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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보통의 미술관

월간 환경과조경20142310l환경과조경

도시 속 오름, 진화의 시작

휴일 아침 춘천에서 서울로 향하는 길에는 백설이 분분하다. 먼저 사진으로 접한 미술관 오르막길에 혹시나 잔설이 덮여서 미끄럽지나 않을지 걱정부터 앞선다. 다행히 서울에 들어서니 조금씩 잦아들던 눈이 그치고,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1층 로비에서 광장으로 나설 때는 살짝 찌푸린 날씨가 마음을 차분하게 해주어 외려 좋다.

어려운 조경 설계 과정을 집념과 열정으로 헤쳐나간 이화원의 친구들이 제공한 설계 보고서 자료와 인터넷 기사를 참고해 보면, 대상지는 원래 “등나무근린공원”이라는 이름의 공원이었다. 1980~1990년대에 대규모로 택지 개발을 한 노원구 일대의 도심 지역이 대부분 그러하듯 대지 레벨을 전체적으로 평지로 만든 후 바둑판 모양으로 정리한 가로들 사이에 위치한 장소였다. 기존에는 작은 숲(조각의 숲)과 마당(기획 전시장)이 있던 평범한 근린공원이 이제 ‘사람과 자연, 예술이 만나는 친환경 미술관’ 또는 ‘문화의 샘’1 역할을 자처하는 강북 지역의 문화 소통 공간으로 환골탈태한 것이다.

주변의 사면을 뺑 둘러서 고층 아파트, 대형 쇼핑몰, 영화관 등 10~20층에 달하는 높다란 건물들이 즐비하다. 조금 떨어져서 미술관을 보면 빌딩 숲 속에 아이보리색 건축 입면과 상록이 어우러진 작은 지구라트가 덩그러니 놓인 듯도 하다. 최근에 마무리 중인 제주도 C 프로젝트 때문일까? 미술관 앞 광장으로 걸어 나와서 건축물 쪽을 되돌아본 첫 인상은 제주 오름의 서울 도심 속 버전이라는 느낌도 든다.

건축 설계의 전략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격자형 평지에 늘어선 이런 건축물들의 복잡하고 압도적인 풍경 한가운데서 납작 엎드린 매스를 짓는 일은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빽빽한 도시 공간과 공원 사이에 자연스럽게 틈입하되 시각적으로는 도드라져 보이는 전략2을 택했을 것이고, 더불어 평활한 지형의 단조로움을 극복하기 위해서 고안한 언덕을 적절히 활용할 수 있는 조경 설계를 요구했을 터이다.

오름 또는 언덕이 지형의 연계를 통해 문화 공간의 확산을 도모하는 공원의 진화 전략이기는 하지만, 함께 돌이켜봐야 할 사실은 지형의 체험과 극복과 조작은 인류 진화사의 첫머리와도 맥락이 닿아 있는 꽤나 익숙한 주제라는 사실이다.

“우리 연구는 직립 보행이 기후 변화에 따른 식생 변화에 대한 대응이라기보다 지형에 대한 반응으로서 진화한 것을 보여준다. … 지각 변동으로 생긴 다양한 풍경이 인류의 조상을 더 영리하게 만들었고, 복잡한 지형은 항해와 의사소통 능력과 같은 인지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기여했으며, 결국 우리 두뇌와 협동 작업과 같은 사회적 기능이 계속적으로 진화할 수 있었던 배경이 됐다.”

허대영 소장  ·  스튜디오 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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