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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 201, 설계를 다시 생각하다 (1) 개념 상실하기

월간 환경과조경20141309l환경과조경

개념 없는 설계

좋은 개념이 좋은 설계의 조건이 될 수는 있지만, 좋은 설계가 꼭 개념에 의존할 필요는 없다. 이번에 소개하는 작품은 미국 세인트루이스(Saint Louis) 시의 한 수변 공간을 개선하기 위한 공모전의 당선작이다.4) 설계 설명서에는 “우리 시대의 명작을 구성하며(Framing a Modern Masterpiece)”라는 근사한 제목이 붙어 있다. 그런데 사실 이는 설계안의 제목이 아니라 공모전의 주제였다. 결국 이 설계안에는 특별한 제목이 없는 셈이나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모든 설계 요소들을 관통할 강력한 개념을 제시하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상업광고를 연상시키는 자극적인 개념들이 첫 페이지를 장식하는 다른 설계안들과는 달리 당선안의 설명서에는 심심하게도 공모전 주최 측의 요구를 어떻게 반영했는지를 정리한 표가 첫 부분에 나온다. 구체적인 제안에 들어가서도 다른 안들은 마지막에 부록처럼 보여주는 동선과 차량 주차에 대한 개선 방안부터 검토하고 있다. 설계 설명서를 다 읽어보아도 도발적인 사고의 전환이라든가 시대정신을 반영한 야심찬 의도를 담는 개념들은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특별한 개념의 무게를 더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이 설계안의 차별성이 생겨난다. 이 수변 공간에는 미국 근대 건축을 상징하는 에로 사리넨(Eero Saarinen)의 “게이트웨이 아치(The Gateway Arch)”라는 기념비적인 건축물이 있다. 그주변 공간 역시 미국 조경의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조경가 댄 카일리Dan Keily의 작품이다. 이와 같은 역사적인 장소를 대상으로 그 공간이 지닌 원래의 의미를 완전히 재편하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며, 설령 그러한 개념을 찾아내었다 하더라도 이 공모전이 원하는 안과는 거리가 멀었을 것이다. 특별한 제목도 개념도 없는 이 안은 공모전이 요구하는 사항들은 물론 미처 알아채지 못한 문제점들마저도 파악하여 충실하게 해결해 나간다. 이 안이 훌륭한 이유는 개념 때문이 아니다. 대상지의 본질을 올바로 파악하고 과장됨 없이 문제의 핵심에 접근해 들어가는 힘 때문에 이 안은 훌륭하다.

김영민  ·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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