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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 마로니에공원

월간 환경과조경20141309l환경과조경

마로니에 혹은 칠엽수

긁어 부스럼. 혹시 글 쓰는 데 도움이 될 자투리 정보라도 건질까 싶어, ‘마로니에공원’을 검색한 게 잘못이었다.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의 마로니에는 마로니에가 아니라 일본산 칠엽수라는 주장을 발견한 것이다. 인터넷 세상의 이른바 ‘집단 지성’은 조심스럽게 받아들여야 하기에 떨리는 가슴을 안고 마로니에공원으로 달려갔다. 아아! 당연히 마로니에라고 믿고 있었던 그 나무는 칠엽수였다! 종로구청에서 친절하게 나무에 안내판을 붙여 놓았다. ‘일본’이라는 글자는 없었지만 칠엽수였다. 어찌 이런 일이! 위험하지만, 상상력을 더해서 추리를 시도해 보기로 하자. 마로니에공원의 칠엽수는 어쩌다가 마로니에로 뒤바뀌게 되었을까를. 기록을 믿는다면 마로니에공원의 그 나무들이 심어진 건 1929년 경성제국대학 시절의 일이다. 탈아입구脫亞入歐, 아시아를 넘어 유럽으로! 일본제국주의가 얼마나 극렬하게 유럽 따라하기에 몰두했는지를 우리는 안다. 그 유럽 따라하기의 열풍이 경성제대를 비껴갔을까? 글쎄, 아닐 것같다. 경성제대에까지 불어닥친 유럽 따라하기 열풍의 한 사례가 유럽의 마로니에를 닮은 일본 원산 칠엽수의 식목이었던 것은 아닐까. 하긴 대학이라는 교육기관의 설립 자체가 이미 유럽 따라하기였다. 그렇게 시작되어 서울대학교로 명칭이 바뀐 후에도, 대한민국의 최고 수재들은 미라보 다리로 센 강을 건너 마로니에 그늘 아래 프랑스풍의 낭만을 먹 고 살았던 것은 아닐까. 자, 위험한 추리는 여기까지!


현대사를 짊어진 마로니에공원

칠엽수냐, 마로니에냐는 사실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결국 외세에 좌지우지되어 온 우리 현대사를 상징한다는 점에서는 매한가지다. 지척에 성균관이 있었지만, 해방된 대한민국 국립대의 영광은 끝내 일본이 세운 대학에 남았다. 마로니에공원에는 더 크고 아름다운 은행나무들도 많았지만, 아무도 ‘은행나무공원’으로 부를 생각은 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잘못 끼워진 단추였다. 마로니에공원에는 좁게는 서울, 넓게는 대한민국의 현대사가 상징적으로 응축되어 있다. 캠퍼스가 좁다는 현실적 이유가 전혀 없지는 않았겠지만, 서울대학교를 관악산으로 몰아낸 가장 큰 이유가 박정희의 독재에 반대하는 서울대학교 학생들의 데모질이었다는 걸 알 사람은 다 안다. ‘잘 살아보세!’만이 유일한 도덕률이었던 시절답게, 명색이 수도의 국립대학이 있던 자리를 당시의 정부(그때는 지방자치가 아예 없던 시절이었다. 서울시는 그냥 정부의 일부였다)는 처음엔 아파트 부지로, 결국 분양이 안 되자 나중엔 100평 단위의 고급 주택단지로 팔아치웠다. 캠퍼스 전부를 공공도서관으로 만들자던 여론이 잠깐 일었지만, 애당초 씨알도 안 먹힐 일이었다.

천만다행인 것은 그나마 아파트가 지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상상해보라! 지금의 대학로 마로니에공원과 그 주변 일대가 아파트로 채워져있는 광경을!

조병준  ·  시인,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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