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가 밝아지고 있다
라펜트ll기사입력2007-10-01
잘 모르긴 해도 다른 지방이나 지역에서도 비슷한 행정 지침이 구체화되고 있는 추세인 모양이다. 이른 봄에 제비를 보고 반가워하는 것처럼 참으로 오랜만에 우리 생활권에 날아온 낭보(朗報)가 아닐 수 없다. 제비 한 마리 봤다고 봄이 온 것은 아니라는 서양 격언은 있다지만, 그래도 아름다운 계절이 머지않아 올 거라는 메시지를 느낄 수 있어 기쁘다.
국가의 행정 지배력이 막강하게 동원되던 1970~1980년대에도 난잡한 거리 간판을 정비하려는 작업을 중앙정부 차원에서 시도한 적이 있으나 ‘국민적 정서’때문에 수면 밑으로 가라앉고 말았다고 한다. 그런데 근래 여기저기서 거리 간판 정비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이는 지방자치단체들이 차츰 제자리를 찾아 자신에게 주어진 행정권을 행사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지방자치제도가 작으나마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세계 어느 곳이든 그 도시의 모습을 강하게 각인(刻印)시키는 것은 크고 작은 건물들로 이루어진 건축 공간과 각양각색의 홍보 조형물, 이른바 간판이다. 따라서 건축물과 간판은 떼어놓을 수 없는 공공예술(public art)의 범주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모든 선진국에서 간판이 철저한 규제 대상이 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그런데 서울 거리를 거닐다 보면 시내 몇 곳을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예술성 뛰어난 건축물
도 별로 없다. 그것도 모자라 대부분의 경우 값비싼 건물 외벽이 조화롭지 못한 간판으로 완전히 둘러싸여 있다. 이는 서울 거리에 ‘저질의 극치인 누더기’를 덮어씌운 것이나 다름없다. 값비싼 외벽은 오로지 준공 검사용인가 싶을 정도다. 참으로 암울한 광경이 아닐 수 없다. 공공예술 개념은 어느 구석에서도 찾아볼 수 없고, 이러한 천박함이 지배하는 공간에 ‘생활 문화’라는 표현을 쓰기에도 너무나 민망하다.
우리 모두는 이런 비참한 생활환경에 갇혀 살고 있다. 시민은 시야 감상권을 완전히 박탈당
했고, 눈높이조차 강압적으로 하향 조정당하고 있다. 참으로 답답한 마음이 앞선다. 더욱이 저질 간판이 지배하는 생활환경에서 하루 하루를 보내는 성장기 우리 아이들의 정서에 미칠 해악을 생각하면 더욱더 걱정이 된다.
근래 서울시에서는 우리네 추잡한 생활환경을 일관된 공공 디자인 개념을 가지고 개선하기 위해 디자인 전문가를 부시장급으로 특채했다고 한다. 또한 다른 구청에서도 디자인 전문가를 채용해 간판 정비사업을 추진한다고 한다. 서울시는 그 첫 번째 사업으로 솔선수범 해서 행정 현수막과 선전탑을 철거하기 시작하였다. 단호하고 ‘용감한 행정’의 한 본보기라는 생각이 든다. 행정 자치기관인 서울시가 우리의 열악하고 비정상적인 간판을 격조 있게 바꾼다면 이는 문화 수준의 향상이라는 측면에서 청계천 복원 사업과 비견할 수 있는 업적이 되리라 믿는다.
이제야 중앙집권체제에서는 볼 수 없던 지방자치단체들의 ‘분권 행정력의 꽃’을 볼 수 있게 되어 기쁘다. 그리고 드디어 우리네 거리가 밝아져 머지않아 얼굴을 떳떳이 들고 다닐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되어 더욱 기쁘다. 유권자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정치인의 과감한 도전과 ‘주민 정서의 한계’를 과감히 넘어서는 지방단체장들의 소신 행정에 격려와 고마움의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본 원고는 [조선일보 8월 31일자 오피니언]에 게재된 글입니다.
국가의 행정 지배력이 막강하게 동원되던 1970~1980년대에도 난잡한 거리 간판을 정비하려는 작업을 중앙정부 차원에서 시도한 적이 있으나 ‘국민적 정서’때문에 수면 밑으로 가라앉고 말았다고 한다. 그런데 근래 여기저기서 거리 간판 정비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이는 지방자치단체들이 차츰 제자리를 찾아 자신에게 주어진 행정권을 행사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지방자치제도가 작으나마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세계 어느 곳이든 그 도시의 모습을 강하게 각인(刻印)시키는 것은 크고 작은 건물들로 이루어진 건축 공간과 각양각색의 홍보 조형물, 이른바 간판이다. 따라서 건축물과 간판은 떼어놓을 수 없는 공공예술(public art)의 범주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모든 선진국에서 간판이 철저한 규제 대상이 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그런데 서울 거리를 거닐다 보면 시내 몇 곳을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예술성 뛰어난 건축물
도 별로 없다. 그것도 모자라 대부분의 경우 값비싼 건물 외벽이 조화롭지 못한 간판으로 완전히 둘러싸여 있다. 이는 서울 거리에 ‘저질의 극치인 누더기’를 덮어씌운 것이나 다름없다. 값비싼 외벽은 오로지 준공 검사용인가 싶을 정도다. 참으로 암울한 광경이 아닐 수 없다. 공공예술 개념은 어느 구석에서도 찾아볼 수 없고, 이러한 천박함이 지배하는 공간에 ‘생활 문화’라는 표현을 쓰기에도 너무나 민망하다.
우리 모두는 이런 비참한 생활환경에 갇혀 살고 있다. 시민은 시야 감상권을 완전히 박탈당
했고, 눈높이조차 강압적으로 하향 조정당하고 있다. 참으로 답답한 마음이 앞선다. 더욱이 저질 간판이 지배하는 생활환경에서 하루 하루를 보내는 성장기 우리 아이들의 정서에 미칠 해악을 생각하면 더욱더 걱정이 된다.
근래 서울시에서는 우리네 추잡한 생활환경을 일관된 공공 디자인 개념을 가지고 개선하기 위해 디자인 전문가를 부시장급으로 특채했다고 한다. 또한 다른 구청에서도 디자인 전문가를 채용해 간판 정비사업을 추진한다고 한다. 서울시는 그 첫 번째 사업으로 솔선수범 해서 행정 현수막과 선전탑을 철거하기 시작하였다. 단호하고 ‘용감한 행정’의 한 본보기라는 생각이 든다. 행정 자치기관인 서울시가 우리의 열악하고 비정상적인 간판을 격조 있게 바꾼다면 이는 문화 수준의 향상이라는 측면에서 청계천 복원 사업과 비견할 수 있는 업적이 되리라 믿는다.
이제야 중앙집권체제에서는 볼 수 없던 지방자치단체들의 ‘분권 행정력의 꽃’을 볼 수 있게 되어 기쁘다. 그리고 드디어 우리네 거리가 밝아져 머지않아 얼굴을 떳떳이 들고 다닐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되어 더욱 기쁘다. 유권자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정치인의 과감한 도전과 ‘주민 정서의 한계’를 과감히 넘어서는 지방단체장들의 소신 행정에 격려와 고마움의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본 원고는 [조선일보 8월 31일자 오피니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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