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한국조경 50년 : 더 세컨드 데이(The second day)

글_조세환 한양대 도시대학원 명예교수
라펜트l조세환 명예교수l기사입력2022-05-10

한국조경 50년 : 더 세컨드 데이(The second day)




_조세환 한양대 명예교수
 (사)한국조경학회 고문
(재)환경조경발전재단 고문
(사)한국조경협회 고문


“현재 우리나라는 조경의 건설·시공이 토목이나 건축공사의 일부로 이루어져 전문화되지 못함으로써 자연파괴를 초래하는 사례가 많았으며, 자연과 조화된 조경의 장기적 연구개발과 외국의 전문적인 연구의 활용이 시급했기 때문에 개원하게 되었다”(무역 통신, 1974.6.7일자 기사). 이 기사는 1974년 당시 이낙선 건설부(오늘 날의 국토교통부) 장관이 ‘한국종합조경공사’ 창립을 공포하며 했던 말이다. 오늘날 이 기사를 접할 수 있다면 우리 조경인들은 얼마나 기뻐할까?

2022년 올해로 한국조경 50년을 맞는 우리는 1974년의 이 오래된 기사를 대하면 참으로 가슴에 울림이 크다. 오늘날 우리는 중앙·지방정부의 장이나 관련 공무원, 국회의원, 건축, 도시, 임학 등 타 분야 사람들에게 조경분야와 좀 협력하자고 읍소 아닌 읍소를 하고 하소연 아닌 하소연을 하며 또 볼멘 목소리를 내 봐도 그 결과는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조경분야의 현실 그 자체이다. 하지만 한국조경 50년의 출발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음을 생각하면 잠시라도 신이 난다.

한국조경 50년이 출범하던 1972년을 되돌아보면 그 당시에 우리 조경분야(당시엔 조원 기반의 관상수업 분야가 존재)를 육성해 달라고 애타게 조르거나 하소연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자연애호 DNA를 가진 대통령(박정희)이 나서서 최초의 조경세미나를 개최하고(https://www.lafent.com/inews/news_view.html?news_id=130592 참조), 약 보름 뒤인 5월 10일에는 대통령 비서실에 재미 시카고 녹지보호청의 조경담당이었던 조경가 오휘영(현 한양대 명예교수)을 조경건설비서관으로 임명하였다(그림1 참조). 요약하면 중앙정부가 주체적으로 조경 학·산·관 등 전 분야에 걸쳐 관련 제도와 조직을 만드는 등 조경분야를 정책적으로 도입하고 육성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본 칼럼의 주제인 ‘더 세컨드 데이’(The second day)는 1972년 4월 18일 대통령이 주최한 우리나라 최초의 ‘조경에 대한 세미나 개최’ 사건에 이어 한국조경을 주도적으로 육성해 나갈 수 있도록 대통령 경제제1수석비서실에 ‘조경건설비서관’이 임명된 두 번째 사건의 날을 의미한다. 재미 조경가로서 ‘조경건설비서관’에 임명된 그는 국토개발과 관련한 각종 업무에 대통령의 ‘수석비서관급’으로 ‘조경’이라는 이름으로 보고서를 올리고, 조경 관련 지시를 받으며 대통령 비서실 및 중앙정부 내 ‘조경’의 영향력을 확산시켜 나가기 시작한다(졸저 ‘한국 현대조경 태동의 역사’, 2018, 기문당 참조).

오늘날 조경분야에 스탠스를 잡고 밥 먹고 사는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이런 현상의 발생을 설명하려면 ‘감나무에서 떨어진 감’이라는 표현?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의 더 극적인 표현이 필요할 것 같기도 하다. 아마도 ‘하느님이 보우하사 뜻하지 않은 우연이 발생하여 조경분야가 창설되어...’, 이 정도가 적합하지 않을까. 물론, 이때쯤엔 조경(Landscape Architecture)이라는 용어가 농업학교 ‘조원’이라는 책에 조원의 유사 개념으로서 현대적 용어로 소개되는 등 전혀 생소한 용어는 아니었지만, 여전히 일제강점기의 조원 시절이었고, 현대적 개념의 조경이 자리 잡고 있는 시절은 아니었다.


그림1. 대통령 비서실 조경건설담당비서관 임명 기안지_대통령의 사인이 있다. 5월 2일에 기안하고 5월 10일에 임명 결재를 받는다.

오늘은 올해로 한국조경 50년이 되는 1972년 5월 10일의 그날(The Day)이다. 어느 한 재미 조경가가 한국의 대통령 비서실에 조경건설비서관으로 임명되어 한국조경의 교육, 산업, 관계 등 모든 관련 제도를 행정 실무적으로 기획·실천·감독하며 조경분야를 육성하기 시작한 바로 그날이다.

조경분야 창설과 관련하여 그가 기획하고,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 수행한 많은 흥미 있는 일들  중에 우리 조경분야 창설과 육성에 가장 직접적이고 강력하게, 또 인상적으로 다가오는 굵직굵직한 몇 가지를 들자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1972년 12월 19일 최초의 ‘대학 조경학과’(서울대, 영남대) 및 ‘서울대 환경대학원 설립인가’, 같은 해 12월 29일의 ‘한국조경학회’ 창립, 1974년의 ‘한국 종합조경공사’ 설립, 동년에 건설업법 개정을 통한 조경공사업 면허제도 구축, 국가기술 자격법과 기술용역육성법 개정을 통한 조경기술자 육성 및 전문용역업 분야 신설 등이다. 모두 교육과 산업 등 조경 인력 육성 및 조경 먹거리 만들기 관련 제도들이다.

뿐만이 아니었다. 총무처를 통해 ‘조경’이라는 책자를 만들어 전국 시·도·군에 배포하여 조경을 알리고 시행토록 하였다. 또 국무총리 훈령을 통해 토목, 건축과 분리된 설계·시공이 가능토록 하였고, 조경사업비를 별도 예산 책정토록 계상하였으며, 정부 및 산하 기관의 조경사업을 한국조경공사가 전담 발주토록 하였다(이 공사는 1981년 민영화를 통해 조경업이 민간분야에 전방위적으로 확산되어 나가는 밑거름이 되었다). 공장조경, 학교조경 등 관련 경진대회를 여는 등 행정적 조치와 함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함으로써 조경의 신학문, 신산업, 신행정의 시대를 열어갔다. 

그의 역할은 또한 이처럼 하드웨어적인 것에 머물지 않았다. 서울대 환경대학원 및 조경학과 교수들은 물론 관상수업계의 사람들에게 조경을 이해시키기 위해 국비로 각각 단체별로 한 달간에 걸친 미주 및 유럽지역 조경 답사를 시키는 등 소프트웨어적인 국내 네트워크 시스템 구축 정책도 추구했다. 이처럼 1972년 4월 18일 개최된 대통령 주최 조경세미나에 이어서 5월 10일에 대통령 비서실에 한 사람의 조경가가 조경건설비서관으로 임용되는 사건은 한국조경이 거대하고도 먼 미래를 향한 현대조경 창설에 결정적 영향을 끼치게 되는 날이 된다.

지금까지 서술한 팩트에 근거해 추론해 보면 한국조경은 1970년 8월 어느 날 자연애호가 대통령 박정희와 재미 조경가 오휘영의 우연한 만남으로 시작되어 첫 번째, 1972년 4월 18일, 대통령 주최의 조경에 대한 세미나 개최와 두 번째, 대통령 비서실에 조경건설비서관 임명 등을 통한 필연적 만남에 의해 창설되고 전개돼 나갔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결국 이 두 날은 우리가 기억하고 기념해야 할 한국조경 역사의 기념비적 날이라 하여도 무방할 것이다. 

올해는 미국조경의 아버지 옴스테드 출생 300주년이 되는 해다. ASLA가 주축이 되어 옴스테드 탄생 300주년 기념행사를 추진하는 등 다양한 행사가 있었다고 한다. 미국조경의 창설과 옴스테드의 관계에 비추어 볼 때 한국의 경우 원예가였던 옴스테드와 같은 전문가 한 사람이 기여한 것이 아니라 전술한 두 사람이 한국조경창설에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두 사람의 관계를 중심으로 한국조경 창설과 발전의 인과관계를 한 줄로 표현하면 ‘한 줄기 빛과 프리즘 그리고 레인보우’(A Light, Prism and rainbows)의 논리로 풀이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자연애호 DNA를 가진 한국의 한 대통령이 한 줄기 조경의 빛(A Light)으로서 오휘영이라는 조경가를 조경건설비서관으로 임명함으로써 조경의 프리즘(Prism) 역할을 하도록 만들었고, 한 줄기 빛이 조경의 프리즘을 통과하여 마침내 무수한 색상의 조경 무지개(Rainbows)―오늘날 우리 한국의 수많은 조경인들―를 피게 만들었다고 비평할 수 있다. 

대통령 비서실 조경건설담당비서관 오휘영(현 한양대학교 명예교수)이 귀국할 때 그와 함께 근무했던 미국 시카고녹지보호청의 동료들이 그에게 의미심장한 글을 담은 책, Landscape Artist in America: The Life of Jens Jensen을 선물하였다. 그 책에는 “어느 날 대한민국 발전을 위하여 귀하의 위업에 대한 기록이 옌스 옌센(Jens Jensen)의 책과 같은 저서로 남겨지길 기원합니다”라는 축원의 글과 서명이 남겨져 있다(그림2 참조).


그림2. 조경가 오휘영이 대통령 조경건설비서관으로 귀국시 시카고 녹지보호청 동료들이 그에게 선물한 옌스 옌센의 저서. “어느날 대한민국 발전을 위하여 귀하의 위업에 대한 기록이 옌스 옌센(Jens Jensen)의 책과 같은 저서로 쓰여지길 기원합니다”라는 축원의 글과 서명이 내 표지에 남겨져 있다.

옌스 옌센은 옴스테드와는 달리 우리에겐 잘 알려지지 않은 미국 조경가이지만, 시카고를 포함한 미 일리노이주 등 동북부지역에서 옴스테드급의 미국조경의 아버지로 칭송받는 조경가로 그 명성이 자자한 사람이다. 결국 조경가 오휘영이 옌스 옌센처럼 대통령 조경건설비서관으로서 한국조경 창설과 육성에 큰 역할을 하라는 기원과 격려의 의미를 갖는 글이었다. 대통령의 조경건설비서관으로서 대통령의 재가를 얻어 시행한 초창기에 구축한 그의 조경 정책들과 그 이후의 행보들이 과연 한국조경 창설과 육성에 옌스 옌센과 같은 수준의 역할을 수행하였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후일 우리 조경 후속 세대가 평가할 것이다.

하지만 그 전에 한국조경 50년을 맞이하는 동시대 우리 조경인들이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적어도 한국조경의 창설과 관련된 이 첫 번째와 두 번째 날, 그리고 이와 관련된 두 인물과 사건에 대해 우린 집단으로 기억하고 기념해야 할 필요와 의무가 있을 것이다. 기억해야 한다는 것은 이 인물과 사건과 관련된 날들은 한국조경을 낳은 뿌리(Roots)이기 때문이고, 기념해야 한다는 것은 조경을 통해 국토‧도시‧자연‧환경‧보전을 기한다는 이들의 초창기에 설정한 광대한 비전(Vision) 때문이다.

이 기억과 기념을 통해 지난 50년간을 되돌아보고 점검하여 기후위기‧탄소중립‧스마트‧디지털사회 등 현재진행형 미래 사회 환경에 대한 미래 조경의 비전을 짚어 볼 수 있는 큰 자부심과 명분과 기회의 시간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생물의 진화는 극단적 임계 환경(A Critical Environment)에 부딪혀 우연히 발생한다. 진화의 결과로 빚어진 새로운 유전형(Genotype)의 생물종으로 출현 후엔 그 종은 변화된 새로운 환경에서 충분하게 적응하며 다양하고 복잡한 표현형(Phenotype)으로 적응해 나간다(Daniel S. Millo의 ‘Good Enough’ 이론).

한국조경은 대통령 박정희에 의해 전개되는 산업화·국토개발이라는 임계 환경적 사회변화와 재미 조경가 오휘영의 우연한 조우에 의해 일제강점기의 조원(造園)에서 오늘날 현대적 조경(造景)으로 진화했고, 오늘날 생태‧경관‧정원‧도시숲‧놀이‧휴양시설 등 다양한 스펙트럼의 조경으로 적응해 왔다. 조경의 가지와 줄기를 좀 더 건실하게 키우기 위해서는 먼저 뿌리부터 돌보는 전략적 사고가 필요하다. 이것이 또 자연과 인간의 공통되고 보편적 법칙이고 기본이 아닐까.
조세환 명예교수  ·  한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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