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주목하는 ‘하논분화구 복원’···전국민적 공감대 형성돼야

미래기후변화 예측 및 새로운 관광자원으로서의 가능성
라펜트l전지은 기자l기사입력2022-05-19
6.1지방선거를 앞두고 여러 후보자들의 정책공약이 쏟아지는 가운데 후보들의 환경 관련 공약도 눈에 띤다. 이중 자연보전분야 세계 최대단체인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의 99.3%라는 압도적인 찬성을 얻어 권고안으로 채택된 사안을 공약으로 내건 후보도 있다. 제주 ‘하논분화구 복원·보전’ 프로젝트다. 

2012년 11월 열린 세계자연보전총회(WCC)를 통해 국제사회에 확정·발표된 권고사항은 ▲생태계 복원사업이 여러 국가, 지역 및 전 세계적으로 파급될 수 있도록 모니터링 등 6개 IUCN위원회(생태계관리, 교육·커뮤니케이션, 환경·경제·사회정책, 환경법, 보호 지역, 종보전위원회, 소속전문가 11,000여명)의 활동과 연계해 하논분화구 복원·보전프로젝트를 진행할 것, ▲대한민국 정부의 하논분화구 자연환경복원 종합대책 수립·시행 ▲미래기후변화 예측을 위한 국제적 학술연구네트워크 구축 등이다.

전 세계가 인정한 하논 분화구의 환경·문화적 가치는 무엇일까?

5만년 생명정보가 담긴 자연생태계의 타임캡슐

서귀포시 소재 하논분화구는 직경이 1㎞가 넘는 최대의 화산분화구로, 규모면에서 한반도 최대이며, 유일한 마르(maar) 분화구로 알려져 있다. 백두산 천지나 울릉도 나리 분지는 화산 분출 직후 지하 마그마방의 함몰로 형성된 칼데라이기 때문에 하논분화구와는 지질학적으로 구분된다. 마르형 분화구는 분출물이 멀리까지 날아가기 때문에 화구 주위에 분출물이 퇴적하지 않아 넓고 얕은 것이 특징이다.

제주도 일대의 지각변동 과정에서 강력한 화산폭발이 일어나서 세계적으로 희귀하고 아름다운 경관을 지닌 화구호수가 만들어졌고, 빙하기를 거치면서 호수 바닥에 쌓인 마르 퇴적층(maar sediments)에 고생물 정보 등 지구 환경의 변천과정을 규명할 수 있는 귀중한 정보가 보존되어 있다. 특히 하논분화구는 동아시아 고기후 연구에 유용하며 미래기후변화를 예측할 수 있는 중요한 장소로 평가받고 있다. 

하논분화구의 가치는 그동안 수차례 개최됐던 하논분화구 복원 국제심포지엄에서 독일·폴란드·중국·일본·한국 전문가들의 다양한 연구를 통해 확인된 바 있다. 하논분화구는 빙하기 이후 약 5만년 동안 지질, 기후, 생태 등 고환경정보를 고스란히 간직함으로써 동아시아 고생물·고기후의 변천사 및 미래기후변화를 예측할 수 있는 최고의 지구자연유산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하논의 가치는 제주의 가치만이 아니라 국가적 가치 이상을 내포하고 있다.

2020년 제주특별자치도와 제주대학교가 실시한 ‘하논분화구 습지주변 생태계 조사 최종보고서’에 따르면, 하논분화구에는 총 729종 생물이 서식 또는 도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생물 종류별로는 식물 95과 320분류군, 포유류 4과 4종, 조류 25과 49종, 양서·파충류 6과 7종, 담수어류 3과 5종, 육상곤충 100종, 저서성무척추동물 38종, 동물플랑크톤 32종, 식물플랑크톤 174분류군 등이다. 특히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야생생물과 천연기념물 등 법정보호종으로 멸종위기 야생생물 Ⅰ급인 매와 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인 물고사리, 삼백초 2종, 새매, 흑두루미, 잿빛개구리매, 큰말똥가리 등이 확인됐다.

화논분화구 식생 군락은 대부분 과수원이었으며 곰솔림과 습지 내에는 자운영군락, 조개풀군락, 망초-비자루국화군락, 골풀군락, 갈대군락, 송이고랭이군락, 바랭이군락, 가래군락 등이 분포했다.


2012 세계자연보전총회(WCC)서 복원의제 채택

약 500년 전에는 분화구 내부에 4개의 크고 작은 섬의 형태로 분석구가 형성된 아름다운 화구호가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500년 전을 기점으로 화구벽을 허물어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화구호가 사라졌고, 분화구 주변을 덮었던 울창한 원시림도 사라졌다. 이제는 원식생을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하논의 토지는 대부분 사유지로, 500여년 간 농경에 이용되면서 훼손된 것이다.


태고의 하논분화구 시뮬레이션 / 자연제주 제공


현재의 하논분화구 / 자연제주 제공

지방자치가 실시된 뒤부터는 야구경기장, 호텔, 상업시설 건립 등 난개발의 위협까지 받아왔다. 2002년에는 서귀포시에서 하논을 야구전지훈련장으로 활용하겠다는 계획을 수립했으나 시민사회단체가 전면에 나서면서 계획을 백지화시켰다. 여기에는 서귀포문화사업회 이석창 회장(자연제주 대표)의 역할이 컸다. 식물학자인 제주대 김문홍 교수로부터 하논에 남아있는 고식생 정보를 전해 들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연구용역단계이지만 하논분화구 복원 추진사업이 속도를 내기 시작했고, 서귀포시에서 하논 생태숲 자원복원사업 기본계획(2003~2004)을 수립, 중앙절충에 나섰다.

2004년 9월에는 이석창 대표를 단장으로 자연제주와 한라일보 탐사보도팀이 독일 불칸아이펠을 답사했고, 이를 통해 하논분화구의 현주소와 미래 가능성을 엿봤다. 불칸아이펠은 2004년 세계지질공원으로 등재돼 고기후 연구가 활발하다. 마르 등 주제별 6개 박물관을 두고 있으며, 지질관광을 병행해 연간 200만 명이 다녀가는 관광자원이기도 하다.


2004년 독일 답사시 찍은 
불칸아이펠의 마르 / 자연제주 제공


2012년 9월 6일 개최된 WCC 세계자연보전총회 / 자연제주 제공

그 뒤에도 하논분화구 복원·보전을 주제로 네 차례 국제심포지엄을 열어 하논의 가치를 논의하고 복원의 필요성을 공유했고, 그 과정에서 지방정부, 학계, 시민사회단체, 지역주민들의 관심이 촉구됐다. 이석창 대표는 2005년 대통령자문기구 동북아시대위원회 제주특별위원과 2010년 서귀포시 정책 자문기구 서귀포비전21위원장을 맡아 하논복원프로젝트의 논의를 이끌었고, 2012 세계자연보전총회(WCC) 제주 개최를 대비해 (사)하논분화구복원범국민추진위원회 준비위원장으로 창립을 주도했다. 창립 이후 부위원장을 맡으면서 2012년 WCC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축사를 통해 ‘하논분 화구 복원’ 의제를 공식화하는데 앞장서기도 했다.

이러한 노력 끝에 ‘하논분화구 복원·보전’ 프로젝트가 2012 세계자연보전총회(WCC)에서 권고안으로 채택됐다. 국내는 물론 국제사회의 지지와 공감대를 이끌어 냄으로써 하논분화구 복원사업을 향후 국가사업으로 반영시킬 수 있는 중요한 논리적 발판을 마련한 셈이다. 

서귀포시와 하논범추위는 후속조치로 2014년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생태계 관리위원회(CEM)를 연구용역에 참여시켜 ‘하논분화구 복원 기본계획’을 수립했다. 복원방향을 모색하고 국제사회의 폭넓은 지지와 공감대 형성을 위해 국제심포지엄과 워크숍을 개최했으며, 다양한 매체를 활용해 국책사업추진 홍보활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했다.


하논분화구 복원, 국가적 차원으로 추진돼야

그러나 정부는 2012 WCC에서 권고한 국제적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 하논 분화구 복원 관련 그 어떠한 후속대책도 내놓지 않고 있다. 가까스로 하논범추위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정책공약으로 반영시켰지만 진전된 것은 없다.

이석창 대표는 “하논분화구의 국가적 가치를 감안하면 2012 WCC에서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대한민국 정부에 권고한대로 중앙정부가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직접 복원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마땅하다. 복원사업에 소요되는 막대한 예산 때문이 아니라 국가자원으로서의 상징성, 자연환경복원의 기술적 문제, 국제적 공조 관계, 복원소요기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이 사업은 정부가 직접 시행하는 국책사업으로 추진돼야 한다”며 “마르 분화구를 완벽하게 복원하고 체계적으로 보전·관리·활용해 인류가 공유해야 할 지속 가능한 지구자연유산으로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서도 국가의 역할은 분명하다”고 힘주어 말한다.

아울러 “대한민국 정부를 일으켜 세우려면 제주도정의 역할이 그 어느 때 보다도 중요해졌다. 제주특별자치도가 중심이 되어 미래 세대에 넘겨줘야 할 소중한 공공자산인 하논분화구 복원사업이 국가중요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치밀한 전략을 짜서 그에 맞는 행정력을 집중해 나갈 수 있어야 한다”고 전한다.

수 만년의 생명정보를 간직한 하논분화구와 같은 대규모 지구자연유산을 복원한 사례는 그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다. 하논분화구 복원은 세계 첫 사례에 해당되기 때문에 마르 분화구 및 화구호의 세계복원표준모델을 한국이 선점해 구축하는 중대한 프로젝트가 될 수 있다. IUCN 등 국제사회가 하논을 주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는 한국이 자연환경복원 기술과 역량의 국제적 리더로 자리매김하게 되어 환경과 관광의 새로운 트렌드 개척으로 우리나라 국가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일이기도 하다.

하논분화구 복원과 국책사업 추진을 위한 다양한 활동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국제사회가 주목하고 있는 곳인 만큼 제주지역을 넘어 전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해야 할 때이다.
_ 전지은 기자  ·  라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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