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기] 뉴욕에서 만난 조경

글_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서민정
라펜트l서민정l기사입력2023-07-04
[2023 라펜트 대학생 조경답사기 공모전 우수작]

뉴욕에서 만난 조경



_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서민정


도시는 화려하고 붐비는 밤과 삼삼오오 모여있는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낮의 풍경으로 완성된다. 여기, 세계의 그 어느 도시보다 화려하면서도 수많은 가치를 담고 있는 도시가 있다. 미국의 한 시골마을에 며칠을 머문 후 도착한 뉴욕의 첫인상은 혼잡한 도시라는 것이었다. 빠르게 달리는 차와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관광객들은 뉴욕이라는 이름을 실감하게 했다. 현대적이면서도 세련된 다소 정제된 아름다움을 보여줄 것 같다는 생각과는 달리 거리를 걸으면서 만난 뉴욕은 때로는 깊은 여운을 남기기도 했으며, 때로는 순간에 녹아들게 만들었다.


일상에서 만난 조경


브루클린 브릿지 파크의 전경

뉴욕에 도착한 첫날에 방문한 곳은 덤보와 이어지는 브루클린 브리지 파크였다. 오후에 도착한 탓에 브루클린 브리지 파크에 이르렀을 때는 이미 해가 지고 있었다. 덕분에 노을이 번져가는 뉴욕의 야경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하늘을 바라보며 조금 걸어가니 강둑과 연결되는 트인 곳이 나왔다. 계단식으로 되어있는 자리에 둥글게 모여앉은 사람들과 강에 비친 뉴욕의 야경, 저 멀리 보이는 브루클린 브리지와 회전목마. 이 모든 것들이 모여서 브루클린 브리지 파크의 밤을 완성했다. 뉴욕에서 만난 첫 번째 공간에서 나는 뉴욕이라는 도시가 가진 특유의 분위기와 매력을 만났다.


뉴욕대학교가 보이는 워싱턴 스퀘어 파크

뉴욕에서 가장 붐빈다는 5번가의 거리를 걷다 보면 건물의 틈바구니에서 폭포를 만날 수 있다. 거짓말처럼 달라지는 풍경은 잠시 이곳이 뉴욕 한가운데임을 잊게 만든다. 삼면으로 둘러싸인 조그마한 공간 속에서 사람들은 커피를 들고 와 담소를 나누면서 시간을 보낸다. 자칫 답답할 수도 있는 공간에 폭포를 입구에서 바로 보이는 벽에 배치함으로써 공간을 확장시켰고 벽을 타고 오르는 식물과 군데군데 심겨 있는 꽃들로 아늑함을 더했다. 팔레이 파크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요소는 폭포였다. 붐비는 바깥의 소리가 흘러들어와 공간이 주는 느낌을 바꿔놓을 수도 있었지만, 물소리로 인해 그런 소리들이 완전히 묻히면서 이곳에 온전히 집중하게 만들었다. 

뉴욕대학교를 지나 쭉 걷다 보면 워싱턴 스퀘어 파크라는 큰 공원이 나온다. 근처 유명한 쌀국수 집에서 포장한 쌀국수를 들고 테이블에 앉았다. 테이블의 모양이 다른 곳과는 달리 체스판이었다. 실제로 공원의 한쪽에서는 체스를 두는 아저씨들의 열띤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먹고 잠시 산책한 공원의 구석에는 아이들이 놀 수 있는 놀이터가 있었다. 마운딩이 되어있는 바닥에 눕거나 밧줄을 타고 오르내리는 아이들과 아이를 데리고 온 부모들이 모여 평화로운 풍경을 완성했다.


영화가 상영되고 있는 브라이언트 파크

하루는 브라이언트 파크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근처 홀푸드마켓에서 저녁을 사 왔고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공원 중간에 있는 잔디광장을 중심으로 테이블과 의자가 여기저기에 있었고 각자 원하는 자리에 원하는 방식으로 앉을 수 있었다. 나는 잔디광장이 내려다보이는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공원에 도착할 때까지만 해도 하늘이 파랬는데 날이 점점 어두워지더니 가로등에 하나둘씩 불이 들어오고 잔디광장에서는 영화가 상영되기 시작했다. 점점 무르익어가는 분위기와 노란 불빛으로 물들어가는 고층 빌딩 한가운데서 나는 뉴욕이라는 도시에 왔다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뉴욕에 처음 방문했을 때 놀라웠던 것은 높은 건물도 많은 사람도 아니었다. 복잡한 도시를 걸을 때마다 지나치게 되는 녹색공간들, 그리고 그 속에서 쉬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뉴욕의 공원은 저마다의 특색이 있었으며 그 특색들은 사람들의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있었다. 누구나 앉아 뉴욕을 즐길 수 있고 뉴욕에서 사는 사람들의 삶의 일부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은 낯선 도시를 방문한 사람에게 좋은 추억이 되어주었다.


패러다임을 바꾼 조경


빌딩 숲을 통과하는 하이라인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 누구나 “아름답다”라고 말할 수 있는 시대적 가치관을 반영한 아름다움은 당시에는 좋은 평가를 받을지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가치를 잃는다는 단점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하이라인은 새로우면서도 시간이 지나도 바래지 않는 아름다움을 지녔다고 생각한다.

계단을 올라가 처음 마주한 하이라인의 바닥재나 시설물의 색감은 모두 주위 풍경과 비슷한 계열로 되어있어 마치 원래부터 도시의 일부인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나무와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이들과 대비를 이루면서 하이라인은 이질적이면서도 주위 풍경에 동화되는 모순된 아름다움을 보여주었다. 하이라인이 생각보다 길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이르는 데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지만 오히려 다시 한번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풍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새로웠다. 허드슨강과 뉴욕의 도심, 그리고 특이한 모양의 건축물들을 지나가기 때문에 계속 외부의 풍경이 변화된다는 점과 다양한 휴식공간으로 인해 처음부터 끝까지 공간이 획일적이지 않아 보이는 하이라인의 내부 구조가 그런 느낌을 주는데 일조했다고 생각한다. 특히 기억에 남았던 것은 휴식공간들이 서로 다른 조망점을 가지고 있고 그 조망점이 주는 느낌을 극대화하는 배치를 통해 사람들이 하이라인을 온전히 만날 수 있게 만들어 준다는 점이었다.

잊혔던 장소는 많은 이들에게 영원히 기억될만한 곳으로 변화했다. 도심을 가로질렀던 철로는 이제 여러 초화들이 사계절 내내 다른 모습으로 피어나는 공간이 되었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던 이곳은 공간을 해석하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하는 선구자의 역할을 하는 새로운 역사의 출발점이 되었다. 하이라인은 과거를 딛고 미래를 바라보게 하는 방법을 통해 시간의 축을 실감하게 만든다. 그렇기에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뉴욕의 과거와 시간이 흐르면서 변화하는 뉴욕을 동시에 마주하게 된다.


조경은 기억을 어떻게 해석하는가


9.11메모리얼의 일부

한참을 걷다 보니 탁 트인 광장이 보였다. 건물로 빽빽하게 차 있는 뉴욕 한가운데서 만난 텅 빈공간은 이질적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는데도 약속이나 한 듯이 조용한 공간은 그런 이질감을 더욱 부각시켰다. 거대한 규모의 네모난 공간으로 물이 끊임없이 흘러들어갔다. 사람들은 아무 말 없이 네모난 공간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추모비에 적힌 이름들을 손으로 매만졌다. 흔히 생명력과 공간의 연결성을 상징하는 물은 이곳에서 공간에 집중하도록 만드는 매개체이자 공간 전체에 흐르는 슬픔을 아우르는 요소로 사용되고 있었다. 거대하고 압도적인 규모는 검은 심연으로 끊임없이 끌어당기는 느낌으로 죽음의 무게를 실감하게 했다.

참사 공간 전체를 사용한 설계안은 9.11테러로 인해 사라진 두 개의 거대한 건물과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시간이 지나 주위의 풍경이 바뀌게 되면서 점차 잊혀 갔을 그날의 기억들은 이 메모리얼로 인해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이 찾고 기억하는 공간이 되었다. 


미술관에서 만난 조경   


MOMA의 정원

숙소에서 너무 일찍 출발한 탓에 MOMA에 제일 처음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짐을 정리하려고 잠시 앉아 있는데 통창 너머로 하얀색과 초록색의 풍경이 보였다. 관람이 끝나고 처음에 보았던 풍경 속으로 나갔다. 야외정원에 한참을 앉아있다 가는 사람이 많다고 들었는데 그 이유를 알 것 같은 풍경이었다. 분수대에서 뿜어져 나와 정원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물길, 흰색과 회색이 뒤섞인 바닥재, 그리고 주위에 심겨 있는 자작나무와 초록빛의 식물들까지 정원은 MOMA의 정체성을 담고 있었다. 현대미술품들이 주로 전시되어 있는 곳답게 네모난 중정으로 되어있는 큰 구성과 각진 공간들은 모던했다. MOMA의 시작과 끝에서 만날 수 있는 정원은 전시공간에서 만날 이야기들을 기대하게 만들고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 역할을 함으로써 MOMA가 가진 가치를 보여주었다.


클로이스터와 아름다운 정원1

MET의 별관이 있다는 것은 정말 우연한 기회로 알게 된 사실이었다. 숙소와 다소 멀었지만 중세 수도원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는 누군가의 리뷰를 보고 가게 되었다. 지하철을 타고 센트럴파크의 북쪽으로 한참을 올라가 만난 upper newyork은 맨해튼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강을 따라 늘어서 있는 잔디밭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여유로웠고 교외라는 것이 실감이 났다. 한참을 걸으니 성이 보였다. MET이라고 쓰여있지 않았다면 고성이라고 착각할법한 모습이었다. 안에는 중세시대의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그 유물들을 구경하면서 지나가니 마침내 클로이스터가 나왔다. 길게 늘어선 회랑 사이사이로 아름답게 피어난 꽃들이 보였다. 그 너머에는 수도원의 약초원도 함께 재현되어 있었다. 고증을 통한 전시는 수도원이라는 공간이 가진 조용함과 엄숙함을 완벽하게 표현해냈고 더 좋은 전달력을 가지고 관람객들에게 다가왔다.


클로이스터와 아름다운 정원2

조경은 미술관의 정체성을 압축시켜서 보여주기도 하고 분위기와 풍경을 통해 전시품이 가지고 있는 가치를 돋보이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미술관에서 만난 조경은 일방적인 소통에 그칠 수도 있었던 관람방식의 변화를 가져왔다고 생각한다. 


과거의 조경, 미래의 조경

비행기가 뉴욕 상공에 도착하던 순간을 기억한다. 서서히 드러나는 뉴욕의 한가운데 거대한 녹색의 축이 보였다. 바로 오랫동안 뉴욕을 대표하는 공원이었던 센트럴파크였다. 어렸을 때 학교에 왔던 원어민 선생님은 미국 뉴욕이라는 곳에 가면 공원에 청설모가 뛰어다니고 새들이 목욕을 하는 곳이 있다고 말했다. 당시에 한국에서 그런 공원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선생님이 보여준 그림 속 잔디밭에 돗자리를 펴고 앉아 녹음을 즐기는 외국인들의 모습은 호기심과 동경을 가져왔다.


sheep meadow의 전경


멀리 고층빌딩이 보이는 센트럴파크

이른 아침 숙소를 나서서 베이글과 커피를 사 들고 센트럴파크로 향했다. 여느 공원처럼 운동하러 온 사람들이나 강아지를 데리고 나온 사람들이 대다수였지만 공원이 주는 느낌만은 확연히 달랐다. 높게 뻗은 나무들과 널찍한 잔디밭, 그리고 그런 숲을 가로지르는 크고 작은 가로수길은 미국의 시골마을에서 잠시 머물렀던 기억을 떠오르게 할 정도로 울창하고 푸르렀다. 나무 사이로 간간이 보이는 고층 빌딩들의 끄트머리가 아니었다면 뉴욕의 한복판에 있다는 것을 믿기 어려울 정도의 조용함과 평화로움이었다. 걷는 동안 정원과 전망대도 지나쳤고 촬영이 한창이던 분수대에도 돌아봤다. 한 세 시간 정도 돌아본 것 같은데 안내를 해주던 친구의 말로는 4분의 1도 채 보지 못했다고 했다.

센트럴파크는 다채롭고 볼거리가 많은 공간은 아니었지만 수수한 매력이 있었다. 오히려 그 점이 센트럴파크가 꾸준히 사랑받는 이유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없이 바쁜 뉴욕의 일상 속에서 잠시나마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길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센트럴파크는 공원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곳이었다.


리틀아일랜드

뉴욕에는 최근 새로 만들어진 명소가 있다. 바로 리틀아일랜드다. 사실 겉에서 봤을 때는 온통 회색빛인 모습에 조금 실망했는데 안으로 들어가니 생각이 달라졌다. 경사지를 따라 앉아있는 사람들과 회색빛 구조물을 화분 삼아 자란 나무들은 구조적이고 기하학적인 공간일 것이라는 생각과는 달리 투박했지만 섬세했다. 특히 구조물을 올라가면서 달라지는 풍경은 묘한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 왼쪽에는 도시가 오른쪽에는 허드슨강이 보이고 아래로는 잔디밭에 앉아있는 사람들이 조그맣게 눈에 들어온다. 군데군데 심겨 있는 그라스가 강바람에 스치는 소리를 듣다 보면 어느새인가 강 위에 불시착한 것 같은 구조물이 만든 새로운 전망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도시가 발달할수록 도시의 화려함을 버거워하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도시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추고 있지만 그렇기에 빈틈없이 설계된 모든 것들이 도시에 사는 사람들을 공허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뉴욕의 수많은 길을 걸으면서 나는 크고 작은 공원들을 지나쳤다. 개중에는 관광명소인 곳도 있었고 이름 없는 공원들도 있었다. 도시의 붐비는 일상이 지칠 때쯤 나타났던 이 공간들은 여러 시각으로 도시를 바라보게 만들기도 하고 잠시 도시를 잊고 생각에 잠기게 만드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나는 뉴욕에서 조경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모두 발견했다. 자연을 재현하고 재해석하는 것을 넘어 의미를 담은 새로운 경관을 보여주는 것까지. 그곳에서 만난 조경은 과감하면서도 경계가 없이 어우러졌고 서로 다른 형태로 존재했지만, 경관을 만들어가는 학문이라는 조경의 출발점에 가장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글·사진 _ 서민정  ·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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