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에 대한 권리란 어떻게 놀 것인가에 대한 결정권을 주는 것”

[인터뷰] 표해윤 GSWeb 대표
라펜트l전지은 기자l기사입력2020-11-12

최근 정부에서 아동이 맘껏 뛰어놀 수 있는 지역사회, 놀이를 통해 잠재력을 키우는 학교를 만들기 위한 포용국가 아동 정책의 핵심과제를 발표하며, 각 지방정부는 앞다투어 아동 친환경 도시인증을 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휴대전화나 컴퓨터에 의존하는 시각적 놀이, 혹은 실내놀이터나 VR게임장과 같은 유료시설에 노출된 대한민국 아동의 여가활동이 과연 ‘놀 권리’를 제대로 이해하고, 그 권리를 제공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고 수 있을까?


‘놀이’와 ‘터’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기업이 있다. GSWeb이다. Giant Spider Web(왕거미 줄)의 약자로, 실제 로프를 이용한 놀이시설을 보고 있으면 거미줄을 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마치 놀이의 순서가 정해진 것처럼 계단을 올라가서 데크를 건너고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오는 기존의 데크놀이대와 달리 GSWeb의 제품은 시작점이 어디인지 알 수가 없다. 표해윤 대표는 “거기서부터 아이들의 선택이 시작된다”고 말한다. 놀이기구의 꼭대기까지 어떤 길로 올라갈 것인지, 아니면 올라가지 않고 옆으로 넘어갈 것인지는 아이에게 달렸다는 것이다. 그는 놀이를 “어떻게 놀 것인가에 대한 결정권을 아이에게 주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표해윤 (주)지에스웹 대표



세계 어린이 놀이기구 시장의 선두주자, GSWeb


올해로 20주년을 맞은 (주)신흥이앤지는 보도교(출렁다리)와 숲하늘길 전문회사로 전국 각지에 안전하고 아름다운 교량을 설치한 내실 있는 기업이다. 신흥이앤지의 시작은 조경 엔지니어링이자 조합놀이대를 다루는 시설물기업이었으며, 조합놀이대의 명맥이 이어져 온 것이 GSWeb이다.


2000년 GSWeb은 독자적인 특허기술로 직접 생산한, 견고하고 인장력이 강한 케이블을 활용한 네트 놀이시설물로의 대변환을 이루게 된다. 24개의 스테인리스 강선을 나일론 섬유로 피복한 7개의 와이어 다발은 케이블 단면의 강선이 최소한의 공극으로 나일론 섬유재에 의해 완전히 피복되는 튼튼한 제품이다. 케이블의 특성인 유연함은 고객 요청에 맞게 제품을 변형할 수 있다는 장점으로 작용한다. 디자이너가 직접 설계를 하기 때문에 콘셉트를 받아 새롭게 디자인을 하거나 기성품에서 변형을 하는 등 고객이 원하는 대로 새로운 디자인이 가능하다. 실제로 GSWeb은 카탈로그 중심의 영업은 지양하고 색다른 제품, 고객만을 위한 제품을 만들고자 한다.


GSWeb이 국내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2017년부터로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러나 세계시장에서는 이미 우수한 제품으로 정평이 나 있다. 유럽, 아시아, 중동, 오세아니아, 북아메리카, 남아메리카 6대주 50여 개국에 수출되는 GSWeb의 제품의 해외판로는 순전히 입소문으로 개척됐다. 독일에서 열리는 전시회에 참가해 좋은 파트너들을 만나고, 그들이 제품을 사용해본 뒤 소개가 되면서 점차 확장이 된 것이다. 


2010년 미국 외 6개국으로 수출을 시작으로 이듬해 해외 수출분야 백만불 수출탑을 수상했고, 2016년에는 삼백만불 수출탑을, 2018년에는 오백만불 수출탑을 수상하며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제는 작은 단위의 재료와 혁신적이고 전문적인 로프 기술로 생산되는 고품질, 고성능의 안전한 놀이기구로 세계 어린이 놀이기구 시장을 선도하는 견실한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GSWeb 제품이 수출된 국가



국가 경제발전과 일자리 창출에 공헌한 바를 인정받아 지난 9월 국무총리표창을 수상한 표해윤 대표(우) / 지에스웹 제공



‘놀이’와 ‘터’에 대한 생각


표 대표에게 아이들이 노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져 왔다. 동시에 대한민국의 아이들이 제대로 놀질 못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이 싹트고 있었다. 휴대전화와 컴퓨터, 혹은 유료 실내놀이시설 등 아이들이 노는 공간이 한정돼 있는 것이다.


아이들은 모래만 있으면 잘 놀 수 있다. 놀이시설은 아이들의 놀이에 여러 교육적 기능이 더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계단을 오르고, 미끄럼틀을 타고, 데크를 건너는 행위는 신체나 지능발달을 위해 강제적으로 설계된 것이다. 저희의 몫은 아이들이 무엇을 하고 놀지 선택할 수 있게끔 환경을 제공해주는 것뿐이다.

2016년 독일의 전시회에 참가했을 때의 일이다. 당시 GSWeb의 ‘도토리동산’ 제품이 전시돼 있었는데 한 자매가 찾아와 놀이기구에 올라가도 되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허락이 떨어지자 즉시 놀이기구에 올라탔는데, 언니는 수월하게 올라갔지만 동생은 아래에서 고전 중이었다. 그런데도 아이들의 부모님은 멀리서 지켜만 보고 있더란다. 부모님께 혹시 아이를 도와줘도 되냐고 물었더니 돌아오는 대답은 “혼자서 할 수 있도록 도와주지 말라”는 것이었다고.


반면 한국에서는 놀이기구에 보호자가 먼저 올라가있는 경우가 대다수다. 두려워하는 아이들에게 ‘이 길로 와, 여기를 밟아’하고 코치를 한다. 그 아이에게 놀이기구는, 혼자서는 절대 올라가고 내려오지 못하는 놀이기구가 돼버리는 것이다. 계단을 오르고 데크를 건너서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오는, 순서가 정해진 것만 같은 놀이기구와 다를 바가 없다.


아이에게 어떻게 놀 것인가에 대한 결정권을 주는 것이 ‘놀이’라면, 제공되는 선택지가 ‘터’일 테다. ‘터’에는 ‘안전’이라는 키워드가 따라오게 된다.


‘아이들은 놀이터가 아니면 위험을 배울 곳이 없다’ 모 다큐멘터리에 출연한 한 독일 엔지니어의 말이다. 이는 큰 상처를 입거나 팔다리가 부러지는 등의 위험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은 위험하다는 이유도 찾아볼 수 없는 정글짐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정글짐 앞에 선 아이는 저 높은 곳까지 올라갈 수 있는지 없는지, 어떻게 올라가야 안전하게 정상을 향해 올라갈 수 있는지, 도움을 받아야하는지 스스로 해낼 수 있는지 등을 생각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은 상황을 헤쳐 나갈 수 있는 사고력, 스스로 해결하는 힘, 혹시 넘어지게 되면 포기하는 것이 아닌 ‘이렇게 놀면 안 되겠구나’ 하고 되새기고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 하는 노력이다.


일정 시기가 지나 놀이터가 재미없어지게 되면, 지붕에 올라가거나 미끄럼틀을 거꾸로 타는 등 하면 안 되는 일들을 한다. 그게 더 재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이 아이들을 오히려 위험하게 만들 수 있다. 아이들은 놀이기구에서 어떻게 행동해야하는지 스스로 알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보호자가 판단할 것이 아니다.

지나치게 안전만을 강조함으로써 재미없는 놀이터가 되는 것은 오히려 더 큰 위험을 낳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표 대표가 생각하는 ‘놀이터’는 어느 정도의 위험상황 직면을 통해 아이들이 스스로 발전해나갈 수 있는 환경이며, 어른에게는 그것을 조성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전’을 생각하지 않을 수는 없다. GSWeb은 기획부터 설계, 제작, 시공, 수출까지 자체적으로 운영하고 있기에 제품의 문제점을 찾고 개선하는 작업이 빠르게 진행된다. 제품이 설치된 곳을 지날 때면 사진을 찍고, 위험한 부분이나 개선할 부분을 찾고 어떤 부분이 인기가 있는지도 체크한다. 보증기간 넘어서까지 사후관리가 되고, 제품 출시 이후 다음해 바로 개선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에 맞는 안전기준이 필요하다


GSWeb은 국제놀이기구제조협회(IPEMA) 회원으로, 안전에 대한 유럽기준 EN1176 뿐 아니라 미국기준 ASTM F 1487과 CPSC 규정을 충족하는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카탈로그에 수록된 전 제품은 독일 품질인증 TUV 인증을 받기도 했다.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안전인증도 중요하지만 표 대표는 “대한민국에 맞는 안전기준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독일 품질 인증 TUV와 미국 국제 표준기구 ASTM에 대해 공부하는 과정에서 왜 이러한 규정이 생겨날 수밖에 없었는지를 인지하는 시기가 있었다. 미국의 경우 1900년대부터 아동의 발달기록을 토대로 규정이 도출된 것이다. 5세부터 아이들의 머리둘레, 팔 길이, 키, 몸무게 등에 대한 평균치를 바탕으로 머리 끼임은 230~250㎜, 팔다리 끼임은 89~100㎜으로 기준이 정해진 것. 반면 한국은 이러한 과정 없이 해외의 기준을 그대로 사용하다보니 실제 한국 아이들에게는 맞지 않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표 대표는 현재 대한민국 아동에게 맞는, 보다 재미있는, 보다 안전하고, 보다 창의적인 제품을 위해 대학원에 진학해 체육교육을 공부하고 있다.


아이들이 커서 성인이 되고, 또 아이를 낳는다. 모든 이들이 놀이터를 찾기에, 전 연령층을 대상으로 좋은 ‘터’를 조성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놀이터에 대한 관심은 어느새 대한민국에 새로운 놀이문화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발전했다. 나아가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 함께 새로운 기준을 만들고, 한국의 모델을 새로운 국가에 제시하는 것을 꿈꾸고 있다. K-뷰티나 K-드라마처럼 말이다.



G그룹 전직원의 모습 / 지에스웹 제공

글·사진 _ 전지은 기자  ·  라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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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j870904@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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