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은 삶을 붓 대신 식물로 그리는 예술”

정원계의 거장, 피트 아우돌프 <후멜로> 출간 기념 북토크
라펜트l전지은 기자l기사입력2022-10-25

지난 23일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목수책방이 주최한 <후멜로> 북토크 현장에서 정원계의 거장 피트 아우돌프가 발언하고 있다. / 목수책방 제공

“시와 극본, 음악처럼 정원은 삶을 표현하는 예술 장르의 하나이다. 나는 펜이나 붓 대신 식물로 정원에 그림을 그린다”

자연주의 정원 디자이너 피트 아우돌프(Piet Oudolf, 1944- )가 <후멜로> 국내 출간을 기념해 북토크를 지난 22일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진행했다.

피트 아우돌프는 최근 울산시 태화강 국가정원에 조성된 ‘후스·아우돌프 울산 가든(Hoes·Oudolf Ulsan Garden)’과 관련 국제컨퍼런스 참석차 방한했다. 이번 북토크에는 피트와 정원 작업을 함께해 온 동료인 바트 후스(후스 아우돌프 울산 정원의 총괄 정원가), 카시안 슈미트(독일 가이젠하임대 조경학과 교수), 로라 에카세티아(‘퓨처 플랜츠’ 북미 담당)도 참석했다.

책 <후멜로>는 피트 아우돌프의 정원을 돌아보며 자연주의정원의 어제와 오늘을 살핀다. ‘새로운 여러해살이풀 심기 운동(New Perennial Movement)’을 일으키며 정원과 식물을 바라보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꾼 선구자이자 가장 혁신적인 정원디자이너로 손꼽히는 피트 아우돌프가 지나온 삶의 여정과 그가 선보인 중요한 작업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책이다.

1982년 네덜란드 시골 마을 후멜로에서 시작해 세계적인 정원·식물 전문가로 성장한 피트 아우돌프의 삶을 따라가지만 전기는 아니다. 피트 아우돌프가 어떤 작업을 해 왔는지를 살피는 일은 동시대 식재디자인이 어떤 흐름으로 움직였는지를 파악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 책은 피트 아우돌프에 관한 이야기지만, 자연주의 미학을 추구하고 지속가능성과 생물다양성을 위한 서식처 조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새로운 식재디자인 트렌드의 부상과 발전, 미래 전망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책에는 루리 가든, 하이 라인, 비트라 캠퍼스, 하우저 앤드 워스 갤러리 정원 등 피트 아우돌프가 디자인한 여러 정원의 조성 과정과 흥미진진한 뒷이야기는 물론이고, 민 라위스, 로프 레오폴트, 칼 푀르스터, 에른스트 파겔스, 헹크 헤릿선 등 자연주의 정원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위대한 정원디자이너들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도 들어 있어 자연주의 정원의 어제와 오늘을 개괄할 수 있도록 돕는다. 피트 아우돌프와 <식재디자인>을 함께 쓴 노엘 킹스버리는 친절한 안내자가 되어 인간의 개입과 자연이 절묘하게 어우러질 수 있는 궁극의 지점을 탐색하며 정원에서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구현해 온 피트 아우돌프의 작품 세계로 우리를 이끈다. 피트 아우돌프 식재디자인을 이해하기 위해 꼭 알아 두어야 할 중요한 디자인 개념과 식재 방법도 함께 설명하고 있어 자연주의정원을 공부하는 이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앞서 한국에서 출간된 <자연정원을 위한 꿈의 식물>과 <식재디자인>이 피트 아우돌프가 주로 사용하는 식물(여러해살이풀)과 그 식물을 심는 법에 관해 다루었다면, 이 책은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독자들은 이 책을 읽으며 피트 아우돌프에게 큰 영향을 주었던 많은 정원디자이너, 조경가, 이론가, 건축가, 육종가는 물론이고 그에게 영감을 주고 실무를 돕는 여러 동료와 자원봉사자의 이야기도 만날 수 있다.

아름답고 가치 있는 정원은 뛰어난 한 사람의 정원디자이너 때문에 존재하지 않는다. 살아 있는 변화무쌍한 생명을 다루는 일이기에 누군가의 의도대로 완벽하게 정원이 구현되지도 않는다. 피트 아우돌프가 지금의 명성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정원이 자연과 인간이 잘 협업해야 만들어지고 ‘유지’될 수 있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날 북토크에서는 여러 질문들이 이어졌다.

이날 “피트의 정원은 한 편의 시와 같다. 식물과 함께 빛의 변화, 움직임, 조화, 신비감이 주요 배역을 맡는다는 점에서 시의 메타포를 연상시킨다”며 피트의 정원과 시의 공통점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피트는 “정원은 시뿐만 아니라 연극 무대에 올려지는 극본이나 음악 등 모든 예술 장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삶에 관련된 모든 것이 정원 무대에 올라간다. 정원이든, 삶이든 이해하기는 어렵더라도 느껴지는 많은 요소가 있다. 예술가는 그런 요소를 펜으로, 붓으로 표현하고, 내 경우에는 식물로 표현하려고 한다. 내가 굉장히 좋아하는 것은 개인의 섬세한 감성을 정원에 표현해내는 것인데, 이를 다른 사람들과 나눌 때라야 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정원은 우리가 함께 그러한 감성을 나누는 공간”이라고 답했다.

유럽과 미국에서 자연을 정원에 끌어들이고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서식처 정원(habitat garden)’이 인기인데, 독일의 정원 정책 방향에 대한 질문도 있었다. 그에 따르면 독일은 기후변화 위기에 선도적으로 대처하고 있다. 빗물을 모으고 공공녹지를 조성하는 등 녹색 인프라 정책을 세우고, 도시 녹지 계획인 ‘그레이 투 그린(Grey to Green)’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자생종 위주가 아니라 종 다양성을 풍부하게 할수록 기후 변화 대응에 효과적이다. 독일 정치인들도 식물종 다양성을 확보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다. 

책 <후멜로>는 피트 아우돌프 개인 전기가 아니라 수십 년 동안 함께 작업해 온 동료들에게 헌정하는 책이기도 하다.

태화강 국가정원에 조성된 ‘후스·아우돌프 울산 가든’의 총괄 조경가인 바트 후스는 피트의 동료애에 대해 “시골 마을에서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정원 일도 같이 하게 됐다. 이번에도 한국에 동료들과 왔지만, 이런 여행이 피트의 아이디어를 이해하는 사람과 식물이나 정원, 경관에 대한 새로운 경험을 나누는 값진 기회다. 피트는 태화강에 조성한 정원에 내 이름(바트 후스)을 앞세워 ‘후스·아우돌프’로 지을 만큼 동료애가 따뜻하다”고 전했다.

피트와 함께 시카고 루리가든을 작업한 로라 에카세티아는 “<후멜로>에 실린 풍부한 정원 사진은 피트의 사진이 대부분이며, 인스타그램 사진도 피트가 직접 촬영한다. 그의 인스타그램을 팔로잉하는 것도 정원 디자인 공부를 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피트가 어떤 시선으로 정원을 바라보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피트는 자신이 디자인한 미국 시카고 루리가든을 방문할 때마다 항상 아침 일찍 사진을 찍곤 했다. 오늘 아침 국립수목원에 방문했을 때도 피트는 다른 시선으로 식물들을 촬영했다”고 설명했다.

피트 아우돌프의 공식 한국 에이전트인 이현수 천지식물원 실장은 “울산 태화강 국가정원에 시민들과 함께 조성한 후스·아우돌프 울산 가든처럼 피트의 공공 정원 철학이 구현된 정원이 널리 퍼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지난 23일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목수책방이 주최한 <후멜로> 북토크 현장에 함께한 바트 후스, 로라 에카세티아, 카시안 슈미트, 피트 아우돌프 / 목수책방 제공
_ 전지은 기자  ·  라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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