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설도 설계하라는 건진법에 설계업계 강력반발

현장모르고 책상에서 만들어진 실효성 없는 법
한국건설신문l기사입력2015-02-12
가설구조물(구조물을 시공할 때 임시로 쓰이는 동바리,거푸집,비계 등)을 실시설계 단계에서 구조검토를 하도록 하는 법안이 올해 1월 6일 공포된 후 설계업계가 강한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설계업계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것은 '이 법안이 과연 건설현장의 시스템을 알고서 만든 법인가?' 할 정도로 건설현장과 전혀 맞지 않는 내용때문이다. 
 
이 법안에는 가설구조물(동바리,거푸집,비계)을 설계단계에서 구조검토를 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개정이유에는 건설현장 사고의 27%가 가설구조물때문에 발생한다는 이유에서 가설구조물의 구조검토를 강화하여야 한다는 취지이다.
 
그렇다면 설계업계는 왜 반발하고 있는 것일까? 설계업계의 반발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건설산업에서 구조물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이해하여야 한다. 자동차등과 같은 제품과 달리 건설은 설계와 시공이 별도의 조직이 담당한다. 즉 발주자는 설계사에게 설계를 의뢰한 다음에 그 성과품(도면)을 받아 그 도면으로 시공사에게 시공을 의뢰한다. 
 
이런 과정 내에서 설계자가 가설구조물까지 설계를 해야하는지 아니면 목적구조물(본구조물)만 설계해야 하는지의 문제가 이번 법안이 논란이 되는 이유이다. 
 
이 법안은 지금까지 건설시스템과 달리 설계자가 가설구조물을 설계하도록 한 것이다. '가설구조물때문에 사고가 많이 발생하니 설계단계에서부터 면밀히 검토하자'는 말은 일견 맞는 말 같아 보인다. 건설업을 모르는 사람은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다. 하지만 건설업은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은 이것이 실행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설계단계에서 가설구조물을 설계할 수 없는 이유는 명백하다. 가설구조물은 목적구조물이 아니기 때문에 현장상황에 따라서 변수가 너무 많기 때문에 설계단계에서 그것을 미리 예측하여 설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도 가설구조물은 현장의 여건에 맞추어서 현장에서 설계를 해왔고 설계단계에서는 적절한 공사비가 반영될 수 있도록 내역서에 반영만 해주었었다.
 
만일 설계단계에서 가설구조물을 설계한다면 시공과정에서 대부분의 가시설에 대해서 현장에 맞는 제품, 공법, 설치규모 등으로 설계변경을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목적구조물과 달리 가설구조물의 자재 종류는 너무나 다양하기 때문이다. 콘크리트를 타설할 때 쓰는 거푸집(형틀)의 경우만 해도 모양부터 재료까지 수십, 수백가지가 넘는다. 시공자들은 자신들이 주로 쓰는 거푸집이 있고 그것을 목적구조물을 만드는데 적절하게 조합하여 사용한다.


2012년 김포시 건축공사 현장에서의 동바리 붕괴사고 ⓒ산업안전보건공단 안전 책자

하중을 지지하는 동바리도 마찬가지다. 조립식으로 사용할 수 도 있고, 강관을 쓸 수도 있다. 동바리로 받쳐야 하는 목적구조물의 높이가 현장에서의 시공중 지반현황에 따라서 변할 수도 있다. 따라서 만일 설계단계에서 설계가 되어있다면 이것을 현장 상황에 맞게 설계변경을 해야한다. 현장에서 잦은 설계변경은 설계사-발주처-감리자 등의 이해관계와 책임소재관계가 얽혀 있어서 원활하게 이루어지기 힘들기 때문에 공기를 지연시키는 비효율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것이 설계업계와 시공업계의 공통적인 생각이다.  
 
이번 법안은 그동안 국토부가 주도해온 '설계도서 선진화'와도 정면으로 배치된다.  국토부가 주도한 '설계도서 선진화'는 글로벌 스탠더드와 달리 국내 설계사는 지나치게 상세도면 및 수량산출에 치중하기 때문에 정작 전체적인 계획이나 목적구조물의 최적화 쪽에 노력을 기울일 시간이 부족해 국제경쟁력이 떨어지고 있고, 그것은 결국 글로벌시장에서 건설경쟁력 전체가 떨어지는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는 위기 의식에서 시작된 전략적 선택이었다.
 
이러한 전략에 따라 국토부는 2005년 '설계도서 국제표준화방안'을 내놓았으며, 2006년에는 국토관리청, 도로공사, 철도시설공단, 수자원공사 등이 발주한 10개의 시범사업을 선정하여 설계단계에서는 상세도면을 최대한 줄이고 대부부분의 상세도면은 실제로 시설물을 시공하는 시공사가 그리도록 하는 시스템을 설계단계부터 시공단계까지 모니터링하였다. 또한 국토부는 2007년부터 2010년까지 3년간 15억원의 연구비를 투입해서 '교량·가시설 표준도 개발 및 시공상세도 표준화'라는 제목으로 연구과제를 수행하여 최대한 현장에서 상세도면을 작성할 수 있도록 하는 '시공상세도 표준화 방안'까지 제시하였고 공사비에 '시공상세도 작성비'를 반영하도록 하였다.
 
이와같이 지난 10여년간의 국토부의 전략은 본구조물의 시공상세도도 그것을 직접 가설하는 시공사가 그리게 함으로서 시공사의 엔지니어링능력을 향상시키고 설계사는 커다란 그림을 그리는 능력을 키워서 글로벌 시장에서 설계와 시공경쟁력을 동시에 끌어올린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 법안은 목적구조물도 아닌 시공시 잠시 사용하는 가설구조물을 설계단계에 설계하도록 한 것이다. 국토부의 갈지자 걸음에 업계는 그저 황당할 따름이다.
 
이번 법안 개정에서 크게 2개의 항목이 개정되었는데, 설계단계에서 가설구조물을 설계하도록 하는 48조 5항과 시공단계에서 가설구조물의 구조적 안전성을 검토하도록 한 62조 7항이다. 동일한 가설구조물 안전검토를 설계와 시공에서 모두 하도록 되어있는데, 이에 대해서 업계관계자는 시공단계에서 검토하도록 한 62조 7항만 두는 것이 현장상황도 정확하게 반영할 수 있고,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다는 것이다. 그 이유로서 안전에 관한 책임은 한 사람에게 주어져야지 책임자가 여럿이 되면 오히려 서로에게 책임을 넘길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설계자는 "어차피 설계단계에서는 현장을 정확하게 반영할 수 없으니, 현장에서 변경해서 잘 검토할 것이다"라고 생각할 것이고, 시공자는 "설계자가 검토한 것이니 문제없을 것이다"라고 구조검토업무에 소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선진국에서는 책임을 분산하지 않고 명확하게 해당 업무에 가장 적합한 사람에게 책임을 지우고 권한도 함께 부여한다는 것이다.
 
해외 현장경험이 많은 글로벌 기업에 근무하는 "L" 구조기술사는 "싱가폴에서는 구조기술사가 가설구조물을 계산을 통하여 구조검토한 후 시공사가 시공해놓은 현장을 방문하여 일일이 점검한 후 이상이 없다는 태그를 붙이고 난 후에야 시공을 진행하도록 되어있는데, 그 이유는 결국 안전성을 검토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기술자가 현장에서 직접 안전을 챙기게 하고 문제가 생겼을 때 그 기술자에게 막중한 책임을 물음으로서 안전을 확보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번 법안에 대해서 설계업계 "A" 구조기술사는 "대표적인 탁상행정이다"라면서 "건진법은 건설기술을 진흥시키는 법이 아니라 건설기술을 죽이는 법이다"라고 말했다.
 
시공회사 "B" 소장도 "가설구조물은 현장에서 알아서 할일이지 설계단계에서 할 일이 아니다"면서 "설계단계에서 설계가 되어있다고 하더라도 시공단계에서 실제 적용하는 자재로 다시 구조검토를 하고 감리단의 승인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설계단계에서 설계가 되어있다면 오히려 현장에 적합하게 시공을 하기 힘들어진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법안 개정작업중에 관련업계와의 협의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있어서 업계의 불만은 더욱 높아져있는 상태다. 
 
건설설계업체들의 단체인 건설기술관리협회 "C" 임원은 "이번 개정내용은 법이 공포된 것을 보고 알았다"면서 "개정과정에서 우리 협회와 협의 과정이 없었다"고 말했다. 더불어 "지난해부터 건진법의 잘못된 부분들에 대해서 국토부에 개선을 요구하고 있는데 이번 가설구조물설계문제도 개선요구사항에 포함시켜서 협회차원에서 강력하게 대응할 것이다"고 말했다. 


2014년 7월 영종하늘도시에 위치한 흙막이 가시설 붕괴 현장
_ 이석종 기자  ·  기술사신문
다른기사 보기
dolljong@penews.kr
관련키워드l가시설, 설계, 건진법

네티즌 공감 (0)

의견쓰기

최근인재정보

인포21C 제휴정보

  • 입찰
  • 낙찰
  • 특별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