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시론] 라떼는 말이야

조용준 논설위원(㈜CA조경기술사사무소)
라펜트l기사입력2020-05-20
라떼는 말이야




_조용준 ㈜CA조경기술사사무소 소장



직원 : 주문하시겠어요? 

김신입 : 네, 저는 아아(아이스 아메리카노)요. 소장님은 어떤 걸로? 

조소장 : 음... 난 라떼!!! 

점심시간이면 회사주변 맛집과 카페를 찾아 잠깐의 여유를 즐긴다. 오늘은 동네에서 꽤 유명한 회사 1층 중식당에서 자장면을 시켰다. 점심을 먹고, 신입사원과 커피를 마시러 갔다. 새로운 장소를 발견했다며 앞서서 나를 안내했다. 회사를 다닌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이미 많은 곳들을 섭렵한 모양새다. 회색벽돌의 8층짜리 새 건물은 성수동 연무장길 낮은 층고의 오래된 건물들과는 어울려 보이지 않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8층 카페로 들어섰다. 옥상층을 활용한 복층구조의 카페는 작은 정원과 함께 힙(hip)한 분위기다. 카페 한 켠에 또 다른 작은 매장이 준비 중인데, 유심히 보니 ‘파버카스텔(Faber-Castell)’ 전문 매장이다. 유리 칸막이에 파버카스텔의 시작을 알리는 since 1761의 표시가 새롭게 조성된 공간과는 매우 이질적인 느낌을 준다. 음료를 시키고, 창가 쪽 커다란 테이블 끝자락에 자리를 잡았다. 창 너머로 초고가 아파트 ‘서울숲 갤러리아 포레’가 보인다.


<조소장과 김신입의 카페 탐방기>



조소장 : 주말은 잘 쉬었니? 뭐했어? 

김신입 : 동생들과 자전거 타고, 가족들과 식사하고 쉬었어요. 

조소장 : (라떼를 한 모금 마시며) 요즘 어때? 회사는 다닐 만하니? 너무 멀어서 힘
들지 않니?

김신입 : 네 다닐 만해요. 그런데....

조소장 : 그런데? 왜?

김신입 : 회사와 집이 멀어서 집에 도착하면 씻고, 누우면 바로 자요. 개인시간이 없는 것 같아요. 매일 회사 집, 회사 집, 회사 집...

조소장 : 맞아. 회사 다니면서 자기 시간 가지기 쉽지 않지. 그래도 우리에겐 주말이 있잖아?(웃음)

김신입 : 그렇긴 하죠. (고민 있는 듯한 얼굴로) 그냥 요 며칠 생각이 많아서요.

조소장 : 음... 어떤 생각? 

김신입 : 안정된 직장에 대한 생각이요. 공무원이나 LH 같은 곳에 들어가면 개인 시간도 가질 수 있고, 정년퇴임까지 큰 문제가 없잖아요? 그래서 안정된 삶을 살 것 같아요. 설계를 하다 보니 또 다시 새로운 것들을 배우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자꾸 생각하게 되요. 취업을 했는데도 계속 나를 계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인거죠? 언제까지 해야 되나 싶어요. 소장님은 어땠어요?

조소장 : (라떼를 크게 한 모금 마시며) 나 때는 조경설계가 부흥기였어. 그래서 설계하면 돈도 잘 벌수 있고, 경력 쌓으면 회사도 차릴 수 있다고 선배들이 많이 조언했었지. 성공할 수 있다며...

김신입 : 그래서 소장님도 설계를 선택하신거구나?

조소장 : 음.. 나는 우여곡절이 있었어. 3학년 때 설계사무소에서 인턴을 해보고, 상상했던 설계사무소의 환경과 너무 달라서 그해 겨울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어.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어느 날 대표님이 보자고 하시더라고. 학교 다닐 때 설계를 가르쳐주셨던 은사님이셨는데, 그 당시엔 토문엔지니어링 조경부에 계셨지. 나보고 ‘지금 뭐하고 있느냐’고 하셔서 공무원 준비 중이라고 말씀드리니까 깜짝 놀라시면서 ‘넌 공무원 스타일은 아니’라고 조언하시더라고. 그러면서 설계를 위한 두 가지 조건인 ‘디자인 감각’과 ‘노력’에 대해 말씀하셨어. 나에게는 타고난 감각이 있으니 열심히 한다면 좋은 설계가가 될 수 있다고 말씀하셨지. 그 조언을 믿고 여기까지 왔고.

김신입 : 그래요? 소장님은 무조건 설계만 바라보고 오신 줄 알았어요. 그런데 저는 앞으로 뭘 더해야 할까요? 설계는 재미있지만...

조소장 : (라떼를 한 모금 더 마시며) 주저리주저리.... 


2000년 초반, 조경분야의 양적 팽창 시대에 설계는 꽤 괜찮은 선택지였다. 업계는 성장하고 있었고, 일은 넘쳐났다. 주변에서 회사를 차렸다는 선배들의 소식이 빈번하게 들려왔으며, 설계 사무소는 언제든 들어갈 수 있었다. 노력한다면 업계의 유명한 설계가처럼 될 수 있다는 조언들을 자주 들었다. 비록 성공한 1세대 조경가가 될 수 없더라도, 작은 설계사무소를 운영하면 건설사 직원, 공무원보다 더 길게 일할 수 있다는 희망찬 미래를 들었다. 그래서 ‘하면 된다’라는 믿음으로 수없는 나날들을 야근하고 밤을 샜다. 우리는 성공사회를 향한 긍정성의 과잉으로 열정과 에너지를 소진하며, 탈진, 우울증, 소진증후군을 경험하며, 지금까지 달려왔다.

우리는 설계를 준비하는 동시대의 젊은이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까? 성공을 보장 받았던 1세대들은 그들처럼 살라고 말한다. 성공을 꿈꾸는 2세대들은 그들로부터 벗어나기를 원하고, 다르게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자본도 권력도 부족한 차기세대들은 능력을 앞세워 정복을 꿈꾼다. 하지만 지금의 젊은이들은 그럴 의지가 없어 보이며, 필요성 자체를 거부한다. 긍정사회를 지나 포기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은 남들에게 인정받기보다는 스스로의 안정을 추구하고, 성공보다는 개인의 즐거움을, 머나먼 미래의 꿈보다는 지속적인 삶의 평온함을 이야기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왜 엄청난 스펙을 쌓으며 끊임없이 노력할까? 현대사회의 젊은이들의 포기는 행동의 포기가 아닌 꿈의 포기를 의미한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현실을 살기 위해 이전 세대보다 더 많은 노력을 한다. 그렇게 쌓아온 화려한 스펙과 경험들은 안정사회로 가기 위한 열차표다. 그렇기에 조경설계의 경험은 꿈을 위한 도전이기보다 또 하나의 스펙이며 안정사회로 가기 위해 과정이다. 더 이상 조경설계는 조경의 꽃이 아니다. “조경설계로부터의 탈출은 지능순”이라는 젊은이들의 농담에는 시대에 대한 자조적 비판이 담겨 있으며, 우리는 그들의 풍자에 대해 깊이 고민해야 한다. 우리는 그들에게 무엇을 말해줄 수 있는가?


조소장 : 벌써 12시 50분이네. 들어가자.

김신입 : 네 소장님, 다음엔 소장님도 아메리카노 마셔요(웃음).

글·사진 _ 조용준 소장  ·  (주)CA조경기술사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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