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시선] 은행나무라서 죄송합니다

김동필 논설위원(부산대 조경학과 교수)
라펜트l김동필 교수l기사입력2020-11-13
은행나무라서 죄송합니다


_김동필 부산대학교 조경학과 교수



언제부턴가 가을이 되면 불쌍한 존재, 공공의 적이 되어버린 은행나무는 인간들의 이기심에 의해 고초를 겪는다.

암나무 뽑아내기·수종 교체·열매 털기, 도심 은행열매 ‘악취와의 전쟁’라는 뉴스를 접한 시민들의 댓글 반응은 ‘암나무 열매가 익기 전에 모두 털어버려야 한다’, ‘길거리에 심한 악취 때문에 제거해야 한다’, ‘고민하지 말고 뽑아낸 뒤 다시 심어야 한다. 일일이 알려줘야 하느냐’, ‘은행만 열리지 않게 하면 이보다 더 낭만적이고 고마운 나무는 없으리라’, ‘열매 밟고 가게에 들어오면 하루 종일 냄새 때문에 영업에 지장이 많다’, ‘열매때문에 도로가 지저분해진다’ 등 부정적 글을 단 시민들이 있는 반면에 ‘이 정도는 참아야지’라며 인간의 이기심을 한탄하는 글들도 있기는 하다.

이러한 시민들의 어처구니없는 민원을 해소하기 위해서 착한 지자체에서는 조금이라도 은행이 덜 달리도록 하기 위해 과도한 전정을 하여 착과의 수를 줄이거나 약품을 주입하여 조기낙과를 시킨다. 심지어는 은행나무 열매가 익기 전에 진동기를 이용해서 열매를 전부 털어버리는 잔인한 일을 실시하면서 아주 기발한 아이디어인 양 여기고 있다. 또는 은행나무에 80만원 전후로 소요되는 낙과 열매 수거 차단막을 설치하여 떨어지는 은행을 모으는 방법 등 열매가 도로에 떨어지지 않도록 과한 노력을 하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모든 암은행나무를 베어내고 새로운 수종으로 교체하는 방법을 강구하고 있으며 이에 더해 DNA분석을 통해 수은행나무만을 재식재하는 방법을 실시하고 있어 수놈만 사는 불균형세상을 만들고 있다. 사실 도시의 가로수들은 이미 전선 장애와 간판을 가린다는 이유로 두목전정 되거나 잘려지고, 낙엽청소가 힘들다는 이유로 조기낙엽을 시키는 등 많은 수난을 받아왔다. 특히나 바람에 의해 만나야 하는 풍매화에게 청춘남여가 만날 기회조차 박탈해버리는 것이다.

45억년 전 지구에는 산소가 없었다고 한다. 인간이라는 생물이 살 수 있게 해준 것은 남조류부터 시작하는 식물의 출현으로, 21% 전후의 산소가 만들어지면서 생존이 가능하게 되었다. 『지구의 정복자』의 저자 에드워드 윌슨은 ‘현생 인류의 기원은 요행이었다. 우리 종에게는 얼마간 좋을지라도, 나머지 생물 대다수에게는 영구히 안 좋은 결과를 미칠 행운이었다’라는 불행의 서막을 이야기한 바 있다.

은행나무목 은행나무과 은행나무속의 유일한 1종인 은행나무는 ‘살아있는 화석’이라 불린다. 2~3억 년 전에 지구상에 출현하여 유일하게 살아남은 생물종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생존비결은 자손을 생존시키는 능력과 오래된 나무줄기에서 새싹이 돋아날 수 있는 환경적응력에 있으며, 곰팡이와 벌레에 강하고 대기오염에도 강하여 가로수로 많이 심어져왔다. 활엽수의 잎을 가지고 있으면서 겉씨식물의 특성을 가진 은행나무는 열매가 익으면서 육질에서 심한 악취를 냄으로써 다른 동물이나 새가 먹을 수 없도록 했다. 그 생존 본능이 지금의 고약한 상황을 만들게 된 것이다.

도시에 조금이나마 신선한 산소를 마실 수 있도록 보완해주는 것이 공원녹지와 가로수이다. 특히 가로수는 미관은 물론 그늘을 제공하고 공기를 맑게 하며 도시의 온도를 조절해주어서 도시 미기후를 위해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존재이다. 경제적으로도 수목이 잘 식재된 곳의 부동산 가치가 평균 7% 높은 것으로 조사되었고, 가로수와 같은 수목식재의 비용편익분석에서도 수목에 1달러를 지출할 때마다 편익은 3,5달러가 된다는 외국의 분석결과도 있다.

양버즘나무, 느티나무, 왕벚나무, 은행나무는 도시의 가로수로 가장 많이 식재되는 종들이다. 은행나무 보호수 중 20그루 정도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고 1,000년 이상 사는 나무도 여러 그루가 존재한다는 것은 우리의 삶, 문화와 밀접한 관계를 가져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미 왕버즘나무는 운명을 달리하였고, 은행나무도 이를 뒤따를 운명이 되었다.

이제 인간의 배려와 인내심을 기대하기 불가능한 현실에서, 우리는 도시의 반려식물들을 어떻게 보호하고 보존하고 보전할 수 있을까에 대한 숙명적인 숙제에 대답을 해야 한다. 첫째, 가로수 정책에 대한 전면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수목의 선정에서부터 안정된 식재기반의 조성, 큰 나무보다는 작은 나무를 심어 지역의 경관과 정체성을 만들어야 한다. 때로는 악성민원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론을 펴고 대처하는 자세도 필요하다. 둘째, 식재 후 전선이나 토양장애 등에 적절히 대처할 수 있는 사후관리 관리매뉴얼이 만들어져야 한다. 지금과 같은 무계획적인 관리는 더 이상 곤란하다. 셋째, 수목관리에 대한 장기간의 연구를 통해 기술자료를 축척하고 활용하여야 한다. 가로수를 본격적으로 심은 지 4∼50년이 되어 아름다움이 극에 달해야할 가로수들이 잘못된 선정과 관리로 사라지고 있다. 새로운 나무를 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은 관리가 더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과거 인간들은 인간을 초월하는 질서가 있다고 믿었으며, 그것을 존경하고 거기에 맞춰 살았다. 다른 생명체들과 함께 살면서 인간은 모든 생명을 존중했으며, 생존을 위해 어쩌다가 다른 생명체를 해하는 일이 생기면 이에 대해 반드시 용서를 구했다. 판도라행성의 나비족은 전기신호를 이용해 식물과 소통한다. 영화 ‘아바타’에서 고통과 기쁨의 감정은 인간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나무들도 자손을 보호하기 위해 종자의 육질에 악취를 만들었고 단단한 껍질을 만들어 자손들을 안전하게 번식시키고 싶어 하였다. 은행나무의 위기는 바이러스로 하여금 인간을 숙주로 할 기회를 높이는 것이고, 우리의  무모한 행동은 호모사피엔스의 멸종으로 이끌지 모른다.

『법정에 선 나무들(크리스토퍼 D. 스톤)』이라는 책의 머리말에 이러한 내용이 있다. 1983년 나무의 소유자가 부주의한 운전자를 상대로 나무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심리하는 과정에서 오클랜드 미시간 카운티 항소법원은 각하판결을 한 원심판결을 유지하는데, 그 판결이유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나무에게 손해는 배상하는 소송을
우리는 결코 보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으리나
불법행위에 대한 청구가 
망가진 나무의 요구에 근거하는 소송
시보레의 부서진 앞부분에 맞서 있는
줄기가 망가진 나무
세심한 배려를
영원히 요구할지도 모르는 나무
우리 세 판사 모두가 플로라의 연인일지라도
우리는 원심의 판단을 지지할 수밖에 없네
_ 김동필 교수  ·  부산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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