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시선] 2016 리우 올림픽 폐막식, 조경가에게 헌정하다!

최정민 논설위원(순천대 조경학과 교수)
라펜트l기사입력2016-09-07
2016 리우 올림픽 폐막식, 조경가에게 헌정하다!

_최정민 교수(순천대 조경학과)



“2016 리우 올림픽 폐막식 봤어요?” 지난 22일 폐막식이 끝난 후 만나는 지인들에게 안부처럼 묻고 다닌 말이다. 


SBS

“부를리 마르스의 예술”, 중계방송 화면에 나타난 자막은 생소했다. 곁눈질로 폐막식을 보던 내 눈동자가 점점 커졌다. 연초록과 진초록, 빨강과 노랑, 보라색 같은 화려한 의상을 입은 사람들이 움직이더니 나무가 되고 꽃이 되는 것이었다. 그들이 펼치는 군무는 정원이었다. 정원은 다시 흩어져 눈에 익은 물결무늬를 만들었다. 그것은 코파카바나(Copacabana, Rio de Janeiro) 해변의 가로 패턴이었다. 


화려한 의상을 입은 사람들이 군무를 통해 ‘부를리 마르스’의 정원 작품을 재현하고 있다.  KBS


폐막식 공연에서 재현된 정원과 가장 유사한 ‘부를리 마르스’의 브라질 교육 건강부 옥상정원, 1938, Burle Marx Landscape Studio. ⓒarchdaily


코파카바나 해변 가로의 물결무늬 패턴을 형상화 한 폐막식 군무 MBC


코파카바나 해변 가로(4 km) 모자이크 포장 물결무늬 패턴, 1970, Roberto Burle Marx ⓒwikipedia

‘부를리 마르스’(KBS, SBS), ‘호베르투 부를레 막스’(MBC), 그는 우리가 ‘벌 막스(Roberto Burle Marx, 1909–1994)’라고 부르는 브라질 조경가였다. 믿겨지는가? 조경가와 그의 작품이 올림픽 폐막식 주제라는 것이. 보다 화려하고, 보다 새롭고, 보다 사이버틱한 것을 내세워 이목을 끄는 것이 올림픽 폐막식의 루틴이었다. 그런데,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 같은, 조경을 공부한 이들도 다 알 것 같지는 않은 조경가와 그의 작품이 올림픽 폐막식 주제였다. 그 기획 의도를 2016 리우 올림픽 공식 홈페이지는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브라질 밖으로는 건축가 오스카 니마이어(Oscar Nymeyer, 1907–2012)보다 
덜 알려졌지만, 그에 못지않게 창의적인, 조경의 천재 호베르투 부를리 마르스에게
폐막 공연을 헌정한다 (the closing ceremony will also pay tribute to landscaping genius Roberto Burle Marx).” -www.rio2016.com-



부를리 마르스(Roberto Burle Marx, 1909–1994) / 사프라 은행 본점 옥상정원, 상파울루, 1983. Roberto Burle Marx ⓒTyba, archdaily

그가 등장하기 전까지 브라질은 자국의 풍요로운 자연이나 전통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당대를 풍미한 모더니즘과 유럽식 정원을 추종했다. 부를리 마르스는 브라질 고유의 문양, 태피스트리(tapestry), 토속 예술을 조경 디자인에 접목하고, 자생식물을 연구하고 수집하여 지역적 고유성을 드러내는 독특한 조경을 만들어냈다. 브라질 전통 문화에 바탕을 둔 추상성과 열대지방의 풍부한 ‘식물 물감’을 가지고 그림을 그리듯(painting with plants) 디자인된 그의 정원은 대지 위에 모던 회화로 불린다. 자생적 식물학자이자 생태학자였던 그는 브라질 열대 우림의 보존 운동을 최초로 시작한 사람이기도 했다. 동시에 그는 회화, 조각, 텍스타일 디자인, 보석 세공, 무대 디자인, 세라믹-스테인드 글라스 예술, 성악, 요리 등에서 두각을 나타낸 다재다능한 인물이었다. 


리우 데 자네이로 도심과 코파카바나 해변 사이 36만평에 조성된 플라밍고 공원(Flamengo Park), 1965완공 ⓒriotheguide

‘부를리 마르스’가 ‘벌 막스’의 현지 발음이라는 것을 알게 해준 것은 방송 자막이었다. 지상파 3사가 자막을 통해 소개하는 ‘부를리 마르스’는 조금씩 달랐다.

KBS는 “부를리 마르스, 브라질의 건축가, 공예 전문가, 풍경 디자이너 등 다양한 분야에서 천재성을 드러낸 예술가, 코파카바나 해변의 인도와 아틀라티마 도로 등 리우의 유명한 건물과 장소들을 디자인했다”고 소개했다. MBC는 “브라질의 위대한 건축가이자 조경 디자이너였던 부를레 막스를 기리는 무대, 브라질의 자연경관을 작품에 반영하여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고 소개했다. SBS는 “도시의 공원과 정원 디자인으로 유명한 브라질 건축가로 브라질의 열대 우림 보호에 앞장서기도 했던 인물이고 건축가, 미술가, 보석디자이너, 음악가 등 다양한 예술 분야에서 활동했다”고 소개했다.
 
공통적인 것은, ‘부를리 마르스’를 건축가로 소개했다는 것이다. 오답을 커닝하고 정답인 줄 아는 학생 같이 뭐가 문제인지 모른다. 도대체 이 브라질리언 랜드스케이프 아키텍트(Brazilian landscape architect)가 건축가라는 것은 어디서 본걸까? 구글? 브리태니커? 위키피디아? 2016 리우 올림픽 홈페이지? 아니면 벌 막스 스튜디오(www.burlemarx.com.br) 그가 다방면에서 재능을 발휘하긴 했지만, 건물을 설계했다거나 건축가라고 소개하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었다. 이건희가 죽었다는 루머보다 더 개연성 없는 루머다. 대한민국 국민은 부를리 마르스를 건축가로 알게 되었다. 공영 방송이 진실만을 보도해 왔다고 믿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라는데 기대를 걸 수밖에.

이와 함께 KBS는 ‘풍경 디자이너’, MBC는 ‘조경 디자이너’라고 ‘부를리 마르스’의 직업을 하나 더 만들어 붙였다. ‘landscape architect’를 이렇게 옮긴 것 같다. 왜 그랬을까? 가능한 추측 가운데 하나는 어떻게 번역해야하는지 몰랐을 수도 있겠다 싶다. 그렇다 하더라도 휴대폰에서 포털 사이트에 검색해도 손쉽게 해결될 문제 아닌가? 의아했다. 우리나라 포털사이트 점유율 1위인 네이버(NAVER) 사전을 찾아봤다. 네이버 사전은 ‘landscape architect’를 명사로 ‘조경사’라고 정의했다. 숙어로는 ‘조원(造園)기사’라고도 정의했다. 그 쓰임을 보여주는 예문에는 ‘풍경건축기사’, ‘조경업자’ 등으로 번역하고 있다. 창의적이지 않은가? 포털사이트 점유율 2위인 다음(DAUM)은 어떤가. ‘landscape architect’에 대한 검색 결과가 없다. 대신 ‘architect’를 알려준다. 꿩 대신 닭인가? 다음이 왜 점유율 2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지 짐작이 간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ᄒᆞᆫ글’은 글을 쓰는 내내 ‘조경가’라는 단어에 밑줄을 그어 맞춤법이 틀렸음을 알린다.  ‘ᄒᆞᆫ글’ 사전에 없는 단어라는 뜻이다. 두 번째 추측은 번역자가 ‘조경가’를 알기는 하지만, 그가 생각하는 조경가의 이미지와 ‘landscape architect’가 매치되는 않는 경우이다. 그는 올림픽 폐막 공연의 주제인 예술가가 (나무 심을)구덩이 파는 사람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렇지 않다면 굳이 ‘풍경 디자이너(KBS)’, ‘조경 디자이너(MBC)’라고 번역할 이유가 별로 없다. 


KBS는 부를리 마르스를 브라질의 건축가, 공예 전문가, 풍경 디자이너 등 다양한 분야에서 천재성을 드러낸 예술가로 소개했다. ⓒKBS


MBC는 “브라질의 위대한 건축가이자 조경 디자이너였던 부를레 막스를 기리는 무대”라고 소개했다. ⓒMBC 


SBS는 “도시의 공원과 정원 디자인으로 유명한 브라질 건축가”라고 소개했다. ⓒSBS

‘자카 바이러스와 모기’, ‘무질서와 테러’, ‘열악한 시설’ 등은 리우 올림픽과 함께한 키워드였다. “이런 나라에서 어떻게 올림픽을 하느냐”는 비난도 일었다. 120년 만에 최초로 남미에서 열리는 올림픽이라는 의미에도 불구하고, 올림픽 연기가 필요하다고 요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개막식은 비난을 잠재웠다. 4년 전, 460억 원이 투입된 2012년 런던 올림픽 개막식에 비해 절반 정도의 적은 비용으로 전 세계 시민들에게 감동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환경과 생태, 인류의 ‘공존’이라는 메시지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마음을 움직였다. 이를 실천하는 방법으로 리우는 올림픽이 끝난 후 철거와 활용을 염두에 두고 시설을 조성했다. 강풍에 쓰러지는 시설이 있었던 이유일 것이다. 그런 일이 벌어지자, 이렇게 부실한 시설로 국민소득 만 불도 안 되는 나라(9,312$/2015)에서 무슨 올림픽을 하느냐는 비난이 일었다. 그들은 브라질보다 국민소득이 세배나 많은 나라(27,513$/2015)에 산다는 자부심을 가진 이들이었다.

그들에게 묻고 싶다. 감당하기 어려운 천문학적 비용을 들여 웅장한 시설을 지어놓고, 이벤트가 끝난 후에 남겨진 시설의 관리와 부채에 허덕이는 것을 원하는가? 자국의 환경에 기여한 조경가를 위해 올림픽 폐막 공연을 헌정하는 나라가 문화적 수준이 낮은가? 국민소득이 세배나 많다고 우쭐대면서 조경가라는 전문직을 알지도 못하고, 제대로 번역하지도 못하는 나라가 문화적 수준이 높은가? 20세기에 이미 자국의 고유한 조경을 고민하고 만들어 온 나라가 후진적인가? 21세기에 여전히 서구 작가와 작품을 모셨다고 자랑스러워하며 자기 지역의 가치를 천대하는 나라가 선진적인가?
_ 최정민 교수  ·  순천대학교 조경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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