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김포장릉 아파트 이대로는 안 된다

글_이창환 상지대학교 명예교수(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 본부회원 및 (전)한국위원회 집행위원)
라펜트l이창환l기사입력2021-12-20
김포장릉 아파트 이대로는 안 된다




_이창환 상지대학교 명예교수,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 본부회원
및 (전)한국위원회 집행위원,
(사)한국전통조경학회 고문



세계인이 함께 보존하고 함께 향유하기로 약속하고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한 조선왕릉이 최근 들어 난개발로 시끄럽다. 청와대 국민청원에도 20만이 넘는 국민들이 건물 철거 등을 주장하며 서명했으니 관련 부서 등 관련자들은 고민이 말이 아닌듯하다. 조선왕릉 세계유산등재에 참여했던 필자도 많은 아쉬움에 몇 자 적어 본다. 

인류는 많은 장묘문화에서 자국의 유산 가치를 찾고 검증하고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이집트의 피라미트, 인도의 타지마할, 중국의 황릉 등이다. 

조선왕릉은 한국인의 자연관과 조영관 그리고 유교적 예법 등이 잘 반영된 한국의 유산으로 가치를 인정받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즉 조선왕릉 18개 지구 40여기의 능원에는 조선의 518년간의 제례문화는 물론 건조물과 조각 그리고 풍수적 자연관이 유산적 가치를 갖고 있는 곳이다. 특히 이곳은 한국인의 조상에 대한 사상관과 자연관이 잘 반영된 곳이다. 동아시아의 모든 능원조영의 기본 틀은 자국민족들이 갖고 있는 자연관과 사상 그리고 통치관 등이 잘 반영되어 나타남을 인정받아 대부분의 많은 능원이 세계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중국의 명나라와 청나라 황제릉, 베트남의 후에이 능원, 일본의 전방후원 능원 등을 들 수 있으며 우리 민족의 고구려, 백제, 신라, 통일신라, 고려 등 각 시대별 대부분의 능원이 세계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최근에는 가야의 능원을 추진 중에 있기도 하다. 그만치 능원은 한민족 한시대의 문화를 함축하는 유산으로 조선왕릉은 5,000년 우리 민족문화의 함축된 장묘문화로 평가받고 있다. 한시대의 죽음의 공간이며 그 시대의 통치철학과 사상, 과학 그리고 제례문화 등 사후 영혼의 세계를 그리는 인간 삶과 죽음을 모아놓은 함축물이며 이상향의 공간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조선왕릉 40기는 518년간의 조선의 오랜 역사와 조영관을 읽을 수 있는 제례공간으로, 각 능원의 역사적, 경관적, 조각적, 건축적, 조영적 가치 등을 인정받은 연속유산이 되었다. 유네스코는 2009년 조선왕릉의 세계유산 등재시 북한의 제릉과 후릉 그리고 연산군/광해군묘 등의 유산적 가치를 살펴볼 것과 향후 함께 세계유산에 등재하는 방안 등의 검토도 고려해 볼 것을 권고하기도 했다.

위와 같은 조선왕릉 유산의 연속적 가치에서 김포장릉은 여러 정치적 이해관계에서 광해를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 인조가 자신의 왕권과 정당성 그리고 풍수적 뒷심 왕권을 얻기 위해 아버지 원종을 추존왕으로 추대하고 길지를 찾아 이곳으로 옮겨 조성한 곳이다. 최근에도 대권도전자들이 조상의 묘를 좋은 터를 찾아 이장하고 천장을 한다 하니 당시대는 더욱 잘 가꾸었을 것이다.

김포장릉은 대동여지도 등에 백두대간으로 연결된 남한정맥을 근간으로 하는 백두대간의 속리산과 광교산-청계산-관악산 그리고 계양산을 잇는 정맥(녹지축)을 주요 정맥으로 보고 있다. 즉, 계양산을 종조산(宗祖山)으로 하고 만수산과 금정산 그리고 해화산(主山;김포장릉산)으로 하며 한강을 뒤로하며 맥을 돌려 다시 조산(朝山)을 계양산으로 하는 독특한 한국의 자연풍수관을 볼 수 있는 대표적 공간이다. 이곳을 풍수가들은 회룡고조형(回龍顧祖形;조상의 용맥을 바라보는 형국)이라 한다. 이런 곳은 한강의 이남에 조성된 헌릉과 인릉, 강남의 선릉과 정릉, 그리고 여주의 세종 영릉 등이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의 능원은 일제강점기와 도시화의 개발 압력 속에 난도질 되어 그나마 잘 남아 있던 곳이 이곳 김포장릉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홈피에 제시된 조선왕릉의 도면을 보면 풍수적 외사신사 내사신사의 그림이 도저히 그려지지 않는다. 일제가 우리민족 말살의 난도질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김포장릉은 정조때(1788년) 작성해 놓은 『춘관통고』등에 능역을 “북으로 해화산(장릉산 추정), 동으로 부정산, 서로 금정산, 남으로는 계양산으로 하는 주위둘레 10리”로 하여 다른 능역 보다 다소 적은 규모로 하며 중요 사신사는 보존해 왔던 곳이다. 즉, 인조이후 300여 년간 가꾸고 지켜온 김포장릉 숲과 역사경관이 아파트단지로 앞이 꽉 막히는 감옥이 되었다. 동아시아의 대부분의 능원은 자국의 자연관과 풍수관을 근간으로 조성되는 것이 기본이다. 따라서 이들 나라의 능원은 대부분 내외사신사(좌청룡,우백호,남주작,북현무)가 세계유산 권역에 등재되어 있다. 조선왕릉은 이런 사신사를 유지하는 곳이 거의 없다. 일제가 500년 아름드리 왕릉숲을 동양척식회사 등을 통해 수탈 작업을 했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 이전 약 1억여 평의 500년 된 수도권 왕릉숲(세조의 광릉수목원 참조)이었던 것을 일제가 능침과 재실터만 남기고 수탈하였다가 헐벗은 산으로 이왕직에 넘긴 것이 2,500여만 평 정도였다. 이것을 근대화 과정에서 일부 훼손하고 전체 450여만 평만이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영월 단종릉 면적제외). 그래서 세계유산센터 홈페이지에는 온전한 사신사가 아닌 난도질한 상태로 등재된 곳이 대부분이다. 내용을 모르는 외국의 풍수경관론자들은 이상하게 보고 있다. 등재과정에서 “훼손된 역사도 유산의 가치를 갖고 있으며 일제침략과 많은 개발 압력 속에 그나마 중심시설을 보존하고자 하는 국민적 정신이 세계유산감이라며 나머지 남은 유산은 지속적 잘 보존할 것을 권고한다.”는 이코모스 사무총장 등의 코멘트를 얻어 등재되었다.


정조 때(1788년) 작성된 춘관통고 11권 장릉(章陵)편(四標東釜鼎山西金井山南桂陽山北海花山周廻十里; 김포장릉의 경계를 동으로 부정산, 서로 금정산, 남으로 계양산, 북으로 해복산으로 하고 있다.)

검단신도시는 400여 년간 왕실에서 지켜 온 세계유산 왕릉 숲에 신도시를 계획하였다. 이해가 안 된다. 우리의 3대 곡창지대였던 이곳 김포평야에 신도시를 조성한 이유를 그리고 이곳의 토지의 역사를 잘 알고 있을 부서(국토부, 인천시, 문화재청 등) 등에서 이곳에 고층아파트를 짓도록 허가했는지! 이곳은 일제가 난도질하고 해방 후 넘겨받고 나서 1960년까지만 하더라도 74만평이었으나 15만여 평만이 등재되었다. 즉, 80%가 이미 사유지화 되어 없어진 상태이다. 그러나 역사경관적 가치는 다른 곳보다는 그런대로 잘 보존된 곳이었다. 많이 아쉽다. 일제는 조선시대 육백년 천년의 숲을 송두리째 벌채하여 우리민족의 정기를 말살하고 청일전쟁 등에 쓰였던 현장이 이곳이다. 우리 정부와 지자체는 유럽의 베르사이유, 보르뉴 숲 등의 가치에 전 세계가 열광하는 이즈음에 아직도 개발업자들에 놀아나는 것이 아닌지 잘 돌아 보아야 한다. 이런 역사적 가치를 갖은 공간에 신도시를 만들고 경관계획도 하지 않고 신도시를 계획하였다면 심각한 국토관리 아닌가?


일제강점기 왕실재산 수탈을 위한 파주장릉 도면(1918년봉분, 재실, 연지만을 잘라 이왕직재산으로 하고 나머지는 동양척식회사 등이 수백년 숲을 도벌해 청일전쟁 등에 사용되었다.) 


서삼릉 세계유산구역. 일제가 난도질하여 생겨난 우리의 아픈 조선왕릉이다. 사신사는 흔적도 없고 능침등만 있으며 골프장과 목장으로 변신한 민족 말살의 흔적(2009 세계유산등재 신청서 참조)


토지조사원부(1918년 추정; 김포장릉 일제강점기 왕실토지 수탈 근거 자료)


풍수경관(경관고고학) 지역을 왜 보존해야 하는가?

조선왕릉의 경관조영적 특성은 능주인 왕과 왕비의 무덤에서는 앞의 전경관이 확 트이게 개방감을 주었으며 참배객에게는 능침의 신성함과 위엄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정자각 등으로 폐쇄된 공간으로 조영하였다. 이러한 조영기법은 중국과 베트남 등에서 봉분(보정;寶頂)을 많은 건물로 막아 능침을 가리는 조영기법과 다른 특징이 있다. 즉 김포장릉의 능침에서는 확 트인 멀리 조산(계양산) 등을 두루 살피게 조영되며 홍살문 등에서는 능침이 가리어 신비감과 신성함을 강조한 것이 특징이다(탁월하고 보편적 가치;OUV Outstanding Universal Value).


능원의 경관 처리 기법(세계유산 등재 신청서(한글본))
 

조선왕릉 경관 분석도(1999, 이창환 논문)


방법은 없는가? 있다.

도시를 만들려면 주택지, 사업지, 도로, 녹지 등이 들어간다. 반드시 들어가는 것이 숲길, 물길, 바람길(GREEN-BLUE-WHITE NETWORK) 등이다. 공원이며 녹지이며 저층지역을 이곳에 배치하면 될 일이었다. 수백만평의 신도시를 개발하면서 세계유산 문 앞에 고층을 짓는 심보는 무엇인가? 필자의 많은 답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많은 왕릉과 동아시아의 왕릉 어느 한 곳도 이와같이 능원 앞을 절벽을 만든 곳은 한 곳도 없다. 일본의 우리 문화유산 말살을 위한 난도질과 무엇이 다른가? 그러면서 우리는 일제 만행을 규탄할 자격이 있는가?

책임이 누구든지 하루 빨리 청와대와 해당부서 및 지자체 등은 억울하게 피해를 입고 밤잠을 못 이루는 입주민을 위해 검단의 역세권 등에 부지를 마련하여 주택을 제공하고 오천년 우리 민족의 자긍심의 공간으로 역사와 국민 안식의 숲이 되어 온 조선왕릉을 지키고 지속적으로 보존해야 한다. 아파트는 50년 후면 다시 지어도 되지만 세계유산은 천년만년 인류가 지속적으로 보존하고 관리하기로 한 전 인류와의 약속이며 책무 아닌가? 국내법의 법적인 공방 이전에 선의의 피해자 보호와 전 인류와 약속한 세계유산의 탁월하고 보편적 가치 보존이 우선이다. 

이차에 세계유산 보존 관련 한마디 더하면, 전 세계인류가 함께 보존하고 관리하기로 한 세계유산이 우리나라 지도에 제대로 표기되어 있지 않다. 이곳 김포장릉은 어느 지도에도 세계유산 표기가 되어 있지 않다. 강남의 선릉과 정릉도 삼릉공원으로 표기되어 있다. 일제강점기 잘못된 표기를 아직도 그대로 쓰고 있다. 어떻게 세계인이 함께 찾아 보존하고 함께 향유할 수 있겠는가? 우리나라 정부의 세계유산에 대한 인식과 수준이 이 정도인 것 같아 아쉽다. 

지금 이 순간에도 태릉, 창릉, 왕숙천(동구릉), 융릉과 건릉 지구 등이 난개발 그림으로 그려지고 있지는 않은지 두렵다. 하루빨리 정체성 있는 국토 관리를 위한 경관관리기본계획이 마련되어야 한다. 특히 삼천리금수강산이었던 우리의 역사경관의 가치를 잘 살려야 한다.

최근의 몇몇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경관적 가치 등을 상실하여 삭제됨을 잘 인식해야 한다. 녹지와 경관에 대한 가치는 나날이 높아가고 있다.
글·사진 _ 이창환  ·  상지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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