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환 “첨성대, 조경의 스펙트럼으로 보다”

제4차 첨성대 대토론회서..."첨성대, 복합적인 기능가진 조형물이다"
라펜트l강진솔l기사입력2009-09-28

지난 24일 KAIST 인문사회과학연구소가 개최한 ‘제4차 첨성대 대토론회’에서는 천문대로 알려진 첨성대의 성격을 두고 열띤 논쟁이 펼쳐졌다. 이날의 토론회는 그동안 첨성대의 성격에 관해 있었던 많은 가설에 대한 일정결론을 도출하고자 개최되었다.

본 토론회에서는 동아시아 천문학적 접근, 신라사적, 조경적, 종교적, 현대천문학적 등 다양한 접근 방법으로 토론이 이루어졌다. 첨성대가 천문 현상을 관측하는 신성한 공간이라는 주장과 종교적 활동을 위한 제단이나 이념적 상징을 띤 구조물 혹은 단순한 천문관측대가 아닌 국가의 상징과 정치적 의미가 담긴 조형물이라는 주장이 치열하게 오고갔다.

이날 조세환 교수(한양대학교)는 지난 1998년 '첨성대의 경관인식론적 해석'이라는 논문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토론회에 참가하여 “왕도 경주와 첨성대”란 주제로 활발한 토론을 펼쳤다. '제4차 첨성대 대토론회'에서 첨성대를 조경학적 관점에서 해석한 조세환 교수(한양대)의 주장을 들어봄으로써 관련내용을 고찰하는 시간을 갖는다.


[발표자인터뷰] 조세환 교수(한양대)

‘제4차 첨성대 대토론회’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카이스트 인문사회과학부 주최로 진행된 '제4차 첨성대 대토론회'는 1984년의 제3차 대로론회 이후, 약 25년 만에 열린 토론회입니다. 지난 25년간에 걸쳐 진행된 소장파들의 첨성대에 관한 연구를 종합하고 그 비밀을 풀기위해 마련된 이번 토론회는 3차까지의 천문관측대설, 수미산설, 주비산경설 등에 더하여 영대설과 본인의 우물상징설 등 2개의 새로운 이론이 발표 되었습니다.
하지만 발표와 토론 결과, 대체로 천문관측대의 기능에 더하여 수미산설과 우물상징설 등 다른 논의가 수용되는 흐름이었습니다. 즉, 결과적으로 첨성대는 복합목적과 기능을 갖는 시설로 논의가 집약되는 분위기였습니다. 더불어 초기의 원로학자들이 나와 3차까지의 연구와 과정을 종합하여 발표하는 등 신구의 조화가 돋보이는 토론회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첨성대를 보는 다양한 시각에 있어 MBC 등 미디어들의 높은 관심이 인상깊게 남기도 합니다.

▲안압지에서 발굴 된 첨성대의 머리

1998년에 '첨성대의 경관인식론적 해석'이란 논문을 발표하신 줄 압니다. 논문에는 어떠한 내용이 들어있나요?
당시 그 논문은 첨성대는 선덕여왕이 국가적 차원에서 (자식)생산과 농사의 풍요를 기원하기 위해 만든 조영물이라고 주장한 논문이었습니다. 선덕여왕은 첨성대를 통해 여성왕 통치의 당위성과 김씨 왕계의 세습 강화 그리고 정치의 안정을 기하기 위하여 만든 것으로 주장하였습니다. 

첨성대는 단순한 천문대가 아닌 국가적 상징과 정치적 의미가 있는 조형물로 인식된다고 토론회에서 말씀하신바 있습니다. 또 여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도 언급하셨는데요. 구체적인 이유를 듣고 싶습니다.
발표 전날, 송성용 원로학자가 다른 첨성대를 찾기 위해 연구자들과 기자들을 대동하고 남산을 샅샅이 뒤졌으나 첨성대를 찾지 못하였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발표에서 송 선생님이 찾지 못한 첨성대를 안압지 연못 속에서 첨성대의 원형을 발견했다고 발표하였습니다. 첨성대의 원형이라 함은 바로 우물 정(井)자 틀이었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연꽃을 심은 수반으로 알고 있던 시설물이 바로 첨성대의 머리 부분과 꼭 같은 것이었습니다. 첨성대의 머리가 안압지 연못 속에 있었던 것이었지요.
우물은 여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고, 실제로 자식의 생산을 기원하기 위해 그 우물 속에 남근조각을 던져 넣은 것이 일본의 나라시와 경주의 안압지 등에서 발굴되고 있습니다. 우물을 하늘로 끌어 올려 만든 것이 바로 첨성대이고, 또 첨성대가 설치된 장소는 계림, 고분군, 반월성 등 김씨 왕계의 성지이기 때문에, 국가적 차원의 기원 장소임을 뒷받침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물이 탄생의 의미를 지닌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로 삼국유사를 들 수 있습니다. 이곳에 기록된 내용을 보면 신라의 시조인 박혁거세와 그의 부인 모두 나정과 알영정이라는 각기 다른 우물 옆에서 태어난다는 탄생 일화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우물 정자(井)가 자식의 생산과 더불어 농사의 풍요를 상징하고, 또 안압지 등에서 발굴된 그릇에 우물 정자가 새겨진 것들이 발굴된다는 점에서 미루어보았을 때에도 물은 생명의 근원이자 풍요를 상징하고, 여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기도 합니다.

▲첨성대의 우물모양                                        ▲그릇에 새겨진 우물 井자

이번 토론회를 통해 역사적 상징물을 단순히 하나의 기능으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측면 등 다각도로 접근할 필요성이 있음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이러한 역사구조물의 또 다른 예시가 있다면?
예컨대, 신라 왕경의 독산산성과 같은 산성을 들 수 있을텐데요. 단순한 방어목적이 아니라, 산의 정상부가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성소로서 인지되었고, 그래서 이것을 보호하기 위해 산성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지요. 이것이 후에, 산성으로 발전되어 나간 것으로 예단 할 수 있습니다. 

이번 토론회가 조경 및 인근 분야에 시사하는 바가 있다면 말씀해주십시오.
조경사 연구에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특히, 이번에 발표된 중국의 영대(靈臺)에 관한 얘기는 정원의 정치적, 문화적, 종교적 의미를 새길 수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오늘날 조경을 바라보는 시각이 단순한 화장 또는 장식적 관점을 넘어, 폭넓은 문화로 바라보는 시선이 필요함은 이와 같은 인접분야의 연구에서 얻을 수 있는 시사점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조경학에서 첨성대를 연구하고, 특히 도시, 종교, 경관, 역사 등의 관점에서 폭넓게 다루었다는 점에서 당시 참여자 모두 놀라워했고 조경의 폭넓은 스펙트럼이 학문적 장점이 될 수 있었다는 점에서 큰 보람을 느낍니다.

강진솔  ·  라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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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gj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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