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임새 있는 조경, 함께 가꾸는 정원”

[인터뷰] 김승민 박사(디자인봄 대표)
라펜트l전지은 기자l기사입력2020-10-28

김승민 박사는 다분야 다방면에서 1년을 꼬박 채워서 살고 있다. 정원, 생태복원, 전통조경, 실내조경, 아파트 등 현장이 다양하다. 대표, 정원작가, 디자이너, 박사, 교수, 자문위원 등 직함도 여러 개다.


“이 모든 일들이 나에겐 한 길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여러 가지를 할 수 있었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그저 조경의 길을 걸어온 것뿐이라는 것이다. 조경, 전통조경, 자연환경, 식물 등 조경의 다양한 분야에서 오랜 기간 공부하고 가르치기도 했으며 실무에서도 맹활약해온 베테랑이다. 그런 김 박사에게 조경은 무엇일까?


김승민 박사



조경의 쓰임새



갈수록 더 높게, 더 화려하게, 더 특별하게 지어지는 건물들. 그만큼 건물의 쓰임새도 더 좋아졌을까? 그렇다면 조경은 어떠한가? 우리는 생각해봐야 한다.

전국적으로 우후죽순 일어나는 정원박람회와 존치되는 정원들. 제1회, 제4회 경기정원문화박람회 작가정원으로 선정되기도 했고, 현재는 경기정원문화박람회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하는 김승민 박사는 공공정원, 조경공간의 ‘쓰임새’에 대해 생각한다. 만나는 사람마다 정원이나 공원의 기능은 무엇이고, 그곳에서 사람들이 기대하는 바가 무엇인가에 대해 묻곤 하는데, 그때마다 돌아오는 것은 ‘힐링과 쉼, 예쁜 곳에 가서 사진을 찍고, 꽃을 보고싶다’는 대답이었다. 김 박사는 어느 순간 사람들이 원하는 것에서 너무 멀어진 것은 아닌지, ‘예술’, ‘디자인’, ‘작품’이라는 단어에 치중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 끊임없이 경계하고 고민한다. 정원의 기능이란 무엇일까? 식물은 죽어버렸고, 쉴 수 있는 의자 하나 없으며, 디자인은 화려하나 기능이 없는 구조물만이 들어서 있다면 그것은 조경공간으로서 기능을 하는 것일까? 스스로에게 계속 질문한다.


사람들은 정원에서 봄에는 봄꽃, 여름에는 여름꽃, 가을에는 가을꽃을 보고 싶은 것인데 우리가 만드는 정원은 가을에 만들었다면 가을꽃만 심고 끝이다. 모든 디자인에는 가치가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 공공정원이라면 한편으로는 사람들이 원하고 필요로 하는 것들을 제공해야 하는 것이다.

김 박사가 조경공간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식물’이다. 시간에 따라 계절에 따라 공간이 얼굴을 달리 할 수 있는 것은 식물의 존재감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그래서 설계하고 시공을 하는 단계부터 어떻게 하면 이 공간이, 이 식물이 계속 남아있을 수 있을까에 대해 생각한다. 반짝하고 다 죽어버리는 ‘쇼’가 아닌, ‘지속성’을 갖기 위해서는 유지관리가 중요하지만, 1차적으로는 식물선정과 시공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김 박사는 조경학과에서 식물생리에 대해 보다 자세히 배울 수 없다는 점을 꼬집었다. 식물을 알아야 식물이 잘 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수 있기에 그렇다. 실제로 김 박사는 학교에서 식물생리 수업만 세 번을 들었다고 한다. 식물의 생리와 함께 식재시공과정도 중요하다. 하부구조만 제대로 조성해도 식물이 잘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이 기본적인 것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곳이 의외로 많다. 김 박사의 손을 거친 공간은 계절마다 다른 모습으로 아름다움을 전한다. 긴 생명력을 가지고 유지되는 이유 또한 식물에 대한 남다른 지식 때문이기도 하다. 계절별로 식물들은 피고 지는 것을 반복하며 다른 경관을 만들어낸다.


조경공간은 아름다워야 한다. 아름다운 것은 조화로운 것이며, 조화로운 것은 안정적인 것이다. 과한 설계, 엉성한 시공으로 하자가 나고 몇 년 안에 폐허가 될 것 같으면 차라리 하지 않는 것이 낫다.



구리갈매 푸르지오 작가정원. 찬바람이 불기 시작할 때 볼 수 있는 수종들로 풍성한 식재가 다채롭고, 여러 겹 중첩돼 있다. 다른 계절에는 다른 식물들을 볼 수 있다. 




구리갈매 푸르지오 작가정원 ‘도란도란 이야기가 있는 정이 넘치는 정원’. 공간을 이용하는 어린아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설계됐다. 실제로 단지내 어린이집에서 자주 소풍을 나오기도 한다.



정원의 쓰임새를 생각하다보면 유지관리에 대해 생각지 않을 수 없다. 김 박사는 “관리하지 않는 정원은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시간이 지난 뒤 정원을 다시 찾아가보면 그 정원이 살아있는지 죽어있는지를 분명히 알 수 있다. 겨울이어도 식물이 살아있다면 그 흔적이 남아있고, 생동감을 느낄 수 있다. 이는 전문가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보면 알고 느낄 수 있다고.


내가 만든 공간을 가만히 둘 수가 없다.

김 박사는 일주일에 두 세 번은 현장을 찾는다.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공부가 된다고 한다. 도와 도를 넘나드는 것은 이제 일도 아니다. 김 박사가 처음 조경을 꿈꾸게 된 계기가 공간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고 잘 가꿔나가는 것을 본 다음부터였기에 더욱 그렇다. 그러니 황폐화된 공원과 정원을 목도할 때면, 설렘으로 선택한 이 전문분야에서 우리가 추구해야하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고 한다.


적은 비용으로는 더 나은 공간을 만들지 못하고 유지할 수 없다. 물론 혹독한 현실임은 인정하지만 김 박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산 안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최대한 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전문가의 태도라 말한다. ‘주어진 만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것을 활용해 보다 어떻게 더 나은 공간을 만들 수 있을까 생각하는 것’이다.



정원을 사랑하게 하는 법


구리갈매 푸르지오에는 ‘풍다듬’이라는 주민단체가 있다. 단지내 조성된 정원을 가꾸는 모임으로 ‘들락날락’을 모토로 한다. 누구든 부담 갖지 말고 참여하라는 의미도 있고, 정원에 자주 들락날락하라는 의미도 있다. 이들은 정기적으로 모여 정원에 자란 잡초를 뽑거나 새로운 모종을 심기도 한다.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모두 나와 흙을 만지고 물을 주고, 돌과 흙이 밖으로 나오지 않도록 구조물을 재정비하기도 한다. 이들은 온라인 카페를 만들어 정원봉사활동의 사진을 공유하며 입주자간 커뮤니티를 꾸려나가고 있다.


‘정원은 나이 불문하고 모두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이라는 게 참 실감이 납니다’

‘아파트 안에서 이루어진 작은 현장체험’

‘정원은 사람의 손을 탈수록 예뻐지는 것 같아요’

‘정원을 가꾸는 가족들이 많아지고 있어요. 작약, 아이리스 구경하러 오세요’

‘정원 안에 담배꽁초가 없어졌어요. 모두가 함께 가꾸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떻게 일반인들이 단지 내 정원에 관심을 쏟고 지속적으로 가꿔나갈 수 있는 것일까?


대우건설 정원작가로 선정돼 단지내 작가정원을 조성한 김 박사는 정원 조성 이후에 정원에 관심 있는 주민들을 모아 교육을 시작했다. 이는 순전히 자발적인 행위로, 정원을 향유하는 주민들이 정원가꾸기의 즐거움을 알기를 원한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고, 지속적으로 정원이 유지되도록 하는 것이 두 번째 이유였다. 정원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모여 정원에 대해 깊이 알게 되면 애착이 생기고, 애착이 생기면 적극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박사는 커뮤니티가 생기기까지 시간과 비용, 그리고 노력을 아낌없이 투자했고, 풍다듬이라는 주민커뮤니티가 탄생했다. 김 박사의 이러한 행보에 주민들이 감사패를 전달하기도 했고, 대우건설에서는 주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정원교육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푸르지오 자연사랑플러스 행복한 정원사’는 입주자를 대상으로 정원교육을 실시하고 이들에게 수료증을 발급하는 것으로 함께 단지를 가꾸어나가자는 취지다.


그리고 지난 22일, 구리갈매 푸르지오 ‘도란도란 이야기가 있는 정이 넘치는 정원’은 ‘2020 아름다운 정원 콘테스트’에서 ‘우리 정원’ 분야 최고의 정원상(산림청장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심미성과 생태성을 고려한 교관목의 배치 등 정원 작품성이 뛰어날 뿐 아니라 아파트 입주민들이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아파트에서 쉽지 않은 정원문화 활동에 주민이 직접 참여하는 모범사례로 평가받았다.



‘2020 아름다운 정원 콘테스트’ 수상



구리갈매 푸르지오에서 처음으로 실시한 행복한 정원사 교육프로그램


김 박사가 일반인들로 하여금 정원에 애착을 갖게 하는 방법은 이 뿐만이 아니다. 개인주택 정원의 경우에는 클라이언트에게 정원에 심은 식물들로 구성된 ‘정원식물도감’을 선물하기도 한다. 싹부터 꽃이 피고 지는 식물의 생애가 사진으로 담겨있고 식물에 대한 정보도 적혀있다. 꽃이 핀 모습만을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일반인들에게 정원을 관찰하고 즐기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다.  


과거 대학 강단에 섰을 당시엔 학생들에게 식물도감 만드는 리포트를 과제로 내기도 했다. 직접 정원을 계획, 조성 후 식물을 일주일별로 관찰해서 사진을 찍는 일종의 관찰일기다. 식물을 들여다보는 작업은 어찌 보면 하찮다 여길 수 있지만 식물에 흥미를 갖게 되고, 식물의 생리와 식물을 대하는 마인드를 배울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렇게 공부해야 보다 깊이 있는 공부를 할 수 있다고도 덧붙였다.


우리가 식물의 싹 나는 것부터 즐거워하고, 꽃이 피면 환호하고, 낙엽이 지는 것에 행복해 하고, 겨울 가지를 보고 아름답다 생각하는 것처럼, 정원의 주인 또한 정원을 배경으로만 보는 것이 아닌 생명으로 느끼고, 섬세하게 느낄 수 있도록 돕는다.

일반인들이 정원에 관심을 갖도록 하는 것은 청주시에서 실시한 시민정원사 교육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책상에 앉아 배우는 것만이 아닌, 함께 앞치마를 두르고 삽과 괭이로 땅을 고르는 것부터 직접 수행하게 함으로써 정원을 조성하고 가꾸는 것의 즐거움을 가르쳐 시민들의 호평을 받기도 했다. 지난해 JTBC 가드닝 프로그램 <꽃밭에서>에 멘토로 출연을 결심한 것 또한 일반인들에게 조경을 쉽게 접하고, 만들어보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정원에 대한 애정을 갖도록 하는 프로그램의 취지에 공감하기 때문이었다.


일반인들이 정원을 사랑하도록 하는 것. 그것이 전문가로서 김 박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이다.




청주시 시민정원사 교육



JTBC 가드닝 프로그램 <꽃밭에서> / JTBC 제공



행복한 조경인



스스로가 계속 부족하다 느끼는 것이 나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다.

김 박사가 가장 처음 손에 잡은 것은 식물이었다. 스스로의 힘으로 혼자 공부할 수 있는 것이 ‘식물’이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식물분류부터 시작했다. 식물을 직접 키워보기도 하고, 농장을 가보기도 하고, 야생화 자생지나 식물원을 꾸준히 다니면서 그 변화를 계속 지켜봤다. 실내식물, 실외식물, 야생식물, 초본, 목본... 계절마다 다시 태어나는 것을 관찰했다.


구현될 것을 생각하고 한 계획과 설계임에도 현장에서 시공을 하다보면 부딪힘이 발생했다. 그래서 시공현장에 나섰다. 현장에서는 다양한 기능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업체부터 반장을 중심으로 한 조직까지 각자 나름의 실력이 다랐고, 그들이 가진 노하우들을 습득했다. 서로가 의견을 교환하고 설득하는 과정을 굉장히 많이 겪으며 ‘배웠다’고 한다.


여성이고 나이가 있어 현장에 머무를 수가 없었다. 시공은 누가 가르쳐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계속 현장을 찾았다. 골프장, 정원, 아파트조경, 실내온실 가는 곳마다 다른 환경이기에 끊임없이 배웠다. 해도 해도 부족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시공현장에서는 직선을 선호했다. 공정이 쉽고 비용이 절약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 박사의 디자인에는 곡선이나 꺾임이 많은 복잡한 선들이 많다. 그 선들을 그대로 시공으로 반영하는 것은 작업자들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격이라 수없는 설득의 과정을 거쳤다고 한다. “내 안에 디자인적인 면, 창의적인 면이 분명 있음에도 그동안 모든 일들 저단가로 빠르게 해달라는 요청을 받아왔기 때문에 잊고 살았었다. 하나 시공하고 쳐다보고, 하나 시공하고 쳐다보고 하는 과정이 즐거움이자 스스로를 표현하는 길이었다” 김 박사와의 작업에 대한 한 작업자의 소회다. 부침과 설득의 과정은 결과적으로 본인과의 작업이 ‘보람있었다’라는 소감으로 돌아온 것이다.



구리갈매 푸르지오. 모든 동선의 가장자리에 직선이 없다.


김 박사는 현장에서 치열하게 배우는 와중에 대학에서 교편을 잡기도 했다. 상명대와 연암대, 한국전통문화대 등에서 학생들을 꾸준히 가르쳤다. 실무에서도 조경, 전통조경, 생태복원, 정원 가리지 않고 참여했고, 자문위원으로서 활동하며 다방면으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김 박사는 여전히 ‘공부’한다. 어렸을 때는 늦게 공부를 시작했다는 데서 오는 불안감에 그저 열심이었는데, 이제는 끝없는 배움의 과정을 즐기고 있다고 한다. 빠르게 가는 것보다 지금 내가 어떻게 가고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며 살고 있다고.


어느 순간 되돌아보니 인생을 살면서 얻을 수 있는 지식들을 빠르게 압축적으로 얻은 것만 같다. 이곳저곳에서 많이도 배웠고, 학생들이나 일반인들과 함께 살 부비면서 내가 가진 것을 다 주면서 살고 있다. 내 앞에 주어진 기회들을 다 잡을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나는 행복한 조경인이다.


글·사진 _ 전지은 기자  ·  라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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