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논단] 조경, 도시설계에 길을 묻다

김영환 청주대학교 휴먼환경디자인학부 교수
라펜트l기사입력2020-05-27

조경, 도시설계에 길을 묻다



_김영환 청주대학교 휴먼환경디자인학부 교수


도시란 무엇인가? 도시를 의미하는 “city”와 문명을 의미하는 “civilization”은 고어 “civic”에서 파생되어 어원을 같이 하는데, 이는 도시와 문명은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도시의 발생은 곧 문명 발생을 의미한다고 한다. 이에 비해 조경(landscape architecture)은 경관을 의미하는 “land(토지) + shaft(풍경)”와, 건축을 의미하는 “archi(우두머리) + tekton(기술)”의 합성어로서, 토지를 조작하여 그 용도와 미관을 향상시키는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도시계획이 도시라는 인공환경(built environment)을 대상으로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고 공간상에 배치하는 역할을 담당하여 왔다면, 조경은 토지라는 자연환경(natural environment)을 대상으로 외부공간을 디자인하고 개선하는 일을 담당하여 왔다.

인류문명이 시작된 이후로 도시(都市)는 그 어원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정치와 경제의 중심지였으며, 각종 혁신의 발상지로 기능하여 왔다. 도시가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찬란한 문명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인류 최고의 발명품은 도시라고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도시라는 한정된 공간에 모여 살고 있는 오늘날, 우리는 가히 “도시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사고하는 인간(호모 사피엔스)”에서 “유희하는 인간(호모 루덴스)”을 지나, “도시에 사는 인간(호모 어바누스)”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인공환경으로서의 도시는, 도시환경이라는 그릇(container)과 그 안에 담기는 도시활동이라는 내용물(containee, contents)로 구성되는데, 도시환경과 도시활동은 여건변화에 따라 상호간에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양적·질적 변화를 겪게 된다. 호모 어바누스는 도시환경과 도시활동, 다시 말해 도시와 인간 사이의 관계를 압축적으로 표현하는 용어라고 할 수 있다.

카우퍼(J.M.Cowper)는 “신은 자연을 만들었고, 인간은 도시를 만들었다.”라고 말했다. 이는 만물의 창조주인 신처럼 인간이 도시라는 위대한 작품을 창조했다는 뜻이겠지만, 이면적으로는 신이 만든 자연이 완벽한 존재라면, 인간이 만든 도시는 불완전한 존재일 수 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를 내포하고 있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그리고 이는 도시가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인간이 끊임없이 개선하고 관리해야 할 대상이라는 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 대표적 사례가 도시화가 진척될수록 인간이 도시에 밀집해 사는 것이 당연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최근으로 올수록 사람들은 도시를 벗어나 자연을 갈구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주말 등산이나 낚시처럼 자연을 찾아 떠나는 근교 러시현상 뿐 아니라, 게릴라 가드닝, 옥상정원 가꾸기, 한평공원 운동처럼 도시 속에서도 자연을 접하고자 하는 욕구는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 그린 어바니즘(green urbanism)이니 그린 인프라(green infra) 신드롬이니 하는 말들은 도시와 조경의 접목을 통해 도시 속에서 자연성을 강화하고자 하는 노력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산업혁명 이후 도시화의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전개된 도시공원운동이나 도시미화운동의 현대적 버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오늘날 세계는 빅 데이터, 사물인터넷, 인공지능, AR, VR 등으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하여 관련분야간의 융·복합과 타분야와의 이종교배(hybrid)가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또한 범지구적 기후변화는 세계인의 일상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고, 최근의 코로나 19로 인한 판데믹(pan demic) 사태는 압축도시(compact city) 등 그동안 논의된 도시 담론을 재고하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고 있다. 세상은 이처럼 격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건축과 도시, 조경 등 우리 인접 학문분야는 자신들만의 전통적 영역 속에 스스로의 역할과 기능을 한정시킴으로써 내재된 잠재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도시는 흔히 살아 숨쉬는 유기적 복합체(organic complex)라고 한다. 도시는 살아 있어서 끊임없이 진화하고 혁신하지 않으면 쇠퇴하고 멸실하게 된다. 살아있는 자연을 다루는 조경과, 살아있는 도시를 다루는 도시(계획)은 그래서 많이 닮아있다. 도시화가 정점에 이르고 있는 현재, 도시는 길을 잃고 조경은 새로운 방향을 모색할 시점에 와 있다. 도시와 조경의 자연스러운 접점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그 해답은 “도시설계”에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도시설계는 ‘사람들을 위한 장소 만들기’라고 정의되며, 그 요체는 공공성 있는 외부공간을 조성하고 관리하는 일이다. 도시와 조경은 이 공공성 있는 외부공간, 또는 장소 만들기를 향한 교류와 공동협력을 통해 학문분야의 발전과 함께 업역의 외연적 확대와 질적 성장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도시재생은 조경분야의 새로운 돌파구의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저출산, 고령화, 저성장 기조의 고착화와 더불어 도시쇠퇴 현상이 가속화되고 도시화율이 90%를 상회하게 된 우리나라 현실에서 성장시대의 논리는 더 이상 자리할 곳이 없게 되었다. 따라서 도시재생을 통해 도시(urban)라는 단어 속에 내재된 공동체(community)의 의미를 되살리고 회복하는 노력이 필요하며, 주민주도의 도시재생에서 주민참여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도시재생의 현장이 곧 실험실이 되는 리빙 랩(living lab) 교과목의 개설을 통해 학생들이 주민과 직접적으로 교감하고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체험을 하는 현장학습의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조경분야에서 새로운 노력이 필요한 또 다른 영역으로 경관관리를 들고 싶다. 국민소득의 증가와 더불어 삶의 질의 개선에 관한 욕구가 증대하고 있으며, 도시화의 확산에 따라 국토·도시공간의 무분별한 개발과 훼손이 심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국토·도시공간의 효율적인 개발과 관리가 요구되고 있으며, 특히 경관관리의 강화가 절실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2014년 경관법의 전면적 개정을 통해 중앙정부의 경관관리 기능 강화, 경관심의 대상의 확대, 중점경관관리구역의 활용 등이 제시되었으며, 2017년의 국토경관헌장 제정을 계기로 주민참여형 경관 만들기가 추진되고 있다. 또한 최근에 확정된 제5차 국토종합계획에서도 효율적인 경관관리를 위해 우수한 경관자원의 발굴 및 보존, 디지털 기술 기반의 입체적 경관관리기법의 개발 및 활용 등의 방안이 제시되었다. 이러한 법·제도적 여건변화는 조경분야의 업역 확대와 함께 전문인력 양성을 통해 조경의 사회적 역할을 증대시킬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건축과 도시계획, 도시설계 관련분야에서 오랫동안 교육과 연구업무를 수행해 온 필자는 각 분야가 지금까지 주어진 영역과 여건 속에서 나름대로 최선의 노력을 경주해 왔다고 믿고 싶다. 하지만 범세계적으로 대변혁의 소용돌이가 세차게 몰아치고 있는 작금의 현실에서 건축, 도시, 조경 등 전통적 인접학문 분야들이 상호 교류와 협력, 나아가 하나가 되려는 통합적 노력을 강구하지 않은 채 기존의 한정된 틀 속에서 안주하기만을 고집한다면 각 분야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가 어려울 것이라 생각된다. 위기가 곧 기회가 된다. 도시와 조경의 창의적 협력을 통해 우리 분야가 한 단계 도약하는 내일을 기대해 본다.
_ 김영환 교수  ·  청주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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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kim@cj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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