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시선] ‘브릭웰(벽돌우물)’이 전통을 담은 방법

이진욱 논설위원(한경대학교)
라펜트l이진욱 교수l기사입력2021-09-26
‘브릭웰(벽돌우물)’이 전통을 담은 방법




_이진욱 한경대학교 식물자원조경학부 조경학전공 교수



브릭웰은 SoA(Society of Architecture)의 이치훈 소장과 강예린 교수가 건물을, Loci(라틴어로 장소)의 박승진 소장이 조경을 설계했다. 두 스튜디오의 이름에는 공간의 사회성과 대지의 역사성에 대한 고민이 담겨있다. 그래서 ‘브릭웰brickwell(벽돌우물)’이라 이름 붙인 공간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13년여 전, 논문 지도를 받기 위해 박승진 소장님을 만나러 신사동 가로수길로 가던 설레는 마음으로 지난여름 통의동에 있는 브릭웰을 찾았다.


통의동 필지와 백송터 이야기

브릭웰은 통의동 35-17번지에 자리한다. 35번지 일대는 조선 시대 ‘영조’가 왕이 되기 전에 머물던 창의궁 터로써 하나의 큰 필지였는데, 일제 강점기에 ‘동양척식주식회사’ 사택이 들어서면서 대지 내 도로가 생겨 필지가 분화되었다. 이후, 분화된 크고 작은 필지에 주택들이 들어서게 되었고, 통의동 일대는 지금과 같은 좁은 골목길이 형성되어 다층적 시간의 풍경을 간직하게 되었다. 지번 ‘35-17’은 이러한 대지의 기억을 담고 있다.

한편 브릭웰 서쪽 골목길엔 밑동만 남은 커다란 백송이 있다. 이 나무는 우리나라 백송 중 가장 컸으며, 그 수형이 아름다워 천연기념물로 지정됐었다. 이 백송은 1990년 태풍 로사가 왔을 때 쓰러졌는데, 정부는 청와대 인근의 노거수가 죽는 것이 불길하다며 대책위원회를 조직하고 백송 주변으로 경찰을 배치하여 주변을 감시하는 등 노송을 살리기 위해 나섰다고 한다. 주민들 또한 백송을 살리기 위해 해외에서 그 방도를 배워오는 등 동네의 상징목을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주민들은 함께 백송 아래에서 음식을 먹고, 그늘 밑에서 쉬고, 솔방울 씨를 까먹는 등 일상을 공유했다. 지금은 백송의 그루터기와 백송을 그리워하며 새로 심은 백송 세 그루가 과거의 기억을 붙잡고 있다.

수선전도(1861)에 표기된 창의궁(彰義宮) 터 ⓒ유영호 

폭우로 쓰러질 당시(1990)의 통의동 백송 ⓒ조선DB

백송의 죽음 20주년(2010)을 맞이해 고사를 지내고 있는 주민들 ⓒ최호식


우물로 치환된 대지와 주민의 기억

전통적으로 우물은 마을의 중심에 있었으며, 만남과 소통의 장이었다. 우리나라는 농경사회였기 때문에 물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했는데, 우물에서 식수를 해결할 수 있었기에 우물을 중심으로 집이 모였다. 마을을 의미하는 한자 동(洞)은 물(水)을 함께(同) 사용하는 뜻을 담고 있다. 이러한 우물은 물을 마시고 빨래를 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의 만남의 장으로 주민들의 유대가 형성되는 장소였다. 백송터는 주민들이 이웃과 함께 대소사를 나눴던 장소로서 마을의 구심점이자 소통의 장소였다.

우물을 보고 있자면 그 형상적 특성으로부터 주술적 신비감이 든다. 땅 밑으로 뚫린 동공처럼 알 수 없는 신비의 세계가 연결된 거 같다. 우리가 발 딛고 있는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지만, 그 속에 하늘과 해와 달도 담아내어, 예로부터 우물은 인간 세상과 신성 세계의 연결자로 인식되었다. 우물의 신성성은 중요한 행사와 제의를 통해 기원을 표출하도록 했다. 그 신화적 이미지는 300년을 살았던 노거수 백송의 정령과 닮아있다.

이렇게 브릭웰의 우물은 백송터를 둘러싼 기억을 소환해준다. 그래서 브릭웰의 우물, 이 원형의 공간은 따뜻하고도 경건하게 다가온다. 수면에 비친 자연의 모습은 신성하며, 사람들의 모습은 온유하다. 우물 안에 있으면 꿈을 꾸는 듯하고, 밖으로 나가면 하늘이 보일 듯하다. 


김홍도作 우물가


빈 공간이 만드는 공간감

백송터 골목길에서 브릭웰로 들어가는 문은 활짝 열려있다. 1층을 비워낸 공간은 백송 터를 시각적으로 연결 지음으로써 과거와 현재의 시간을 접붙여 주었다. 비워진 중정 사이로 힐끗힐끗 보이는 거리를 두며 서 있는 네 그루의 야광나무가 시간과 공간의 깊이감을 더하고 있다.

건물 내부로 들어서자 수평으로 열린 공간이 외부의 경관을 담아내어, 중정의 야광나무와 백송의 만남을 푸른 하늘 아래에서 소개해주었다. 건물 내부에서 연결된 우물, 중정의 램프로 발길을 옮기니 시선은 통의동에서 인왕산으로, 인왕산에서 중정으로 이어지며 더 깊은 공간의 깊이를 느낄 수 있었다. 자연을 품은 중정의 열린 공간 때문일까. 외부 공간이 실내의 일부로 느껴져 공간이 심리적으로 더 넓게 인식되었다.

공간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비워진 공간 테두리에 회랑을 두었다. 건물 내외부로 회전하고, 분절하고, 돌아가는 동선을 통해 이동 시간을 늘리고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하여 작은 공간이지만, 더 넓게 느껴지고 많은 기억을 남길 수 있도록 하였다.


ⓒSoA(societyofarchitecture.com)


백송터에서 브릭웰로 들어가는 입구. 밑동만 남은 백송의 모습이 보인다.ⓒ이진욱


SoA(societyofarchitecture.com)


우물 안에서 바라본 하늘의 모습 ⓒ이진욱


백송터에 심은 백송과 브릭웰 중정의 야광나무가 마주하고 있다 ⓒ이진욱


브릭웰에서 바라본 인왕산의 산세와 하늘 ⓒ이진욱


사람, 공간, 자연의 조응

브릭웰에서 자연과 건축의 관계는 계속해서 변화한다. 백송과 건물이 마주하며 서로를 연결하는 관계에서, 건물의 중정과 내부에서 하늘, 바람, 빛의 자연을 포함하는 관계로, 이내 건물의 지붕 위에서는 자연이 건물을 품는 관계가 된다.

사람과 공간, 그리고 자연의 관계 맺음은 공간 곳곳에서 발견된다. 중정의 수직적 공간과 건물 내외로 넘나드는 수평적 공간의 조우는 다양한 각도와 위치에서 경관을 만나 다채로움을 선물한다. 우물 속 높이 솟아오른 야광나무는 각 층에서 자신의 모습을 한껏 자랑하며 거친 얼굴을 모두 보여주었다. 투명한 유리창과 미색의 벽돌을 얇게 썰어 엮은 입면은 자연과의 교류를 적극적이면서도 자유롭게 만들었고 바닥에 빛과 그림자를 투영했다.

브릭웰의 실내외를 걸으며 눈 안에 들어오는 주변 경관을 통해 건물과 내가 위치한 장소의 관계를 인지하게 되었다. 주변의 인왕산과 북악산이 나를 감싸고 백송의 모습이 보이는 통의동의 좁은 길이 중첩되면서 서울의 역사성과 도시의 조직이 공간의 지리적 위치와 함께 인지되었다. 


중정의 수직적 경관과 건물의 내외부를 순환하는 수평적 공간 ⓒ이진욱


벽돌 사이를 통해 들어오는 다채로운 빛과 야광나무 ⓒ이진욱


중정의 1층 모습 ⓒ이진욱


그들이 전통을 담은 방법

동양 문화에서는 비움을 강조해 왔으며 자연과 사람의 관계를 중요시했다. 빈 공간을 단순히 비어있는 무(無)가 아닌 공(空)의 개념으로 받아들여 추상적이고 감각적인 요소로 다뤘다. 하늘과 땅, 사람의 관계를 통해 만물의 순환을 설명하고 자신과 영원을 돌아봤다. 브릭웰에는 이러한 사상과 가치가 담겨있다.

SoA와 Loci의 인터뷰를 보면, 설계 시 공간과 백송터와의 연계를 가장 중요하게 고려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그들은 대지의 기억과 맥락을 담기 위해 과도한 언어와 진부한 개념을 사용하지 않았다. 기억의 대상을 치환하여 마음을 달래주었으며, 과거와 현재의 시간을 병치함으로써 과거를 지우거나 현재를 가두지 않았다. 전통/기억을 전하겠다는 굳은 의지의 몸짓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그래서 더 현대적이고, 더 동양적이며, 더 사색적이다.

통의동에 방문했던 지난여름, 브릭웰에서는 휴일을 주제로 한 유명 사진작가의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코로나로 휴가를 떠나지 못했던 많은 이들이 여행에 대한 갈증을 사진과 공간을 통해 해소하고 있었다. 브릭웰을 떠나기 전, 여행을 마무리하는 것 같은 아쉬운 마음에 우물에 다시 들어갔다. 골목길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우물 속 물은 조각나고 나무의 잎은 흔들렸다. 고개를 드니 야광나무의 거친 줄기와 몽글한 구름 하늘이 제법 잘 어울렸다.
글·사진 _ 이진욱 교수  ·  한경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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