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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 설계

월간 환경과조경20141309l환경과조경

조경가들에게 주어진 최근의 설계 환경은 백지(tabula rasa)보다는 양피지(palimpsest)가 대부분이다. 도시 환경의 복잡한 난제, 사회적 쟁점의 중첩, 다양한 시간의 층위, 라이프스타일과 문화의 복합화는 새하얀 도화지 위에 그림을 그리는 방식의 설계로는 해결하기 힘든 조건들이다. 양피지 위에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는 식의 설계 태도가, 양피지에 새겨진 흔적에서 새로운 단서를 찾는 식의 설계 접근이 일종의 절대 규범처럼 자리 잡았다. 이러한 설계 환경은 또한 형태보다는 과정, 외관보다는 작동과 실행, ‘무엇을’보다는 ‘어떻게’로 설계의 초점을 이행시켰다. “대만 치치 지진 메모리얼 국제설계공모”(2004) 당선으로 데뷔한 이후, 오피스박김이 선보인 화제작들은 사회적·환경적 쟁점이 크거나 복잡한 공공 사이트의 어려운 설계 조건을 명료한 ‘전략적’ 개념으로 치환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2000년대 중후반의 행정중심복합도시 중앙녹지공간 설계공모, 청라지구 호수공원 설계공모, 마곡 워터프론트 설계공모에서 내세웠던 “산수전략”은 말 그대로 산과 물을 다루는 전략을 공간 설계의 원칙으로 삼은 경우였다. 광교신도시 공원 특화 콘셉트 디자인 공모의 당선작에서는 불리한 설계 조건을 8%의 경사라는 전략으로 해소했다. 양화 한강공원에서는 지형 인프라스트럭처를 재조직하여 물과 뭍의 경계를 해체했다. 최근의 당인리 서울복합화력발전소 공원화 설계공모에서는 그린(green) ‘엔지니어링’에 기반한 온도 조절 공원을 제안했다. 이러한 프로젝트들을 가로지르는 공통점은 하나의 전략적 개념에 집중하여 복잡한 조건을 해소했다는 점, 그리고 그 개념이 즉물적이며 외관(appearance)보다는 실행(performance)에 초점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오피스박김에게 있어서 “형태는 시스템을 따른다.”

_ 배정한  ·  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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