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기행]두 기자와 떠나는 제주의 봄(2)

섭지코지, 김영갑 갤러리, 용머리
라펜트l손석범, 나창호 기자l기사입력2011-04-05

섭지코지휘닉스 아일랜드(손석범 기자)

제주 여행 둘째 날, 화창하게 맑은 하늘을 기대했는데 애석하게도 아침부터 안개가 끼었다. 이날은 전날 해질녘에 잠깐 둘러 본휘닉스 아일랜드를 다시 찾기로 한 날. 안개도 끼었고 당일 계획된 일정도 만만치 않기에 슬쩍 나기자의 마음을 들춰본다. “날도 안 좋은데 우리 휘닉스 아일랜드 그냥 건너뛰면 안 될까?…” 말도 끝나기 무섭게안 돼요.”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그럴 줄 알면서도 우문을 던진 나를 자책하며 카메라를 둘러멘다.

 


제주의 봄 전경으로 유명한 성산일출봉과 유채꽃.



요즘 제주도에선 샛노란 유채꽃을 감상하려면 관람료 천원을 미리 준비해야 하는 약간의 센스를 발휘해야 한다. 주인을 잘 설득하면 아낄 수 있을지 모르니 한번 도전해 보시길

휘닉스 아일랜드가 있는 섭지코지로 가는 길. 달력에서 흔히 보았던 샛노란 유채밭과 어우러진 성산일출봉을 구경할 수 있을까 싶어 네비게이션이 가르쳐주는 길을 마다하고 성산포로 방향을 잡는다. 그런데 아직 시기가 일러서 그런지 생각만큼 유채밭이 많지 않다. 그나마 몇 군데 관광용으로 심어놓은 곳들이 있어 그런대로 아쉬움을 달래준다. 이내 아찔하리만큼 진한 유채꽃 향기가 코끝을 맴돈다. 향기에 이끌려 유채밭에 들어가 사진을 찍다보니 천원의 관람료를 내야 한단다. 과연 천원을 내야 하는 것인지 살짝 고민이 드는 순간, 밭주인이 이미 우리의 표정을 읽었는지 그냥 가도 된단다.

 


투박하기만 한 섭지코지의 길. 멀리 드라마 올인의 세트장이 보인다.

 

섭지코지는 드라마올인의 배경으로 유명해진 곳이다. 제주방언으로을 뜻하는 코지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바다로 튀어나온 지형적 특성상 바람이 많고 거센 곳으로 유명하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푸르고 드넓은 초지 위로 말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는 대자연의 아름다운 경관을 볼 수 있었는데, 최근 리조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그 모습이 크게 바뀌어 개인적으로 아쉬움이 많은 곳이다. 아침에 나기자에게 이곳을 그냥 건너뛸까 하고 물었던 건 전날 이곳을 돌아보면서 적잖이 실망했던 나의 속내가 살짝 드러났던 모양이다.

 


섭지코지 등대 위에서 바라 본 휘닉스 아일랜드. 드넓은 초지 위로 말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던 목가적 풍경은 이제 사라진지 오래다. ! 다시 못 볼 그 아름다움이여


리조트 안에 들어선 올레길 미로와 벨라 테라스(콘도)

 

그러나 이런 사실을 차치하고서라도 많은 조경인과 건축인들이 이곳을 꼭 한번은 들려봐야 할 분명한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세계적인 건축가안도 타다오마리오 보타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마리오 보타가 설계한 유리 피라미드형의아고라’. 회원 전용인 이곳의 실내에는 최고급 휘트니스와 스크린 골프, 라운지 등으로 꾸며져 있다.



안도 타다오가 설계한지니어스 로사이전경
 

이날 우리가 찾은 곳은 안도 타다오가 설계한 지니어스 로사이. ‘이 땅을 지키는 수호신이라는 의미를 가진 이곳은 섭지코지의 자연과 더불어 지상과 지하, 실내와 실외를 오가는 공간 체험을 통해 사색과 명상을 즐길 수 있도록 디자인된 건축물이다. 그가 다수의 종교건축물에서 보여주었던 것처럼 이곳에서도 빛과 그림자, 물과 바람, 돌과 풀 등을 만날 수 있다.

 

본격적으로 명상의 공간으로 들어가는 첫 길목, 입구를 지나 조그만 다리를 건너자 양쪽으로 비스듬한 사선의 벽면에서 흘러내리는 폭포가 눈앞에 펼쳐진다. 얕지만 쉴 새 없이 떨어지는 물줄기는 마치 어지럽고 시끄러운 바깥세상의 질고를 털어내고 마음의 정화를 찾아 떠나는 여정의 시작을 보여주는 것처럼 느껴진다. 한편으로는 작가가 섭지코지 앞 바다의 파도소리를 건축적으로 형상화한 것은 아닌가 하는 나름의 생각도 가져본다.

 

본격적인 명상의 공간으로 들어가는 입구. 노출콘크리트가 아닌 현무암을 사용한 점이 눈길을 끈다.






현무암 벽면에 가로형 개구부를 통해 바다 너머 성산일출봉의 풍경을 끌어들이고 있다.


성벽 같은 높은 벽 사이로 나 있는 지하로 내려가는 길. 양쪽의 벽을 노출콘크리트와 현무암으로 처리해 질감의 대비를 이룬다.


지하로 들어가는 길


지하 전시관 입구


조그만 창을 통해 들어오는 외부의 빛이 안도 타다오의 작품 특성을 잘 보여준다.


명상을 돕기 위한 장치로 설치된 미디어아트 작가 문경원씨의 작품다이어리’. 나무의 생장과 소멸, 재생 등 생명의 순환을 통해 유한과 무한이 섞인 존재의 실상을 잘 보여준다.

주변 자연경관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지상이 아닌 지하로 조성된 지니어스 로사이는신성한 공간이란 어떤 방법으로든 자연과 관계를 맺어야 한다. 신성한 공간에 관계되는 자연은 건축화된 자연이다.”라는 안도 타다오의 철학이 응축되어 있는 곳이다. 그래서 일까. 이곳을 관람하고 나면 일종의 종교 건축물에 들어갔다 온 것처럼 엄숙하고 경건하며 마음이 차분해 짐이 느껴진다.

 

안도 타다오의 두 번째 작품은 글라스 하우스. 바다를 향해 두 손을 벌린 기하학적 평면으로 일출과 일몰의 장관을 동시에 볼 수 있도록 조형적으로 설계된 건축물이다. 그런데 아마도 상업적 용도의 공간이어서 그랬는지 안도가 그토록 고집하는 자연과 조화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듯 해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사실 글라스 하우스가 들어선 곳은 섭지코지에서도 가장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던 성산일출봉으로의 전망을 볼 수 있었던 곳. 그런데 이 경관을 이제는 글라스 하우스의 유리창 너머로만 볼 수 있다. 그러려면 전망대 식당에서 값비싼 식사비용을 지불해야만 한다.

 

안도 타다오가 설계한글라스 하우스입구


글라스 하우스 전경. 성산일출봉으로의 멋진 경관은 이제 이곳의 유리창에서만 볼 수 있다. 자본에 의한 공간의 사유화가 이곳을 찾는 많은 이들을 슬프게 한다.

글라스 하우스의 테라스 가든

 


섭지코지 등대에서 보는 성산일출봉. 과연

어그러진 이 경관은 누구에게 보상받을 수

있을까.

이러한 사실은 섭지코지의 등대에 올라보면 확연히 알 수 있다. 눈앞에 덩그러니 놓인 글라스 하우스가 마치 성산일출봉을 머리에 이고 있는 듯해 실소가 나온다. 순간 모두가 공유해야 할 자연경관을 소수의 것으로 만들어 놓은 자본의 횡포에 분노가 인다. 안도 타다오 스스로도 왜 이 부분을 놓쳤는지 그저 안타깝기만 하다.

 

섭지코지의 휘닉스 아일랜드를 돌아보면서 또 한 번 드는 생각은 자연경관의 보존과 개발 사이에서 과연 무엇이 우선되어야 하는지,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 보존되어야 할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무엇이며 또한 어떻게 구별되어야 하는지 등 가치 판단의 기준에 관한 것이었다.

과연 현명한 해법은 무엇일까?. 조경을 비롯한 공간을 다루는 모든 이들의 영원한 숙제가 아닐까 싶다.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나창호 기자)


 

'사진쟁이들에게는 성지와도 같은 장소'라는 단편적인 소개만 듣고 손석범 기자의 손에 이끌려 가게 된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이곳은 폐교를 개조해 만든 아담한 전시장이다. 입구 앞에는 '2006 잘 가꾼 자연문화유산'이란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모든 것에 앞서 故 김영갑 선생에 대한 설명이 우선 필요할 듯 싶다.

 




 

혹자는 그를 '제주에 미친 사진작가'라 칭한다. 김영갑 선생은 28살이 되는 1985년에 제주의 자연과 바람의 매력에 빠졌고, 루게릭병으로 숨을 거두는 2005년까지 오로지 '제주'만을 네모난 슬라이드 속에 담아냈다.

 

가난과 고독이 언제나 그를 따라다녔지만 김영갑 선생에게 그것은 그리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필름을 살 수 있을 만큼의 돈, 거기에 언제나 모습을 바꾸는 제주의 하늘만 있으면 누구보다 행복해 했던 그였기 때문이다.

 






두모악에는 맑고 청아한 수선화와 매화가 피어있었고, 지금은 만개해 있을 동백꽃봉오리가 따스한 봄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 제주를 두고 천혜의 관광지라거나, 혹은 세계 제일의 청청지역이라고 얘기하지만, 그것은 겉모습의 제주일 뿐입니다. 칠색 띠로 치장하고도 바다는 여전히 겸손합니다. 그 바다에는 수천년을 이어온 제주인 특유의 끈질긴 생명력이 깃들어 있습니다. 고만고만한 오름에 올라, 드센 바람에 몸을 가누지 못하는 들풀이나 야생화 따위를 보며 느끼는 순응의 미학은 오로지 제주만의 것입니다. 돌서덕밭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여있는 무덤에서 그들은, 죽음이나 절망 따위가 아니라 삶에 대한 의욕과 희망을 건져냅니다. 그것은, 이제까지 우리가 보지 못했던, 또 다른 제주입니다. 그것을 찾고 싶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이렇다 저렇다 단정지을 수 없는 제주만의 은은한 황홀을, 가슴으로 느끼지 않으면 다가오지 않는 그 삽시간의 환상을 잡고 싶었습니다. 20여 년 세월을 미친 듯이 쏘다니며 안간힘을 쓴 것은 오로지 그것 때문이었습니다. 마음의 평화를 위해, 일상의 평상심을 유지하기 위해, 이거다 싶을 때마다 그 황홀함을 붙잡으려 무던히도 애를 썼습니다.” -故 김영갑

 


김영갑 선생의 작업실. 사진 속 천혜의 제주경관이 한장한장 잉태되었던 곳이다.

2
년전 개최되었던 김영갑 개인전 포스터. 사진 속 구름의 모습과 나뭇가지의 방향이 어딘지 닮아있다.

 

갤러리 내부에는 그의 저서들과 함께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다. 대부분이 파노라마 사진들이었으며, 감탄사가 절로 새어나올 정도로 사진 속 제주의 풍광은 아름다웠다. 찰라의 한 컷을 얻기까지 쏟아부은 그의 기다림이 눈에 선했다. 그런 그의 작품을 바라보며, 故김영갑 선생에게 마음으로 질문을 청해본다.(아래의 대화는 그가 남긴 문장 중 일부를 발췌해 인용한 것임)

 

왜 제주, 그 중에서도 한라산을 고집하시는 이유는?

사람들이 '왜 한라산만 오르느냐' 묻는다. 그럴 땐 대답을 못하고 웃는다. 그 이유를 답할 수 있다면, 한라산에 가지 않고 다른 곳으로 향했을 것이다. 설명할 이유를 찾아 한라산에 오르고 또 올랐다.

 

이곳에는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평화로움이 있다. 이에 홀린 나는 20, 30, 40대동안 중산간 들녘을 지켰다. 고요와 적막 평화로움에 취해 웃고, 울다보니 어느새 20여년이 지났다.

 

제주의 자연경관, 오름을 주목하게 된 계기는?

20년 전 오름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온종일 돌아다녀도 사람을 볼 수가 없었다. 운이 좋은 날에나 목동들과 들녘에서 일하는 농부들을 먼발치에서 볼 수 있었을 뿐이다. 이곳의 풍경을 완성하는 이들은 농부들이다. 그들이 재배하는 곡식에 따라 경관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평화로운 이곳에 태어나 씨를 뿌리고 거두며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의 삶이 궁금했다. 그 궁금함을 풀기 위해 20년 동안 몰입했다.

 

자연을 이해하기 위한 방법이란게 있을까요?

관심이 있으면 찾을 것이다. 그러면 보일 것이고, 보는 만큼 알게 될 것이고, 아는 만큼 느끼고, 느낀 만큼 깨달을 것이다. 새들이, 풀벌레들이 노래하듯 나는 노래할 것이다. 나의 노래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고 김영갑 선생이 남긴 사진과 글을 보며, 가슴 한 켠이 찡했다. 사진에 대한 열정도 열정이지만 사람을 보다듬고, 마음으로 자연을 대하는 삶의 태도에 감복했기 때문이다.

 

'내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제주의 속살이다.(중략) 촉촉하고 생생하면서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제주만의 속살이다. 외형이 아닌 내면이다.' - 故 김영갑

 

그래서 그는 제주의 바람을 이해하려 했고, 그 바람을 쫒아 필름 속에 담고자 했다. 전시장 사진 속 바람에 쓸려다니는 구름 한 점, 풀 한포기가 더욱 실감나는 이유이다.

 

갤러리를 둘러보고 문 밖을 나서자 이 곳 하늘이 조금 달라보였다. 그리고 이번 역시 다음 목적지를 향하며 수첩에 한 문장을 이렇게 기록하였다.

 

"경관은 마음으로도 볼 수 있다"







 

 

화순해수욕장-용머리 주변(나창호 기자)


 

두 남자는 이번에 제주올레 10코스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전 회에서 말했듯, 짧은 시간 동안 많이 보자라는 계획으로 전체를 걷진 않았고 '화순해수욕장부터 용머리 주변'까지만 코스로 설정했다.

 

올레는 집 대문에서 마을 길까지 이어지는 아주 좁은 골목을 뜻하는 제주어이다. 제주 고유의 문화와 풍광을 자연스럽게 보여주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이 길을 따라 걷고 있다.

 

화순해수욕장에서 용머리 해안을 걷게 되면 가장 많이 보게 되는 것이 화산작용과 퇴적·침식으로 길게 솟아오른 절벽이다. 검정색의 이 절벽을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마치 인공암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불투명한 색상의 바위표면이 마치 가공이나 한 것처럼 매끈했기 때문이다.

 






 

용머리 주변 지역에는 용머리 응회환, 산방산 용암돔, 그리고 광해악 현무암이 분포한다. 용머리는 약 백만년 전에 얕은 바다 환경에서 마그마가 터져 나올 때, 마그마와 바닷물이 만나 격렬히 폭발하여 뿜어져 나온 화산재가 분화구 주변에 쌓여 만들어진 것이다.

 

이러한 화산폭발은 나지막한 고리 형태의 화산체(응회환)를 이루었는데, 오랜 시간에 걸쳐 깎여나가고 현재는 그 일부만이 남아 있다.

 

코스를 중심으로 솟아오른 산방산은 용머리 응회환이 형성된 뒤 조면암질 용암이 흘러나와 만들어진 용암돔으로 약 80만년 전에 형성된 것이다. 광해악 현무암은 산방산이 형성되어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한라산 기슭에서 솟아난 용암이 제주 서부 지역으로 흘러들어 산방산 주변을 에워싸며 흐른 것이다.

 

화순해수욕장에서 용머리를 향해 가는 이 길. 제주도가 화산작용으로 만들어진 섬이란 사실을 새삼 실감했던 순간이다.








 

무엇보다 강하게 인지되었던 것이 이 곳의 지형이 산방산이 쏟아낸 마그마와 바닷물의 격렬한 반응으로 형성된 곳이라는 사실이다. 바닷가 중간중간 살며시 고개를 내밀고 있는 매끈한 검은 바위, 기둥 모양으로 도열한 주상절리에 이르기까지 눈 앞의 아름다운 경관은 대지의 진통으로 만들어진 자연조각이란 생각을 해본다.

 

 

그리곤 '다름'을 떠올렸다. 바다와 마그마는 물과 불이다. 그리고 이 둘은 각각 땅속과 땅 위에서 각각의 형태로 각각의 모습을 유지한다. 화산폭발로 마그마와 바다가 만나기 전까지 말이다. 마그마와 바다, 전혀 다른 속성의 이 둘이 접촉함으로써 격렬한 반응을 일으켰고, 그로 인해 지금의 경관이 형성되었다. 다른 것이 만나 새로운 지형을 탄생시키게 된 것 이다. 그래서 이번 대상지를 돌며 남긴 기록 말미엔 이렇게 써 보았다.

 

"변화는 과거와 다른 '다름'을 만나는 것에서 시작한다"












손석범, 나창호 기자  ·  라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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