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경계를 넘어②]박병주 교수

라펜트l나창호l기사입력2009-07-23

“도시계획가가 그리는 문화경관”

시각은 사물을 관찰하는 기본적인 자세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시각은 주체마다 각각 다르다. 경험과 지식의 산물로 파생된 가치관은 개인이나 집단에 따라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여기 도시스케치를 주제로 지난 6월 중순 인사동에서 작품전시회를 가졌던 도시계획가가 있다. 그는 도시계획 분야의 초석을 다져온 장본인이다. 홍익대 초대 도시계획학과장, 정부 중앙도시계획위원회 위원, 국토연구원 이사장 등을 역임한 박병주 교수(홍익대 명예교수)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번 시간에는 도시계획분야의 거장이 말하는 경관과 미술의 접목, 그리고 그 당위성에 대해 들어보았다. 


도시계획가와 화가라는 두 개의 직함을 가지고 계신데요
본격적으로 스케치라는 장르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일본 고베의 공업전문학교시절부터입니다. 당시 미술개론 담당교수는 토목설계도도 아름다운 작품이 될 수 있도록 형태미에 유의해야 한다고 했었어요. 그것을 계기로 유명한 다리를 순례하며 스케치북 속에 수많은 경관을 담아내게 되었습니다.

이후 1967년에 홍익대 전임교수직으로 자리를 옮기며, 펜화와 수묵화가 융합된 지금의 화풍을 정립하게 됩니다. 당시에도 지금처럼 홍익대는 미술로서 명성을 떨쳤고,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저의 그림수업은 깊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한편 이듬해 동대학에서 도시계획과를 창설하게 되는데(참고로 홍익대 도시계획과는 국내 최초의 도시계획과다), 교재를 집필하며 그림이 풍부한 참고서의 필요성에 대해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엔 국내에 관련서적이 전무한 상태였어요. 그래서 해외의 참고서적을 탐색하던 중 미국에서 출간된 'Urban Design'이란 서적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한 페이지에서 세로로 반을 나누어, 반면은 텍스트로 또 나머지 반은 그림으로 페이지를 구성하며 정보전달을 극대화 시킨 도서였지요. 그 책을 접하며 새로운 영감을 얻게 됩니다. ‘그림이 풍부한 살아있는 교재를 만들어야 겠구나’라고 말이죠. 정보전달에 있어 텍스트가 충당할 수 없는 영역은 분명 존재하며, 그것은 이미지로 보완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던 것입니다. 이해도 높은 교과서를 제작하기 위한 공부로서도 도시스케치는 필연적 선택이었습니다. 
운명처럼 다가온 이러한 경험과 기회는 지금의 도시스케치를 탄생시키는 밑바탕이 된 것이지요. 

   
▲'Urban Design'의 속지

이번이 다섯 번째 도시스케치전입니다. 도시경관에 대한 철학도 남다르실 것 같습니다
.
순수미술을 추구하는 화가들이 그리는 경관을 흔히 풍경화라고 부르죠. 풍경화는 인간이 자연을 미적 대상으로 인식하면서 그 동경이 미술의 한 갈래로 형성된 것 입니다. 하지만 시간과 장소에 따라 아름다움의 기준은 차이를 보이기 마련이지요. 문화는 변화하고, 또 다르기 때문입니다. 풍경을 바라보는 시각도 그러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자연을 중심으로 한 문화경관이 조류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다 어느사이엔가 도시가 풍경 속으로 들어옴에 따라 새로운 경관이 만들어지게 되었지요. 하지만 우리사회에서 도시화의 진전은 오히려 사람들 마음속에 녹색 심상을 갈구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경관 속 문화와 역사가 담긴다는 이야기에 설득력이 생기는 거겠지요. 이러한 문화경관의 흐름은 조경이 추구하는 풍경과도 직결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최초로 도시스케치라는 이름을 걸고 전시회를 개최했던 때로 거슬러 올라가 보겠습니다. 제가 1969년부터 1990년까지 중앙도시계획위원회의 위원으로 역임할 당시, 한국의 국토개발은 일대 전환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이른바, 산업화 도시화의 고도성장기에 처한 개발연대로서, 울산공업도시를 비롯하여, 경주, 마산, 구미 등의 도시계획, 그리고 경부고속도로 건설과 이어진 여의도, 잠실, 그리고 강남 개발까지. 이러한 굵직굵직한 도시계획에 참여하게 되면서, 쾌적한 국토환경 창출을 위해서는 보는 안목을 높여야겠다는 생각을 하게됩니다. 그래서 해외의 선진도시를 견학하며 각종 도시경관을 스케치로 담아, 국내 도시계획의 기초자료로 사용하였습니다. 이 작품들이 바로 첫 번째 도시스케치전에 내놓은 작품들입니다. 그때가 1985년, 제 회갑 때 일입니다.

정년을 즈음해선 시선을 우리나라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이 때는 ‘도시건설’이란 잡지의 한 꼭지를 맡아, 연재를 하던 시기였어요. 월간으로 발행되던 것이기 때문에 한 달에 한 도시를 방문하며 그림을 그렸습니다.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은 한 페이지에 스케치 한 장과 그 도시공간에 대한 코멘트를 구성요소로 총 4페이지를 작성했어요. 한 도시에 4페이지란 제약은 방문도시의 4개의 핵심경관을 담아야 한다는 부담이 크게 작용했습니다. 그럼으로써 보이는 경관 외에도 보이지 않는 역사와 문화를 압축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게 되었어요. 그것이 1990년 조선일보 미술관에서 개최된 제2회 도시스케치전에서 선보인 작품들입니다.

국내 도시경관을 담기 위한 노력은 이후에도 이어집니다. 결국 1996년 ‘한국의 도시 박병주 도시순례 스케치’의 출판기념회와 겸하여 열린 제3회 도시스케치전에서는 당시 국내 53개시를 대상으로 작업한 약 300여 작품을 세상에 내놓게 되는 결과를 낳았지요. 1990년부터 1995년 3월까지 약 5년 3개월간의 대장정이었지만, 당시 국내의 모든 도시를 답사하여 작품을 만든 의미있는 전시회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이후 2002년에는 국토연구원에서 발행하는 월간 국토지의 표지그림 60회분을 원화전으로 가지게 되었고, 이번 2009년에 근작을 모아 이곳 인사동에서 다섯 번째 도시스케치전을 개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경복궁


▲여의도, 밤섬, 서강/80×233cm 캔버스 위 아크릴


▲한강대교와 서울도심부/65×100cm 캔버스 위 아크릴_여기 한강의 풍경 한 컷 속엔 도시의 역사가 들어있다. 용산과 노량진을 연결하는 한강철교, 자동차 시대의 도래와 그로인해 생성된 도로, 그 위로 유유히 흘러가는 유람선. 거기에 북한산과 남산으로 둘러싸인 풍수지리적 경관까지 담겨있다. 그러나 실제 조망점에서 북한산은 희미하고, 실제로 보이지 않는 경관도 있다. 생략과 강조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도시계획가의 시선은 순수 미술가의 그것과는 차이가 있을 텐데요
그림에서는 그 경관의 특징을 부각시키기 위해 강조할 것, 그리고 생략할 것에 대한 구분을 잘 해야 합니다. 풍경사진과 풍경화의 차이도 바로 그것에 있습니다.
특징을 잡는 것도 강조와 생략이란 수단으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이고요. 제가 스케치를 강조하는 이유도, 있는 그대로의 도시경관을 담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바탕으로한 문명사적 도시 경관의 특징을 그려내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보이는 그대로의 풍경을 화폭에 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저의 스케치는 여느 풍경화와 차이를 벌리고 있어요.

끝으로 이번에 개최된 제5회 도시스케치전의 의미를 새겨본다면
조경이나 도시계획의 조예가 있으신 분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미학적 수준이 뛰어난 인물들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장르나 수단의 차이가 있을 수는 있지요. 그러나 경관을 견지하고 이를 표현하려는 대가들이 상당수 있다는 사실은 주목해야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최적의 조망점을 찾기위한 노력, 오랜 시간동안 풍경을 응시하며 관찰하려는 노력 등이 도시스케치에 수반되어야 합니다. 이는 공간을 다루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노력이기도 하지요. 그러므로 도시경관에 대한 디자인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는 제2, 제3의 도시스케치 작품이 조경분야에서, 또 도시계획분야에서 창출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제5회 도시스케치전의 의미도 이러한 제생각을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고자 했다는 점에 포커스를 맞추고 싶습니다. 



 

마치며
박병주 교수는 도시스케치를 통하여 우리 국토가 나아갈 바를 제시하였다. 또 문화경관을 잘 버무려 조화로운 국토경관의 모습을 그려내기도 하였다. 그가 그려왔던 도시풍경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국토의 문화경관이 되었다는 점은 쉬이 흘릴 수 없는 대목이다. 그의 스케치를 단순한 그림으로 생각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같은 경관을 채색해 나가는 조경분야. 문화예술과의 경계를 넘나들며 접목에 관심을 모아야 하는 이유와 당의성에 대해 생각해보게된 뜻깊었던 인터뷰를 마쳤다.




박병주

현재
홍익대학교 명예교수, 순천향대학교 석좌교수
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 고문, 대한토목학회 원로회원
대한측량협회 고문, 한국자연공원협회, 한국색채디자인개발원 이사장
홍익화우회 회장
약력
홍익대학교 대학원 명예공학박사
홍익대학교 교수, 1968 초대 도시계획학과장·공과대학장·대학원장
1969~1990 정부 중앙도시계획위원회 위원, 국토계획심의 위원회 위원
국토연구원 이사장 역임
서울시 문화상(건설부문), 현정국토개발학술상, 일본도시계획학회상 수상, 국민훈장석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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