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분야의 통섭] 연결성, 빅데이터, 인공지능, 그리고 0 to 1

글_류영렬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 조경.지역시스템 공학부 교수
라펜트l류영렬 교수l기사입력2021-01-17

연결성, 빅데이터, 인공지능, 그리고 0 to 1



_류영렬 서울대학교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교수



2016년, 필자는 연구실의 새로운 로고를 만들기 위해 크라우드소스 플랫폼인 freelancer.com을 이용했다. 190$를 상금으로 걸었고, 2주 사이에 전 세계 모든 대륙에서 225여명이 작품을 제출했다. 연구실 모든 구성원들의 투표를 통해 1등 작품을 선정했다. 우승자는 모로코의 한 작가였다. 필자는 그가 누구인지 전혀 모른다. 당연히 그도 필자를 모른다.

[그림 1] 필자의 연구실 로고 디자인을 위해 사용한 freelancer.com. 전세계 방방곡곡에서 225명이 작품을 제출했다. 상금은 190$이었다.

2016년 당시 이미 29억명이 인터넷에 연결되었으며 현재는 약 46억명이 연결되어 있다. 천천히 생각해보자. 46억명이다. 필자는 디자인에 자질이 전혀 없다. 그래서 크라우드소스 플랫폼을 이용해서 연구실 로고제작을 생각한 것이었고 결과는 대 성공이었다. 디자인에 탁월한 사람이 46억명중에 얼마나 많겠는가. 이는 비단 디자인에 국한되지 않는다. Freelancer.com에 들어가서 보라.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분야의 전문가들이 대기중이다.

연결은 인간이 활동하는 육상에 국한되지 않는다. 미국 항공우주국은 국제우주정거장에서 바라본 지구를 실시간 중계해준다. 국제우주정거장은 해수면에서 대략 400km 지점에 위치해 있다. 서울에서 부산거리이고, 우리가 자동차를 몰고 하늘로 시속 100km로 달린다면 불과 네시간만에 도달할 수 있는 거리다. 물리적 거리는 예상보다 가까울지라도, 지구의 대기를 통과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대기의 질량이 지수함수적으로 감소하는 극한 환경, 그 곳에도 인터넷이 있다. 국제우주정거장의 우주인들은 트위터를 정말 열심히 한다. 필자는 그들의 팔로워다.

[그림 2] NASA Earth from Space(https://www.youtube.com/watch?v=DDU-rZs-Ic4) 국제우주정거장의 실시간 생중계. 우주도 인터넷이 연결되어 있다.

초연결망 시대이다. 이는 빅데이터를 의미한다. 지구에서 우주까지 연결되어 있는 수십억 명의 사람들이 만드는 정보의 양은 상상하기 어렵다. 조경학과에서 보낸 학창시절 떠오르는 추억이 있다. 대학원 선배들이 학부생들을 세미나실에 모아놓고 슬라이드 프로젝터를 통해 경관 사진을 한장씩 넘기며 경관선호도 조사를 하곤 했다. 선호도는 매우 좋음, 좋음, 보통, 안좋음, 매우 안좋음 등의 척도, 혹은 사진에 가장 적합한 형용사 선정 등을 통해 이뤄졌다. 선호도 조사에 참여한 인원들은 많아야 20여명. 구글맵을 들어가보자. 지도와 연동된 수많은 경관 사진들이 있다. 사진들의 클릭수와 경관선호도는 높은 상관관계가 있지 않을까? 클릭수는 십단위가 아니고 천, 만, 그 이상의 단위일 것이다.

계획가의 직감 혹은 일반적인 사람의 이동 패턴에 대해 2008년 흥미로운 논문이 Nature지에 게재되었다(Gonzalez et al. 2008). 10만 개의 핸드폰 이용자들 이동패턴을 정량화해보니 하나의 확률함수로 간단히 설명된 것이다. 우리는 개인들이 고유한 특성을 갖고 있다고 믿곤 한다. 하지만 빅데이터는 그런 편견을 깨곤 한다. 의외로 사람은 단순하다. 위 Nature지 논문의 주저자인 Barabasi 박사가 쓴 다른 글의 제목이 무엇인지 아는가. You’re so predictable(!) (Barabási 2010). 동선계획과 빅데이터의 접점이다.

필자가 속한 학부 4학년 한 학생이 졸업작품으로 AI설계를 진행했다(링크). 몇 가지 기본적인 룰을 정하고, 기존에 제작된 많은 도면들을 이용하여 기계학습시킨 후, 아파트조경설계를 진행했다. 물론 아직 전문 조경가의 수준에는 도달하지 못하지만, 잠재력도 확인할 수 있었다. 위 사이트에 여러 시행착오 그리고 교훈들이 잘 정리되어 있다. 창의력과 전문성이 요구되는 설계가 아닌, 소위 찍어내는 설계의 경우 기계가 해낼 수 있는 날이 멀지 않다고 본다. 물론, AI가 적용될 정도로 시장이 크다면 말이다. 기계와의 공존을 통한 생산성 향상이 필요한 시점이다.

기술과 디자인의 진화도 흥미롭다. 2016년 연구재단에서 주최한 BK21플러스 우수연구단 수상식에 참석했다. 당시 KAIST산업디자인학과 이건표 교수가 특강을 했다. 디자이너인 그의 특강은 필자의 귀를 의심케 했다. Design 3.0 비전으로 내세운 세 키워드가 deep, big, open 이었다. 이것은 현재 과학기술의 핵심 키워드들 아닌가. 당시 해당학과에서 신규채용한 교수는 코딩전문가, 컴퓨터공학자라고 소개했다. 이 교수는 LG전자 부사장으로 재직할 당시의 경험도 공유해줬는데, 디자이너의 역할은 기술에 제한된다고 했다. 아래 그림이 대표적인 예이다. 2G핸드폰에 나타난 다양한 디자인들이 터치스크린 기술 개발로 디자인의 다양성이 없어진 것이다. LG가전에서 만드는 많은 제품들이 벽 안으로 들어가면서 디자인할 곳이 대부분 사라졌다고 한다. 조경과 기술은 어떤 공진화를 할 것인가. 최근 delve (https://hello.delve.sidewalklabs.com/)라는 도시설계 회사의 활동이 눈길을 끈다. 기계학습, 빅데이터, 클라우드 컴퓨팅을 이용하여 최적화된 도시설계 안들을 만든다. 최적화의 기름은 데이터이고, 엔진은 기계학습이다.


[그림 3] 2G 핸드폰과 스마트폰. 디자인의 다양성에 큰 변화가 생겼다(이건표 교수의 발표 슬라이드를 필자가 재구성)

조경의 전문성을 더 깊게 그리고 경계를 유연하게 만들어야 위에 던진 화두들을 품고 갈 수 있다. 필자는 매우 희망적으로 본다. 두 가지 사례를 공유하고자 한다. 필자가 참여한 BK21그린인프라창조인재양성 사업팀(2013-2020)은 조경분야에서 선정된 최초의 BK사업이었다. BK사업은 교육부에서 진행하는 대학원 장학금 지원사업이다. 2012년 제안서 작성 당시 해당과정 대학원생들의 과거 20년간 SCI급 국제저널 실적이 0편이었다. 지난 7년간 사업을 진행하면서 총 129편의 SCI급 국제저널(SSCI, A&HCI포함)에 논문을 실었다. 조경분야의 전문성을 공고히 하는데 큰 기여를 한 사업이었다고 자부한다. 후속으로 진행될 BK21Four 사업은 스마트시티이다. 농생대/환경대학원/공대/법대/공학전문대학원/국제대학원 등이 참여하는 “서울대학교 융합전공 스마트시티 글로벌 융합”과정을 신설하였고 BK에 도전하여 선정되었다. 스마트시티를 그린인프라, 혁신인프라, 스마트인프라, 세 개의 축으로 구성하였고 조경학은 그린인프라를 담당한다. 그간 닦아온 전문성을 바탕으로 이제는 외연을 넓힐 시기이다. BK21Four의 핵심 성과목표는 특허, 기술이전, 산학협력, 지자체협력이다. SCI급 출판은 기본으로 할 사항이다. 과거 7년간 국제저널 출판에 초점을 뒀다면, 이제는 대학을 R&D의 허브로, 그리고 그곳에서 개발된 기술들을 산업과 지자체로 전파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물론 연결성, 빅데이터, 인공지능은 핵심 키워드이다. 필자가 속한 전공의 학부 교과과정에서도 이미 R, Python, MATLAB 등의 프로그래밍을 다루고 있다.

실리콘벨리의 유명한 투자자인 Peter Thiel은 그의 저서 “Zero to One”에서 두 가지 기업의 유형을 제시했다. 첫째는 1 to n이다. 이는 반복복제에 해당한다. 두번째는 0 to 1이다. 이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경우다. 현재 조경은 어디에 해당하는가? 연결성, 빅데이터, 인공지능, 조경에서 0 to 1을 달성하기 위한 길이다.

(참고문헌)
Barabási, A.-L. (2010). You're so predictable. Physics World, 23, 22-26
Gonzalez, M.C., Hidalgo, C.A., & Barabasi, A.-L. (2008). Understanding individual human mobility patterns. Nature, 453, 779-782
글·사진 _ 류영렬 교수  ·  서울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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