, 여러 환경을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많은 개인 사업체에서 야근 수당 지급과 야근 횟수의 제한 등 업무 환경을 개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분의 노고 끝에 드디어 2016년에는 조경진흥법이 시행되었고 올해부터는 공채시험을 통해 국가직 조경공무원을 선발하게 되었습니다.

불안은 사람과 사회를 마비시키지만, 인간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될 수 있습니다. 심리학자 보르빈 반 델로브는 불안은 장애물이지만, 동시에 기회이고 도전이라고 말했습니다. 조심스럽게 운전하는 사람, 낙제의 불안에 시험 준비를 철저히 하는 사람, 손 소독을 철저히 하고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갖는 불안은 생존을 더욱 보장해줍니다. 조경계에 만연한 위기의식은 불안한 이 시대를 살면서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공포였습니다. 다만, 우리의 생존 확률을 높여 줄 수 있는 적절한 사회적 공포가 어느 정도일지 그 적정 수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진입을 방해하는 부정적인 효과가 발생하지는 않아야 하니까요.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서 사회가 무척 혼란스럽습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윤지애 교수는 “코로나19 바이러스의 감염 확산으로 사회 분위기가 혼란스러운 만큼,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나 혼자가 아닌 모두가 겪고 있는 두려움이라는 것을 알고 함께 헤쳐 나가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지금 겪고 있는 조경 산업의 어려움과 미래에 대한 불안함이 우리뿐만이 아닌 모든 산업에서 나타나고 있는 힘든 상황임을 알고 함께 극복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불안한 사회를 인정합시다. 그리고 극복합시다. 이미 여러분은 졸업이라는 불확실한 문을 멋지게 통과하였으니까요. 졸업을 다시 한 번 축하합니다.
_ 이진욱 교수  ·  한경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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