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시선] 거대한 건축, 멈춰버린 도시

조용준 논설위원(㈜CA조경기술사사무소)
라펜트l조용준 소장l기사입력2020-07-21
거대한 건축, 멈춰버린 도시




_조용준 ㈜CA조경기술사사무소 소장




종로를 지나다 종묘 앞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을 보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세운 초록 띠 공원 대신 들어선 경사형 콘크리트 광장을 마주할 때, 나는 총괄 건축가를 중심으로 변화되고 있는 서울의 풍경이 과연 나아지고 있는지 반문하게 된다. 최근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 현상들을 보면 서울은 더욱 복잡해지고 거대해 질 것 같다. 비움보다는 채움으로, 덜어내는 것 보다는 쌓는 것에 집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재생된 세운상가 역시 여러 건축 장치들이 더해져 도시안의 도시가 되었다. 세운상가 프로젝트에 관한 이야기는 건축가 김수근의 이상에서부터 방향이 전혀 달랐던 여러 정권의 개발계획까지 복잡하고 오래되었다. 이야기의 시작은 1960년대로 거슬러가야 하지만 이 글은 5년 전 젊은 조경가의 도전이야기다.

2015년 여름, 나는 뉴욕 제임스 코너 사무실(James Corner Field Operations)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해 한국에는 커다란 공모전이 몇 개 있었는데, 연초의 나는 개인적인 휴가를 받아, CA조경기술사사무소에서 3개월간 ‘서울역 고가 기본계획 국제지명 현상설계’에 참여하고 있었다.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던 중에 세운상가 공모 소식을 뒤늦게 접했고, 공모지침에서 근대건축문화유산으로서 세운상가를 존치하겠다는 내용을 보게 됐다. 지난 10여 년간 진행되었던 세운상가 남북 녹지축 계획과 이를 포함한 주변 계획들이 백지화가 된 것이다. 녹지축에 찬성하며 아이디어를 모았던 수많은 전문가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어떤 과정 속에서 기존 계획들이 사라졌으며, 왜 새로운 개발 방향의 공모전이 만들어졌는지 알 수 없었다. 주변에 물어봐도 몇몇 건축가의 이야기와 정권이 바뀜에 따른 새로운 도시정책에 대한 이야기만 들릴 뿐이었다.

서울역 고가 공모전의 아쉬운 결과와 함께 뉴욕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세운상가 공모전을 다시 한 번 생각했다. 투명하지 않은 과정과 이해할 수 없는 공모전 지침에 화가 났다.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메모지를 꺼내어 일정을 계산해보니 제출일까지 한 달이 채 남지 않았다. 다음날 회사에 출근해 함께 일하던 동료들과 이 이야기를 나눴고 회사친구와 그리고 평소에 알던 건축가를 더해 팀을 꾸렸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20일 남짓했다. 미련했던 건지 아니면 어리석었던 건지 모르겠지만,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최선을 다했다. 우리는 세운상가를 합리적으로 철거하는 방식을 제안했고, 비워진 땅에 시대에 맞는 이야기를 담고자 했다. 지침 위반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패널과 내용들이었으나 공모전 참여가 우리의 생각을 전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었다. 그 당시 제출했던 설계 내용의 일부를 아래에 적었다.


2015년 공모전 제출 보고서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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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결정된 디자인이 아닌 열린 토론을 위한 다양한 시나리오를 제안하고자 한다. 우리는 의도된 계획안보다 대상지가 가질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에 대한 토론이 이 프로젝트의 시작점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운상가 콤플렉스를 재활용하는 대안과 더불어, 역으로 대상지가 비워짐에 따라 생기는 다양한 가능성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따라서 우리는 대상지를 비움으로써 생길 수 있는 다양한 시나리오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우리의 토론은 다음과 같은 질문들로부터 시작한다. 세운상가는 과연 서울시민들에게 근대 문화유산으로서의 어느 정도의 가치를 가지는가? 현대뿐 아니라 미래의 서울 도심 구조에 입체적 공중보행가로는 필요한가? 네 개의 블록을 관통하는 복잡하고 거대한 구조물을 몇 가지 기발한 건축적인 장치로 주변과 함께 재생시킬 수 있는가?

우리는 세운상가의 실패를 서울의 다른 도심 개발에 따른 상대적 무관심이나 낙후된 건물의 외관, 혹은 프로그램의 부재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기존의 구조물을 고쳐 쓰고, 또 다른 프로그램으로 채운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용자가 사용하기에 불친절한 구조물들과 거대한 스케일을 문제로 바라보며, 이를 적절히 비워나가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려고 한다. 그렇게 비워진 오픈 필드는 변화를 수용할 있는 또 다른 가능성의 공간이 될 것이다.



공모전이 끝난 후, 늘 그렇듯 일상으로 돌아왔고 평소처럼 회사 일에 묻혀 살았다. 2016년 가을, 우연히 들린 서점 인문학코너에서 건축가 승효상의 책, ‘보이지 않는 건축, 움직이는 도시’를 보게 되었다. 서울의 변화를 이끌고 있는 총괄 건축가의 생각들이 궁금해 단숨에 읽어나갔다. 경험을 통해 쌓아온 그분의 이상과 생각의 많은 부분들이 공감되었지만, 현실 속 서울에서 진행되고 있던 서울로 7017 프로젝트와 세운상가의 재생방식은 책의 내용과 동떨어진 느낌을 받았다. 2015년 세운상가 재생 공모전이 다시 떠올랐고, 왜 세운상가가 존치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기존에 진행되었던 녹지축 계획이 왜 사라졌는지에 대한 의문은 더욱 짙어졌다. 그래서 세운상가에 대한 나의 생각들을 메모했다.


2016년 겨울, 세운상가에 대한 단상들


세운상가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_ 세운상가 재생프로젝트 VS 남북녹지축 복원


사리진 남북녹지축

세운상가 일대에 조성 예정이었던 남북 녹지축 복원계획이 백지화되었다. 폭 90m, 길이 1㎞의 이르는 북악산에서부터 종묘, 그리고 현재 세운상가 건물군 자리를 통과하여 남산에 이르는 남북녹지축 계획은 1990년대 중반부터 여러 도시 계획가, 건축가, 조경가들에 의해 그 필요성이 제기되어 왔다. 그리고 2005년 오세훈 서울시장 시절에 남북녹지축 복원 사업이 공표되었고, 2009년 1단계 사업으로 현대상가가 철거되고, 세운 초록띠 공원이 조성되었다. 그 이후 정치적 상황이 바뀌면서, 기존에 제기되었던 상가 상인들의 보상 및 이주 문제와 함께 재개발 비용의 문제들로 세운상가 녹지축 복원 사업은 표류해 왔다. 그리고 2015년 서울시는 새로운 방향으로 세운상가 재생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2015년 공모전 지침 내 사진


도시속의 섬_세운상가

“지금으로부터 35년 전, 세운상가로부터 진양상가(이하 세운상가)에 이르는 도시적 스케일의 건물의 띠는, 남산으로부터 종묘를 잇는 인공 데크와 필로티가 있는 주상복합건물로 모더니즘 건축의 상징성을 갖춘 ‘도시 내 도시’를 구현한다는 건축가들의 이상적인 의지로 출발했었다. 결과적으론 여러 정황의 변화로 말미암아 남산~종묘 간의 자연 축의 연결은 미완에 그쳤다. 반면에 도심 동서를 구분 짓는 흉측한 스케일의 건물군만이 남았고, 이는 “아름다운 서울”계획의 실패한 장소로 지목되기에 이르렀다. (전진상 건축비 평가, 2004년 11월 15일 인천일보).

최초 계획안을 살펴보면, 김수근 건축가가 설계했던 세운상가 단면은 최종 시공도서의 단면과 다르다. 기본설계 안은 보행동선과 차량 동선이 명확하게 분리되어, 1층은 차량 동선과 주차장으로 계획되었다.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로 상가시설로 대체되었고 없었던 보행가로도 추가되었다. 명확한 보차분리를 통해 공중보행통로의 실현을 구현하고자 하였지만, 1㎞의 공중보행통로가 마른 내 길에서 끊어지고, 1층에 상가가 들어서고, 보행자들이 다니게 되어 3층의 공중보행통로의 의미와 기능이 퇴색되었다.

초기계획에서부터 남북을 관통하는 공중보행통로가 주변 도시구조와 다르게 작동한다는 점이 문제였다. 서울의 도시구조는 남북축의 세종대로와 종로, 청계로, 퇴계로 등 동서방향의 횡적인 축이 바탕이 된다. 따라서 세운상가 주변 블록들 역시 동서방향의 길들이 이 지역들과 이어져 있다. 예를 들어 동서 방향의 광장시장 골목길이 예지동 블록의 골목길과 대로를 기준으로 맞닿아 있다. 그리고 이 길은 세운상가에 의해 단절되어 서측블록의 돈화문로 2길과 4길로 다시 시작되었다. 그런데, 2005년 세운 초록띠 공원이 단절되었던 두 개의 블록들을 동서방향으로 이어주게 되었다. 이는 세운상가를 녹지축으로 복원했을 때, 세운상가 일대 도시구조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좋은 전략이었다. 다시 말해, 세운상가 일대 건물들과 공공공간, 그리고 골목길들은 땅에 면하여 사통팔달하고 있었지만 미래 도시로 명명된 1㎞의 세운상가 건물군은 주변지역과 단절된 채 홀로 작동하고자 했다. 결국 세운상가는 도시의 일부분이 아니 섬처럼 존재하게 되었다. 


근대건축 문화유산 

세운상가 활성화를 위한 공모전 지침에 따르면, 세운상가 건물군은 건축사적으로 20세기 이후 도시건축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실현한 도심 내 메가 스트럭처로서 서울의 도시 건축적 유산으로 설명하고 있다. 건축사적 의미에서 세운상가의 완성도는 어떠할까? 당시 서른다섯 살의 김수근 건축가와 그보다 젊었던 건축가들이 주체가 되어 설계한 이 작품이 어느 정도의 완성도가 있냐는 의문이 든다. 이 거대한 건물군(도시)을 만드는데 걸렸던 시간이 며칠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세운상가 건축설계 실무책임을 맡았던 윤승중 씨가 <건축> 1994년 7월호에 회고하고 있다. 또한, 앞서 말한 시공과정에서의 문제들과 입체가로로서의 실패는 세운상가 프로젝트를 통해 서울 도심개발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이끌어 냈다기보다는 실패한 사례로 회자되고 있다. 그렇다면 지침서에서 요구하는 공공공간과 공중보행통로 개선을 통한 입체도시의 완성이 왜 필요한가? 그리고 이 계획이 앞으로 만들어질 4대문 안의 서울 도시경관계획들과 부합하는가? 과연 세운상가는 장래의 문화적 발전을 위하여 다음세대 또는 젊은 세대에게 계승 및 상속할만한 가치를 지닌 건축문화유산인가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거대해지는 세운상가 

2016년 11월 국내외 유명 건축회사들이 세운 4구역 도시환경 정비사업 국제지명 현상설계에 초대되었다. 현상 지침에 따르면, 용적률이 600~700%를 상향한다. 사업성을 근거로 한 결과이다. 스카이라인은 서울시 경관지침에 따라 종로변으로 55m 이하에서 청계천변 71.9m 이하까지 점진적으로 구역 내 각 동의 높이에 차등을 두어 배치할 수 있다. 따라서 한두 개의 높은 타워로 용적률을 만족시키는 계획은 불가능하다. 대신 20~30층의 볼륨 있는 오피스, 호텔, 레지덴스 타워들이 콤팩트(compact) 하게 계획될 걸로 예상된다. 또한, 나머지 7개 블록 역시 형평성 때문에 개발 방식은 달라도(세운 4구역은 통합형 개발계획 방식이고, 나머지 7개의 블록은 수복형 개발 방식을 따른다), 유사한 수치의 용적률이 적용될 걸로 예상된다.

결과적으로 세운상가 일대는 업무지구를 중심으로 한 고밀도 복합형 도심으로 개발될 것이다.  그리고 세운상가군은 8개 블록 고밀도 건물군에 의해 둘러싸여지게 될 것이며, 재생된 공중보행데크와 문화플랫폼의 보행환경은 또 다시 문제가 될 소지가 많다. 주변 건물군에 의한 그늘뿐 아니라, 현재 확보된 도심으로의 시야가 닫히게 될 것이다. 또한, 주변건물들과 세운상가의 공중데크가 연결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1층 보행환경 및 보행자의 공간인지능력을 저하시킬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세운상가 재생이 실패할 경우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더 큰 고통 속에서 훨씬 더 많은 자본과 시간을 들여야 한다. 세운상가를 살리기 위해 서울시는 기존의 분절되었던 공중가로와 함께 새로운 데크판을 추가하여 4개의 건물군을 통합하고 있다. 철거를 통한 녹지 복원 대신 저예산의 재건축 방식으로 세운상가 일대를 활성화시키려고 한다. 결국 기존의 분절되었던 건물군들은 하나로 엮이며 1㎞에 달하는 거대한 건축선이 만들어질 것이다. 또한 세운4블록을 포함한 8개 블록의 개발은 필연적으로 세운상가의 입체가로와 연결될 것이다. 지상에서의 녹음과 햇빛보다는 수없이 얽혀진 입체가로가 이 일대를 점령할 것이다. 이 거대함에는 얽혀진 물리적 구조만큼 복잡한 이해관계가 생겨날 것이고, 이는 미래의 작은 변화에도 유연하게 대응하기 어렵게 만들 것이다. 작은 개입(intervention)을 통해 커다란 효과를 기대한 세운상가 입체가로 재생사업이 크게 성공하지 못한다면 세운상가는 더 큰 골칫거리가 되는 것이다. 세운상가 건물군 전체를 보존한다는 전제로 진행되고 있는 세운상가 재생사업이 과연 경제적이고 효율적인지, 그리고 향후 어떻게 변화될지 모르는 미래에 유연하게 대응 가능한 구조인지 여러 의문들이 남는다.


보이지 않는 건축 움직이는 도시

세운상가가 만들어진지 40여년이 지난 지금도 세운상가 일대는 더 나아지지 않았다. 이는 지난 40년간 세운상가 건물군이 주변 도시와 소통할 수 없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로 인해 수많은 주민들과 상가들이 소외돼 왔다. 서울의 도시 역사 속에서 세운상가는 시간의 공백으로 자리 잡고 있다. 몇몇 건축가들의 이상이 서울이라는 이 거대도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굳이 과거를 되새기지 않아도, 세운상가에 가면 통감할 수 있다. “건축에서 공간이 본질인 것처럼, 도시에서도 보다 중요한 것은 결코 몇 낱 기념비적인 건물이 아니라 그 건물들로 둘러싸인 공공영역이다. 이 또한 보이는 물체가 아니다. 그러나 이 보이지 않는 공간으로 도시는 그 애환과 열정을 담아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하면서 존속하게 된다. 단일 건축이나 기념비가 갖는 상징적 가치보다는 그 주변에 담겨서 면면히 내려오는 일상의 이야기가 더욱 가치 있고, 시설물이나 건축물의 외형에 대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그 속에서 다른 이들과 더불어 사는 관계가 더욱 중요하며, 도시와 건축은 완성된 결과물에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담아 끊임없이 진화하고 지속되는데 더욱 의미가 있다. 그리고 그런 도시는 기억으로 남아 통합된다.” (보이지 않는 건축 움직이는 도시, 승효상)

글·사진 _ 조용준 소장  ·  (주)CA조경기술사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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