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가지 시선으로 풀어낸 덕수궁 속 ‘상상의 정원’ 展

다양한 경계 위에 중첩된 덕수궁을 정원으로 표현
라펜트l김수현 기자l기사입력2021-09-17
서양과 동양, 근대와 전통, 제국과 식민지, 사(私)와 공(公), 정원과 공원…어지럽게 나열되고 대립하는 이 언어들 모두는 덕수궁을 나타낼 수 있다.

조선시대 왕족의 사저(私邸)에서 출발해 임진왜란 당시에는 행궁(行宮)이 되고, 대한제국에서는 황궁으로 불리기도 했다. 대한제국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덕수궁은 누구나 들어 올 수 있는 공원이 됐고, 1963년에 사적으로 관리되고 있다.

덕수궁은 조선 개국 500여 년 후 세워졌기 때문에 지리적 조건과 정원을 포함한 권내 배치가 기존의 궁과 다르다. 특히, 이런 모습은 석조전 앞 기하학적 형식의 서양식 정원에서 잘 보여진다.

한국에서 ‘근대’와 ‘식민’은 서로 얽히고 섞여 암울한 시기를 눈앞에 일으킨다. 공원 역시 그 자장 아래 자유롭지 않다. 일제에 의해 덕수궁 정원은 공원화되고 근대의 파도가 들이닥치면서 식민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장소가 됐다.

정원과 공원의 경계에 아슬하게 자리 잡은 덕수궁은 서울 중심부에서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 이상과 현실, 자연과 인공, 영속과 변화 등 이질적인 수식어들이 교차하는 공간이다. 

네 번째를 맞이하는 ‘덕수궁 프로젝트’에서는 관람객들이 ‘정원’을 매개로 덕수궁이 품은 역사를 돌아보고 오늘날 정원의 가치에 대한 생각할 수 있는 작품들이 준비됐다.


몽유원림(夢遊園林)
이용상X성종상 / 2021, 애니메이션


1907년 일제에 의해 강제로 퇴위한 그는 덕수궁에서 일제의 감시와 견제로 유폐되다시피 했고, 함녕전에서 생을 마감했다. 

‘구본신참’, ‘동도서기’를 통해 근대적인 황제국을 원했던 고종의 꿈은 외세에 의해 좌절됐다. 함녕전 뒤쪽 언덕에 있는 정관현과 그 일대는 고종이 이루지 못했던 꿈과 꾸는 후원(後苑)이었을 것이다.

조경학자 성종상과 애니메이터 이용배는 말년에 함녕전에 고립된 고종의 ‘정관(靜觀)’과 ‘와유(臥遊)’를 구현한다. 

몽유원림은 고종에 관한 기록, 덕수궁 내 전통정원, 전통회화 등을 매개로 부조리한 상황으로 자유롭게 오갈 수 없었던 고종의 현실과 그가 꿈꾸었으나 가보지도 만들지도 못한 이상적인 정원을 펼친다


가든카펫(Gaeden Carpet)
김아연 / 2021, 식물, 목재 등 복합재료


김아연 조경가는 실내에서 사용하는 카펫을 정원의 형태로 만들었다. 그는 고종 일가 사진에 나온 카펫을 재연한 문양과 덕수궁 전통 건축물의 단청 문양을 가든카펫에 반영했다. 

테두리에는 살아있는 식물을 심어서 동양과 서양, 인공과 생명 등 서로 다른 존재들이 만나고 충돌하고 공존하는 하이브리드적 정원을 조성했다. 식물은 전시 동안 자라고 색이 변하면서 탄생과 성장, 죽음이라는 삶의 순환과 역사의 흐름을 상기시킨다.

가든카펫은 고종이 휴식 장소로 사용한 정관헌과 명성황후의 빈전(殯殿)과 혼전(魂殿)으로 쓰였던 경효전(景孝殿) 터에 세워진 덕홍전 사이에 위치한다. 작품이 자리가 가진 역사성은 수평으로 펼쳐진 가든카펫을 고종과 명성황후의 기념정원(memorial garden)으로 보이게 한다.



퓨전 국악 밴드인 ‘잠비나이’에 소속된 김보미는 가든카펫에 영감을 받아 ‘가든카펫(Garden Carpet)’을 작곡했다. 전시회에서 김아연의 가든카펫을 보면서 김보미의 가든카펫 들을 수 있도록 작품 안내문에 곡의 QR코드가 준비됐다.

김보미(of Jambinai), 가든카펫(Garden Carpet)


면면상처(面面相覰): 식물학자의 시설
신혜우 / 2021, 식물표본, 식물세물화 등


근대가 시작하면서 서양 학문과 함께 외래식물이 한반도로 유입됐다. 서양의 학문은 그 동안 사회와 국가의 이데올로기였던 유학(儒學)의 지위를 박탈하고 그 자리를 차지했다.

동경대 교수 나카이 다케노신(中井猛之進)은 1913년부터 30년간 신종 1,000여 종을 포함한 4,000종 이상의 조선 식물을 연구해 그들에게 새로운 이름을 붙였다.

식물학자이자 식물세밀화가인 신혜우의 작품은 ‘대한제국 황실 전속 식물학자가 있었다면’이라는 상상에서 시작된다. 그는 2021년 봄부터 덕수궁에서 발견되는 모든 식물을 채집하고 표본, 그림, 글 등으로 청사 속에 숨어있던 이야기를 작품 속에 담아냈다.




나무를 상상하는 방법
권혜원 / 2021, 오디오 비디오 설치
권혜원 작가는 특정 장소에 내재하는 기록되지 않은 역사나 행위 혹은 사건에 개입된 보이지 않는 틈을 파고드는 작업을 해왔다. 그는 덕수궁에서 정원을 가꿨을 5명의 정원사(사람, 새, 정체가 불분명한 비인간적 존재)를 상상해 동영상으로 풀어냈다.



작품은 1904년 대화재 이후 행각의 주위에 식재된 향나무와 쥐똥나무 간의 대화를 통해, 우리는 과거가 지나간 시간이 아니라 현대인의 삶과 밀접하게 연관됐음을 보여준다. 관람자들은 이곳이 인간과 비인간적 존재를 포괄하는 기억과 감각이 중첩된 공간임을 인식게 만든다.


김명범 / 2021, 스테인리스 스틸과 혼합재로

1980년대에 본격적인 덕수궁 정비사업이 진행되면서 일제감점기부터 화사한 모란화단이 있던 즉조당과 준명당 앞에 모란 대신 창경궁에서 가져온 괴석이 꾸며졌다. 

동아시아 3국 정원에서 괴석은 산수심곡(山水深谷)의 현현이자 영원불멸의 상징으로 간주됐다. 특히 세 개의 괴석은 신선이 산다는 봉래(蓬萊), 방장(方丈), 영주(瀛州)의 삼신산을 나타낸 것으로 불로장생을 꿈꾸게 한다.

김명범 작가는 또 다른 불로장생의 상징인 사슴을 괴성 옆에 두어 일종의 선계(仙界)를 선보인다. 주기적으로 떨어지고 다시 자라나며 생성과 소멸, 재생이라는 생명 주기를 지닌 나무처럼 작품은 삶과 죽음의 순환에 근거한 풍요와 변신을 은유한다. 


눈물이 비처럼, 빛처럼: 1930년대 어느 봄날
윤석남 / 2021, 나무에 아크릴


구한말 근대기 여성은 서서히 사적(私的)공간을 벗어나 공적(公的)공간으로 나아가기 시작한다. 윤석남 작가는 덕수궁의 공원화로 인해 극히 소수만 접근할 수 있었던 궁궐이 개방된 공공장소가 된 것을 근대 초기 중요한 사건으로 포착하고 당시 여성이 처했던 상황을 등치 시킨다. 



작가는 폐목을 잘라 표면을 다듬은 후 그늘에 말려 밑칠하고, 그 표면에 전근대와 근대를 살아온 이름 없는 조선 여성들의 얼굴과 몸을 명쾌한 윤곽선과 색으로 그려냈다. 그의 손을 거쳐 폐목은 형태를 얻었고, 새로운 시대를 마주한 여성들의 의지와 기대를 담아낸다. 


그림자 정원: 흐리게 중첩된 경물 
이예승 / 2021, 증강현실, 16채널 영상, 거울 라이팅 등

구곡소요(九曲逍遙)
2021, 증강현실 디지털프린트 등
미디어 아티스트 이예승은 정원에서의 소요유(逍遙遊)가 디지털 매체의 변화, 자유, 불확실성, 유동성, 상호작용, 소통, 감각의 확장, 초월 등의 가능성과 닿아 있음을 발견한다. 

덕수궁을 방문한 이들은 천천히 거닐다가 정원 구석구석에 특이한 형태의 오브제들을 발견할 수 있다. 여기에 부착된 QR코드를 스마트기기로 태그하면 AR로 구현된 상상의 정원이 펼쳐진다. 18~19세기 조선의 문인들이 글과 그림을 통해 상상의 정원(의원 意園)을 만들었고, 몇 백년 후 작가는 전기 신호로 가상의 정원을 만들어낸다. 



관람객이 덕홍전에 들어서면 밖에서 보았던 가상의 이미지를 실물과 영상으로 다시 만날 수 있다. 모니터, 거울, LED 조명 등으로 구성된 원형의 구조물 안에 여러 겹의 실재와 가상이 만화경 같이 펼쳐진다. 


일보일경(一步一景/驚)
지니서 / 2020-2021, 구리, 스테인리스 스틸과 혼합재로


중화전과 석조전은 덕수궁의 전통과 근대의 양축을 맡고 있다. 1911년 두 공간은 충돌했고 석조전 앞 대정원을 완성하기 위해 중화전 행각이 훼철됐다. 지니서 작가는 이곳에서 일어난 출돌에 주목하고 이를 동과 서, 전통과 근대의 ‘다름’과 ‘차이’로 보지 않고 대신 ‘간격’으로 간주하고 서로를 마주세운다.

작품의 기묘한 구조는 풍경(風景)에 대한 재인식을 만들고, 거닒과 멈춤(一步)에 따라 변하는 풍경(景)과 놀라움(驚)을 보여준다. 

장대에 메달린 구리 구조물은 관점에 따라 접히고 펼쳐지고, 2차원에서 3차원이 되고, 직선에서 곡선이 된다. 이 과 과정에 귀를 기울이면 바람에 움직이는 풍경(風磬)소리를 들을 수 있다.


홍도화(紅桃花)
황수로 / 2021, 천연염색한 비단, 모시, 송화가루, 매화가지 등
조선시대 궁궐에서는 생화를 꺾어 실내를 장식하는 것을 금했다. 금기에는 생명을 가볍게 보지 않고 왕의 위엄과 길상, 장수, 영원불멸을 꿈꾸던 왕조의 염원이 들어있다. 궐에서는 대신 색과 향을 살려낼 수 있는 화려한 조화(造花)를 만들어 궁궐을 장식하고 궁중 의례와 향연에 사용했다. 



무형문화재 황수로는 고종 황제의 즉위 40주년을 기념하고 대한제국 황제 즉위 6년을 경축하는 임인년 진연(進宴)을 기록한 의궤를 바탕으로 고종에게 헌화된 채화 가운데 왕의 권위와 위용을 상징한 도화(桃花)를 전통적인 기법으로 제작하되, 현대적으로 재구성해 선보인다. 

명주, 모시, 밀납, 송화가루, 아교 등 천연재료를 사용해 만든 채화는 인간이 자연에 순응하며 그 리듬에 맞춰야 하는 존재임을 전한다. 또한, 처음부터 끝까지 수작업으로 이루어지는 화장의 작업은 ‘노동’이 삶의 필연성을 극복하고 세계의 영속성에 참여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글·사진 _ 김수현 기자  ·  라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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